Tuesday, April 24, 2007

What's up?


블로그를 시작하는 마음이 마치 어린시철 양철 지붕에 떨어지던 여름 장대비처럼 콩 콩 거린다. 지금 내 성격과 기질을 보면 도무지 내가 그런 정서를 가진 아이였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비가 오기 전 하늘에 짙게 깔린 구름 솜들을 바라보던 그 아이의 눈. 나는 지금 그 아이의 눈으로 새롭게 들어가는 블로그를 시작하고 있다.

블로그를 
이전에 써 놓았던 시들과 글 자락들을 어떻게 이곳으로 이사를 할 것인가 고민해야할텐데 나의 게으름은 어느새 그것도 잊어 버리게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한국에서 살 때 보다 더욱더 느려지고 느긋해진 나 하지만 많은 속임의 영적인 환경속에서 살아남고자 늘 깨어 있으려고 한지 벌써 7년째. 나는 그 7년 동안 이미 굳어버려서 한국말도 그리고 한국어 쓰기도 굳어버린것을 모르고 있었다.

굳어버린 글쓰기-내 모국어로-를 말랑 말랑하게 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이제 70년대 내 소년의 눈과 80년대 청소년의 손끝으로 돌아가고 싶다.

Happy birthday



최보연이 인도에서  처음 시도해 만든 케잌
 2003년 4월 15일생인 진주가 올 해 한국 나이로 다섯살이 되었다. 인도에서 사는 최보연은 매년 집에서 자신이 만든 케잌을 식구들을 위해서 내 놓았다. 아직도 인도의 제빵기술은 한국의 70년대 수준이라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집에서 만드는 빵이 가장 입맛에 맞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집에 오븐이 없어서 최보연은 압력솥에서 빵 만들기 시도를 했고 그 다음에는 전기밥통에서 빵을 만들어 케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조그만 제빵기계를 누군가 쓰다가 준 것을 사용했고, 올 해는 쿠쿠 밥솥을 한국에서 새로 구입해 인도로 가져올 때 받은 사은품인 식빵 두 덩어리 크기만한  전기오븐에서 빵을 구워 케잌을 구워냈다. 그리고 매번 그녀는 케잌위에 가족들의 이름을 독특한 것들을 사용해 장식해서 선보이곤 했다.

나는 한국처럼 수퍼마켓에 가면 무엇이든지 구할 수도 없고 전화 한 통이면 별 다섯개 호텔에서 만드는 것 같은 케잌을 근처 제과점에서 배달 시킬수도 없는 이곳 인도에서 7년동안 살면서 최보연의 창조적인 모습들을 수도 없이 목격하면서 살아왔다.

엄마가 만든 생일 케잌을 즐거워하는 진주

아마 그녀에게 빵을 마음껏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있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우리 가족앞에 서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온다. 최보연의 창조적이고 집중하는 모습은 그녀의 어린시절을 상상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나보다 다섯배는 빠른 글 읽기 속도와 이해력 등은 (사실 나는 매우 느리게 글을 읽고 아주 느리게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얼마나 집중해서 무엇인가를 자기안에서 만들어 내는지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최보연과 살면서 많은 편지들을 받았다. 물론 연애시절에도 그녀로부터 많은 편지들을 받았지만(대부분 작고 이쁜 글씨와 그림들이 곁들여진 정말 재밌고 사랑스러운 편지들 이다.) 결혼후 받은 것들이 더 많다. 모두 내 책상 서랍안에 잘 보관되어 있다. 그녀와 매일 매일 함께 지내면서 나는 그녀가 마치 대학교 3학년 학생같이 느껴지곤 한다. 그녀의 유머와 그녀의

인도 집앞에서 최보연, 진주, 진우


사랑스러운 재치 그리고 지혜로운 마음들은 나 뿐만 아니라 진주와 진우 두 아이에게도 큰 기쁨이 된다. 이제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된 최보연. 나는 그녀가 언제나 대학생처럼 창조적이고 유쾌하게 나이들어 가기를 소망한다. 한국에 남겨두고 온 몇 박스나 되는 초등학교 때부터 써내려간 일기장들을 절대 버리지 말고 남편인 나에게도 보지 말아 달아고 부탁할 때부터 나는 그녀가 그녀만의 소중한 방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방이 그녀에게 얼마나 편안한지 알 수 없지만 그녀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무엇이라는 것은 결혼 생활 내내 지켜져온 사실들이었다.

진주 진우 그리고 남편인 나에게 흘려 보내는 그녀의 창조적이고 부드러운 그러나 매우 강한 그 사랑과 헌신은 분명 그 방으로부터 오는 것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나는 2007년에도 나보다 나은 반쪽(Better half of mine)인 최보연의 생일이 올 때마다 그녀의 창조적인 것들을 흉내내려고 하는 나를 발견 한다. 나는 나의 빈천한 창조의 방을 열어볼 때마다 '이것은 내게 없는 은사(Gift)야' 라며 스스로 위안을 한다. 그래도 진심으로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유머러스하고 창족적인 사람으로 생각해주고 격려해 주는 그녀 최보연.

오늘은 그 최보연의 생일이다. 서른번째 생일!!!!  나는 그녀를 감동시키고 싶다. 물론 여지없이 그녀는 감동했고 기뻐했으며 가족 모두에게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깊고 큰 눈동자를 가진 최보연은 눈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감동에 찬 눈동자와 웃음을 바라보며 진주, 진우 그리고 나 세 사람도 덩달아 기쁨에 웃음이 넘친다. 우리에게 크고 화려한 케잌이 없어도 최보연이 김진주, 김진우, 김영기의 마음에 만들어준 그 방 안에는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랑의 케잌과 촛불이 켜져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촛불을 볼 수 있다.  오늘은 최보연의 서른번째 생일이다.

최보연의 서른번째 생일 그리고 케잌

----- 자매에게 2 ------
당신은 나를 통해 행복을 얻으려 하지 않는 분이군요.맞아요, 나 또한 당신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혼란하고 어지러울 때 당신은 당신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

누군가와 이야길 나누더군요.

나도 당신이 없을 때 그 방에 들어가곤 합니다.

잘 정돈된 그 방엔 하얀 침대가 있고 창문이 있습니다.

창가에 달린 테라스엔 많은 화분이 놓여 있습니다.

화분마다 당신이 새겨놓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고백을 먹고 자라는 그 화분들.

당신이 언제나 내게 평안과 화평 그리고 유쾌한 유머를

선사할 수 있는 것은 그 방안에서 누리는

기쁨 때문인것을 깨달았답니다.

당신과 살 수많은 시간을 나도 그 방에 들어갈 겁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흘러넘치는 것들을 나누어 줄렵니다.

당신은 골방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인가요?


靑潭. 사족: 결혼전에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써내려간 시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기도에 합당한 아내를 주셨음에 감사를 드린다.

진주

When I wasn't even aware of your existence
You gently came into my life making a biggest change in my small world.

And now I can see your face break into a broad smile
Now I see a great life you have in your little body.  
I see a great change you bring to me everyday.
You and I sit at a same table having a cup of living water
flowing from our Father's presence.

Sometimes I know things get confusing and messy.
But there's always the great life and breath you breathe each moment.

Your life, one of the greatest things in this world, keeps on growing.
And I, the most blessed mother of all time, am here for you always, my baby.


                                     엄마가... (Debbie)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누군가 그랬었다.
그 형이랑 결혼하면 넌 아마 공주처럼 살 수 있을거라고...
왜냐고 묻는 질문에 대답은 간단했다.
"음, 그 형 돈이 많거든."
그냥 웃어넘기면서 나는 생각했다. 'YWAM간사가 무슨 돈이 있다구...'
그리고 여러가지를 준비하며 결혼식을 하고 또 인도로 함께 와서 정착했다.

세월이 흘러 벌써 내가 그 형제와 결혼한지 3년 반이 되어간다.
사실 내가 결혼 후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된 이 사람, 김영기는 돈이 많지 않다.
생각했던 것처럼 YWAMer로서 그리고 다른 문화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로서
날마다의 재정 싸움을 한다는 사실엔 별다른 특별함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내 안에 계속해서 보게 되고 느끼게 되고
또 확인하게 되는 것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김영기는 돈이 별로 없다.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돈 이상의 것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정말로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돈많은 김영기 선교사'와 함께 살고 있다.


Debbie Choi

위대한 최보연

 
아내에게 잘보이려고 사온 키위.

평상시 키위를 먹으면 목구멍에 가시가 돋힌듯 해서 좋아하지 않는 과일중에 하나지만

최보연은 유난히 비싼 과일을 좋아한다.



그런 아내덕에 비싼 키위를 대뜸 사서 가져오니

그것이 아직 설익은 것이었는지 유난히 시었다.



호주 멜버른 DTS 디렉팅을 마치고 뭄바이 DTS를 또 리딩하러온

Vah 가 시다며 뱉아버리는 그것을 최보연은 단숨에 세개를 끝내버렸다.



이틀후 병원에서 아이 소식이 담긴 리포트를 받았다.



으햐햐..좋아라... 위대한 최보연이 둘째를 가졌다.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는 진주, 이제 동생이 생기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동생이 뱃속에 있다.



진주 앞에서 엄마 배를 손으로 대며 '아가' '아가' 하니 진주의 만면에 웃음이 번진다.

어린 진주도 좋은 모양이다.



서울에서 온 대학생 전도여행팀과 하루 종일 함께 하다가도 양해를 구하고

최보연과 꼭 밥을 먹으려고 노력중이다.



삼일전엔 오징어 볶음을 그 다음날은 고등어 튀김을 그리고 어제는 갈비탕을

만들어서 위대한 최보연께 바쳤다. 무를 너무 많이 넣어서 그만 국물이

탁해져 버렸지만 맛이 일품이었다. 앗싸...



위대한 최보연은 그저 한그릇 맛만 보고 입덧 때문이지 냄새를 맡지 못하고 그만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래도 좋다.



최보연 화이팅.!!!!



위대한 최보연 화이팅!!!



주님께서 우리를 신뢰하시고 사랑하시어서 주신 아가, 둘째 아가의 이름을

생각중이다.  한번 골라봐 주시길...



1. 김 착해라.

2. 김 착하니.

3. 김최아기.

4. 김최고다.

5. 김동그라미.

6. 김착하지



우히히... 아무거나 손들어 주세요.

아이디어가 있으시다면 덧글을 달아주시고...



그럼 이 복음을 만방에 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인도에서 김영기, 최보연, 김진주, 미래의 아기 선교사 드림.

결혼기념일

 
12월 8일, 최보연 김영기 결혼한 날.
오늘은 세번째 맞이하는 결혼 기념일이다.
아내는 한달 전부터 조심스럽게 결혼 기념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전에는 그동안 적은 삶림예산에도 조금씩 조금씩 떼어서
돈을 모으고 있는 것을 넌지시 내비치기도 했다.

착한 아내...
매년 결혼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아내는 귀한 선물과 편지를 주곤 했다.
마음을 한껏 표현하고 싶어하는 그녀.

일주일 전엔가 그녀의 코 끝에 약간 크고 검게 피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여보 이게 뭐야? 이거 피지 같은데 내가 빼줄까?" 하니
아내는 기겁을 한다.
괜스레 그거 빼려다가 성나면 어찌하냐며 고개를 설레 설레 한다.

어제 밤에 여보...하며 다가온 아내는 "여보 이거 뺐어요..." 하며 다가온다.

그녀의 코끝이 빨갛다. 검은 그것은 그대로 거기에 남아있다.
아마도 점이 되버린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아내는 결혼 기념일 하루전날 그 피지를 빼서 예쁜 코를 남편인 내게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새벽에 일찍 잠이 깨서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오늘 아내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머리속에 맴도는 많은 것들 때문인지
유난히 머리위 팬이 시끄럽게 느껴진다.

딸깍 딸깍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저 짙은 갈색의 팬을 바라보며
일상의 소박한 시간, 그저 특별하지는 않지만 저 깊은 곳의
마음을 편안하게 나눌 수 있는 짧지만 귀중한 시간들을 아내와 나누는
것이 최고의 결혼 기념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혼 11년째를 살고 있는 옆집 사람 브라질리안 이자벨이 어제 늦게 아내에게 전화를 해왔다.
남편과 오붓하게 저녁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이제 19개월된 딸 진주를 자신이 돌보아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매일 하루 24시간을 딸 진주와 함께 보내야 하는 아내에게 그것은 귀가 솔깃한 제안임에
틀림이 없을 텐데 아직 어린 딸을 결혼기념일이라고 따로 떼어놓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 모양이다.

딸 진주는 엄마 아빠가 서로 껴안고 뽀뽀를 할 때마다 질투를 표시해낸다.
이제 무엇인가 스스로 인지하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어서 그 질투의 표시가 밉지 않다.

우리 부부의 사이에 꼭 끼고 싶어하는 진주를 보면서
이제 엄마 아빠가 서로에게 가장 우선이며 진주는 두번째 임을 가르쳐 주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진주를 너무도 아끼지만 딸 진주는 엄마 아빠의 깊은 사랑의 관계의 열매를 옆에서 보고 배워야만 자기 정체성이 뚜렷하고 사랑을 받는데 주저함이 없으며 주는데 인색함이 없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아직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
어쩌면 이리도 닮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는 나를 닮은 반쪽이었다.
날마다 닮아가는 그녀와 나는 오늘 조금은 특별한 닮음의 날을 기념할 것이다.

아내 최보연을 창조적으로 놀라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오늘은 더 많은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靑潭.

윙크의 여왕 진주

 
아내 최보연은 유전적으로 윙크를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어느날 온가족이(진주까지) 드러누워 오손 도손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날 따라 유난히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를 가진 아내가 무지 이뻐보였다.

그저 한쪽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윙크를 보내니 아내가 너무도 좋아한다.
참, 순진하고 착한사람... 입이 함지박 만해진 아내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며
신기해 하기만 한다.

어? 이사람 이상하내..윙크 처음 보나?  아내는 자기는 윙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윙크를 할려면 그저 두 눈을 모두 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도 신기해서.. 한번 해보라 하니..정말 두 눈을 모두 감았다가 뜬다. 하하하..
배꼽이 떨어져라 웃고나서 몇번이고 해보라 하니 또 한다.

아마 연습 부족일거야 하면서 한쪽 눈 감는것을 시도해 보라 하니 얼굴이 찌그러진다.

그래 여보..그저 있는 대로 살아야지..하며 토닥 거려주었다.

아비와 어미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자신도 끼고 싶었던 아기 진주도 벙글 벙글 웃더니

윙크를 한다. 하이고..두 눈을 모두 감는다. 아빠인 내 가 한쪽 눈만 감아 보이며  '윙크' 해도 두 눈을 모두 감는다.

그래도 정말 이쁘다. 진주가 두 눈을 모두 감으며 날리는 윙크는 세상 어느것보다 이쁘다.

진주의 윙크를 수없이 받은 최초의 남자인 내가 봐도 기절할 정도인데 다른 녀석들은 오죽할 까.

윙크의 여왕 진주... 진주는 엄마를 닮아서 두 눈 윙크를 한다.

두 눈 윙크는 외눈 윙크의 배가 되는 사랑을 담아서 보내는 무진장한 윙크.

아내와 진주가 두 눈 윙크를 하니 나도 덩달아서 두 눈 윙크를 하게된다.

우리 가족은 모두 두 눈 윙크 가족.


                                                  靑潭

아내에 대한 단상

 
아내는 말수가 적고 다른 사람의 분위기를 잘 살피는 사람이다.
이북에서 월남하여 자식들을 키워내신 외할머니의 강함이
아내의 어린시절을 묶고 있는 강한 끈이 된 그 시간들...

차 안에서 아내는 내 눈치를 잘 살피곤 했다. 결혼 전이라
설레이는 심장 소리가 천둥처럼 자신의 귀에 들리는 듯했던 연애시절.

아내는 조선시대 사대부집 아가씨처럼 얌전하기만 했다.

'이 여자는 분명 속에 시커먼 그을름이 많은 여자 일거다.'
'언젠가 터지면 무지 막지한 폭탄이 되고도 남을 여자다.'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 사람이 나랑 살면서 폭탄이 되지 않게 하려면 계속 마음을
토해내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월하지 않던 나눔의 시간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상대방의 기분을 잘 더듬어서 말하는 조심성을 가진
여자.

참으로 고운 그녀의 심성에는 여전히 많은 끈들이 감겨져 있었다.
그 부자유함을 풀어내고 자유함으로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는

뜨거운 커피를 천천히 식혀가며 마시는 여유가 필요했다.

신혼여행 일주일의 시간중 3일은 함께 마음 깊은 곳..저 깊은곳..
주님과 자신만이 알고 있던 심연을 퍼 올려 함께 마시는 시간을 갖었다.

그 쓴 물들...마라의 연못. 아내와 내 안에 있던 마라의 연못을 함께
터뜨리며 보낸 3일간의 시간...

아내와 나는 그 시간을 통해 평생을 함께 깊이 깊이 나눌 수 있는
자유함을 획득했다고 서로 자찬을 하곤 한다.

지금도 아내는 아내된 권세를 누리고 사용할 수 있는 여유를 연습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산다는 것은 날마다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나를 보여주는 아내... 그녀의 말은 아직도 조심스러운 조선시대지만
그녀를 묶고 있던 그 영혼의 끈은 사라진지 오래다.

자유함을 누리는 아내는 나의 거울..

나를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거울....


 
                                               빌리김.

딸 진주와 방귀...


이제 4개월 반이 된 진주.
팔 다리가 미쉐린 타이어 케릭터같아서 뭄바이 베이스 간사들 모두
미쉐린이라고 놀리곤한다.

