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21, 2007

새 대통령을 위한 기도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에 합당한 새 대통령을 선택해 주셨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사용되던 비난과 정죄 그리고 소문들을 일소하며 하늘에서 선택한 새 시대에 걸맞는 대통령을 주님께서 대한민국에 주셨다.

그가 선거운동 내내 자신을 향한 여러가지 의혹과 소문에도 결코 다른 사람들을 갖은 방법으로 공격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한 것에 대해 참으로 감사하기만 하다.

내가 따르는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던 것을 생각하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여러가지 약점과 연약함을 가진 분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을 따른것을 보면서 참으로 감사하기만 하다.

이제 서로 헐뜯고 깎아 내리는 질이 낮은 정치풍토에서 정말 격이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가 되기를 기도해야 할 때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지금까지 천편일률적으로 행해져왔던 새 당선자가 이전 대통령을 깔라뭉개고 바보를 만드는 일들을 중지하고 이전 대통령을 새우고, 이전 정책들을 더욱더 치밀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을 했다.

나는 그가 소망교회 장로로서 그리고 크리스찬으로서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해주시고 책임을 져 주신 대통령으로서 그의 입술에서 나온 말들을 최선을 다해 지켜주길 기도한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닮아가기를 소원하는 사람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을 세계를 변화시키고 섬기며 주도해 가는 나라로 사용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그 일을 겸손하고 당당하게 주도해 갈 수 있도록, 순종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


인도 대칸고원에서 ...김영기 선교사

Wednesday, December 5, 2007

대한민국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하며

대한민국은 오랜 세월동안 역사적인 고난을 당해온 민족인 탓에 깊은 곳에 뜨거운 무엇인가가 심겨져있는 민족이다.

그 민족 속에는 다양한 기질과 성품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사람의 영혼을 주의깊게 들여다 보고 그 영혼의 움직임과 반응들을 오랜동안 관찰하며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왔다.

언젠가 일을 정말 잘 하는 매우 종교적인 사람을 만났다가 그 사람의 영혼이 작동하는 것을 매우 적나라하게 보게 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많은 이들에게 인정도 받고 있었고 겉으로 보기에 참으로 많은 열매들을 맺어낸 귀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하곤 하던 그 사람의 영혼속에는 깊은 열등감과 거짓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되었다.

그것이 적나라하게 들어났을 때 그가 취한 태도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폭력적이고 거짓과 중상모략의 행동이었다.

매우 편집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그가 뱉어낸 말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내가 돈을 주지 않아도 사람들이 너에 대해서 좋지 않은 소문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할 거다.'

과연 그의 말은 효과를 발휘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동조해 같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보면서 그를 기억하게 되었다.

거짓말 하는 사람과 그를 통해 조종되고 이익을 얻기 원하는 언론과 검찰의 모습. 그리고 무엇이 정말 진실이고 거짓말 인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의 연출들.

이런 복잡한 상황들을 대한민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며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내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법뿐임을 인식하게 된다.

대통령 선거일이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새벽마다 나를 깨우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이제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책임져 갈 대통령이 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만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이유여야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다. 그 정하심은 특별한 목적을 가진 하나님 만이 아시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선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는 계속 깨어서 기도 할 수 밖에 없다.

모든것을 통해 선을 이루실 하나님께 간구한다.

대한민국을 돌봐주십시오 주님.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정직하고 정의로우며 사람과 국가 그리고 세계를 사랑하는 큰 마음을 가진 사람을 대통령으로 세워 주십시오.

주님 불의를 미워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세워 주십시오.

주님.


Wednesday, November 21, 2007

Jinwoo

오늘 아내 최보연 선교사와 아들 진우를 바라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아들과 딸이 다른것 같아...." "딸이 좋다 아들이 좋다 뭐 그런것 보다는 둘다 특별한 것을 가지고 태어나 살도록 하나님께서 하신것 같아..." 맞다. 딸 진주가 진우만 할 때 진주를 다루던 나의 모습과 아들 진우를 다루는 모습이 다름을 발견하다. 아마 두 아이가 가지고 있는 남성과 여성으로서의 다른점 때문이리라...

