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October 24, 1998

부천 자유시장

부천 자유시장.

떡하니 현대판 타워링처럼 버티고 서있는 이-마트의 옆자락으로 토끼집같은

자유시장의 입구가 있다.

발 디딜틈 없는 그곳을 북적거리면서 걸어들어가니 사람 사는 생기가 어깨를

절로 신이나게 한다.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솔잎과 어우러진 송편가게. 아주머니들이 뜨거운듯 입을

훅훅 거리며 씹는 그것을 나도 한 개 집어 먹어본다.  

사람들이 사가지고 가는 송편보다 집어먹는 송편이 더 많다. 그래도 주인은

신이난듯 얼굴이 벙글 벙글한다.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 사이로 순대국밥 집이 있다. 오랜만에 시장에서 만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허허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이도 있고, 손자의

입에 뜨거운 국물을 수저로 먹여주는 할아버지도 보인다.

"떨이요!..." " 쌉니다..싸요...!"

추석 명절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찾은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장은 자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곳엔 훈기가 있고

사랑과 대화가 어우러지고 있었다.

수백개의 형광등의 조명을 받으며 바코드가 찍인 종이에 묶여있던 이-마트의

깔끔한 파가 생각이 났다. 그 파는 이곳 자유시장의 넉넉한 손길에 묶여 어둑한

조명 속에서도 흙 뿌리의 파릇파릇한 그것과는 무언가 달랐다.

무엇일까?

이-마트의 현대식 카트를 끌며 대형매장을 둘러다녀봐도 친한 친구와

함께, 아들과 함께, 형제들과 함께 따끈한 순대국밥을 먹으며 소담스런

삶을 이야기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서늘한 냉동 안개가 마음을 춥게 할 뿐이었다.

삶의 든든한 무엇인가를 가득히 채운 순대같이 길다란 천막속에서

숨쉬던 자유시장을 빠져나와 이-마트의 시커먼 지하주차장으로

경적을 쉴새없이 울려대는 차량의 행렬을 바라다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랑'이었다.

사람들의 옷깃에 벌써 겨울이 묻어나고 있다.

난로를 준비해야겠다.

훈훈한 마음의 벽난로를..





                       靑潭.

Thursday, September 24, 1998

The door

 
토요일.

교회에 가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하나님 차비 주세요. 기도한다.

몇 달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차비를 주셔서 교회에 넉넉하고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오늘도 느긋하게 이불 속에 누워 하나님 차비 주세요

기도했다. 마침 주머니에 5백원짜리 동전 하나가 있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와우. 교회갈 차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기도를

하자마자 바로 전화벨이 울린다.  '영기냐. 오늘 토요일 이니까

늦지 않게 동사무소 가서 등본 세 통을 떼 놓으렴' 어머님의 전화다.

등본을 떼고보니 주머니엔 동전 두개가 남았다.

아버지 어쩌죠...  주님은 토실 토실하게 살이 붙은 허벅지를 내려다 보시며

"오늘은 걸어가렴.." 하신다.

교회까지 산 하나를 넘어간다. 차분하고 평온하게 걸어가는 시간

참으로 오랜만에 산보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몇 개월간 전철이나

버스만 타고 다녔던것 같다. 간만에 맛보는 도보 묵상 시간이다.

쑥 고개마루에 문들이 많이 서 있다. 멋있는 문양이 박혀있는 문(door) 만드는

공장을 빙 둘러싸고 문들이 세워져 있다. 그 많은 문들 중 하나를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동했지만 그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냥 보기 좋게 전시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공장으로 들어가는 진짜 문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

는다. 연달아 붙어있는 수 개의 문들 중에 어느것이 입구로 들어가는 진짜

문일까?

난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문(The door)을 알고 있다. 지금 걸어가며 나를

훑고 지나가는 모든 순간이 나에겐 문 인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

느니라 말씀하신 예수님이 바로 나의 문(The door) 인 것이다.

세상의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답게 장식한 대문 공장의 전시된 문과 같은 것

을 두드리고 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이 문들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벽

이 있을것이다. 모두가 가짜 문인 것이다. 그곳엔 오직 하나의 진짜 문만 있을

뿐이다.

난 고민하지 않는다 언제나 손을 내밀어 열 진짜 문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곳

엔 예수님과 함께 산책할 동산이 있다. 난 자주 그 동산에서 꽃을 심고

달고 맛있는 포도를 따 먹곤 한다.

쑥 고개를 넘어서서 한 숨을 돌리고 나니 배가 고파온다. 벌써 점심시간인가?