태어나자마자 진주는 방귀를 자주꼈다.
아기가 이렇게 방귀를 크게 끼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었기에
조금은 당황하기도 했지.

더군다나 아빠인 내가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은 이후에는
유난히 방귀끼는것에 자유해져서 사람들은 방귀소리가 나면

바로 나를 쳐다보곤했었다.

딸 진주를 안고 있을 때마다 진주는 방귀를 크게 낀다.
사람들은 딸 진주가 뀐건지..내가 뀐건지..모두 갸우뚱해 한다.

나는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어? 진주가 뀌었는데?"

힌두신을 믿는 정형외과 의사 사친

 
오늘은 인도인 찬양인도자 올렘형제와 Dr. DY Patil 병원에 갔다.

지난 11월 9일 트럭이 치고 도망을 가면서 올렘의 빗장뼈가 부러지고 두개의 갈비뼈가 부러져서 수술을 했었다.

정형외과 전문의이자 Dr. DY Patil 교수인 닥터 사친은 수술시작

30분전에 도착해서 마취전 올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이마로부터 가르마를 치며 길게 그어진 붉은 힌두의식의 흔적이 보인다.

그도 전형적인 인도인 의사 임에 틀림이 없다. 그는 싸이바바를 믿는 걸까 아니면 딸 진주의 소아과 전문의 닥터 실파처럼 깔리 신을 믿는 걸까. 

닥터 실파의 남편은 안과 의사인데 그는 아내와 다른 신을 믿는다고 한다.

한국의 의사들은 우선 히포크라테스를 믿고 그를 의지하거나 석가, 예수 또한 의지 한다고 들었다.

그래도 한국의 의사들은 이성적인 면이 다분한데 인도의 의사들은 조금 다르다.

그들의 세계관의 영향은 대단해서 환자에게 무엇을 먹어야할지 가르쳐 줄 때도 스스로가 베지테리안인지, 넌베지테리안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딸 진주의 소아과 의사인 닥터 실파는 베지테리안이어서 진주가 아프면 그저 야채를 끓이거나 어떻게 해서 주라고 한다. 고기는 금물....

한국의 의사같으면 소고기 스프 같은것을 주라고 했을법한데 말이다.

아무튼...정형외과 의사인 사친도 그런 힌두 세계관을 가진 의사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매우 자신 만만하며 신뢰가 갈만한 웃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너는 정말 멋진 의사라고 칭찬을 했다.

그는 오늘 아침에도 자신이 믿는 힌두 신에게 뿌자(아침마다 향을 피우고 하루를 보호해주고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무엇인가 비는 행위)를 했을것이다.

그후 다리뼈가 부러지거나 갈비에 문제가 있는 다양한 계층의 인도인들을 만나게 될것이다.

그가 치료를 할 때 치유의 하나님도 그와 함께 하겠지만 그가 믿는 힌두 귀신도 함께 동행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올렘형제의 빗장뼈는 드릴로 구멍을 뚫고 유연한 쇠심을 양쪽 부러진 뼈에 넣어서 잘 이어졌다.

수술 2주째인 오늘 찍은 엑스레이에 수술후 막 찍었을 때보다 두 뼈 사이가 약간 벌어져 있었다. 닥터 사친은 짤따해(괜찮아...) 한다.

2-3미리 미터 뼈가 떨어져 있어도 곧 붙을터이니 올렘이 절대 팔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음...쇠심을 박아서 두개를 붙였는데 다시 조금 떨어진 것을 본 나는 한국사람 기질상 조금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올렘은 조금 행복해 졌다. 칼슘 을 매일 2번씩 먹으라고 한다.

6주 후 올렘은 뼈 속에 이은 쇠심을 빼러 다시 병원에 와야한다.

6주 후에도 정형외과 의사 사친은 아침 템플에서 받은 붉은 힌두 가르마를 하고 올것이다.

무까리지 나가의 여인들

 
일요일은 어느 나라나 쉼을 의미하는 날이다.

바뜨라 시네마 극장 옆에는 인도 특유의 색깔을 내는

꽃가게가 있다. 꽃가게를 지나 일요일의 햇살을

뒤로하고 고급 실크 푼자비를 입은 젊은 여인들이 시내로 나간다.

푼자비는 인도의 전통의상 이지만 일상적인 의복처럼 사용된다.

가슴을 은근히 드러내고 인도 여인들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는 옷. 날씬하고 긴 다리를 가진 인도 여인들은 배꼽과 허리를

과감히 노출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이다.

무까리지 나가의 여인들은 일요일에 시내로 간다.



                         靑潭.

산장으로 가는 길


가을을 본다는 것은 낙엽을 밟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랗게 바랜 은행잎들이 가로에 수북히 쌓여있고 그것을

밟고 지나가는 시간은 기억의 숲을 산책하는 기분이 듭니다.

아침일찍 쓸어버려 너무도 깨끗한 서울 거리에서 가을을

맛본다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도시를 지나 가을

을 보고 싶을 땐 해질무렵 하루종일 햇빛을 머금어 형광을

발하는 은행잎 가로수가 있는 곳을 찾아 가보죠.

그리고 아침이 오기전에 천천히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발 아래 밟혀지는 낙엽소리는 우리 영혼의 가을을

재촉하는 손짓이며 그분이 광야에서 흠모하던

고독의 산장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이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가을을 보러 가고 싶다면 함께 낙옆을 밟으러 가보는

것도 좋을듯 싶습니다.



                     靑潭.

M 블럭의 소

 
인도는 암소를 신으로 섬기는 힌두교 덕분에 대로마다, 골목마다

소들이 지나 다닌다.

인도의 수도인 델리도 예외는 아니다. 무까리지 나가의 M 블럭 골목에는

흑갈색의 어미소와 새끼소가 함께 다닌다.

새끼소는 오른쪽 어깨부터 꼬리 쪽까지 병에걸려 털이 모두 벗겨진

상태였다. 벗겨진 살갖으로 붉은 속살이 보이고 파리들이 떼로 붙어있다.

말없는 어미소 옆에 꼭 붙어다니는 새끼소.

공해가 심한 인도의 환경은 상처가 쉬 아물지 않기에 약이 독하다.

사람들은 인도의 약이 잘 든다고 이구동성이다.

어미소는 계속 혀로 상처를 핥아 준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변함없이 핥을 것이다.



                          靑潭.

동행

 
청계산 산자락 끝에 매달린 가을은 벌써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오랜만에 달고 맛있는 산공기를 맛보고 싶은 마음에 친구와 함께

산보에 나섰다. 널찍한 공터에 이르러 기지개를 켜며 지난

여름동안 훌쩍 커버린 나무들을 바라다 보았다. 내 영혼의 키가

저렇게 훌쩍 커버린다면 놀랄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킨 마음에 두 눈을 꼬옥 감고 걷기 시작했다. 옆에서 아무말

없이 걷고 있는 친구의 발자국 소리가 더 크고 또렷이 들려온다.

콧등을 스치는 바람의 소리도 들리지만 내가 안전한 길로 걷고 있다는

마음의 평안은 옆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들려오는 친구의

발자국 소리 때문이었다.

친구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면 나는 혼자 걷다가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일 것이 틀림없을것이다. 두 눈을 꼬옥 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걸을 때 내 옆에서 들려오는 동행의 발자국 소리는

내 중심이 되고 평안의 길잡이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자주 그분이 내 옆에서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영혼의 분주함으로 그분이 동행하는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하곤 한다.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겨울낙옆 숲에서

그분의 깊고 가벼운 평안의 소리를 듣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영혼의 암흑 속에서도 성큼 성큼 걸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동행의 소리.




                            靑潭.

그림 속의 치유자

 
시원한 매미 소리가 여름 날을 녹히고 있는 어느날 한 대학병원에

갔었다. 대학병원 중앙 현관을 지나자 정면으로 커다란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 속에는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와 그를 진찰하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그리고 간호사가 등장하고 있었다. 내 눈을

놀라게 했던 것은 그 세 사람을 따뜻한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며

함께 서 있는 예수의 모습이었다. 병원에 이런 그림이 있구나 하며 신기해

했다.

과학적 의술을 가장 신뢰하는 대학병원 중앙 홀에 환자와 의사 예수님이 함께

등장하는 그림을 본것은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학병원이

기독교 대학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그림은 중요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5월, 대학입시에 여념이 없던 그 때 보충수업을 땡땡이 치고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시외로 나갔었다. 답답한 교실에 앉아 칠판과 선생님

얼굴만 바라보다 녹음이 우거져 가는 5월의 오후에 시원한 바람을 얼굴로

맞으며 타는 자건거는 친구와 내 마음을 더욱더 신나게 했었다.

그러던중 과천 고개를 넘어 굉장한 속도로 내달리다 좌회전 하던 차량과

정면 충돌을 하고 말았었다. 뒤 따라 오던 친구의 말에 의하면 공중으로

수 미터를 붕 떳다가 땅에 떨어졌고 곧바로 영동세브란스 병원으로 긴급히

후송되어 씨티(CT) 촬영과 엑스레이(X-RAY)을 수 십장 찍었다고 한다.


충격에 의한 뇌진탕으로 좌뇌와 우뇌 간격이 벌어진 이상부흥상태 진단을

받았었다. 대학입시를 일년 앞둔 그 때 멍한 상태로 하루 하루를 통원치료하며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찢어진 부위를 꿰맨 후 매일 독한 주사를 두번씩 맞았었다.

그 때 친구의 권유로 신앙을 갖게 되었고 사고후 3년째 될무렵

더이상의 후유증없이 완케되었다.


'병이나 상처를 다스려서 낫게한다'는 치료(治療)와 '치료로 병이 나음' 이라는

의미의 치유(治癒) 라는 말이 있다.

다시말해 우리의 몸이 찢어지고 아플 때 의사가 꿰매고 소독하고 약을 주사하

여 상처나고 아픈 곳을 봉합하는 치료과정을 큐어(Cure)라고 한다.

그 이후 의사의 치료에 대한 인체 내부의 여러가지 작용과 우리의

희망적인 의지가 함께 동원되 나아가는 과정을 치유 즉, 힐링(healing) 이라고 말한다.

치유와 치료가 함께 있지 않으면 우리는 병으로부터 나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교통사고후 병원과 의사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과정인 치료(Cure)를 충분히 받았다.

동시에 나을 수 있다는 희망적 의지와 내 몸의 치료에 대한 반응은 치유과정

(healing)을 오랜동안 견딜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의사와 병원이 최선을 다해 해낼 수 있는 치료 이후엔 우리 몸을 창조해 놓으

신 그분의 전적인 힘인 치유(healing)가 있어야만 온전히 나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대학병원의 의사들은 이런 원리를 겸손히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깊고 뜨거운 사랑과 의지 그리고 평화와 진리가 함께 버무려진 모습으로

대학병원 중앙현관 홀에 있던 그 그림속의 치유(healing)는 이미 내 마음의 현

관 안에 그분과 함께 걸려 있었다.

The door

 
토요일.

교회에 가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하나님 차비 주세요. 기도한다.

몇 달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차비를 주셔서 교회에 넉넉하고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오늘도 느긋하게 이불 속에 누워 하나님 차비 주세요

기도했다. 마침 주머니에 5백원짜리 동전 하나가 있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와우. 교회갈 차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기도를

하자마자 바로 전화벨이 울린다.  '영기냐. 오늘 토요일 이니까

늦지 않게 동사무소 가서 등본 세 통을 떼 놓으렴' 어머님의 전화다.

등본을 떼고보니 주머니엔 동전 두개가 남았다.

아버지 어쩌죠...  주님은 토실 토실하게 살이 붙은 허벅지를 내려다 보시며

"오늘은 걸어가렴.." 하신다.

교회까지 산 하나를 넘어간다. 차분하고 평온하게 걸어가는 시간

참으로 오랜만에 산보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몇 개월간 전철이나

버스만 타고 다녔던것 같다. 간만에 맛보는 도보 묵상 시간이다.

쑥 고개마루에 문들이 많이 서 있다. 멋있는 문양이 박혀있는 문(door) 만드는

공장을 빙 둘러싸고 문들이 세워져 있다. 그 많은 문들 중 하나를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동했지만 그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냥 보기 좋게 전시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공장으로 들어가는 진짜 문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

는다. 연달아 붙어있는 수 개의 문들 중에 어느것이 입구로 들어가는 진짜

문일까?

난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문(The door)을 알고 있다. 지금 걸어가며 나를

훑고 지나가는 모든 순간이 나에겐 문 인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

느니라 말씀하신 예수님이 바로 나의 문(The door) 인 것이다.

세상의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답게 장식한 대문 공장의 전시된 문과 같은 것

을 두드리고 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이 문들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벽

이 있을것이다. 모두가 가짜 문인 것이다. 그곳엔 오직 하나의 진짜 문만 있을

뿐이다.

난 고민하지 않는다 언제나 손을 내밀어 열 진짜 문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곳

엔 예수님과 함께 산책할 동산이 있다. 난 자주 그 동산에서 꽃을 심고

달고 맛있는 포도를 따 먹곤 한다.

쑥 고개를 넘어서서 한 숨을 돌리고 나니 배가 고파온다. 벌써 점심시간인가?

주머니 속에서 동전 두개가 잡혀온다.

따르르릉 여보세요,  ' 어? 어디냐? 밥 먹었니?'

교회 근처에서 태권도 도장을 하는 형이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점심이나 함께 먹자고 권한다.

오늘 주님은 넉넉히 산보할 시간도 주시고 점심도 주셨다.

난 오늘도 그 문(The door)을 기꺼이 열어주신 주님의 손을 잡아 본다.




                            靑潭.

어버이 날

 
새벽녘에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왔습니다. 안방 불이 꺼져 있습니다.

늦게까지 책을 보시거나 TV를 켜 놓으시던 아버지께서 주무시나 봅니다.

며칠전 어버이날, 아버지는 늦은 시간까지 약주를 드신후 집에 전화를

하셨더랬습니다. '영기야..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어디세요..제가 모시러 갈께요..'

'영기야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그리곤 전화가 끊겼습니다. 아버지의 핸드폰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12시가 넘어서야 조금 취기에 겨운듯한 몸짓으로 아버지께서는 방문을

열어보셨습니다.  1시간 동안 큰아들의 삶에 대해 걱정어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날 밤은 어버이 날 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안방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묵묵히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조만간 선교지로 떠날거라는 저의 말에

아버지의 마음 한켠에 서운함과 걱정이 함께 자리를 잡은 모양입니다.

환갑을 몇달 남짓 남겨두신 아버지의 어깨는 더욱더 연약해 보입니다.

장성한 아들이 예수전도단 간사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못내 미덥지 않이신

모양입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 일하며 결혼도 해 손주를 보여주는

평범한 삶을 살지 않는 아들을 보시며 가슴에 걱정이 한줌씩 잡히시는듯

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주님이 부르실 때 예상되었던 것들이지만 어버이날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저의 삶의 모든 자취를 보시며 안타까와 하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순간 순간의 모든 행보와 선택 속에서도 저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맛봅니다.

육신의 아버지의 마음이나 예수님의 마음이나 동일한 것이지만

다른것이 있다면 저의 삶의 모든 영역이 그분이 이미 원하시고 계획하셨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저의 안정감은 오직 주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확신을 다시금 하게 되는

어버이 날 이었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살아내는 삶이 험한 길임을 아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제가 그 길 위에서 기꺼이 살아내고 기뻐하는 것을

보시며 영혼으로 안심을 하시고 계십니다.

다음 해 어버이 날엔 아버지께서 저의 선교사의 삶을 기뻐하시고

격려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주님의 질서 속에서 살아내는 저를 통해

부모님의 영혼이 새롭게 되고 평온케 되실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오늘 밤, 이 순간에도 저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靑潭.

춘곤증


두툼하고 딱딱한 껍질로 겨울을 살아낸 목련나무.

그 투박하기 그지없는 나무 속에서 아기 볼보다 더 보드랍고 하얗게

빛을 내는 목련꽃이 피어난다.

냄새도 나고 보기싫게 흙이 덕지 덕지 붙어있던 베란다 화분 흙 속에서

방금 고개를 내민 여리디 여린 새순.

저 딱딱한 나무 속에 목련이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내어버려도 시원찮았을 시커먼 흙 속에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동화 속에는

보기에도 징그러운 애벌레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번데기를 거쳐서 나중엔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성경속의 주인공들에게도 비슷한 내용으로 스토리를

전개시켜 나가곤 하신다. 모세도 요셉도 그리고 다윗도 모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후 애벌레의 기간과 딱딱한 누에고치상태인

번데기의 변태과정을 거친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는

연단의 광야기간, 불의 기간을 거쳐 주님께서 쓰시기에 적합한

도구가 되어진다.

그럼 난 요즘,,애벌레인가 번데기인가?  자문해 본다.

토요일 한가한 오후 푸른 하늘 끝엔 봄이 매달려 있다.

그리고 그 봄의 치맛자락 속엔 춘곤증이 숨어있다.

난 주님께서 주시는 불 가운데에서 봄을 맞이했다.

오랜 기간의 누에고치 변태의 과정을 거쳐가는 과정에 있다.

거리마다 개나리가 만개할 때 내 영혼의 봄은 꽃을 피우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린  날개를 활짝펴서 날아 오를 것이다.

내 영혼의 누에고치를 바라보며...



                        靑潭.

하나님은 참 좋으신분


"제 1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첫번째,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큰 아들이 읽어내는 새신자 교본을 소리내어 따라 읽으시는 어머님의 얼굴이 어

린아이처럼 밝고 환하다.