진우와 이웃집 인도 친구들

태어나자마자 폐혈증, 급성 황달, 뇌수막염 등으로 엄마가 준 젖을 모두 토해내서 다른 아이들이 매일 매일 몇 센티씩 부쩍 부쩍 커가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말라가고 작어만 보였던 진우. 아빠가 인도로 돌아가있는 동안 태어난지 일주일만에 병원에 다시 입원해 매일 발바닥에서 피을 뽑아야만 했던 진우. 15센티가 넘는 대바늘을 척추에 꼿아 척수를 추출해 검사해야했던 진우...


인도인 아저씨들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진우


한 손에 들어오던 진우를 하나님께 맡겨드린지 벌써 2년이 넘었다. 한국 나이로 3살이 된 진우는 요즘 부쩍 말이 늘었다. 자기가 알고있던 단어 몇개를 반복하다가 문장을 어설프게 만들어간다. '나두, 나두' '쉬 쉬'  '내놔,,'  '나두 줘..' 나두 물'... 정말 힘도 쎄지고 누나랑 다툼도 한다. 둘째라서 힘센 누나에게 날마다 당해서 그런지 소유욕도 상당히 있다.


엄마를 닮은 깊고 검은 눈동자를 가진 진우. 사랑스런 아내 덕분인지 아내를 닮은 진우가 더욱더 이쁘고 자랑스럽기만 하다. 아들과 딸을 주셔서 두 아이를 성심 성의껏 청지기처럼 키우고 싶다. 주님을 영광되게하는 주님의 군사가 될 진주...진우...


하나님 감사합니다.

Sunday, October 7, 2007

Back to India

얼마전 소식지를 만들 목적으로 가족 사진을 찍었다. 아들 진우가 유난히 수선을 떨어서 모두 시선이 엉뚱한 곳에 가 있는 이상 야릇한 사진이 되었다. 가족 모두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과 나 자신의 내면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모든 것이 주님의 축복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 머문 두달 동안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특별히 위로해 주심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많은 곳에서 강의를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위로해 주셨고 두달 내내 여러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며 다시한번 말씀사역자로 부르신 부르심을 새롭게 각인시키는 시간이었다. 설교를 부탁한 몇몇 교회는 일정이 인도로 돌아오는 전 날까지 잡혀있어서 부득이하게 거절을 할 수 밖에 없어서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었다. 다음에 또 한국에 방문할 기회가 온다면 넉넉히 시간을 갖을 준비를 하고 방문할 생각이다.



다시한번 주님께 감사드리고 함께 기도해주고 격려해주었던 목사님들과 교회들 그리고 여러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집사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이제 10월 12일 금요일에 우리가 7년 동안 살아온 인도의 집으로 돌아간다. 한국에 머물던 시간 내내 그립던 집으로 간다.

후원하기

1.기도후원(Intercession)
- Prayer 란의 최근 기도 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힘이 있습니다.


2. 재정후원(Finalcial support)

- 물질로, 재정으로 후원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kim골벵이youngki.org 로 이메일을 주시면 은행 계좌번호등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기 목사 드림.

Monday, August 20, 2007

Youth Meeting

한국에 오기 몇 달 전에 한국 킹스키즈의 한 간사님으로부터 강의 부탁을 받았었다. 내가 청소년들에게 어떤것을 나눌만한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두 번의 강의를 하기로 약속을 했다.한국에 방문하자 마자 천안 호서대에서 열린 전국 Youth Camp 에 찾아갔다.





요즘 중고등 학생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칠 때 거의 관심이 없이 자기 일에 몰두한다고 들어왔고 또 영화나 매체등에 보여지는 학생들의 모습 또한 그러했는데 실제 학생들을 보니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의 눈 망울 하나 하나를 들여다 볼 수 있을 만큼 중 고등학교 학생들의 열기와 눈빛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유쾌한 선교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해야 하는 나로서는 한번도 본적도 만난적도 없는 10대의 어린 후배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지 기도하게 만들었다.







10대 중 고등학교 청소년들의 강의 내내 또릿 또릿한 눈망을을 보면서 오히려 선교사인 나 스스로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맛보는 시간이었다. 강의를 마칠 무렵 함께 기도할 때 내내 큰 소리로 아멘 아멘을 외치던 자매 학생과 남학생들이 눈에 선하다.

