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0, 1999

인생은 아름다워


'깨지지 않는 영원한 세계.'


"안녕하세요 공주님, 어제 밤새도록 그대 꿈을 꾸었다오, 같이 극장엘 갔는데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어. 난 당신 생각 뿐이야.

항상 당신만 생각해."

"엄마!... 아빠가 손수레에 태워줬는데 운전을 잘 못해. 너무 웃겨서 배가 아파.

우리가 일등이래.. 오늘은 몇 점 땃지?"

"뛰어 ,  소리치는 나쁜 사람들이 쫓아 온다."

한국에 영화가 소개되기 한달 전부터 가슴을 설레이며 기다리던 영화, 타임지에

실린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제목의 영화는 흑백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나를

압도하던 쉰들러 리스트를 우선 생각하게 했다. 이탈리아인의 눈으로 보여지는

세계대전을 두고 왜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의아해 했다.

우선 타임지에 실려 곧 한국에 상륙한다는 이야기는 좋은 영화를 기대하는 마음을

더욱 설레이게 했다.

로베르트 베니니 분의 귀도 오라피체.  그는 치열하고 무서운 전쟁을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기 위해 챨리 체플린 Character로 화면에 나타난다.

그는 조금은 상기되어있고 늘 호기심에 가득찬 천진한 아이와도 같다.

전쟁을 상상하기엔 너무도 먼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제목처럼 영화는 고장난

차를 타고 왕의 행차에 끼어 우연과 유머를 가장하며 나타난다.

시작부터 복선을 아무런 필터없이 보여주는 영화는 자못 유치한 옛 영화의 전개를

상상케 했다. 그것은 감독의 여유였을까? 아니 그것은 챨리 체플린의 독재자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페러디를 통해 전쟁의 비극과 무서움을 완충하는 기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야만인, 침묵만큼 큰 저항은 없다" 라는 화면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연결되지

않은 대사를 읊는 삼촌 엘리시오 오라피체. 로베르트 감독은 그의 입을 통해 전쟁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관객에겐 전쟁은 아직 먼 기다림이라는 화면을 선사하고

있지만 전쟁은 이미 영화의 처음부터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다.

스크린 가득히 어설픈 숨은 그림처럼 숨겨진 복선은 오히려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는 양념이 되고 있었다.


침묵에 대한 구호는 수수께끼에 심취해있던 레씽 박사와의 이야기 속에서도

고개를 든다.

" 말을 하면 없어져 버리는 것,,,침묵..."

의학박사 레씽은 홀로코스트(holocaust)의 복선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는 교묘하게 귀도와 좋은 친구로 표현되고 있었고 수수께끼를 매개로 이미

영화 속에 전쟁을 첨가해 넣고 있었다. 후반부에 나오게 될 생체실험과 대학살의

장면을 의사 레씽을 세워 맛보게 함으로써 브레이크가 사라져 세울 수 없는

가속도와 충격을 보여주던 첫 장면의 자동차를 연상케 했다.

자동차는 완충작용, 자연스러운 전쟁으로 관객을 이끌기 위한 대 제목이었다.

로베르트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영화 전체를 볼 때 하나의 대칭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전쟁의 모든 장면은 이미 이중적 구조로 영화의 전반부에 모두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이중구조는 조수아가 생일 때 목욕을 하지 않겠다고

반항할 때도 새롭게 반복되고 있다. '목욕' 그것은 가스실의 새로운 언어였다.

아름다운 언어...

"또 갑자기 만나기를 기대해요" 라며 호기심 가득한 동그랗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니콜레타 브라치 분의 도라. 그녀는 전쟁을 일으킨 독일 나치와 그 희생이 된

유태인을 이어주는 매개로 등장한다. 그녀는 전쟁을 통과해낸 평화의 산물 아들

조수아 오라피체의 출발점이 된다.