두 주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어머님은 동네 지역장과 몇분을

초대해 기도도 하고 찬송도 했다고 하신다.  어린시절 일찍 아버지를 여의시고

홀 어머님과 함께 살아낸 그 삶 속에 아비의 온전하고 넉넉한 사랑을 남편을 통

해 맛보길 기대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지난 30년 동안의 결혼 생활 중

어머니는 한번도 참 좋으시고 넉넉한 아비의 사랑을 누리지 못하셨다.

그나마 큰 아들이 유일하게 삶의 모든 이야기가 통하는 통로였다. 하지만 큰아

들도 그것을 온전하게 맛보게 하는데는 역부족인 것이다.

주님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지난 3년간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때를 선택하셨던

모양이다. 이제서야 어머님이 진정한 영적인 아비의 사랑을 맛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력이 좋지않은 어머님은 돋보기를 써도 작은 글씨는 잘 보지 못하신다. 매일

밤 큰 아들인 내가 직접 소리내어 읽어드리며 새신자 교본을 끝내기로 했다.

얼마나 기분이 좋고 넉넉한 시간인가. 사랑이 흘러 넘치는 교제의 시간이다.

캠퍼스에서 학생들 양육할 때 느낄 수 있는 것과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교제 시

간인 것이다.

소리내어 낭랑하게 읽어낼 때마다 주님께 감사의 마음이 울려 넘친다.

어머님 가득히 육신의 아비가 채우지 못한 사랑을 영적인 아비이신 하나님 아버

지를 통해 채워지길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게 된다.

그래서 그 여며지고 깨뜨려진 연약하디 연약한 어머님의 심령에 따뜻하고 참 좋

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흘러 넘치기를 간구한다.

오늘밤도 어머님은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우시고 계신다.

환갑이 다 되어서야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찾으신 어머님,

키 큰 아비가 두 손을 내어 뻗어 반기기라도 하는듯이 어머님은

어린 소녀처럼 읊으신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


                     

                               靑潭. 

교만


방문을 열어보니 아무렇게나 방바닥에 쌓여있는 책들과 옷가지들이 있다.

날이 추워 열보존을 한다는 핑계로 이불을 넓직하니 깔아놓았더니

온 방안이 마치 무슨 고물상처럼 어지럽다.

이불을 개키고 이면지를 정리해 한쪽에 치워두었다. 그리고 책들을 하나 하나

책꽃이의 남는 자리에 넣었다. 보기엔 참 정리가 잘 된 방이되었다.

걸레를 빨아 바닥을 닦아내면서 연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큼직한 것들을 모두 치워 정리해 두어 말끔해 보이던 구석 구석에서

엄청나게 시커먼 먼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책상 위, 비디오 위, 조그만

악세사리 하나 하나 위에 수북하니 먼지들이 쌓여 있었다.

책꽃이 받침대에도 수북히 쌓여있다.

닦아낸 걸레위에 두껍게 묻어나온 시커먼 먼지들.

내 마음 속에도 그동안 방치해둔 먼지들이 수북하게 앉아있었다.

보기엔 큼직한 것들을 잘 정리해 두어서 견고해 보였지만

그 안에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던 시커먼 것들이

너무도 수북히 쌓여있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마음 속 먼지들을 보고 놀라는 하루였다.

저녁에 방 청소를 하고 난 후에야 마음 속을 걸레로

훔쳐냈다.

교만의 먼지가 가장 많았다.

교만함은 다른 사람의 교만과 꼭 부딪혀 소리를 낸다.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긴다면 그것은 모두 내 교만함이

함께 반응해 내는 소리인 것이었다.

내 교만의 먼지를 마신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영적인

콜록거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콜록거림에 내 교만은 또 소리를 낸다.

콜록 콜록

콜록 콜록...





                          靑潭.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캠퍼스 학생들과 교제하고 양육할 때마다

두 눈을 들여다 본다.

나 처럼 덩치 큰 사람도 그들의 두 눈안에 들어가 있다.

세상을 모두 담고도 남을 두 눈을 반짝 반짝이며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곤 한다.



"저 간사님..있쟎아요...?"  


언제나 대답할 것을 준비해야만 하는 마음의 부담감을 버린지 오래다.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이렇게 반문한다.


" 글쎄...네 생각은 어떤데...?"


학생들은 기다렸다는듯이 말문을 트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스스로 해답을 갖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나 그리고 학생, 사람들은 모두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를

찾아 다니고 있었다. 어떤 정답이 아닌 단지 그것을

편안하게 들어줄 큰 귀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함께 한다는 것은 존중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있는 모습 그대로, 그 속 마음 그대로를 존중하며

"당신의 생각은 어떤데요...?"

라고 묻기 시작할 때 우리는 함께 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靑潭.

죽으러 가는 길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곧바로 무릎을 꿇고 죽음을 간구한다.

하나님 저를 죽여 주시옵소서, 하루 종일 죽여 주시옵소서..

아니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챤이 왠 죽음을 구하는 기도인가?

삶 속에서 계속 드러나는 속자아. 혼(魂)과 육(肉)의 나를

죽여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나는 매일 죽음에 이르는 길을 걷겠습니다. 되뇌이며 현관문을

나선다. 어느날은 현관문 앞에 서서 신발을 신다가 즉시로 다시

살아난 속자아를 발견하곤 흠칫 놀라기도 한다.

이 녀석들은 현관문을 나서서 몇걸음 걸어가자마자

꼬리를 내어밀고 나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오직 주님만이 내 안에 가득히 채워져

성령의 모든 힘과 세력으로 내 영혼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의 육과 혼을 다스리기 시작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의 죽음이 유익함이란 말을 최근에야 뼈져리게 감수하고 있다.

내 삶 안에서 감내가 아닌 완전한 죽음에 이르지 않으면

영의 키는 더이상 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죽으러 간다.




                           靑潭.

인간에 대한 이해

 
주님 아버지,

지금의 때에 저는 견디기 힘든 상황과 환경 속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냉정함과 시기와 질투가 저의 뼈를 녹힙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과 환경을 통해 주님이 가르치시는 것을

온전하게 깨닫게 하시고, 저의 부덕함과 교만의 모든 바위들을

깨뜨리시소서.

그리하여 저에게 불화살과 얼음 화살을 쏘게된 모든 이들을

사랑하게 하시고, 그들을 축복하게 하소서

제 입술에 거룩함과 사랑의 말만 있게 하셔서

환경과 상황이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계속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을 찬양하게 하소서.

제 마음을 견고히 지키며 주님이 주실 귀한 가르침을

기꺼이 배우게 하소서.

저를 겸손케 하시고...저의 영을 계속 가난케 하소서..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눈과 귀와 입술을 갖게 하소서...

겸손케 하소서..

겸손케 하소서..

제 안의 모든 저를 계속 죽이도록 하소서..

오직 제 안에 주님만 계시도록 하소서...


        


                             靑潭.

I trust you

하나님 저로 하여금 쉬운 부정보다는 힘든 정의를 선택하

게 하옵시고, 절반의 진실에 만족하지 않고 전부의 진실을

찾게 하옵소서. 저에게 용기를 주사 고상하고 값진 모든 것

에 충성하게 하옵시고, 악과 불의와의 타협을 거절하며, 정

의와 진리가 위험에 빠졌을 때에 비겁하지 않게 하옵소서.


제 방 한쪽벽에 굵은 글씨로 쓰여진 자기 선언문 이랍니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나옵니다.

레오는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허리까지 차오른 객실에서 케이트는 사랑하는 레오를

구해내기 위해 날카롭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도끼를 구해

손에 들고 있습니다.

귀족처럼 자라 망치질 한번 해보지 않았던 케이트는 자기가 실수 할까 두려워 머뭇거립니다.

이 때 레오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I trust you!"


케이트는 단번에 수갑을 끊어냅니다.

우리의 삶에는 우리를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하고 두렵게 만들기도 하는 수많은 수갑이 있
습니다.

대부분은 마음과 환경의 수갑입니다.

또 자신의 무력함과 열등감으로 어떤 일을 결단하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 때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I trust you!"


우리 함께 자기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의 동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봐요.


      "I trust you!"


우리를 묶어두었던 수갑은 단번에 끊어질 것입니다.




               靑潭.

한 여름 밤의 꿈


지하철 문이 열리전 전까지 몇초의 정지된 시간.

지하철통 안으로 드문 드문 빈자리가 보인다.

뒤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짙은 녹색 시트의 빈자리를 발견한 모양인지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부산하게 힘을 가해온다. 중년의 기름기 낀 콧바람이

목덜미를 더듬는다.

낮동안 봄바람에 마음을 야릇하게 하던 포근한 날씨가 오후가 되니 이내 쌀쌀해졌다.

결혼.

그 신성한 의식을 축하하고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회 의식대로 목사님의 경건한 말씀과 축사를 통해 두 사람


한 몸됨을 선포하였다. 연신 두 눈가에 주름이 지도록 커다란 눈망울을 또릿하게

뜨고 웃기만 하던 신랑과 무표정하게 긴 마스카라 속눈썹을 다소곳이 내리감고

있던 신부. 여느 철부지 선남선녀의 결혼처럼 부산하게 장난스럽고 거창하지도

않은 차분하고 겸손한 혼인식이었다.

그 두 남녀를 바라보는 하객들의 눈엔 두사람의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잠시라도 함께 꿈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

교회에서 조용하게 열린 혼인식 이어서였는지 내심 흐믓한 여운을 마음에

담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보통 토요일에 개최되는 예식장 결혼식은 입구부터 시장을 방불케한다.

부조를 받는 데스크는 흥행하는 영화 표를 파는 곳처럼 무질서하고

결혼과 무관한 공간처럼 보이곤 한다.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것은

그 신성하고 소중한 혼인식이 마치 뻥튀기 기계에 한수저의 쌀을 퍼 넣고

열과 압력을 가해 단 2초만에 펑 하고 튀겨져 나오듯이 싱겁게 시작되고

끝나버리는 것이었다.


난 그런 인스턴트 번개 결혼식을 두고 '조루 혼인식' 이라고 되씹곤 했다.

누가 결혼했는지조차 갈비탕 먹고나면 잊어버리는 요즘의 혼인식을 보다가

성스럽고 차분한 혼인식을 보며 내심 뿌듯한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었다. 그 혼인식엔 성령님께서 동행 하시고 계셨다.

멘델스존의 '한 여름 밤의 꿈' 처럼 단아하고 평화로운 결혼예식을 올리고 싶어
졌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마자 빈자리를 찾아 쏜살같이 달려가는 저 중년의

아주머니도 한여름 밤의 꿈을 꾸셨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올 여름엔 꿈을 꿀 수 있을것 같다.







                         靑潭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비가 내리곤 한다.

비가 보슬 보슬 내리고 난 후 가을 산은 하얗게 털갈이를 했다. 머리 위 하늘은

파랗다. 저녁 무렵 단조의 쪽빛 하늘이 되더니 토끼털같은 눈송이가 날린다.

예전엔 첫 눈을 보면 괜스레 신이나 첫눈이 내린다며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대곤 했는데. 대부분 같은 하늘 인지라 자기들도 보고 있다며 시큰둥하다.

왠지 어린 아이같이 유치 해진것 같아 어느날 부터인가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 러브 스토리 등의 영화 속에서나 대리로 눈속에 파묻혀보고 천진난만 해지는

우리네 속사정은 잘 모르겠다. 이젠 눈뭉치를 던지고 놀거나 눈사람을 만들어 보는

순수함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여름에 장대비가 내리면 팬티만 입고 골목길을

뛰어 다니기도 했고 함박눈이 내리면 이유도 없이 떠득썩하게 흐믓해 했다.

아마 지금이라도 환호하며 아이들처럼 즐거워 한다면 미친것 아니냐며 손가락질

당할것이 분명하다.

어른스럽다는것이 과연 무엇인가. 즐거울 때, 슬플 때, 무서울 때, 어느때고

감정을 감추고 위장하여 절제 하는것인가? 관습적 강요의 틀안에 순수와 천진의

발산을 꽁 꽁 얼어붙게 만든것은 왜일까?

오늘은 눈이 내려 마음이 푸근해졌다.

개구장이처럼 뛰어 다니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하지만 갑자기 돌변해 슬퍼졌다.

땅거미가 질 때 쯤엔 휘파람을 흉내 내는 바람 소리 덕에 눈물까지 나오려고 했다.

변덕스럽긴.

92년 초엔 김현식 씨의 '내 사랑 내 곁에' 가 흩날리는 눈발에 뭉쳐져 도회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의 불씨를 지피더니, 올 해엔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꺼야'

에 힘입어 이별을 감행하는 사람도 많았다.

참! 유행가 라는것이 신통하기도 하다. 사랑의 고난속에 있는 사람들의 정곡을

찌르는 그 통쾌한 가사가 어떻게 그리도 강력한 최면력이나 설득력이 있는지.

그래도 공통적인 현상 이라면 사랑에 대한 맹목적이고 강력한 의지의 무장이 없는

회색 연인들이 노랫말 몇 구절에 최면당해 울고 웃고 하는 점이다.

사랑이 원래 그렇게 예민한 감정으로 만들어 진건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사랑의 함정에 자의로 퐁당 빠지는건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이렇게 첫 눈

오는 날 사랑하는 연인에게 전화거느라 오늘 전화국은 불통이 날 듯 하다.

내가 왜 슬플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심연에 고요히 잠겨있던 기억의

보프라기가 목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기분 전환도 할겸 뜨거운 물이 펑 펑 나오는 샤워실에서 알몸뚱이의 거울을

연신 들여다 봤다. 예나 지금이나 거울 속 녀석은 변한게 없다.

환풍기 날개 사이로 흰 눈이 내리고 있다.




                             靑潭

맥도널드


맥도널드에 가면 불고기 버거가 있다.

불고기 버거 셋트를 주문하면 단아한 까운을 입은 잘 훈련된 미소의

맥-맨 이나 맥-걸 이 "드시고 가실건가요? 가지고 가실건가요?" 라고 만면에

웃음을 띠며 묻는다.

요즘엔 교회에서도 그런 말씀을 종종 한다고들 한다.

복음을 드시고 가실건가요..아니면 집에 싸가지고 가실건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묘한 뉘앙스의 말씀이라 뭐라고 판단하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 싸가지고 간다고 속으로 말한다고 하는데...사실인지

확인해 본적은 없다.

어제는 휴강을 해서 하루종일 수업이 없는 묘한 날이 되고 말았다.

가슴이 뻥한것이 왠지 바람이 난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드는것이 아닌가.

항상 마음의 갈등이 생기면 냉큼 일을 벌이고 마는 결단맨이라

즉시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나갔다.

홍익문고 일층엔 소설류가 많이 놓여 있었다. 온갖 상념의 전시장...

무라까미 하루끼의 소설을 한창 즐겨 보던 때가 있었는데 그의 소설은 여전히

높은 판매 부수를 올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다가간 그의 책...

무료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가죽 소파에 앉아있는듯한 연한 현기증을

동반하는 책...그의 소설은 그런 약기운을 느끼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냄새 나는 책..

하루끼의 냄새를 뒤로하고 맥도널드에서 불고기 버거셋트를

주문해 조금씩 깨물어 먹었다.

이 시간에 맥도널드에 와 있는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일까..

모두 나처럼 휴강인 학생은 아닌듯 싶은데...인생을 휴강한 사람들일까?

어찌되었든 맥도널드에 가면 불고기 버거가 있다.




                       靑潭.

익숙해진 슬픔

 
황토빛 목장 숲을 지나가면 그곳엔 이슬들의 아침이 있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까지 초조하게 기다리던 마음들일 것이다.

주머니 속에 담아둔 전화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하게 메아리쳐 온다.

나...결혼해...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차 안에선 담배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는

동료들을 가끔 태워준 덕분이라고 웃어넘기며 그녀는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하얀 목덜미가 예전보다 더 희게 보인다.

목장을 경계지우고 있는 희나리 등걸 나무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이는

날이다.

매니큐어를 하지 않은 잘 손질된 그녀의 손끝에 카셋트 테잎이 밀려들어간다.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왜 죽은 사람 노래를 듣냐는 질문에 그녀는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아서 좋다고

한다.

삼십대가 되니 마음이 많이 불안하고 그래.. 음..아이가 크면서

왜 엄마는 아빠보다 나이가 더 많아 라고 질문하면 무어라 말해 주어야할지

막막해지는 꿈을 꾸곤 한다고 그녀는 작은 입술을 약간 오무리며 말한다.

훈훈해진 오후의 열기 때문인지 녹기 시작한 질펀한 목장 길목으로

경운기가 털털 거리며 힘겹게 지나간다.

47번 국도를 따라 일동까지 나가 그곳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그녀는 마감을 앞두고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전화를

한다. 사무적으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녀가 프라이드를 사고 그것을 몸에 익숙하게 익히는 동안

훈련소에서 받아본 그녀의 또박 또박한 글 들은 이별에 대한 짧은

감흥들이었다. 아마도 그땐 정말로 이별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그녀는 연신 울음을 그치지 못했었다.

우리가 만난지 4년이 흐른 그해 겨울. 제대를 보름 남겨두고

그녀는 동료기자와 결혼을 했다.

그 남자는 그녀보다 2살 연하였다.

가끔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 보다가 두툼하게 쌓여있는

눈덩이 들을 발견하곤 이것이 무엇일까 들쳐보기를 했다.

시간의 열기가 녹여버렸다고 확신하던 옛 기억들이 아직도 쌓여있는것을

보곤 흠칫 놀라곤 했다. 남들이 이야기 하는 사랑의 흔적일까...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익숙해진 슬픔이라는 것이었다.

익숙해진 슬픔..





                         靑潭.

부천 자유시장

부천 자유시장.