두번째 주 강의에서도 강의에 집중하고 강의가 끝난 후 자신을 선교사로 파송한 것에 대해 다시와서 정말 제가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것인가요? 하며 물어보는 여학생을 보며 주님께서 귀한 청소년들을 꿈나무로 세우시고 사용 하실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국에 희망이 있음을 본다.

추신 : 지난 7월 31일부터 9월 14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강의와 설교 그리고 인도에서 체류할 새 비자 등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됩니다.

저희 연락처는               010-2966-0012         입니다.

Thursday, July 19, 2007

Izabel it's Debbie

Dear Izabel

It’s hard to sit and write e-mail without interruption...
But it’s also GREAT to write you, Izabel!!
Time really flies away as always and I feel very awkward about the fact that I will visit Korea soon.
And you’re going to come back as soon as we leave.
I’ll miss you even more than before!

Since 3 weeks back I started to exercise in the swimming pool everyday.
Youngki taught me how to swim this Summer and I liked it very much.
Still I am not a great swimmer but I do enjoy spending time in the water.
Actually the water was incredibly dirty during Summer time due to coaching classes for so many children.
Sometimes it was really yellowish or greenish. It was even smelly.
I couldn’t even see what was before me in the water.
And I got some skin allergy.
But I can’t stop swimming because it’s helping me so much now.
I wake up 6:30 to jump in the water and come back home 7:10 to send Jinju to school.





Jinju goes to Mahima again.
Herin and another Korean family’s kids also go to the school.
We met Sook ja and spent time talking about Jinju and the problems.
She told teachers about it, I think.
So one of teachers always come in the bus in the morning and afternoon as well.
I’m very happy that Sook ja is helping us with generosity.
Last week Jinju told me except the driver no adult was in the car on the way back home.
Since she is the last student to get off I was concerned and youngki told Sook ja about it.
And she told us that whenever things like this happen we can tell her.
She said she already told her staffs to go with kids in the car but they didn’t obey her.




As you told me before, I think we can still take more time to consider home schooling.

Youngki and I are still positive about that.

Jinwoo is growing to be a strong boy.
He is very friendly and healthy.
And he beats his sister sometimes.
Raising a boy is a very different experience, I think.
Youngki enjoys our little boy so much.
He cried when Jinju was going to school first week, calling ‘Nuna’,which means ‘older sister’ in Korean.
When Jinju comes back home he only sticks to her eating, playing and fighting together.
And he still tries to knock on your door when we go out.
Jinju also misses Karina and Dani saying we need to visit Brazil soon.



I wish you could be here with me, Izabel.

Life seems complicated sometimes. But next day I feel it’s very simple.
Youngki and I talk often about our future.
We both feel that we are getting old, which means we have to be much more careful in what we do or what we say.
And I also feel that we need to focus on Jesus more than before. He is our only hope and desire.



One Korean team has arrived this morning.

They brought me home made Kimchi!
It can’t be better than this!
After the team leaves we’ll be getting ready for the trip to Korea.





Is life simple or complicated, Izabel?

Joshua would say it’s simple and I want to agree with him this time.
Please take care Izabel!
I’ll write you again.
Good night!

With love Debbie in Bombay

Friday, June 29, 2007

Monsoon in Mumbai

인도의 몬순은 건기 동안 뜨거워진 대지를 4개월정도 내리 쏟아내는 비로 충만하게 한다. 인도의 힌두들이 씨바에게 다산과 풍년을 기원할 때 몬순은 시작된다. 뜨거운 태양과 건조한 모래바람으로부터 해갈을 시켜주는 몬순의 비 속에서 남녀 노소 비를 맞으러 나가는 풍경을 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학에서 패션을 공부하는 여학생들이 몽땅 나와서 비를 맞으며 춤을 추곤 한다. 자연의 순환을 만들어 순응케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는 때임에 틀림이 없다.

초기몬순(premonsoon)이 소나기처럼 갑작스럽게 내리고 떠나간다면 몇주후에 시작되는 본격적인 몬순은 가히 엄청난 양의 빗줄기를 쏟아낸다. 불과 몇 주 내에 건기 동안 내려간 댐의 수위를 가득채워낸다.