주머니 속에서 동전 두개가 잡혀온다.

따르르릉 여보세요,  ' 어? 어디냐? 밥 먹었니?'

교회 근처에서 태권도 도장을 하는 형이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점심이나 함께 먹자고 권한다.

오늘 주님은 넉넉히 산보할 시간도 주시고 점심도 주셨다.

난 오늘도 그 문(The door)을 기꺼이 열어주신 주님의 손을 잡아 본다.




                            靑潭.

Friday, July 24, 1998

그림 속의 치유자

 
시원한 매미 소리가 여름 날을 녹히고 있는 어느날 한 대학병원에

갔었다. 대학병원 중앙 현관을 지나자 정면으로 커다란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 속에는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와 그를 진찰하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그리고 간호사가 등장하고 있었다. 내 눈을

놀라게 했던 것은 그 세 사람을 따뜻한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며

함께 서 있는 예수의 모습이었다. 병원에 이런 그림이 있구나 하며 신기해

했다.

과학적 의술을 가장 신뢰하는 대학병원 중앙 홀에 환자와 의사 예수님이 함께

등장하는 그림을 본것은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학병원이

기독교 대학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그림은 중요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5월, 대학입시에 여념이 없던 그 때 보충수업을 땡땡이 치고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시외로 나갔었다. 답답한 교실에 앉아 칠판과 선생님

얼굴만 바라보다 녹음이 우거져 가는 5월의 오후에 시원한 바람을 얼굴로

맞으며 타는 자건거는 친구와 내 마음을 더욱더 신나게 했었다.

그러던중 과천 고개를 넘어 굉장한 속도로 내달리다 좌회전 하던 차량과

정면 충돌을 하고 말았었다. 뒤 따라 오던 친구의 말에 의하면 공중으로

수 미터를 붕 떳다가 땅에 떨어졌고 곧바로 영동세브란스 병원으로 긴급히

후송되어 씨티(CT) 촬영과 엑스레이(X-RAY)을 수 십장 찍었다고 한다.


충격에 의한 뇌진탕으로 좌뇌와 우뇌 간격이 벌어진 이상부흥상태 진단을

받았었다. 대학입시를 일년 앞둔 그 때 멍한 상태로 하루 하루를 통원치료하며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찢어진 부위를 꿰맨 후 매일 독한 주사를 두번씩 맞았었다.

그 때 친구의 권유로 신앙을 갖게 되었고 사고후 3년째 될무렵

더이상의 후유증없이 완케되었다.


'병이나 상처를 다스려서 낫게한다'는 치료(治療)와 '치료로 병이 나음' 이라는

의미의 치유(治癒) 라는 말이 있다.

다시말해 우리의 몸이 찢어지고 아플 때 의사가 꿰매고 소독하고 약을 주사하

여 상처나고 아픈 곳을 봉합하는 치료과정을 큐어(Cure)라고 한다.

그 이후 의사의 치료에 대한 인체 내부의 여러가지 작용과 우리의

희망적인 의지가 함께 동원되 나아가는 과정을 치유 즉, 힐링(healing) 이라고 말한다.

치유와 치료가 함께 있지 않으면 우리는 병으로부터 나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교통사고후 병원과 의사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과정인 치료(Cure)를 충분히 받았다.

동시에 나을 수 있다는 희망적 의지와 내 몸의 치료에 대한 반응은 치유과정

(healing)을 오랜동안 견딜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의사와 병원이 최선을 다해 해낼 수 있는 치료 이후엔 우리 몸을 창조해 놓으

신 그분의 전적인 힘인 치유(healing)가 있어야만 온전히 나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대학병원의 의사들은 이런 원리를 겸손히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깊고 뜨거운 사랑과 의지 그리고 평화와 진리가 함께 버무려진 모습으로

대학병원 중앙현관 홀에 있던 그 그림속의 치유(healing)는 이미 내 마음의 현

관 안에 그분과 함께 걸려 있었다.

Sunday, May 24, 1998

I trust you

하나님 저로 하여금 쉬운 부정보다는 힘든 정의를 선택하

게 하옵시고, 절반의 진실에 만족하지 않고 전부의 진실을

찾게 하옵소서. 저에게 용기를 주사 고상하고 값진 모든 것

에 충성하게 하옵시고, 악과 불의와의 타협을 거절하며, 정

의와 진리가 위험에 빠졌을 때에 비겁하지 않게 하옵소서.


제 방 한쪽벽에 굵은 글씨로 쓰여진 자기 선언문 이랍니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나옵니다.