떡하니 현대판 타워링처럼 버티고 서있는 이-마트의 옆자락으로 토끼집같은

자유시장의 입구가 있다.

발 디딜틈 없는 그곳을 북적거리면서 걸어들어가니 사람 사는 생기가 어깨를

절로 신이나게 한다.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솔잎과 어우러진 송편가게. 아주머니들이 뜨거운듯 입을

훅훅 거리며 씹는 그것을 나도 한 개 집어 먹어본다.  

사람들이 사가지고 가는 송편보다 집어먹는 송편이 더 많다. 그래도 주인은

신이난듯 얼굴이 벙글 벙글한다.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 사이로 순대국밥 집이 있다. 오랜만에 시장에서 만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허허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이도 있고, 손자의

입에 뜨거운 국물을 수저로 먹여주는 할아버지도 보인다.

"떨이요!..." " 쌉니다..싸요...!"

추석 명절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찾은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장은 자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곳엔 훈기가 있고

사랑과 대화가 어우러지고 있었다.

수백개의 형광등의 조명을 받으며 바코드가 찍인 종이에 묶여있던 이-마트의

깔끔한 파가 생각이 났다. 그 파는 이곳 자유시장의 넉넉한 손길에 묶여 어둑한

조명 속에서도 흙 뿌리의 파릇파릇한 그것과는 무언가 달랐다.

무엇일까?

이-마트의 현대식 카트를 끌며 대형매장을 둘러다녀봐도 친한 친구와

함께, 아들과 함께, 형제들과 함께 따끈한 순대국밥을 먹으며 소담스런

삶을 이야기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서늘한 냉동 안개가 마음을 춥게 할 뿐이었다.

삶의 든든한 무엇인가를 가득히 채운 순대같이 길다란 천막속에서

숨쉬던 자유시장을 빠져나와 이-마트의 시커먼 지하주차장으로

경적을 쉴새없이 울려대는 차량의 행렬을 바라다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랑'이었다.

사람들의 옷깃에 벌써 겨울이 묻어나고 있다.

난로를 준비해야겠다.

훈훈한 마음의 벽난로를..





                       靑潭.

할머님의 돌아가심

 
온 가족이 함께 모일 계기가 된 할머님의 장례식.

가족 공동체의 인간적인 유대가 여실히 드러나는 때가 바로 사람이 그 생을 마칠

즈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부조를 하러 오셨고 나중엔

음식이 모자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상황이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서울에서

미리 장지로 내려와 하루밤을 보낸 후 번성한 자손들이 모인 곳에서 할머님의

하관식이 있었습니다.

세상이 정말 쉽고 빠르게 변했다는 말이 실감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묘 자리를 고르고 땅을 파내는 것도 포크레인으로 단 몇 분만에 끝났고

입관하고 흙을 쌓아가며 때(잔디)를 이식하는 시간도 간단하게 끝났습니다.

포크레인의 차가운 쇠가 탁탁 무덤위의 흙을 마지막으로 다지고 난 후 그곳에

마지막 때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번성한 자손들이 모여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빠르게 빠르게 라는 세상의 구호와 함께 사람의 감정과 죽음에 대한

숭고한 묵상이 사라져 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86세라는 삶을 마치고 평안하게 눈을 감은 고인을 입관하고 그 위에

한줌의 흙을 떨어넣을 때 모든 사람들이 생의 마지막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 삽 한 삽 흙을 쌓고 다져가는 작업을 수 시간에

걸쳐 해내던 옛 묘지 조성을 생각할 때, 그 때는 모든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또 삶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음 한켠이 안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관의 방향을 조정하는 지관의 일종의 포퍼먼스와..애곡하는 포퍼먼스..

그리고 간단하게 기계를 동원한 흙의 쌓음. 그리고 모두 불에 태우고

버스를 타고 휙 자취도 없이 각자의 삶의 장소로 사라져 버린 자리.

어떤 온기도, 삶의 여로도, 죽음에 대한 진지한 묵상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할머니의 평안한 돌아가심 속에서 저는 모든 욕심의 파쇄와

모든 것들의 용서와 풀어짐을 맛보았답니다. 그분은 아무런 애착도 갖지

않으시고 평안하게 아이처럼 돌아가셨답니다.

저는 삶의 모든 순간을 이제 내가 돌아가는 그 시간처럼 가지고 싶습니다.

풀어내고 자유케 하며 용서하게 하는 인자가 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그분께서 계속 그렇게 저를 묵상케 하십니다.

사랑합니다.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靑潭.

인생은 아름다워

 
'깨지지 않는 영원한 세계.'


"안녕하세요 공주님, 어제 밤새도록 그대 꿈을 꾸었다오, 같이 극장엘 갔는데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어. 난 당신 생각 뿐이야.

항상 당신만 생각해."

"엄마!... 아빠가 손수레에 태워줬는데 운전을 잘 못해. 너무 웃겨서 배가 아파.

우리가 일등이래.. 오늘은 몇 점 땃지?"

"뛰어 ,  소리치는 나쁜 사람들이 쫓아 온다."

한국에 영화가 소개되기 한달 전부터 가슴을 설레이며 기다리던 영화, 타임지에

실린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제목의 영화는 흑백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나를

압도하던 쉰들러 리스트를 우선 생각하게 했다. 이탈리아인의 눈으로 보여지는

세계대전을 두고 왜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의아해 했다.

우선 타임지에 실려 곧 한국에 상륙한다는 이야기는 좋은 영화를 기대하는 마음을

더욱 설레이게 했다.

로베르트 베니니 분의 귀도 오라피체.  그는 치열하고 무서운 전쟁을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기 위해 챨리 체플린 Character로 화면에 나타난다.

그는 조금은 상기되어있고 늘 호기심에 가득찬 천진한 아이와도 같다.

전쟁을 상상하기엔 너무도 먼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제목처럼 영화는 고장난

차를 타고 왕의 행차에 끼어 우연과 유머를 가장하며 나타난다.

시작부터 복선을 아무런 필터없이 보여주는 영화는 자못 유치한 옛 영화의 전개를

상상케 했다. 그것은 감독의 여유였을까? 아니 그것은 챨리 체플린의 독재자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페러디를 통해 전쟁의 비극과 무서움을 완충하는 기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야만인, 침묵만큼 큰 저항은 없다" 라는 화면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연결되지

않은 대사를 읊는 삼촌 엘리시오 오라피체. 로베르트 감독은 그의 입을 통해 전쟁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관객에겐 전쟁은 아직 먼 기다림이라는 화면을 선사하고

있지만 전쟁은 이미 영화의 처음부터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다.

스크린 가득히 어설픈 숨은 그림처럼 숨겨진 복선은 오히려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는 양념이 되고 있었다.


침묵에 대한 구호는 수수께끼에 심취해있던 레씽 박사와의 이야기 속에서도

고개를 든다.

" 말을 하면 없어져 버리는 것,,,침묵..."

의학박사 레씽은 홀로코스트(holocaust)의 복선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는 교묘하게 귀도와 좋은 친구로 표현되고 있었고 수수께끼를 매개로 이미

영화 속에 전쟁을 첨가해 넣고 있었다. 후반부에 나오게 될 생체실험과 대학살의

장면을 의사 레씽을 세워 맛보게 함으로써 브레이크가 사라져 세울 수 없는

가속도와 충격을 보여주던 첫 장면의 자동차를 연상케 했다.

자동차는 완충작용, 자연스러운 전쟁으로 관객을 이끌기 위한 대 제목이었다.

로베르트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영화 전체를 볼 때 하나의 대칭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전쟁의 모든 장면은 이미 이중적 구조로 영화의 전반부에 모두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이중구조는 조수아가 생일 때 목욕을 하지 않겠다고

반항할 때도 새롭게 반복되고 있다. '목욕' 그것은 가스실의 새로운 언어였다.

아름다운 언어...

"또 갑자기 만나기를 기대해요" 라며 호기심 가득한 동그랗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니콜레타 브라치 분의 도라. 그녀는 전쟁을 일으킨 독일 나치와 그 희생이 된

유태인을 이어주는 매개로 등장한다. 그녀는 전쟁을 통과해낸 평화의 산물 아들

조수아 오라피체의 출발점이 된다.

그녀의 남자친구 로돌프는 '아돌프 히틀러'를 표상해 내고 있었고 도라는

로돌프로부터 유태인인 귀도 오라피체에게 도망가버린다. 전쟁에 대한 혐오를

도라를 통해 영화속에 삽입해낸 로베르트 감독의 아름다운 구상이 돋보인다.

초등학교에서 로마의 장학사 흉내를 내며 옷을 벗고 "우리 민족이 얼마나

우월한 민족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라며 독일 나치의 게르만족 우수성을

전쟁의 기반으로 삼은 의식화 운동을 모욕한다.

로베르트 감독은 계속해서 모든 등장 인물의 대사를 통해 독일 나치,

게르만 민족을 경멸한다. 그의 경멸의 말투는 가볍고 유머러스하며 전혀

아프지 않다. 특별히 배꼽을 드러내며 초등학생들 앞에서 장난을 치던 귀도는

전쟁 전체를 조감하는 감독의 눈과 희망의 대리인이었다.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속에서 아버지 귀도는 전쟁에 돌입하는 순간부터

아들 조수아의 세계에 절대 파괴될 수 없는 세계를 만들어 나가도록 도와준다.

그 세계는 주변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희망과 평화의 세계는 깨뜨릴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그것은 미래를 꿈꾸는 것이었고 외계의 모든 것을 재미난

게임으로 보게하는 페러다임 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와 충격, 가스실의

무서움을 목욕으로 표현해내던 홀로코스트(holocaust)의 의식.

그 모든 것을 귀도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달동안 계획을 짠거야. 이건 게임이야. 우린 전부 선수야.

일등하면 탱크, 진짜 탱크를 상품으로 받아, 게임이 끝나면 1000점을 딸 수 있고

엄마에게 갈 수 있어..."

아들의 눈과 마음의 세계에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추하게 파괴될 수 없음을

가르친다. 귀도는 유태인 가스실에서 살아나온 의사 빅터 프랭클이 이야기한

우리의 육체를 공격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의식과 그 의식 속의 평화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깨뜨릴 수 없다는 실제적인 이야기를 대변해 내고 있었다.

귀도와 조수아의 내면의 세계에 안전하고 강력한 경계를 가진 또다른 세계가

나타난 것이다. 감독은 조수아의 세계를 바라보던 페러다임을 영화 전체 속에서

반응하고 살아가던 귀도를 통해 이미 실천해 주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조수아에게

가르치게 한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인생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연신 이탈리아인 감독이 만들었지만 미국적인 냄새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가 영화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미국에게 어필하기 위한

감독의 약간의 타협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한 냄새는 삼촌의 말인 '로빈 훗'에서부터 풍겨나오기 시작했다.

'로빈 훗'은 미국을 대변하는 영웅이다. 삼촌의 말 '로빈 훗'은 전쟁이 끝나고

연합군의 큰 별을 달고 나온 탱크로 새롭게 선보였고 그 말(탱크)을 타고 있던

영어를 쓰던 미국인 병사가 그것을 확증해 주고 있었다.

로베르트 베니니 감독의 어설픔 이라는 채플린적, 미국적 페러디의 도입과

세계평화의 메신저로 등장하며 영화를 끝맺는 미국에 대한 표현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영화에 옥의 티로 작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본다면 로베르트 감독은 이미 미국에

타협한 듯 하지만 미국까지도 경멸하고 있었다.

미국인 병사는 아름다움과 평화의 깨지지 않는 세계를 표상하는

조수아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 초콜렛 먹을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 내내 웃음과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통털어 여전히 세계를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과

희망을 품어낼 수 있었다. 또한 삶을 대하게 될 나의 태도에 새로운 전환을

가져왔다고 기꺼이 자신할 수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보다는 그 속에서 어떤

힘도 절대 깨뜨릴 수 없는 희망과 평화의 세계를 구축해야만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맛보도록 해주었다. 그것은 우리 세대가 만들어 가야할 새로운

세계인 것이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준 로베르트 베니니 감독에게 감사를 표한다.






                     靑潭.  

The children of mine

 
그날은 유난히도 긴 수업시간이었다. 이제 갓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나로서는 왜

저 앞의 밀납인형 같은 여자 담임선생님이 입을 오물 거리며 무엇인가를 말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내성적이다 못해 부끄러움 덩어리였던 나로서는 복부를 찌르는듯한 아픔을 이기지
못했다. 왜 밀납인형은 쉬는 시간을 주지 않을까..왜 8살 짜리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쉽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한다는것에 대해 배려하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이
온통 머리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1시간을 참았을까...결국 바지에 똥을 싸고 말았다. 집안에서 장남이라는 기대는
나로 하여금 매우 빨리 똥오줌을 가리게 만들었었다.

오전반 수업이 끝나고 오후반 아이들이 콩나물 시루같은 교실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3시간동안 아이들 누구도 내 똥 냄새를 맡지 못한듯 했다. 아직 후각이 민감하게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서둘러 집으로 뛰어왔다.

거리에서 똥이 떨어지지 않은것은 적당한 수분 에너지가 함유된 덕분이었다.

가족들 아무도 모르게 빨아서 빨래줄에 걸었다. 오후 시간이면 어머님이 오기전에
충분히 말라서 다시 입을 수 있으리라.

그 때 그 시간 8살 4개월된 시점의 나란 아이는 그 사건으로 인해 열등감과 부끄
러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내 안에서 성장을 멈추어 버린것이었다.

2학년이 되었다. 아버지는 어느날 술이 잔뜩 취해 와서 골목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던 나를 불렀다. 해질녘 오후여서 땅거미가 골목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이 새끼야..막내를 어디다 두고 ..' 모든 아이들이 보고 있던 곳에서 당신께서는
그 커다란 목수의 손으로 따귀를 때렸고 두 발 밑에는 흘러내린 물줄기로 흥건하게

젖어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로부터 도망쳐 놀이터 어귀에서 골목을 노려봤다.
아버지는 이미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날 막내는 이웃마을 파출소에서 아무렇지 않은듯 자고 있었다.
왠 시커멓게 흙으로 더렵혀진 어린아이가 걸음도 빠르게 돌아다니길에 보호

하고 있었다고 한다. 막내는 3 살이었다.

어머님과 아버지가 싸움을 하고 난 후 어머니의 멍든 등에 파스를 붙이며 울던
그 때 그 아이는 내 안에서 더이상 성장을 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의 언어적 구타와 열등감의 세례를 받았던 중학교 1학년 때의 그녀석은
더이상 내 안에서 자라나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계속 성장하면서 아무렇지 않은듯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곤했었다.
나에겐 특별히 아픈 기억이 아닌 이해되는 이야기 처럼 하곤 했다. 난 그랬어...

스물여섯이 되었다. 나의 영은 육체적 나이보다 더 어른 스럽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책도 많이 읽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으며 부모님과 관계도 좋았을뿐 아니라 당신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을 긍휼이 여길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성을 사랑할 수 있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난 정신적으로 육체적 나이와 동일하거나 더 어른스러워...

난 교회도 다니고 있고 신앙도 매우 좋은걸? 기도도 잘한다구..

하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기 시작했다. 무서운 일이었다. 그것은 악몽이었다.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은듯 내 삶은 이랬어 라며 고백했던 그 이야기들은 항아리를
만들고 있었다. 가끔 뚜껑이 열릴 때 마다 그것은 지독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 안의 똥을 쌌던 그 아이는 아직 8살로 내 안에 살고 있었다. 독한 냄새를 뿜어
내면서 그 항아리 속에서.

내 안의 따귀를 맞았던 그 아이는 여전히 바지에 오줌을 싸며 울고 있었다.
그 아이는 아직도 9살이었다.

난 스물 일곱 어른인걸? 난 언제든 섹스를 나눌 수 있는걸? 아이도 낳을 수 있어.
결혼도 할거야... 교회에서 집사도 할건데?  난 전도사야..목사야...지금..

하나님은 내 안에 가득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게 하셨다. 그 울음소리는
너무도 슬프고 아팠다. 애처러웠다.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은 귀로 들리는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내 영혼의 아이들이 질러대는 소리였다.

내 안에 아직도 갓난 아이로 자라나지 못한 아이가 너무도 많았다.

비가 그렇게 내려 논에 물이 가득히 차오를 때 어머니는 뱃속의 나를 손으로 치며

가슴까지 차오르던 논의 물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7개월된 그 아이는
어머니의 분노에 울고 있었고 내 안에 아직도 살고 있었다.

난 스물 일곱이었다.

난 스물 일곱.  내안에 살고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항아리 안에서 살고 있었다. 가끔 내 친구들이나 사람들이
도무지 열고 싶지 않았던 항아리를 말로나 행동으로 열려고 시도하곤 했다.

물론 그들은 별 생각없이 한 태도나 이야기 였지만 나에겐 내 안의 아이들이
꿈틀대고 있던, 지독한 냄새가 나던 그 항아리 뚜껑을 열려는 시도로 보였다.

나도 모르는 방어가 시작됐다. 경건함으로 도덕적으로 시니컬함으로, 기도를
많이 함으로 수다로,,열심히 일함으로,,공부로, 나보다 나은 배우자를 찾는것

으로,,친절함과 적극적인 태도로...그러나 언제나 긴장이었다. 갈증이었다.

나만 알고 있는 그 커다란 항아리들..항아리안의 아이들..울고있는 아이
아버지를 노려보던 그 아이...똥을 싸고..오줌을 싸던 아이..파스를 붙이던

아이..그녀가 나에게 주었던 그 상처받았던 배신의 아이..