2년전에는 뭄바이에 이상기온에 의한 몬순이 찾아와 댐이 넘치고 엄청난 홍수가 난 적이 있다. 그 홍수가 수 많은 차량이 물에 잠기고 사람들이 사망했다. 또 식수가 나오지 않아 빗물을 받아서 빨래와 밥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었다. 또 생수도 동이 나서 평소 가격의 10배로 팔리는 현상도 있었다.


몬순전 가족과 함께 집 앞에서



올 해 우리 가족 모두 몬순으로 온 집안에 축축한것에 이미 오랜동안 적응이 되어서 인지 특별한 어려움이 없이 지나갈 줄 알았다.  계절이 바뀌고  급격한 온도 변화 때문인지 나 자신을 비롯 온 가족이 감기에 걸려있다.

약을 먹고 누워있었지만 여간 독한 감기가 아닌것 같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걸린다는 한국 속담을 무색케 하는 것이 인도의 감기가 아닌가 싶다.

한번 걸리면 한국약은 전혀 소용이 없다. 그저 인도 의사를 만나서 약을 지어먹고 푹 쉬는 것이 상책이다.

오늘도 하늘이 찢어진듯이 엄지손가락보다 굵은 비가 내린다. 6월부터 10월 초까지 내릴 몬순 기간을

잘 살아내야겠다.

Saturday, May 12, 2007

Indian econo express

7년동안 인도에 살아오면서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인도가 변화하고 있는지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5년전만 해도 내가 살고 있던 뉴뭄바이(Navi Mumbai)의 부동산 가격은 속된 표현으로 거의 똥값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빈 건물들은 수요가 없었고 설사 수요가 있어도 그리 높은 가격에 거래되지 않았었다. 어찌된 일인지 은행 대출이자가 낮아지고 돈이 전혀 없는 사람도 15년, 20년 상환 대출을 받아 집을 우선 한채 사서 그것을 세를 주며 그 대출금을 갚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한 인도인은 손에 가진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집을 4채 가지고 있다. 4채 모두 세를 주고 세를 받아서 대출금을 매달 갚아가고 있다. 그의 목적은 대출금을 모두 갚아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1년후 거의 4배에 가까운 가격으로 되팔기 위해서이다. 20렉(약 5천 4백만원)에 구입한 집을 1년후 80렉(약 2억 1천만원)에 팔려고 내 놓은 상태이다.

이러한 인도의 경제 현실을 조선일보에서 구체적인 통계자료와 함께 보고한 것을 아래에 첨부한다.

출처 : chosun.com 기사/ 질주하는 인도 경제 경기 과열 ‘경고음’ /이인열 기자
인도는 4년째 이어지는 고속성장의 여파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등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임대료를 기록하고 있는 인도 뭄바이의 고층 건물들. Getty Image 멀티비츠


“인도경기가 과열이다, 아니다”는 논란이 뜨겁다. 아직도 몇 년간은 8% 이상의 고속성장이 거뜬하다는 쪽과 4년째 이어지는 8% 이상의 고속성장의 여파로 벌써 물가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등 과열 조짐이 보여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란 쪽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인도 펀드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인도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논란 속에서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니다.

인도 전체가 그렇듯 인도 경제도 극단의 패러독스(모순)가 존재한다. 세계 최고의 임대료를 자랑하는 뉴델리와 뭄바이의 사무실이 있는가 하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인구가 8억 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나오는 나라다. 이 같은 극단의 패러독스는 현상을 정확히 판단하기 힘들게 만들고, 경기 과열 논란을 더욱 달구는 측면이 강하다. 과연 그 실체는 무엇일까.

경기과열이란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만큼 제품 공급이 안 되다 보니, 물가 상승->소비 위축->저축 감소->금리 인상->소비와 투자 위축의 순환구조를 거치며 경기가 냉각된다는 논리다.

■ 경기 과열의 조짐들:
1년에 두 배 세 배 뛰는 부동산, 가파른 물가상승률, 은행 대출 30% 증가


인도 뉴델리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승용차로 20분쯤 달리면 시원하게 뻗은 대로 양편으로 1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의 물결을 만나게 된다. 맥도날드 체인점, 인도 최대 IT 사설학원인 NIIT, 삼성전자, LG전자, 소니 등 가전매장의 간판들까지…. 여기에 지하철역까지 갖춰 제법 화려함을 뽐낸다.

