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24, 2002

아내에 대한 단상

 
아내는 말수가 적고 다른 사람의 분위기를 잘 살피는 사람이다.
이북에서 월남하여 자식들을 키워내신 외할머니의 강함이
아내의 어린시절을 묶고 있는 강한 끈이 된 그 시간들...

차 안에서 아내는 내 눈치를 잘 살피곤 했다. 결혼 전이라
설레이는 심장 소리가 천둥처럼 자신의 귀에 들리는 듯했던 연애시절.

아내는 조선시대 사대부집 아가씨처럼 얌전하기만 했다.

'이 여자는 분명 속에 시커먼 그을름이 많은 여자 일거다.'
'언젠가 터지면 무지 막지한 폭탄이 되고도 남을 여자다.'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 사람이 나랑 살면서 폭탄이 되지 않게 하려면 계속 마음을
토해내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월하지 않던 나눔의 시간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상대방의 기분을 잘 더듬어서 말하는 조심성을 가진
여자.

참으로 고운 그녀의 심성에는 여전히 많은 끈들이 감겨져 있었다.
그 부자유함을 풀어내고 자유함으로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는

뜨거운 커피를 천천히 식혀가며 마시는 여유가 필요했다.

신혼여행 일주일의 시간중 3일은 함께 마음 깊은 곳..저 깊은곳..
주님과 자신만이 알고 있던 심연을 퍼 올려 함께 마시는 시간을 갖었다.

그 쓴 물들...마라의 연못. 아내와 내 안에 있던 마라의 연못을 함께
터뜨리며 보낸 3일간의 시간...

아내와 나는 그 시간을 통해 평생을 함께 깊이 깊이 나눌 수 있는
자유함을 획득했다고 서로 자찬을 하곤 한다.

지금도 아내는 아내된 권세를 누리고 사용할 수 있는 여유를 연습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산다는 것은 날마다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나를 보여주는 아내... 그녀의 말은 아직도 조심스러운 조선시대지만
그녀를 묶고 있던 그 영혼의 끈은 사라진지 오래다.

자유함을 누리는 아내는 나의 거울..

나를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거울....


 
                                               빌리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