교회에서 아무리 찬양을 해도 하나님께 기도를 해도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성령의 주먹이 커다란 항아리들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상상할 수 없이 고약한 냄새가 피어 올랐다. 다른 사람들이 맡을까봐

겁이 났다. 결국 몇개의 항아리가 깨지고 말았다. 깨진 파편이 내안을 찌르기

시작했다. 정죄하고 미워하기 시작했다. 성령의 손길이 그 날카로운 파편을

시나브로 쓸어내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완전한 스물 일곱으로 자라났다. 몇몇은 아직도

자라나고 있는 중이었다.

난 스물 일곱이야.

난 스물 일곱이야.

난 스물 일곱.....





                             靑潭

소나기

 
후두둑 후두둑.

조립식 막사의 양철 지붕을 깨우는 여름날의 외침.

아직 대낮인데도 깜깜한 오후다. 식당에서 구보로 뛰어 왔지만 이미 젖을데로 젖어

등짝에 착 달라붙는 전투복이 부담스럽다. 빗속에서의 소란했던 빗방울들이 물감을

흠뻑 먹은듯 다채롭게 보인다.

후두둑 후두둑 메트로놈 진동에서 음률로 변조된다.

식물들 사위로 진한 녹색 단조가. 희나리 등걸에 핀 버섯에선 북소리가. 그리고 유

리창을 때리는 아프페지오와 화성을 이루는 붉은 대지의 안정감. 빗방울과 호흡하는

모든 세계가 교향악을 연주하고 있다. 살풀이라도 하듯 세차게 토해내는 취한 하늘

아래 몇몇의 감상객이 있을까 자못 궁금해 지기도 한다.

12시 30분. 하절기라 1시까지 내무반에 누워 오침중이다.

아홉살 때 였던가. 장마철 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무슨 기념일이라 아침부터

14인치 흑백 TV 앞에서 진을치고 앉아 있었다.

스물 네 해의 감성을 이룬, 황순원 님의 '소나기'가 TV 문학관

타이틀로 방영되었다.

개울가에서 물을 움키며 장난을 치던 소녀. '바보' 라는 한 마디와 조약돌을 뒤로

하고 이유도 없이 내달음치던 소년. 무릎에 생긴 생채기를 보듬던 순수. 맑고 푸른

하늘. 단조로운 흑백의 조화였지만 쏟아붓던 그 굵은 소년의 소나기가 창밖에서도

내렸었다. 소녀가 앓을 때 난 소년이 돼 버렸고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이후 칼라

TV 로 바뀐 후 두번인가 더 보았는데. 두번째 부터는 왠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수염이 한두가닥 자랄 시기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막사 밖에선 굵디 굵은 순수가 곤두박질치며 노래하고 있다.





                          靑潭

To finish my story

 
하루가 시작된 때는 10시가 조금 넘어선 시각이었다.

어제의 막내녀석 골방 도배가 모두 끝나고..그곳에 있던 창고 비슷한 것을

분해 조립해 새로운 형태의 모양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그것은 어찌보면

내 몸에 덕지 덕지 붙어있던 습관들을 해체해가는 작업과 비슷했다.

어머님께서는 오늘 모두 끝내자며 손수 무거운 장독들과 물건들을 나르고

계셨다. 그래도 큰녀석이란 계급의식이 발동해 골다공증 이라는 이유를 대

며 그 무겁던 장독들 - 사실 이 시대에 그것도 서울에서 숯을 띄운 장독을

가진 집은 그리 흔치 않다 - 을 모두 옮겼다.  군에 갔다왔다는 미묘한

자긍심은 어쩔 수 없는 현실 인식을 동반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

모든 집안일을 끝마치고 그 지저분 하던 창고에서 아직도 풀 냄새가 나는 이

쁜 골방으로 변신을 한 구석에 앉아 가만히 지난날을 되짚어 보았다.

아버지의 파격적인 인격의 변신과 어머님의 고난, 그것은 극히 작은 부분

부터 시작 되었었는데. 그 와중에도 선험적 지적 사모함은 소진되지 않고

우리 새끼- 아버지...당신 세대에선 자식들을 그렇게 애끓게 호칭하신다-들

은 참으로 착하고 죄짓지 못하고 살았다. 사실 난 이것도 참으로 마음이 아픈

것으로 생각한다.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

도 하며 부모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낼 때 우

리는 고요히 지금의 시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 부속 여중을 다니던 하얀 칼라의 교복을 입은 누님은 흑석동까

지 가야할 버스 회수권 구입할 때가 될 때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마음을

졸이다 겨우 한장에 60원하던 회수권 몇 권 구입할 용돈을 타가곤 했다. 그녀의

가녀린 손으로 콩자반을 만들어 누런 양은 도시락에 채우고, 마치 그녀의 눈

물로 만들어진 세월을 채우듯이.

당시 난 초등학교 2학년의 내성적이고 다혈질의 장남 카리스마였다. 밑으로

4살씩 터울이 진 아장 아장 걸어다니던 막내와 둘째 녀석이 있었다. 하루는

사당 2동의 소위 우리집에서 다락을 치워-사실 그곳은 치워도 쥐이와 벼룩

이 많이 덤벼들었다- 누나의 방을 만들어 주었다. 누나는 그 또래에 비해

꽤 큰 키였기에 -160정도였을거다- 허리를 굽혀야 겨우 다닐 수 있는 그 다

락방이 힘겨웠을 거다. 하지만 온 가족이 한 우리에 뒤엉켜 잠을 자야 했던

당시로써는 그녀만의 다락방 이라는것 때문에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다락방은 그녀에게 소녀의 감수성과 꿈을 주었을 것이다.  당시 14인치

미닫이 흑백 텔레비젼에서 방송되던 캔디를 볼 때마다 그녀는 눈가에 눈물

을 가득히 담고 있곤 했다. 아마...그녀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대문밖엔 넓은 공터가 있어서..둘째 녀석은 콧물을 소매로 핥아내며 열심히

구슬-다마 치기 라고도 했었다- 따먹기를 해 한아름 안고서는 마치 자기의

보물인양 좋아하곤 했다. 장남이고 상상속에서 살던 나는 그런것이 하찮게 보였

고 그 자식이 그걸 전유물처럼 자랑 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을 만

큼만 패주곤 했다. 어느날은 둘째와-사실 우리는 공모자며 콤비라고 자부하

곤 했다.- 귤이 너무나 먹고 싶어 근처 진열된 과일 가게를 지나치며 몇개

씩 주머니에 슬쩍 훔쳐 넣곤 했는데.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이 참말임을 그때

깨달았다. 콧 때가 줄줄 흐르는 두 녀석이 몇번이고 과일 진열대에 근접해서

지나치는 지라..곰보 주인녀석이 눈치를 챗는지..우리 두 형제의 머리카락

을 힘껏 쥐고 잡아 들어갔다. 가는 도중 발로 차이기도 하면서 - 우리나라

엔 개인의 인격과 인권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있지만 그건 유명무실한 것이

었다. 우리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없을 만큼 차이고 패대기면서 거짓 자백

까지 했다. 전에도 몇번의 범죄 사실이 있었다고 말이다.

그 때 나는 곰보들의 열등감이 얼마나 크며 그 외적 표출은 살인을 할 수도

있을 만큼 사디즘적이고 마조히즘적 이라는 진리를 깨우칠 수 있었다.

난 이세상에서 곰보가 가장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다.

우리는 그래도 양심이 있었는지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그리고 집 주소를 그 곰

보에게 끝까지 자백하지 않으려고 무지 애를 썼지만...그 곰보는 세상물 다

먹은 녀석이라..나와 어린 둘째녀석을 분리해 대질 심문을 했다. 기어이 6시간

이 지난 밤 8시에나 누나가 하얀 얼굴로 우리를 찿아왔다. 그 시간에도 아

버지는 일당 노동일을 하고 있었고..어머니는 시장에서 꼬추 말린것을

팔고 있었다.

그래도 부모 덕을 많이 본지라..나나 누나의 얼굴이 통통하고 하얗고 귀티나

게 생겨 보였는지 그 곰보놈은 주황색 귤 3개 훔친것을 초범이 아니었다며

과장을 하더니..기어이..그녀의 가녀린 손에서 5천원이란 큰 돈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일주일이 흐른후 그녀는 어머니께 머리채를 잡히며 몇시간이나..맞아야 했

다. " 이 썩을 년아...그래..니 애미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더냐..응,,참고

서 산다고 하드니만..그 참고서좀 내놔봐..아야..이 썩을년아.."

내 안에있던 곰보에 대한 두려움은 심연의 곳곳에 또아리 틀고 있었다.

그것은 내 삶의 경로마다 나를 사로잡는 상흔의 근원처럼 행세하곤 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성경에도 곰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마음의 곰보...심령의 곰보...영혼의 곰보에 대해서 말이다.

어른으로 성장해 오면서 곰보에 대한 기억은 사라져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하신 후 부터 또 다시 곰보에 대한

두려움들을 새롭게 부각 시키고 계셨다.

내 주위에는 외적인 곰보가 없었지만 어느날 부터인가 곰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내 안의 녀석은 이미 곰보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고 그 안에는 냄새나는 미움과 시기, 두려움,

음란함, 게으름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무서웠다.

곰보에 대한 두려움이 왜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의문에 일침이 가해진 것이나

진배없었다. 내 안에 이미 곰보를 안고 살아 왔으니 말이다. 곰보는 먼곳에

있지 않고 이미 내 안에 있었다.

하나님을 알아가며 성령의 치유하심으로 내 영혼의 곰보 구멍에 있던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빼내어 소제하기 시작했다.

기도로 빼내어진 자리에는 더욱더 선명한 곰보 구멍이 생겨났다. 아팠다.

슬펐다. 내 영혼의 얼굴은 선명한 구멍이 뻥뻥 뚫린 곰보였다.

너무도 오랜동안 곰보구멍에 채워져 있던 것들이 난 곰보가 아닌듯 착각하게

했다. 그 구멍을 가리고 있던 맨질한 얼굴에 세상의 화장을 했다.

이기와 시기, 미움과 게으름, 음란함과 세상 학문, 외적인 기준...

놀라운것은 그 구멍이 숭숭 들어나도록 기도와 성령으로 청소를 했지만

이내 그 자리엔 더욱더 단단하고 빼어내기 힘든 것들로 채워져 버리곤 했다.

영혼의 곰보는 육체적 곰보보다 더 끔찍했다.

내 영혼에 선명하고 깊게 패인 그 곰보 구멍에 이젠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다른것들이 더욱 견고하게 채워지지 않도록 난 한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기도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누나의 영혼에는 너무도 서러운 곰보 자리가 많다. 어머님 영혼에는 더 큰

영혼의 곰보 구멍이 있었다.

이제 주위에는 눈에 보이는 곰보들이 아닌...마음의 곰보들이 너무도 많다

난 그들의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워 주어야 할 지 알고 있다.

그들에게 가르쳐 주리라..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그 곰보 구멍, 그 열등감,

낮은 자존감의 구멍을 채울 수 없다고 말이다.






                          靑潭

똥개

 
시험이 끝나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던 부담감이 사라졌다.

자취하는 지체의 집으로 향해가던 길가에 자그마한 똥개 녀석이 이상한 품새로

지나치고 있었다. 그 똥개 녀석을 가만히 보니 네 다리가 모두 휘어서 안장 다리를

하고 있었다. 어찌된 일일까, 잘 먹지 못해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다리가 휜 것일까.

아니었다. 그 똥개 녀석은 이미 배가 자신의 몸뚱이의 두배나 불러 있었다.

너무 많이 먹어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다리가 휘어 있었던 것이다.

아마 단시간에 그렇게 휘었을리는 만무했다.

오랜 시간 그 녀석은 자신의 무게보다 더 많은 욕심의 덩어리로 살을 찌워 나갔을

것이다.

그 똥개 녀석을 지나치며 우리의 삶이 투영되어 나타났다. 그랬다, 현실이라는

무게에 짓눌려있는 우리의 영적인 모습. 그 똥개의 휜 다리는 내 영의 휜 다리를

대변하고 있었다.

종종 여러가지 이유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는 내 영혼. 현실이라는

먹음직 스러운 것들이 내 안에 가득히 채워져 그 무게에 짓눌려 버린 내 영혼.

시험이라서, 직장일 때문에, 데이트 해야 하기 때문에, 교회의 과중한 사역

때문에... 다양한 현실의 무게가 영혼의 다리를 휘어가게 만들고 있었다.

현실이 주는 기름진 것들은 시나브로 내 영혼의 비계덩이를 불려가고 있었고

현실의 다양한 이유들이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모습으로

교회에 왔다 갔다 하며 적당히 직장생활하며 내가 왜 교회에 가는지 정확한

이유도 모른채 습관적인 삶을 살아갔다.

누군가 예수님 믿으세요 외치며 다닐 때, 누군가 모든것 다 포기하고 선교사로

나갈 때, 시니컬해진 나는 이렇게 되뇌이곤 했다.


나는 똥개다!



                          靑潭

곰보의 사회학적 이해

 
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괜찮은 여자 대학을 나왔고 누가 봐도 너무도 아름다운 몸매와 뛰어난

미모의 얼굴을 가졌다.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봉긋한 가슴과 예쁜 몸매,

우유처럼 뽀얗고 하얀 피부와 얼굴, 좋은 매너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집안도 좋아서 남부러울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말못할 고민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곰보였기 때문이었다.

항상 거울을 볼 때마다 그녀는 눈물로 하루를 시작했고 눈물로 하루를 마감했다.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 그녀는 무당을 찾아 갔다.

어떻게 하면 이 곰보 얼굴을 고칠 수 있을까요 라며 무당에게 하소연을 했다.

무당은 한가지 방법이 있다며 그녀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바퀴벌레를 100 마리 정도 잡아서 네 방 머리 맡에 풀어두고 잠을 자라"

그녀는 너무도 기뻐하며 무당이 가르쳐 준 데로 방에 바퀴벌레 100 마리를

풀어 놓고 잠을 잤다.

하루밤이 지난후 그녀는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거울을 찾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너무도 곱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던

그 곰보 얼굴이 하얀 피부의 맨질 맨질한 얼굴로 변한것이었다.

그녀는 그 얼굴에 곱게 곱게 화장을 하고 외출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밤새 바퀴벌레들이 그녀이 구멍이 숭숭 뚫린 곰보 구멍에 하얀 알을

낳아 채웠기 때문이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靑潭

누나의 유산 소식

 
첫째를 낳은지 몇년이 되는 누나의 임신 소식은 시댁의 기대를 자못 고조 시켰었다.

시아버지와 어머님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한다.

시아버지는 당신 세대의 표현으로 큰 며느리의 기특함에 손대면 베일듯한 빠빳한
만원권을 삼십만원이나 넣어 주시고 또 무작정 한약을 지어 오셨다고 한다.

시집가기전 친정에서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란 탓인지 누나는 독립심이
강한 처녀였다. 그녀의 마음에는 많은 슬픔과 상처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항상 다른 사람에 대한 긍휼함과 애처러움으로 발현되곤 했다. 착한아이(善兒)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누나는 결국 그 성품이 나이팅게일이 되게 하였다.

친정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너무도
사랑해주는 매형을 만났고 시댁 사람들도 딸처럼 아껴주는 분들을 만나 행복해 했다.

장자에게 시집간 덕을 보느라 첫째로 딸을 낳고 조금은 마음의 부담을 안고 있었던
차에 임신을 하게 되어 모든 관심을 온 몸에 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제 모처럼 누나집에서 묵을까 하는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다.

근처 원자력 병원의 간호사로 근무하기 때문에 자주 통화하기 힘들었던 차라
누나의 목소리는 참으로 반가웠다.

누나의 무게실린 허스키한 목소리는 대번에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나 어디 아퍼?'  라는 소리에 '나 유산했단다...'

유산...유산이란 배속의 아이가 생명을 잃어 더이상 성장하지 않는것을 말하는것인데.
누나의 수 많은 시간들이 이 순간 마음을 너무도 슬프게 했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아플까..얼마나 아플까...

그동안 나도 많은 유산을 하지 않았나 싶다. 어릴적 품었던 꿈들, 자라오면서
세상을 향해 가졌던 계획들, 이상,,

마음을 부풀게했던 많은 것들을 유산시켰던 기억이 있다.
현실과 사회적, 관습적 강요의 눈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해버린것들.

아직 내 안에 아릿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들이 가득하다.

또한 많은 믿음의 친구들과 선배들이 하나님께서 주셨던 비젼들과 유업을
유산 시키기도 하고 자의로 낙태시키기도 했던것을 보았다.

태아 유산은 자궁속에 죽어있는 그것들을, 생명을 잃어버린 차가운 그것을
긁어내야 하는 아픔을 견뎌야 한다.

생명의 유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아픔과는 달리 믿음의 유산을 할 때
우리는 너무도 무감각한 모습이다.

너무도 잔인하다. 어떻게 믿음의 자궁속에 잉태된 것들이 유산되고
낙태되는것에, 차가운 이기와 현실의 갈쿠리에 긁어내어지는

믿음의 씨앗의 비참함과 슬픔에 어찌 우리는 이리도 냉소적인가.

이런 우리의 일상적 모습이 나를 더 슬프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기쁜것은 아직 내 안에 품어져 잉태된 믿음이란 아이는 유산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믿음의 아이가 자라고 자라서 열매를 맺을 때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나,,,내가 누나 기도 잘 안했기 때문이야..누나,,,마음이 많이 아프지..

누나 위해 기도 할께..몸조리 잘해...'




                             靑潭

About my special friend

 
오늘은 별이 보이지 않는다.

종일 비가 쏟아지더니 낮은 잿빛 구름이 대기를 덮고있다.