드와르카(Dwarka). 인도 정부가 부르짓는 ‘뉴 인디아’의 핵심인 중산층을 겨냥, 델리 내에 100만 명 수용을 목표로 건설 중인 신흥 아파트촌(村)이다. 아직 공사 중인 현장에서 날리는 먼지가 다소 거슬렸지만, 도로를 질주하는 현대 엑센트, 혼다 시티 등의 승용차들이 이 곳이 인도 중산층의 밀집지역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단번에 눈치채게 한다.

45A지구의 부동산 업체 제이케이(Jaykay)를 찾았다. 비제이 수드(Sood) 사장은 말했다. “아이고, 요즘은 팔려고 내놓는 집이 드뭅니다. 2년 전에 200만 루피(4200만원) 하던 35평짜리 아파트가 요즘은 600만 루피(1억2600만원)가 넘죠. 그래도 값이 더 오를 것으로 생각해 팔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월세만 내놓습니다.”

2년 만에 300% 인상. 가히 살인적인 상승률이다. 살 만한 집을! 원하는 중산층은 늘고 있지만, 이들의 수요를 채워줄 아파트의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때문이다.

델리 내 또 다른 아파트촌인 로히니(Rohini). 이 곳은 같은 기간 35평짜리 아파트가 400만 루피에서 900만루피로 급등했다. 인도 통신업체인 에어텔에 다니는 우샬(33)은 “살고 있던 곳에서 이사를 가려고 보니 월세가 50%나 올라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뉴델리만 그런 게 아니다. 뭄바이, 벵갈루루, 첸나이 등 웬만한 대도시는 다 비슷한 사정이다.
물가도 심상찮다. 인도경제 총사령탑인 기획위원회의 알루왈리아(Alluwallia) 부위원장도 “8%대의 성장률이 물가에 압력을 가하면서 경기가 과열되는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할 정도다.

뉴델리의 고급시장 INA마켓에선 생필품 중 하나인 양파가격이 ㎏당 100루피(2200원)에서 한때 250루피까지 치솟았다. 상인 구아라브(Guarav)는 “이 곳은 중산층이 찾는 곳이라 그나마 괜찮지만 서민 지역의 재래시장은 가격이 20~30%만 올라도 불평이 쏟아진다”고 말했다. 인도엔 ‘양파 선거(onion election)’란 말이 있다. 한국에서 배추 값이 오르면 서민들이 아우성을 치듯, 인도에선 ! 양파 값이 오르면 서민들이 난리다. 1980년 선거, 1998년 선거 때 정권 교체의 핫(hot) 이슈가 바로 양파 값이었을 정도다. 최근 실시된 우트라 푸라데시(UP)주(州) 지방의회 선거를 위해 정부가 양파 값 잡기에 난리를 칠 정도다. 지난 2월 2년 만의 최고치인 6.75%까지 치솟았던 물가는 3월에도 6.3%대로 상승하는 등 고삐가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최근 물가 상승세는 통상 인도 정부의 목표 범위인 5.0~5.5%를 훨씬 벗어났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인도 중앙정부도 물가 상승의 심각성을 알고, 중앙은행(RBI)은 지난 3년간 6차례에 걸쳐 총 1.5%포인트의 단기 대출금리를 올렸고, 시중은행의 현금보유율도 작년 12월 이후에 두 차례나 올렸다. 그래도 쉽게 과열 조짐이 잡히지 않는다. 지난 1년간 은행 대출은 30% 증가했고 물가는 정부 목표치(5~5.5%)보다 높은 평균 6.05%의 상승률을 보였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는다. 열악한 인프라로 인도 농산물의 40%가 수송 중에 썩어서 폐기된다. 또 전기와 수도물 사정이 나빠 제조업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재정 적자 상태인 인도 정부로선 도로 등 인프라 투자에! 한계가 있고, 유통시장의 개방은 국내 영세 상인들의 반발이 두려! 워 주저? 求?실정이다. 이런 현상만 놓고 보면 당연히 인도는 경기 과열이 심각하게 우려된다. 그러나 반박논리도 만만찮다.