그녀의 남자친구 로돌프는 '아돌프 히틀러'를 표상해 내고 있었고 도라는

로돌프로부터 유태인인 귀도 오라피체에게 도망가버린다. 전쟁에 대한 혐오를

도라를 통해 영화속에 삽입해낸 로베르트 감독의 아름다운 구상이 돋보인다.

초등학교에서 로마의 장학사 흉내를 내며 옷을 벗고 "우리 민족이 얼마나

우월한 민족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라며 독일 나치의 게르만족 우수성을

전쟁의 기반으로 삼은 의식화 운동을 모욕한다.

로베르트 감독은 계속해서 모든 등장 인물의 대사를 통해 독일 나치,

게르만 민족을 경멸한다. 그의 경멸의 말투는 가볍고 유머러스하며 전혀

아프지 않다. 특별히 배꼽을 드러내며 초등학생들 앞에서 장난을 치던 귀도는

전쟁 전체를 조감하는 감독의 눈과 희망의 대리인이었다.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속에서 아버지 귀도는 전쟁에 돌입하는 순간부터

아들 조수아의 세계에 절대 파괴될 수 없는 세계를 만들어 나가도록 도와준다.

그 세계는 주변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희망과 평화의 세계는 깨뜨릴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그것은 미래를 꿈꾸는 것이었고 외계의 모든 것을 재미난

게임으로 보게하는 페러다임 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와 충격, 가스실의

무서움을 목욕으로 표현해내던 홀로코스트(holocaust)의 의식.

그 모든 것을 귀도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달동안 계획을 짠거야. 이건 게임이야. 우린 전부 선수야.

일등하면 탱크, 진짜 탱크를 상품으로 받아, 게임이 끝나면 1000점을 딸 수 있고

엄마에게 갈 수 있어..."

아들의 눈과 마음의 세계에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추하게 파괴될 수 없음을

가르친다. 귀도는 유태인 가스실에서 살아나온 의사 빅터 프랭클이 이야기한

우리의 육체를 공격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의식과 그 의식 속의 평화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깨뜨릴 수 없다는 실제적인 이야기를 대변해 내고 있었다.

귀도와 조수아의 내면의 세계에 안전하고 강력한 경계를 가진 또다른 세계가

나타난 것이다. 감독은 조수아의 세계를 바라보던 페러다임을 영화 전체 속에서

반응하고 살아가던 귀도를 통해 이미 실천해 주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조수아에게

가르치게 한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인생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연신 이탈리아인 감독이 만들었지만 미국적인 냄새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가 영화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미국에게 어필하기 위한

감독의 약간의 타협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한 냄새는 삼촌의 말인 '로빈 훗'에서부터 풍겨나오기 시작했다.

'로빈 훗'은 미국을 대변하는 영웅이다. 삼촌의 말 '로빈 훗'은 전쟁이 끝나고

연합군의 큰 별을 달고 나온 탱크로 새롭게 선보였고 그 말(탱크)을 타고 있던

영어를 쓰던 미국인 병사가 그것을 확증해 주고 있었다.

로베르트 베니니 감독의 어설픔 이라는 채플린적, 미국적 페러디의 도입과

세계평화의 메신저로 등장하며 영화를 끝맺는 미국에 대한 표현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영화에 옥의 티로 작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본다면 로베르트 감독은 이미 미국에

타협한 듯 하지만 미국까지도 경멸하고 있었다.

미국인 병사는 아름다움과 평화의 깨지지 않는 세계를 표상하는

조수아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 초콜렛 먹을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 내내 웃음과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통털어 여전히 세계를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과

희망을 품어낼 수 있었다. 또한 삶을 대하게 될 나의 태도에 새로운 전환을

가져왔다고 기꺼이 자신할 수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보다는 그 속에서 어떤

힘도 절대 깨뜨릴 수 없는 희망과 평화의 세계를 구축해야만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맛보도록 해주었다. 그것은 우리 세대가 만들어 가야할 새로운

세계인 것이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준 로베르트 베니니 감독에게 감사를 표한다.






                     靑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