모두들 취침에 들어간지 한참. 조그만 꼬마전구에 갓을 씌우고 글밭을 쟁기질 한다.

며칠전 까지도 열대야 현상 때문에 모포를 걷어차는 병사가 많았는데, 지금은

쌀쌀한 기운이 이른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이곳은 매일, 낮엔 밝은 빛의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다가 늦밤이 되면

수많은 풀벌레들의 축제가 시작된다.

그네들은 인간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맑은, 협정(協定)없는 어울림을 만들어 낸다.

서울, 콘크리트 세상 속에서도 늘 이맘 때면 창밖에서 또는 벽 속에서 들려오는

창백한 회색의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쁜 도시 속에서 안식을 취할 수 있는 몇 시간의 저녁시간, 방안의 전등을 끄고

창가 책상을 마주해 앉으면 조심스럽게 울어대곤 한다. 행여나 녀석들이 놀랄까

숨소리도 죽이고 턱을 괴 눈을 감는다.

훗, 언젠가는 그 늦밤에 전화가 울어대 그 음악회가 중단되는 사태가 종종 있었다.

나도 속물근성의 간사한 인간 인지라 그 몇 녀석을 생포해 유리병 속에 넣어두곤

했는데, 만고의 이치인지 영어(囹圄)의 몸이 된 그 녀석들이 먹이도 주고

물도 주고 최고의 첨단 환경을 만들어 주었는데도 도무지 연주를 하지 않는것이다.

평범한 진리를 그 때서야 깨닫고 도무 돌려 보냈는데 그날 이후 며칠간은

그네들을 느낄 수 없었다.

지금 누워있는 막사 주위에는 이름도 모르는 친구들이 노래를 하고 있다.






                           靑潭

여름

매년 여름이 되면 장마와 태풍이 기승을 부린다.

늘 장마 때마다 식구들이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다.

처마에서 뚝 뚝 떨어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며 누님은 남동생 셋을 안방에
옹기종기 앉혀 놓는다.

어머님께서는 부엌에서 김치와 파를 썰어 넣은 빈대떡을

지지고 계신다. 정오인데도 사방은 깜깜하다.

콩기름이 구수하게 끓고 레인지의 파란 불빛이 어머님의 얼굴을 잠깐씩
비출 때 마다 그 열기로 세월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모두들 서로의 다리를 하나씩 엇갈려 끼워맞춰 앉아
누님의 노래에 웃음꽃이 핀다.

노랫말 하나 하나에 손으로 다리를 짚어나가다 끝나는 다리의 임자가 벌을 서는
놀이였다.

서울로 이사온지 얼마 안되었던 79년의 여름엔 바닷가 옛 집에서처럼
비가 올 때마다 할머니께서 그 주름잡힌 당신의 양손에 호박엿과 떡을 만들어

오시곤 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것을 연하게 찐 후 묽은 조청에 찍어 먹는 맛은
요즈음의 피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80년의 봄이 아물고 아시안 게임이 열릴 때까지도 특별히 밖에서 군것질을 해본
기억이 없다. 철마다 아침상엔 산나물이 올라 왔고 아버지의 식성에 따르다 보니

자연히 당분이 많이 든것은 멀리하게 되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온 후부터 비가 오더라도 모두 모이기 힘들었다.

형제들 모두 커버린 탓도 있겠지만 집 밖에 관심거리가 더 많았기 때문이리라..

요리하기를 좋아했던 터라 주말이 되면 두 남동생을 TV 앞에 앉혀놓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보곤 했다. 무슨 사내녀석이 앞치마를 두르냐는

어머님의 핀잔도 있었지만 모양도 내고 맛깔스럽게 만들어내 가족들에게
맛보게 하는것도 내겐 큰 자랑스러움 이었다.

누님은 그런것엔 별로 관심이 없어 가끔의 말도 안되는 사내동생과의
솜씨 비교에 시큰둥해 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것에 흥미를 잃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것은

가자미 매운탕을 푸짐하게 요리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던 것이다.

요즈음은 모두가 바빠 쑥갓과 미나리의 풋풋함이 곁들여진 가자미 매운탕을
함께 맛 볼 기회가 없었다.  


벌써 일주일째 비가 내리고 있다.

이번 여름에는 미루던 가자미 매운탕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靑潭

There is none like you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
하나님이.....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

사사기 15장 18-19

샬롬 ! ..

오늘 아침 Q.T.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야...선포이구..
그간의 1개월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도 힘든 한달이었어..

왜냐하면 육체적으로 너무도 아팠고...영적으로도 힘겨운 시간들이었거든..

물론 캠퍼스 사역은 날로 부흥하고 좋았지만 나의 영적인 한 부분은
나날이 힘겹고 버거운 전투였다고 할까.

그 버거움들은 모든 학과 공부와 영적인 부분, 또 교회 임원으로서의
직무유기(?)까지 이르게 했어..

물론 너무도 힘들어서 조금씩 조절해가며 한 것이지만 나를 바라보는
지체들의 눈은 그리 달갑지는 않았거든...

그래도 위안이 되었던 것은 기다려주고..기도해주었던 몇몇의 사람들 이었지...
물론 조규봉 목사님은 항상 기도해 주셔서..가장 든든한 믿음의 멘토셨어.

한달내내 영적인 앓이를 한후..그 해산의 고통속에 있던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사사기 말씀속 삼손의 잉태 에서부터 삶의 영위를 통해 결말을 주시더구나...

물론 더 자세한 속내는 우리 나중에 서로 침 튀기며 얼굴맞대고
이야기할 기회가 오면 할께.

음..참으로 오랜만에 단비가 내렸어. 캠퍼스 곳곳에 핀 라일락 향기가
진한 향수처럼 빗물에 흘러내리더라.

너는 여전히 하나님과 어우러져 잘 지내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비가 내릴때면 빗방울의 울림을 통해 나오는
자연의 소리가 마음을 즐겁게 하곤해.

메트로놈 소리처럼 세상 모든 식물들이 온몸으로 만들어 내는 소리가
내 영혼의 흥겨움을 일르켜 세운다고 할까..

어린시절엔 장대비가 내리면 빤스(?)만 입고 골목길을 소리치며 다니곤 했는데
이젠 너무도 커버려 옛 기억속에서나 그 때의 흥분되던 감정을 만끽하곤 한단다.

이렇게 비가 내린후 말끔하게 개인 공기와 세상은 우리를 새롭게 해.
그리고 흙위로 지렁이들이 지나다니곤 했지...

요즈음엔 너무도 더러워서 그러한 광경을 흔히 보기 힘드어..

음...그래도 사람들의 영적인 죽음과 더러움에 비하면 괜찮은것 같아.

가르쳐주지 않아서 모르는 것은 잘만 가르쳐 주면 알 수 있고 고쳐지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해..물론 그래도 안되는 것이 더 많이 있지만 말야.

세상 사람들에게 영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계기가 필요해...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의 천진함과...그것의 소멸...그 안에서의 부조화를
많은 이들이 깨닫게 된다면 좋으련만...

우리가 그 깨달음의 매개체와 통로가 되어야 해.

우리 젊은 크리스챤 , 행동하는 크리스챤, 가르치는 크리스챤...

바로 우리가 그것을 해야해...

네가...우리가... 함께..

너무도 상쾌하고 좋은 하루다.

말씀을 통해 나의 영적인 문제와 육체적인 시련의 시간이 끝났고
그 생수와도 같은 하나님의 선포가 오늘 나에게 주어졌어.

오늘 아침 이후로 나의 모든 원기는 회복되었단다....너무도 놀라운 일이야...

나의 한달은 온전히 삼손의 스토리와 비슷했다고 할까...

하나님께서는 놀랍도록 나를 연단시키고 계셔..

이 멋진 봄의 단비를 맞으며..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를 품어본다.



                        靑潭

인상좋은 친구에게

인상좋은 친구에게  

멋진 밤이군. 가을을 재촉하기라도 하듯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더니 비가 내려

고즈넉하던 밤을 우수에 젖게 만드는 것 같아. 갑작스레 편지를 쓰게된 동기는

후술하기로 하지.

낮 동안에 깨끗이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쳐내니

한결 깔끔하더니만, 역시 사내놈의 행실이란 것이 늘 그렇듯 그 새 어지럽혀졌네.

책상은 모니터와 프린터로 자리를 차지해 버려 천상 방바닥에 큰 상을 깔고

책을 보기도 하고 이렇게 편지글을 일구기도 한다네. 방금 커피물을 레인지에

올리고 티스푼도 아닌 밥숟가락으로 커피와 프림을 넣고 자그마치 삼 분이나

수저를 입에 물고 있었지. 역시 다방 커피처럼 독특한 향기를 낼 재주는 없지만

오늘 밤을 부족한 공부로 채우며 보내기엔 꽤 어울리는 것 같아.

흠. 인사가 늦었네. 그간 잘 지내셨나. 언혜와 목하 데이트중

신선한 충격(너무 상투적이지?)으로 만나게된 자네에게 몇 번의 전화를 통한

통신을 시도 했지만 자네의

삶의 방식(물론 자의 인지 타의 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에서 무난하게 통화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주된 이유라면 이유랄까.

해거름 때가 다가오면 가정의 관습적 강요에 의한 귀가와 가족과의 유대, 손님이

찾아오기전 가모(家母)와 더불어 요리를 만들고, 학교 생활에 충실하고 늘 소속감과

절제의 분위기에서 살고 있는듯한 모습에 사실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

으로 자네에게 미안한 생각마져 들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고백하고 싶네.

무엇보다 자네의 지금까지의 고요한 삶(마치 나르치스같은 느낌)에 내가 끼어들어

핀트가 어긋나거나 자네 고유의 색깔에 다른 색깔을 가감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두려움은 나 스스로를 굉장히 소심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어.

그래서 요 며칠(4일)동안 고심 끝에 조금은 고전적이지만 편지를 통해 자네와

내적 교류를 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는 판단을 내렸어. 서신 자체가 자네의

입지에 조금은 부담을 덜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인데. 어떤가? 물론 전화를

통한 부모님의 외압보다는 편지라는 문서상의 중립성과 글밭을 일구어서

돋아나는 싹들이 서로에게 -자네에겐 더욱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가교(架橋)가 될것이란 기대 때문이기도 해. 어찌되었든 자네의 삶이 참으로

보기 좋고 부럽다고 할까. 비록 단 한 번의 면대와 몇 마디의 대화였지만

닮고 싶은 점이 많아서 좋아. 정리하자면 서신 교환에 비중을 두고 가끔씩

짬을 내 밝은 시간에 함께 산책도 하고싶고 가끔 영화도 보고, 맥도널드에서

치즈버거도 먹고싶네. 시간이 허락된다면 오랜 시간 편안하고 무난한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야. 벌써 새벽 두시가 돼가는군. 오늘 비로 가을

이 한층 깊어지고 완숙해졌을 법해.

시간이 날 때 답장을 준다면 고맙겠네.



                               靑潭  

사랑은 서로를 배워가는 것

책을 읽다가 창문을 열어보니 밤바다 위 포말처럼 고요히 구름이 흐르고있다.
부모님이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으셨는지 두런 두런 하는 소리가난다.

가만히 방문을 열어 보니 안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모두가 잠든 이시간에
두분이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실까 귀 기울여 보니

"길영(永)자는 이렇게..이렇게 쓰는 거야...응 응 그래..아니..그게 아니구.."

놀라운 일이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시지 않은 어머님에게 종종 무시하는 투의

말을 던지시던 아버지셨는데, 결혼 생활 40년이 되가는 요즈음 가족들의 이름을
한자로 쓰는 것을 어머님께 가르쳐 주고 계셨다.

부끄럽지만 대학생인 나 조차도 읽을 줄만 알지 온전히(?) 가족들 이름을 한자로
쓰지는 못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오늘 어머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 한자로 자식들과
남편의 이름을 또박 또박 써 내려가고 계셨다.

40년이나 살붙이로 함께 살았지만 새롭게 새롭게 무엇인가를 배워나가고 있고
서로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한 철학을 하나 떠올려 본다.

사람들은 종종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곧 그 말은 사랑을
시작했고 그 사랑의 크기와 양은 이미 정해졌으며 더 이상 변동되지 않을 듯이

이야기 한다.

하지만 사랑은 끊임없이 새롭게 서로를 배워가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우리가 사랑을 시작할 때 그것은 계기일뿐 지속될 수 있는 에너지는

계속 공급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종종 많은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할 때 이미 모두 사랑해버린 듯 시작한다.
그리고 이네 지치거나 서로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고 그것에 대해 감당하지

못해 갈등하거나 이혼하는 사례가 많은 듯 하다. 그것은 서로의 내부에서
요구하는 사랑의 공급과 서로를 배워가려는 의지의 박약에서 온다고 믿는다.

그러한 모습은 인간관계 곳곳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타인에 대해 규정하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상대에 대한 규정을 통해 그와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규정을 벗어나는

것들에 대해서는 조금은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이내
새로운 모습에 대해 대부분은 수용의 모습으로 받아 들이고 갈등을

해결한다. 만약 계속되는 수용의 요구가 있을 때 우리는 심각한
갈등을 표출하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이 때 우리가 수용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모르던 모습을 배워간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결코 부담이 되지 않을법 하다.

왜냐하면 배워가는 것은 사랑의 의지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은
결코 지겹거나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는 영구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리가 오랜시간을 함께 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서로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자신만만 하더라도 우리는 이 순간 새롭게 새롭게 서로를

배워가야만 한다.

마치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끊임없이 깨달아 가듯이...




                          靑潭

레옹, 그 사랑의 끝에서

"ok" "ok" "ok" , "움직임을 함께 느껴", 주변보다 더 짙고 어두운 옷을 입
어야해", "자 숨을 멈춰", "레옹, 이곳에 뿌리내려 함께 살아요"

사내녀석들의 땀 냄새로 가득한 내무반 붙박이 벽에 놓인 VTR 은 Play 발
광 다이오드를 빨갛게 치뜨고 있다. 화면이 지날 때 마다 TV 에 집중해 있

는 병사들의 턱을 괸 얼굴들이 무표정하게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한다.

레인맨에서의 더스틴 호프만을 연상케한 표정 연기가 일품이었던 장 르노
의 레옹과 와일드 오키드의 여주인공 -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 이미지의

나탈리 포트만의 마틸다. 마틸다의 색깔은 라임오렌지 나무의 제제와 비슷
했다. 관심밖의 영역에서 그저 바라보고, 가끔 심하다 싶을 만큼 매 맞기도

하는. 그 나이의 아이들이 가질 순수함과 발랄함은 기저에 억눌려 감추어져
있고 영악한 눈빛과 악바리같은 어리광, 예민한 감수성등이 그녀에게 강한

흡인력을 가진 눈을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카메라 앵글이 마틸다의 실루엣을 화면 가득 담고 있을 때 그녀의 코와
입술은 깎아 놓은듯 아름다웠다. Fade-in 되면서 클로즈업 된 긴 속눈썹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만감(萬感)의 메시지를 주는 눈동자 - 사실 마틸다의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과 어린 소녀같은 발랄함, 장난끼를 동시에 풍기는

야누스적 원천은 그녀의 눈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레옹의 그것과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고 강렬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클리너. 레옹 신드롬으로 익숙해진 - 킬러보다 예리하면서 인간미가 진하
게 묻어나는 언어. 성격파 배우들의 공통점이라면 헐리우드 스크린의 판에

박힌 잘생긴 배우들과는 달이 눈이 움푹 들어가 있거나 윤곽이 샤프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데 양들의...앤소니 홉킨스, 25시...앤소니 퀸, 레인

맨...더스틴 호프만, 미저리..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캐시 베이츠, 사랑
과 영혼..싸라피나..만델라..씨스터 액트...우피 골드버그 등. 그들과 한

부류에 속하는 장 르노의 레옹. 그의 무표정하게 툭 불거져 나온 조금 충
혈된 눈은 방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습관적으로 창문과 환풍 통로, 가구

의 배치, 출입문 위치 등 전체적인 구조를 탐색하고 꼭 커튼을 두른다. 군
밤 장사 아저씨같은 윤곽에 냉정하고 말이 적은 - 프로페셔널다운 진화된

행동방식. 그러나 그 속에서 배어 나오는 진한 인간미와 스스로에 대한 엄
격함과 절제는 신(神)의 강제된 선물인 사랑에 의해 해리되고 어찌보면 상

투적인 이야기처럼 사랑과 피, 카타스트로프(Catastrophe)의 랑데부를 보
여준다. 종국에 관객에게 남기는것은 늘 그렇듯 사랑과 정의, 평화의 여운

이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 해석이라 대중적 느낌인지 확인한 바 없
다.

90년대 들어 본 영화는 대부분 상당히 난해한 것들이었다. 소위 포스트
모더니즘을 추구하는 감독들의 다크 파스텔 톤 화면 구성은 그 앵글이 과

격하거나 성(性) 모랄 박스(Culture)의 보수주의를 겨냥 했거나 정신분석
적 심리학, 심지어 소품의 색깔과 빛의 분산에 의한 관객의 뇌포(腦胞)

반응 까지도 계산한 신중한 것들이었다. 그런 배경 때문에 레옹의 컷트마
다 숨어있는 메시지를 읽어 내려고 오감(五感)을 동원하는 정성을 기울였

지만 지극히 주관적 스키마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덕분에 뤽 베송 감
독은 충분히 슬펐을(?) 것이다. 착각 이었는지 모르지만 잠깐 비춘 절제된

생활과 고독감의 결투 외에는 특별한 갈등의 피크는 느끼지 못했다.

레옹과 마틸다를 줄곧 휘감고 있던 분말처럼 부서지는 창가의 햇살과 화
분.