출처 : 조선일보

■ 경기 과열 아니다:
국가부채가 줄어든다, 11억 거대시장의 특수성이 있다


경기과열 유발의 3대 요소로는 흔히 인플레이션, 정부 부채, 자산가치가 꼽힌다. 그런데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고, 자산가치는 엄청나게 치솟는데 정부 부채는 줄고 있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부채는 작년 4.6%다. 1987년 9.5%까지 치솟았고, 지난 2002년만 해도 6.7%였지만 많이 낮아졌다. 경기과열 조짐이 나타나면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게 된다는 통상적인 현상과는 다르다. 포스코경영연구소 뉴델리사무소의 김봉훈 박사는 “인도의 잠재력을 보면 8% 성장이 경기 과열이라고 하기 힘들며, 6%의 인플레이션은 다른 개발 도상국과 비교할 때 결코 높지 않다”면서 “다만 빈부 격차가 워낙 심하고 빈민층이 8억 명이 넘다 보니 체감물가상승률이 매우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물가가 올라 인구의 90% 이상인 9억 명의 소비가 줄더라도, 이미 중산층 반열에 오른 1억 명의 소비가 충분히 버텨주는 구도란 것이다. 더욱이 인도엔 해외직접투자(FDI) 못지않게 중국의 화교(華僑)와 같은 개념인 NRI(non resident Indian·비거주 ! 인도인)의 비공식적 유입 자금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상당수 부유층의 경우 고정적인 수입과 무관하게 축적된 자산이 많아 어느 정도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소비는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도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강조하며, 인도 경기 과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2007년 새해 인도 예산의 기조는 균형이다. 중국은 과거 일단 저지른 뒤 수습하는 공격적인 정책을 폈다면 인도는 벌써부터 조절 기능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 증권의 애널리스트 야다브(Yadav)는 “인도 금융 시스템은 겉으로는 낙후해 보여도, 환율을 조절하거나 주식이나 시장을 관리하는 기능이 뛰어난 데다 중앙은행이 정치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점이 높이 평가된다”고 말했다. 경착륙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란 얘기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해서도, 수급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것은 규제의 문제란 지적이 높다. 규제가 풀리면 부동산 가격의 폭등세는 언제든지 안정된다는 얘기다.

인도는 각종 용도 지정이 까다롭고, 이를 바꾸기도 여간 힘들지 않아 상업용지나 아파! 트 용지 확보가 워낙 어렵다. 인도에선 에이커(약 1224평)당 40만 ! 루피(약 910만원)인 농지를 상업용으로 바꿀 때 들어가는 공식 비용만 4000만 루피에 이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이어지겠지만, 인도 정부의 과감한 규제 완화가 이어진다면, 지금처럼 우려할 만한 상승세는 완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긴축 정책 속에 7~8%의 성장은 지속될 듯

경기과열의 조짐이 있는 것은 분명 하지만 이것이 경기의 급랭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전망한다. 뭄바이의 증권 애널리스트 가우라브는 “인도에는 1993~1996년 지나친 긴축 정책으로 인해 경기가 폭락한 악몽이 있다”며 “인도 정부는 과거와 같은 충격적인 긴축 정책은 쓰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욱이 인도의 잠재력을 감안한 해외기업들의 지속적인 투자, 도로 항만 공항 등에 대한 인도 정부의 투자 등이 뒷받침 된다면 경착륙의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 인도 전문가들은 당분간 7~8%의 고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에너지 문제나 정치적인 변수는 여전히 존재한다. 인도 에너지의 70%는 수입에 의존한다. 에너지 공급? ?원활하지 못하면, ‘생산 불능’ 상태가 온다. 이럴 경우 예상치 못한 경기 경착륙도 우려된다. 여기에 각종 정치적인 상황 역시 큰 변수다. 집권당인 국민회의당이 8%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끌고 있지만, 작년 이후 각종 지방선거에서 연패를 당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좌파들이 연승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2월 13일 펀잡주 선거, 2월 21일 우타르칸드주 선거에서 국민회의당은 연패했다. 정치적 압력이 거세지면 경제성장 위주의 정책이 ‘분배’ 중심으로 대반전을 할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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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비르 데(Prabir De) 뉴델리 RIS 리서치 펠로우·박사

출처 : 조선일보


“인도정부 강력하게 대응 안하면 앞으론 두 자릿수 성장 어려워” 일반적으로 ‘과열’이란 시장의 수요가 공급능력을 초과하는 상태를 말한다. 인도의 경제성장이 가속화되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으면서 과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004년 중국의 상황과 유사하다. 당시 중국 정부는 과열을 막기 위해 부동산과 철강분야의 투자를 제한했다.