레오는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허리까지 차오른 객실에서 케이트는 사랑하는 레오를

구해내기 위해 날카롭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도끼를 구해

손에 들고 있습니다.

귀족처럼 자라 망치질 한번 해보지 않았던 케이트는 자기가 실수 할까 두려워 머뭇거립니다.

이 때 레오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I trust you!"


케이트는 단번에 수갑을 끊어냅니다.

우리의 삶에는 우리를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하고 두렵게 만들기도 하는 수많은 수갑이 있
습니다.

대부분은 마음과 환경의 수갑입니다.

또 자신의 무력함과 열등감으로 어떤 일을 결단하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 때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I trust you!"


우리 함께 자기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의 동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봐요.


      "I trust you!"


우리를 묶어두었던 수갑은 단번에 끊어질 것입니다.




               靑潭.

Friday, April 24, 1998

어머님 다라 비빔밥

김치거리가 비싸서 어머님의 눈초리는 요것 조것 만지작 거리며 들춰도 보

고 흔들어도 보시곤 그래도 자식놈처럼 묵직하고 단내가 물씬 풍긴 배추 몇

포기를 사들고 오시더니만 큰 갈색 다라(대야)에 그것을 푹 절여놓고 빨래

를 하신다. 손빨래가 모두 끝난후에 세탁기에 넣어 한번더 돌리시는 어머님

정성이 보통이 아니다. 하긴 다 큰 사내자식들 속옷은 아무리 강력한 세탁

기라도 그 빤스에 누렇게 뜬 자욱은(?) 빼기 힘들테니 말이다.

큰 다라에 수북히 쌓여서 배불뚜기가 되어있던 배추는 숨을 죽이면 푹 가라

않아서 얌전해 지고 어머님의 배추 다루는 솜씨는 본격적인 게임으로 들어

간다. 소금기를 빼기 위해 빨래하듯 물을 그득하게 붓고 씻어내기를 여러번

그것을 또 꾸욱 짜서 물기를 빼내면 김치가 될 자격이 되는 배추포기가 된다.

케로틴이 많이 많이 들어있다는 당근(32 킬로칼로리)을 채 썰어놓고 무우

(18 Kcal), 양파(35 Kcal), 파 등을 넣어서는 그 위에 고추가루를 듬뿍

넣어 버무린다. 가장 중요한것은 새우젓인데 예전엔 비싸서 멸치젓을 더 애

용하곤 했지만 그래도 만불 소득시대를 구가하고파서 새우젓을 2통 넣고는

손이 빨간 색으로 물들 때까지 잘 비비고 버무린다. 마지막으로 조미료를

넣어 맛을 내는데 가장 핵심적인 비법으로 조미료를 넣지 않으면 않을수록

먹는 사람 건강에도 좋고 어머님의 손으로 비비면 비빌수록(절대 고무장갑

을 끼고 버무려서는 안된다) 손맛이 어우러져 그 맛이 천상의 신선이 먹는

김치에 비견된다. 이렇게 버무리고 비벼서 하얀 허벅지를 드러내고 기절해

있는 섹시한 배추포기 사이 사이에 넣으면 된다.

모두 되었다 싶으면 곧바로 뜨거운 바람에 쐬이지 않고 산달에 가까워진 며

느리 대하듯 김치통에 넣어서는 하루정도 그늘진 곳에 놓아두신다.

마지막 절차로서 모든일에는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용두사미는 훠이

훠이 하시면서 어머님 손맛이 잔뜩 베어있는 다라에 남은 빨간 양념 위에

김이 모락 모락 나는 하얀 쌀밥을 넣고는 그 위에 참기름을 쭈욱 떨어 뜨린

다. 그리고 아직 씻지 않은 어머님의 양념이 가득히 묻은 손으로 정말 보기

만 해도 침이 꾸울꺽 넘어가는 비빔밤을 버무려 주시는 것이다. 모두 비빈

후에 막 만들어져 김치통에 들어간 그 배추 속내를 몇개 따내어 쭈욱 쭈욱

찢어서는 비빔밥 위에 얹어 주신다. 그 커다란 다라(대야) 에 우리 삼형제

그리고 어머님 모두 둘러 앉아 먹는 점심은 가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요즘은 젊은것들이 모두 인스턴트 김치를 사다먹는다 어쩐다 하던데 여러분

도 어머님 다라에 빚어져 어우러진 그 다라 비빔밥을 좀 먹어보시구려....


배추꽃날에...



                              靑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