'햇살'은 아마도 레옹에게 자양분이 된 마틸다의 플라토닉한(?) 사랑이 아
니었나 싶다 - 장 르노는 우유만을 주식으로 했는데 모성애(母性愛)에 대

한 반동형성 또는 애정 결핍에 의한 일종의 시위(Demonstration) 를 표명
하며, 마틸다와의 첫 모멘트(Moment)는 그녀가 우유를 사다주는 것으로 시

작 되었다.

'뿌리 없는 화분'은 클리너로서의 고독감, 인간관계의 단절, 약간은 편집
적인 - 자신이 머무는 곳의 모든것을 탐색하는 - 레옹의 자아상을 대변하

는 오브제로 사용된 듯 하다.

즉, 마틸다 = 모성(母性) = 우유 = 햇살 이며
레옹 = 뿌리없는 화분 = 고독 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둘다 정에 굶주려 있다는 점에선 공통으로 적용된다.(지극히 개인적
생각임을 밝혀두고 싶다)

매개로 등장한 악당(?) 들과의 투쟁과 마틸다를 탈출 시키는 레옹의 모습
은 뿌리없는 화분에서의 몸부림 이었고 "레옹 이곳에 뿌리 내려 우리 함께

살아요" 라는 마틸다의 마지막 대사로 그의 몸부림과 고독과의 투쟁은 끝이
났다.

군에 입대후 2년여 동안 정말 보고싶은 많은 영화가 나왔었다. 그러나 휴
가 때 본 '너에게 나를...', '세가지색 中 Red', '쉰들러 리스트' 외에는

전혀 스크린 문화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중대 내무반에서
VTR 을 통해 이 영화를 볼 기회가 주어져 너무나 기쁘다.

지난 외박 때 '포레스트 검프'와 이번의 '레옹'은 전체 스토리는 단조로
운듯 했지만 군 복무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에겐 많은 감동과 여운을 남겨
주었다.




                     靑潭...

For something new

시원한 밤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드는 밤이다.
어머님께서는 주방에 홀로 앉아계셨어.

내가 다가가 어머님...음..어머니을 제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세요?
어머니는 제가 좋으세요?  싫어..왜요? 너무 교회에 미쳐서..

미친것 아니예요..그저 너무도 좋아서요..믿어도 조용히 믿어야지.
너무 소란스럽게 믿잖아...

난 어머님이 빨리 하나님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어머님은 내 삶이
변한것을 보았잖아요.

전 어머님의 상처들이 보여요. 어머님 안에 있는 수많은 도무지
셀 수 없는  그 상처들과 깨진 마음들을 볼 수 있어요. 아주 어린

시절의 상처와 처녀시절의 상처들...또 결혼 후 아버지로부터의
상처들..자식들로 부터의 상처들..난 어머님이 너무도 좋아요.

어머님같은 인고의 세월을 사신 분이 몇이나 될까 생각이 들어요.
어머님이 하나님을 믿게 된다면 저처럼 하나님께서 어머님의

그 아픈 곳들을 하나하나 만져주시고 치료해 주실거예요.
그럼 친구들과 계모임후 노래방에 가는것보다 기쁘고 즐거울 거예요.

노래방 갔다오면 행복해요? 그래도 뭔가 걸리죠? 아니..기뻐.
노래방 갔다 오면 다 잊어..

전 배우자를 선택하려고 생각을 할때마다 어머님을 생각해요
음..어떤 면에서는 어머님같은 성격과 반대되는 자매를 생각

해보기도 하고 또 어떨 땐 어머님같은 성격을 생각하기도 하구요

...어머니가 좋아할 수 있는 며느리를 생각해요..전..

아냐...며느리는 니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구..
선한며느리 악하게 만드는게 남편되는 사람의 성격때문이라더라..

그래요?...음..전 아직도 하나님의 품성을 깨달아 가는 중일
뿐이예요. 넌 가끔 못된 성격을 보인다구.

그래도 제가 엄청난 변화를 가진걸 어머님도 보셨잖아요..

제 안에 있던 어머님의 이미지는 그리 좋은편이 아니었어요.
어린시절엔 계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어머님이

울면서 나를 그렇게 모질게 때릴때요...어느날 하나님께서는
제 안에 들어오셔서..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깨뜨려 주셨어요...그 견고하게 틀이 지어있던 어머님과 아버지
에 대한 좋지 않던 모습들...

전요..하나님을 만난후 어머니 아버지를 너무도 사랑하게 되었어요.

아버지 어머니의 그 연약함과 아픔들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지혜의 눈과 통찰을 저에게 주신답니다.

공부나 열심히 해..딴 생각 품지 말고..공부 열심히 해..

저 잘하고 있어요 어머니..공부 잘해요..

그래..

왜이리 개고기가 잘 익지 않지?

냄새가 구수하네요..된장냄새..

그 고기 아버지가 사오신 건데...

그래..

내일은 학교에서 예비군 훈련이 있어요 어머니

늦겠다 얼른 자라..

네..

어머님 전 어머니를 너무도 사랑하고 좋아해요..

가스레인지 파란 불꽃이 어머니 얼굴에 어른거린다....



                          靑潭

we are so busy to grow

교회에서 돌아와 회개 기도를 했어요.

지체들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또 아직도 연약한 품성을 가진
제 모습 때문에요.

기도를 하고 난 후 완전히 쉬어버린 목 덕분에 침묵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주일 잘 보내셨어요?

UDTS 지원서의 질문지를 작성하며 UDTS를 품게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새삼 명확하게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끄시는 수레바퀴의 자취를 되돌아 보면 너무도
흥겹고 재미있는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전개와

갈등의 피크를 넘어서는 고비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은혜가
있었음을 깨달아요.

이 믿음의 소설은 끊임없는 상승 전개를 해나갈 것이라는 생각에
자주 설레임을 가지곤 합니다.

예전엔 내일 삶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순간 순간의 소중함과

다음의 전개에 대해 호기심과 기대, 설레임을 안게 되는것 같아요.

UDTS 를 품고 기도하기 시작하자 곳곳에서 영적전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부모님의 반대로부터 시작해 환경적인 방해를 조장하는 사단
녀석이 너무도 미워요. ^^ 참 이상한것은 그 미움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 괴씸하기 그지없는 사단녀석을 어떻게
처리하실까 궁금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 믿음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말씀들이 그것을 기대케 하는
근원이 아닐까 합니다.

어찌 되었든 모든것이 저의 승리임을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길을 막으시기도 하고
열기도 하셔서 '기다림'이라는 훈련을 하게 하시는 분 같아요.

순간 순간마다 그 기다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절 발견하곤 합니다.

또 그 연약함을 가르쳐 주심으로 더욱 연단시키시는 하나님의
복선이 참 묘미죠.

자매의 삶속에서도 함께 행하시며 , 멋진 오빠처럼
아버지 처럼, 언니처럼 또 친구처럼 다가 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셨을 거라 생각해요.

요즈음 제겐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누나같은 하나님이 함께하세요.

학과 공부와 미션컨퍼런스, 부흥 콘서트 준비, 대동제 CCM 콘서트
UDTS 준비 등등. 여러가지 사역들로 분주하지만 그 때마다

영기야..힘들지? 조금씩 쉬엄 쉬엄 하렴..말씀하시는 너무도
푸근한 목소리의 누나같은 하나님으로 제게 다가 오신답니다.

자매에겐 어떤 모습의 하나님 이실지 궁금해 지네요.

자매의 건강 , 그밖의 모든 환경적인
것들과 영적인 것들이 온전히 준비되고 세워지길 기도합니다.

이제 새로운 일주일이 시작되었네요. 항상 주님과 동행하시며
주님의 빛과 향기를 모든 학생들에게 드러내는 자매가 되세요.

^^ 그럼 나중에 또 ....



                   영기.

라일락 향기처럼

마당 한구석에 지난 겨우내 초라하게 서있던
한그루 나무. 예전엔 몽련이 사뿐하게 피어있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피지 않는다.

아랫층 아주머님이 나무 옆에 소음이 심한 대형 냉장고를
놓고 흙이 숨쉬지 못하게 시멘트를 덮어버려서 일까...

그런데 어느날부터 그곳에 라일락 나무가 살고 있었
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겨울내내 앙상하게 부러진 가지로 움츠러있던 그 품새가
비오는 날 나지막한 향기로 피어났다.

골목 어귀로 들어서니 멀찌감치부터 교회 이쁜 누나의
머리에서 나던 향내가 난다.

어느집에서 이리도 좋은 내음이 날까...참 부잣집이구나
생각했다.

오히려 멀리서 강렬했던 그것은 집앞에 이르니 사라지고
말았다.

어디서 나는 향기였을까?

이층으로 올라오며 무심코 바라본 마당에 너무도
아름다운 빛깔의 꽃들이 피어나 있었다.

왠 꽃이 피었지? 무슨 이름의 꽃일까?

향기도 없고....몇일이면 사라지겠지...

다음날도 30 여미터 골목 어귀까지 그 향기가 났다.

어디서 나는향기일까...아름다운 아가씨가 사는 집일까?
궁금해,..

집에와보니 많은 꽃잎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며 눈내리듯 나리는 그 꽃잎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도 그냥 지나갔다.

다음날은 더이상 그 향기가 나지 않았다.
향수가 다 떨어진 모양이군...

집에 와보니..파란 잎사귀만달린 그저 평범한 나무가
서 있었다.



              

             靑潭  

품어내기

낮아지고 작아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랑을 먼저 시작해야 한다.

사랑이 시들고 미움과 슬픔의 뿌리가 뻗은후
사랑의 고갱이는 붉은 열매를 맺는다.

그 기억의 변증법들은 깊이 깊이 묵혀서
시고 떫음을 지나쳐 본체의 맛과 향이

절로 피어날 때 꺼내야만 한다.
우리는 판도라의 어리석음이다.

어린시절의 취미였다고나 할까. 다른 아이들처럼 골목에서 떠들썩하게
딱지 치기를 하거나 구슬 치기, 땅따먹기를 하기 싫어했다. 어린 눈에

더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 싫었다. 신문
지나 마분지를 접어 만든 사각형의 딱지에 소유의 즐거움과 착취의

쾌락을 그리고 승부의 본능을 부여해 놀이 하는 것이 영 흥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난 자치기나 연 날리기, 불장난을 주요 놀이로 삼았다. 그것은
주로 겨울철 놀이였다. 옆집 지붕에 한 뼘 만큼 쌓인 하얀 눈에서 일

요일의 태양을 맞이하고 담요안에 훈훈한 화석 연료의 생기가 가득할
때의 나른함을 좋아했다.

낮엔 깨끗한 사발에 모래를 씻어넣고 동생 녀석의 1호 재산인 유리구
슬 몇 개를 놓는다. 그리고 팔당호에서 공수되온 수돗물을 부어 고요

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골목 녀석들의 엄지와 중지 사이에서 사정없이
던져져 부딪히고 깨지고 상처입어 탁해진 밉살스런 유리알들이 물속

에 넣어지면 깨끗이 아물었다. 그것은 유리구두를 신은 신데렐라처럼
투명하고 순수함의 절정이었다.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 하지만 너그

러움과 그 맑음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누나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되돌아 보니 구슬이 온데 간데 없다. 물과 모래 뿐이

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것는 제자리에 있었다. 그는 물보다 유연했
고 빛과 같기도 했다. 내 마음이 희어지고 희어져서 빛이 되면 구슬이

보이고 나쁜 마음을 먹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라 믿었다.
인간의 본능인지 순결의 절정을 보면 교활한 호기심이 동하나 보다.

손을 넣어 눈 앞에 꺼내어 보니 투박한 유리일 뿐이었다. 가슴이 아리
고 슬펐다. 치유와 평화의 끝에 이른 그것을 망가뜨린 자책이었다. 한

편으로 영악한 아이의 눈에 비친 그 현상이 신기한 의문으로 남았다.
물속에 담겨진 유리알의 영롱함이나, 꺼내졌을 때의 그 참담함과 현실

적인 슬픔이라니. 구슬의 모양을 그대로 품으며 순수를 살려내는 물의
너그러움이 내 안에도 있을까 하는 궁금이 있었다. 어떤 머뭇거림도

없이 형태에 흡수되기도 하며 포용하기도 하는, 유리알을 부끄럼 없이
물이 되게하는 그 유연한 모성(母性)이 평화의 궁극이었다. 그리고 그

순리의 상태 그대로 있는 것이 치유의 정도(正道)임을 깨닫게 했다.
한가지 불변의 고집 이라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방향성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주보다 큰 포용을 위한 낮아지기였으며 작아짐의 변
증법이었다.

잣나무 침엽 끝에 맺힌 아침 이슬을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뒤에 있던 거대한 산과 하늘이 그 작음속에 들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젠 마음껏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靑潭...

어머님 다라 비빔밥

김치거리가 비싸서 어머님의 눈초리는 요것 조것 만지작 거리며 들춰도 보

고 흔들어도 보시곤 그래도 자식놈처럼 묵직하고 단내가 물씬 풍긴 배추 몇

포기를 사들고 오시더니만 큰 갈색 다라(대야)에 그것을 푹 절여놓고 빨래

를 하신다. 손빨래가 모두 끝난후에 세탁기에 넣어 한번더 돌리시는 어머님

정성이 보통이 아니다. 하긴 다 큰 사내자식들 속옷은 아무리 강력한 세탁

기라도 그 빤스에 누렇게 뜬 자욱은(?) 빼기 힘들테니 말이다.

큰 다라에 수북히 쌓여서 배불뚜기가 되어있던 배추는 숨을 죽이면 푹 가라

않아서 얌전해 지고 어머님의 배추 다루는 솜씨는 본격적인 게임으로 들어

간다. 소금기를 빼기 위해 빨래하듯 물을 그득하게 붓고 씻어내기를 여러번

그것을 또 꾸욱 짜서 물기를 빼내면 김치가 될 자격이 되는 배추포기가 된다.

케로틴이 많이 많이 들어있다는 당근(32 킬로칼로리)을 채 썰어놓고 무우

(18 Kcal), 양파(35 Kcal), 파 등을 넣어서는 그 위에 고추가루를 듬뿍

넣어 버무린다. 가장 중요한것은 새우젓인데 예전엔 비싸서 멸치젓을 더 애

용하곤 했지만 그래도 만불 소득시대를 구가하고파서 새우젓을 2통 넣고는

손이 빨간 색으로 물들 때까지 잘 비비고 버무린다. 마지막으로 조미료를

넣어 맛을 내는데 가장 핵심적인 비법으로 조미료를 넣지 않으면 않을수록

먹는 사람 건강에도 좋고 어머님의 손으로 비비면 비빌수록(절대 고무장갑

을 끼고 버무려서는 안된다) 손맛이 어우러져 그 맛이 천상의 신선이 먹는

김치에 비견된다. 이렇게 버무리고 비벼서 하얀 허벅지를 드러내고 기절해

있는 섹시한 배추포기 사이 사이에 넣으면 된다.

모두 되었다 싶으면 곧바로 뜨거운 바람에 쐬이지 않고 산달에 가까워진 며

느리 대하듯 김치통에 넣어서는 하루정도 그늘진 곳에 놓아두신다.

마지막 절차로서 모든일에는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용두사미는 훠이

훠이 하시면서 어머님 손맛이 잔뜩 베어있는 다라에 남은 빨간 양념 위에

김이 모락 모락 나는 하얀 쌀밥을 넣고는 그 위에 참기름을 쭈욱 떨어 뜨린

다. 그리고 아직 씻지 않은 어머님의 양념이 가득히 묻은 손으로 정말 보기

만 해도 침이 꾸울꺽 넘어가는 비빔밤을 버무려 주시는 것이다. 모두 비빈

후에 막 만들어져 김치통에 들어간 그 배추 속내를 몇개 따내어 쭈욱 쭈욱

찢어서는 비빔밥 위에 얹어 주신다. 그 커다란 다라(대야) 에 우리 삼형제

그리고 어머님 모두 둘러 앉아 먹는 점심은 가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요즘은 젊은것들이 모두 인스턴트 김치를 사다먹는다 어쩐다 하던데 여러분

도 어머님 다라에 빚어져 어우러진 그 다라 비빔밥을 좀 먹어보시구려....


배추꽃날에...



                              靑潭.

Peace of mind

수요일.

비도 많이 내리고 불야성을 이루던 검열기간. 폭풍 전후의 명쾌한 오후다.

간단없이 찌든 심신을 샤워로 말끔히 씻어내고, 햇빛 내음이 담뿍 나는 내

의를 입었다. 하늘은 가을처럼 높고 파랗다. 새털처럼 가볍게 부유하는 구

름들과 아직 녹색 여린 잎사귀로 풍요를 꿈꾸는 벼의 싹들. 마음은 명상의

시간에 도달케한다.

불룩한 커피 포트에 한홉의 물을 붓고 아이처럼 보글 보글 끓는 시간을 만

끽한다. 얼마전 외출중에 정형화된 예쁜 도자기 컵들에 가려져있던 참

못생긴 -따뜻한 토목(土,木) 빛깔- 컵을 구제(?) 했었다. 훈훈한 기운을 두

손바닥으로 감싸고 그 안에서 녹아나는 녹차의 향기를 음미하는 이 시간은

무릉도원이 따로없다. 특별히 다도(茶道)라는 규격을 따르지 않아도 자유로

운, 마음의 평원에 나를 던져두고 체험한다. 녹차를 음미하는 이 신성한

평화에 고요함을 가미하면 금상첨화다. 입안에서 감돌다 목젓을 타고 흘러드

는 차(茶)의 자취와 곧 뒤따르는 고요함은 델리킷한 어울림을 누리게 한다.

