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September 22, 2010

관계의 즐거움

하나님과 나의 관계, 나 자신과 세상과의 관계,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 대적과의 관계.

이 모든 관계(Relationship)가 내 삶의 바탕을 이룬다는 것을 예수제자훈련학교(DTS, Discipleship Training School in YWAM)를 통해 배우고 그것의 실제를 체험하고 통과해내는 시간을 지금까지 갖고 있다.

 인도 뭄바이(Mumbai India)에서 선교사로 섬겼던 8년(2000 - 2008)의 시간은 그 관계의 역동성과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배우고 적용하는 실제적인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관계의 즐거움이 어떤것인지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꼭 표현해야 한다면 바로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통해 느껴지는 즐거움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 선교지에서 섬기다가 트리니티 선교학 박사과정에 오신 선교사님과 경건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친구 KB와 더불어 점심을 함께 하고 차를 마시며 관계의 즐거움의 한자락을 서로 나누고 왔다. 하나님과 나의 깊은 관계를 통해 얻어지는 가장 큰 유익이라면 내 영을 깨우고 내 속사람이 날카롭고 강건하게 세상 기준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짧은 교제의 시간이었지만 그 관계 안에서 내 페러다임(Paradigm)의 딱딱하고 무딘 영역들이 부드럽게 그리고 날카롭게 자극을 받는 것을 실감했다. 바로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나님과 나의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즐거움과 기쁨이 나와 세상과의 관계 즉,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투영(Projection) 되고 그곳에서 즐거움이 파생되어 나타난다면 나와 대적과의 관계에 필요한 모든 자원들을 무상으로 얻는 결과를 보게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임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늘 주의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와 대적과의 관계이다. 대적(Satan,Enemy, the power of darkness)은 나와 우리가 그러한 힘을 갖게 되는 것에 늘 두려움을 가지며 그 두려움은 그의 행동을 유발하는 좋은 재료가 된다. 그렇다면 나와 우리는 어떻게 주의 하여야 할까? 바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함(The fear of the Lord)으로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하며 견고하고 민감하게 서 있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과 나의 관계, 나 자신과 세상과의 관계까지는 올바른 과정(Right track)을 밟아가지만 나와 대적의 관계에서 방해를 받고 멈추며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대적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바로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인데 그 최초의 순서로 나와 세상, 타인과의 관계를 깨트리는 것이다. 그 관계가 깨어지면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균열을 내는데 아주 쉽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적의 이러한 최초 전략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는가? 그것은 바로 그 전략에 눈과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전력투구하여 오직 하나님의 얼굴에 눈과 마음을 고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매우 쉽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오직 믿음과 훈련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님께 달려간다면(Turning back to right track) 우리는 관계의 즐거움을 날마다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관계의 즐거움의 원천은 오직 하나님 이시며 그 통로로 나와 세상, 타인과의 관계를 사용하신다. 우리가 그 즐거움을 날마다 맛보고 즐거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영광돌리는 것이 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라는 말씀이 바로 하나님과 나의 관계의 즐거움에 대한 징표이며 우리 삶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관계의 즐거움을 누리는 날마다의 삶이 되자.

Monday, September 13, 2010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매우 물리적으로, 실제적으로 만난 그 때를 생각 할 때마다 묘한 감격이 몰려오는 것은 아마도 세상 어떤 것으로도 표현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특별함 일것이다. 그 특별함을 마음에 품고 살아오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시간들 위에 세워진 하나의 견고한 집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이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되거나 대체되어질 수 없는 오직 개인과 하나님의 독점적인 영역이라고 믿는다. 이 영역을 넓히고 깊이가 더하게 하며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과 강건함으로 만들어가는 원동력 또한 다른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독점적인 시간 스스로를 통해서 오는 것이다.
믿음의 행보를 해오는 동안 그 관계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수없이 반복했다. 연약함 때문이리라. 기도, 말씀, 그리고 깊은 묵상의 시간을 통해 만나는 하나님은 언제나 그냥 편안하게 늘 그곳에 계신분이시다. 나의 분주함으로 인해 늘 그곳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 만큼 큰 손실이 어디에 있는가?

최근 가족 여행을 하며 운전하는 시간 내내 하나님 아버지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음성은 내 영 안에 울림이 되어서 나를 행동하게 만드는 원천이 되고 있다. 기도의 문으로 들어간다. 말씀의 숲을 마셔야 한다. 그리고 깊은 호흡을 통해 음미하고 소화해야 한다.

경건생활이 바닥으로 내려갈 때 우리의 영은 목마름을 호소한다. 그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한 나의 선택들은 어째서 가장 기본적인 말씀과 기도 그리고 깊은 묵상이 아닌 책읽기, 사람 만나기, 드라마 보기, 그리고 사역하기 인가. 그 모든 것들이 내 겉사람의 속성에서 나오는 것들이 아닌가 싶다. 겉사람을 채우려는 속성들은 늘 속사람을 채우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는 선입견 때문일것이다.

이번 기도는 나 자신도 모르게 시작이 되었다. 아마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명백한 음성 때문이리라. 하나님의 음성이 있을 때 나는 그 거대한 하나님의 손길에 쓸려가는 자연스러움을 맛보곤 한다.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이리라. 이 때에 내가 할 일은 순종하여 나를 내어 맡기는 것 뿐이다. 내가 앞설 수도 뒤로 처질 수도 없다. 그냥 거대한 파도가 몰려올 때 파도의 흐름에 나를 맡겨 함께 가듯이 주님께 나를 맡기고 순종하면 된다. 주님께서 보여주실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 경건의 삶의 메마르고 낮아진것을 돌보아 주셔서 저를 세우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앞에 갑니다. 그리고 저를 내어 맡깁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경건의 소리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