난 혀끝에서부터 온몸에 훈훈하게 퍼지는 그 여운을, 하루동안의 상념과 사

람들과의 부대낌에서 떨어지는 감정의 조각들과 수많은 부산물들을 기꺼이

정화할 수 있게 주어진 이 자그마한 자투리 평화가 더더욱 고맙고 기쁘다.

신(神)은 빼앗아 간 만큼의 평화를 주는것 같다.






                           청담(靑潭)  

Hei~ Mr. Monkey!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시뻘건 피를 뚝뚝 흘리시며 터벅터벅 걸어가시던 주님. 그분의 마지
막 고개가 떨구어 지고 삼일 째 되는 날 부활의 역사를 이루셨다.

부활절을 경축하는 날이라서 그런지 많은 성도들이 이쁜 옷을 입고 대성전을 가득히 채우고 있
다. 물론 목사님도 하얀 양복과 하얀 구두를 신으시고 지난 몇 개월간 보지 못했던 더욱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신다.

유난히 이날은 찬양을 하는 동안 예수님의 피땀이 눈에 선했다. 그리고 지난날 뒤를 돌아 볼 때마
다 흠칫 흠칫 놀라던 내 모습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때는 무슨 연유였는지 매주 예배 때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지성소로 들어가는 은혜를 입고
있었다. 어느날 청년 예배시간 푹신한 의자에 앉아 찬양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의자 밑으로 발을 꼬고 앉았는지 내 엉덩이에 무엇인가가 자꾸만 부딪친다. 고개를 돌려보
니 뒷좌석엔 아무도 없다. 다시 예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두툼한 것이 엉덩이 밑에 도사리고 있다. 어떤 녀석이 자꾸 장난을 치는건가. 이젠 아예
일어서서 의자를 내려다 봤다. 아무것도 없다. 의자가 고장이 났나.. 자리를 옮겨 앉았다. 다시 무
엇인가 엉덩이를 건드린다. 모두들 찬양에 깊이 몰입해서 눈을 감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슬며시 일어나 엉덩이 쪽을 내려다 봤다. 내 엉덩이 꼬리뼈 쪽에 털이 보송보송하게 난 꼬랑지가
나 있는것이 아닌가. 바지를 뚫고 나온 그것이 꿈틀 꿈틀 꼬리를 치고 있었다.

길이가 30 센티는 되는듯 했다. 너무도 놀라서 자리에 얼른 앉았다. 청년들 모두 눈을 감고 어떤
이는 손을 들고, 어떤 이는 열심으로 기도를 하며 예배에 몰입해 있어서 아무도 내 꼬랑지를 보지
는 못했을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사태인가.

내가 무슨 병에 걸린 것인가. 손을 씨트 뒤로해서 아직도 엉덩이 밑으로 만져지는 그 꼬랑지를 가
만히 말았다. 그리고 웃옷을 꺼내 입어 그것을 가렸다. 행여나 다른 청년이 볼까봐 조심스러운 발
걸음으로 화장실로 부리나케 뛰쳐 들어갔다.

가방에서 얼른 컷터 칼을 꺼내어 벌써 1미터나 길어져버린 그것을 있는 힘껏 잘라냈다. 다행한 것
은 아프지도 피가 나지도 않았다.

예배중이라 화장실로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절을 잘라내도 아프지 않아 이젠 엉덩이에 가
장 가까운 부분을 얼른 잘라냈다. 그것을 잘라내자마자 구멍이 뚫려있던 바지는 신기하게도 아무
렇지 않게 정상으로 되돌아갔다.

너무도 이상했다. 무슨 꿈을 꾸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볼을 꼬집어 봤다. 이건 꿈은 아니었
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세수를 하기위해 세면대로 가 거울을 보았다.
놀란 토끼처럼 눈이 충혈되어있다. 혹시 내 유전자 안에 이상한 증상이 있는것은 아닐까. 왜 갑자
기 꼬리가 나온단 말인가..

수도꼭지를 돌려 흘러나오는 물줄기를 받아 얼굴을 닦아냈다. 혹시나 해서 얼른 고개를 돌려 뒤
를 돌아 봤다. 꼬랑지는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후..한숨을 쉬며 다시 거울을 보았다. 까칠한 얼굴
위로 턱수염이 더욱 자라난 듯 보인다.

음..아침에 면도를 했는데...청년예배가 모두 끝날 때까지도 놀랬던 마음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
다. 2부 교제 시간이라는 광고가 나왔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무슨 나쁜짓을 하다가 들킨
불안한 마음이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연신 엉덩이 쪽을 돌아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고 거울을 보다가 아까보다 더 많이 덥
수룩하게 난 수염을 보고 놀랐다. 이젠 구렛나루까지 나서 털보처럼 돼버린 얼굴이 아닌가..아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혹시 무슨 호르몬이라는 것이 이상한 작용을 해 이런 현상이 나는 것은 아닐까? 어디선가 들은 유
전자가 어떻고 호르몬이 어떻다는 전문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병원으로 전화를 해볼까..다시 거
울을 보았다. 완전히 온 얼굴을 뒤덮어 버린 털..자세히 보니 그것은 원숭이의 얼굴 형태처럼 되어
가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완전한 원숭이 얼굴이었다. 거울속의 녀석은 이제 원숭이었다. 그것은 내가 아니었
다. 엉덩이쪽을 내려다 봤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보다 더 길게 툭 튀어져 나온 꼬랑지가 있는것이
아닌가. 그것은 원숭이 꼬랑지 였다. 이젠 담담해져 버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더이상 놀라지
도 않게 되었다. 이미 원숭이처럼 변해버린 거울속의 내 얼굴을 보며 어떤 조치도 소용이 없을것
만 같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이젠 이 모양을 하고 밖으로 나갈수도 없을것만 같았다. 다시 칼을 꺼내 꼬랑
지를 있는힘껏 잘라 봤다. 그것을 잘라내자 아까 교회에서 보다 더 빨리 다시 자라났다. 이것은 없
앨 수 없는것인가? 성경책을 꺼내 펴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이 사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
기 시작했다. 30분을 기도했을까.

눈물이 앞을 가리고 콧물이 줄줄 흘러내려 이젠 휴지로 닦아도 소용이 없었다. 1시간이 지난후 세
수를 하고 거울을 보았다. 잡혀지던 털이 모두 사라져있었다. 꼬랑지도 없었다.

그날 이후로 더 이상 그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예배 때마다 난 엉덩이를 슬며시 만져
보는 버릇이 생겼다. 꼬랑지가 다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난 예배 속으로 들어가 찬양을 참으로 잘했다. 목소리를 이쁘게 낼 수도 있었고 기도도 남들이 참
잘해요..은혜받았어요 할 만큼 하곤 했다. 찬양예배 때는 찬양에 맞추어 춤도 곧잘 추곤했다. 다
른 성도들은 나를 보며 참 믿음이 좋은 청년이라면서 칭찬도 하셨다. 난 열심히 흉내내는 원숭이
였다. 찬양도 흉내, 기도도 흉내, 교제도 흉내..선교합시다. 열방으로 나갑시다 라고 흉내내곤 했
다.

그랬다. 난 예수님은 나의 구주세요..라며 잘도 흉내냈고 전도도 흉내내며 잘했다. 난 그것이 진
정 내가 하는 것인줄 알았다. 그것은 단지 잘 연습된 흉내였다. 하나님과 전혀 상관도 없는 흉내..
내가 흉내내는듯 할 때 마다 난 궁뎅이를 쳐다봤다. 하지만 더이상 꼬랑이지는 없었다. 요즘엔 더
이상 그 사건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지만 아직도 가끔 흠칫 흠칫 놀라곤 한다.


꼬랑지가 나오지 않았을까...

주걱턱 그녀

주말이면 신촌은 어디서 왔는지 참 이쁘고 멋진 옷을 입은 인형같은 아가씨들로 가득차 있다.

버스에 올라타니 내 앞으로 모델처럼 멋진 투피스와 매력적인 웨이브가 들어간 긴 머리를 한 아가
씨가 앉는다. 그녀의 힐은 아주 높았고 얼굴도 참 이쁘다.

화장을 짙게 했지만 별로 야하지 않다. 그녀가 몸을 돌리며 앉을 때 그녀가 주걱턱 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내 바로 앞 좌석에 앉아있는 그녀의 뒷머리카락도 참으로 멋져 보였고 고급스러웠다.

그녀는 무엇인가 불안한듯이 자꾸만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쳐다 보다가 눈알을 굴려보곤 했다. 사
람들이 그녀의 주걱턱에 유난히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일반 버스에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그녀의 화장과 옷매무새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은 것을 그녀
는 깨닫지 못했다.

계속 좌불안석이던 그녀는 신촌을 조금 벗어난 정거장에서 우아하지 않게 내렸다. 그녀가 내릴
때 남아있던 진한 향수는 금방 공기중에 희석되어 사라졌다.

그녀는 주걱턱이었다.




          靑潭

The love of deaf

동대문 운동장 역.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하루 중 가장 붐빌만한 때여서

그럴까. 기계적인 습관으로 노란 선 가까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종종걸음으로 훅 하니 뜨거운 입김을 토해내는 전철 안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짙은 남색의 전철 의자는 일곱명이 앉으면 적당해'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던

눈은 빠르게 사람 수를 세어간다. 일곱명이 아닌데 널찍하게 사람들이 앉아서

다른 사람을 허용하려 하지 않을 때 나는 묘한 분기를 느끼곤 했었다.

그런 분기가 마음에서 꿈틀댈 때마다 왜 이런 결벽증 비슷한 것이

나를 어렵게 할까 하는 생각으로 전철 손잡이를 잡고 선다. 여전히 내 얼굴은

부조리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 사실을 깨닫게 되어 조금은 미안해 지길 바라는 눈빛이

되어버린다. 여전히 여섯명이 앉아 있다. 무슨 편집증 환자같은 생각일까 하는

자책이 금새 헤집고 들어선다. 다른 한켠엔 중학생 세명이 앉아 노트에 무언가

열심히 쓰고 서로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뭘 저리도 열심히 공부할까.. 그들은

말도 없다. 마음에 집중을 하면 늘 그렇듯 머리가 아파오곤 했다. 분한 마음은

아드레 날린 분비를 가속시켜 뇌 세포를 파괴하는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다는 글

귀를 어떤 잡지에서 읽은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아이들은 여전히 말없이 열심

히 무언가를 쓰고 서로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 아이들은 벙어리들 이었다

수화를 하는 대신 공책에 말을 글로 써내던 것이었다. 종종 전철에서 손짓과 표

정, 그리고 눈짓으로 의사소통하던 벙어리들을 본적이 있었다. 주위의 다른 사

람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집중해서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손짓을 하는

그들의 마음이 어떤 마음일까늘 궁금해 했었다. 또 그들의 수화가 정말 내가 말

을 하듯 똑같은 뉘앙스로 의사소통이 될까하는 의구심이 내내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의구심은 내 눈을 그들에게 계속 집중하게 하곤 했다.

어느날은 정말 아름다운 여성이 자리에 차분하게 앉아있는것을 본적이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한번씩 흘끔거릴 만큼 아름다운 면모를 갖춘 여성이었다.

그녀는 동행한 늙은 여인과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벙어리였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녀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전혀 흐트러지지도 산만해지지도 않고

평안한 표정으로 수화를 하며 즐거워 하고 있었다.

답답하지 않을까...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로최선을 다해 서로를 표현해 내고 있었다.

그들의 몸짓과 손짓은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는시끄럽지도 아우성도 아닌

사랑의 소리 감정의 소리였다. 무언의 소리, 손짓의 소리, 표정의소리.

말의 속도를 따라 표현하기 위해서 절제된 언어로 표시되는 것이 수화였다.

수화를 하면서는 다른 욕을 하거나 분기를 표현해 내기엔 너무도 아까운 시간들이었

다. 그들의 언어는 정말 하나님의 언어였다. 온몸을 떨면서 내는 몸의 언어였다.

소리를 가진 ,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얻어진 내 혀의 소리들.

난 말이 가진 파괴를 계속 맛보고 있었다. 마음의 분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말.. 소리를 가진 말.. 그 혀의 소리가 얼마나 쉽게 상처내고 상처받는데 사용

되었던가. 저 벙어리들이 가지지 못한것을 가진 내가 얼마나 쉽게 그것을 사용했던가.

분내고 그것을 표현해 내고, 경멸하고, 시기하는 말들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안경을 낀 벙어리 중학생 아이들은 여전히 공책에 말을 쓰고 보여주고 있었다.

소리가 아닌 글자도 그들에게 너무도 아름답고 소중한 매개였던 것이다.

벙어리들은 세상의 모든것을 아름다운 언어로, 온 몸을 사용해 만들어내는

사랑의 소리, 자기 표현의 소리를 내는 것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번 정차역은 명동, 명동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한 사람이 일어서자 짙은 남색의 전철 의자는 널찍하고 넉넉한 자리를

만들어 냈다.

난 계속 서서넉넉한 그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키가 작은 한 아주머니가

노련한 눈매로 자리를 탐색하다가 허둥지둥 뛰어온다.

그녀는 미안한듯 힐끔 바라보곤 구석으로 붙어 앉아 옷 매무새를만지작 거린다.

옆자리가 비어있는 것이 어색한지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그녀는 벙어리가 아니었다.





             靑潭.

나 마음의 연필

나 마음의 연필 




나 마음의 연필을 갖고 싶다.

저어기 골목 어귀를 돌아가는

릭샤왈라를 손짓하며 올라탔다.

마르고 긴 그의 뼈는 아무상관도 없는듯

세월을 먹어버린 늙은 피부를 가지고 있다.

오르막길, 온몸의 가는 핏줄들을 세우고

그의 아킬레스가 일어선다.

나는 꿈쩍도 않고 그냥 앉아있어야만 한다.

이제는 싸이클 릭샤를 타는데

마음과 눈이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의 아킬레스에 익숙해져버린 때문이라.

나 마음의 연필을 갖고 싶다.

그들 마음에 이 고통속에서도 살아야할

이유를 써내려가고 싶다.

아프지 않게...



                 靑潭.

검은 소를 보았다.

검은 소를 보았다. 



너 검은 소를 보았는가

먼지나는 King's way 를

아우토반처럼 달리고 싶을 때

큰 뿔과 침묵의 몸뚱이로

서 있는 검은 소

저렇게 큰 버스도 비켜가기를

수 없이 했지

왜 이리도 많은 검은 소들이

도로 위에 있을까

꿈벅 꿈벅 버티고 앉은

허벅지에 주인의 이름이 찍혀있다.

"카스트(CASTE)"




          靑潭.

사랑할 수 있는 우리

사랑할 수 있는 우리 



살아오며 스쳐간 사람들이

문득 생각납니다.

그중에는 서로 할퀴고 불신하며

상처를 냈던 이들도 있고

잘 알지 못하지만 이유없이 편안하고

기분 좋은 얼굴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는 보듬고 싶지만 마음이 굳어져 있어서

딱딱한 돌떡만 그들 품에 안겨주기 십상이었습니다.

내가 주었던 떡모양의 그 돌에 그네들의

이가 얼마나 많이 깨졌을까 생각해 보면

마음이 슬퍼집니다.

내가 가진 고집과 기준으로 만든 돌떡들을

이제는 거의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저는 뿔난 아이처럼 돌떡을 쥐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제게 그 돌떡 버리라고

호통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하셨듯 우리는 날마다 기다림을 연습합니다.

저는 내일도 돌떡을 양손에 쥐고 있을겁니다.

오늘보다는 작은...



                       靑潭. 

당신만이 드러나소서

당신만이 드러나소서 




주님, 한 마디 말을 할 때마다 준비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머뭇거림을 연습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큰 모습 뒤에 숨게하소서

침묵의 도를 날마다 배우게 하소서

그리하여 예, 아니오, 침묵의 옷을 입게 하소서

제 힘으로 겸손의 나무를 심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잠시 쉬는 사이 뿌리채 흔들 흔들

흩어내는 어린아이의 손장난 같은 마음.

주님, 성령으로 겸손의 나무를

심게 하소서.

그 뿌리가 깊고 깊어서 어떤 바람에도

흔들림 없는 겸손의 나무를 심기소서.

그곳에 당신의 그림자만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그림자만 움직이게 하소서.




                          靑潭. 

창문을 열어서

창문을 열어서 



하늘을 올려다 보면 참으로 많은 구름들이

쉼없이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유가 있는 구름보기를 해본지가

꽤 오래된듯 우리의 눈은 날마다

발끝으로 갑니다.

오른쪽 끝이 보였다가

금방 왼쪽이 나타나고

우리네 눈동자는 좌우로 똑딱 똑딱

쉴새가 없습니다.

지금쯤 창문을 열고

하늘 보기를 해봅시다.

까만 하늘에 박혀있는

별꽃이 보입니다.

양들이 새근 새근 숨쉬는

털구름들이 유유히 흘러갑니다.

오늘은 하늘 보기를 해봐요.



                      靑潭.

거울보기

                  거울보기 




                  가을 낙엽송 뒤엣곁에 가보면

                  그곳엔 겨울이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다.

                  겨울에게 왜이렇게 바쁘냐고 묻는다.

                  봄 친구가 늦지 않도록 힘겹게 힘겹게

                  줄다름 친다고 하소연을 한다.

                  계절은 성실함을 이야기한다.

                  잎이 모두 떨어진 너도밤나무 큰 둥치아래엔

                  오늘 하루를 준비하는 개미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오늘도 그분이 주신 계절을 살아내기 위해

                  거울보기를 한다.

                  내 영혼의 거울.





                             靑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