인도는 지난 3년간 두 자릿수에 가까운 성장을 기록했다. 최근의 인도경기 과열 우려는 인도중앙은행(RBI)이 지난해 11월 1일 중기 신용정책을 내놓으며 더욱 불붙었다. 인도중앙은행에 따르면, 2005~2006년 회계연도 4분기에 9.3% 성장했던 인도 경제는 현 회계연도(2007~2008년) 1분기(4~6월)에 8.9% 성장률을 나타냈다. 이처럼 성장률이 정체를 보인 이유는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인도가 공급 측면에서 심각한 병목현상을 겪고 있다는 것도 성장률 둔화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된다. 인도의 인플레이션은 다른 개발도상국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준이지만, 외국인 투자와 경제적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는 중국에 비교하면 2배에 달한다. !

가격 상승은 콩부터 양파까지 식료품에서 두드러지며, 특히 빈민층을 크게 압박하고 있다. 대도시의 아파트 임대료와 매매가도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인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오토바이를 만들어내는 공장에서는 날마다 기계를 최대한 가동하고 있으나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다.

2006~2007년 인플레이션 움직임은 주로 식료품과 공산품 가격에서 발생했다. 도매가격지수(WPI) 상승률은 2006년 3월 말 4.1%에서 2007년 1월 6%대로 높아졌다. 도매가격지수 인플레이션은 지난해와 올해 3.7~6.1% 범위에서 움직여왔고, 지난 1년간 평균은 4.9%였다. 이는 1년 전의 4.7%보다 소폭 상승한 것이다. 주요 품목 중에서 밀·과일·우유 등이 물가상승을 주도했다. 밀 가격은 지난 1년간 14.7% 상승했고, 과일과 우유 가격도 각각 12.0%, 7.6% 올랐다.

도시와 농촌 간의 물가상승률 격차도 문제가 되고 있다. 도시 지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1년간 7% 가까이 오른 반면, 농촌지역은 9% 상승했다. 인도 인구의 3분의 2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농촌지역은 식료품 가격이 오를 경우,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다.

인플레이션 압력을 막기 위해 인! 도중앙은행은 지난 1월31일 단기 이자율을 0.25%포인트 인상해 7.5! %로 만들 었다. 인도정부가 정책적으로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인도는 현재의 두 자릿수 가까운 성장률을 오래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열은 경제에 활력을 가져다 주는 측면은 있지만, 강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지니고서는 경제가 성장세를 이어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Thursday, May 3, 2007

Dear Emily (from Debbie in Bombay)

Leadership Development Course 에서 (Emily 왼쪽 세번째 라인 하얀 옷의 파란 목라인 백인여성) (Debbie 가운데 연두색 옷에 진주를 안고있는 김영기의 바로 뒤에 진우를 안고 웃고 있는 미모의 여성)


Hello Emily

It’s Debbie in Bombay.
I’m so sorry that it took me such a long time to write you.
But I always thought about your family.
When a Korean team was there we were planning to visit you but it also didn’t work out.
There was some difficult situation that held us back in Mumbai.
I really hope that we’ll get another chance to visit your place.
It’ll be wonderful!


And now I am writing you missing you so much.
I often thought of small Shristi (I’m sorry if the spelling is wrong.) and your little baby who’s going to bring more joy to your family soon.
I remember your due date is in May, right?
You must be having a big stomach these days.
I wish I could be there to see you with the baby.

Raising my two beautiful kids I don’t have much time even for myself.
Time flies away with these two and I’m overwhelmed by the way God leads me to be a better mom everyday.
Surely I’m learning a lot although I struggle many times.
And after LDC I am doing much better than before.
These days Jinju and Jinwoo are playing together very well.
It’s a privilege to have both of them in my life.

I think it’s mysterious when we see how God blesses our lives with little ones.
I pray that your family will all enjoy this special time with the new baby.
I’ll keep you and your family in my prayer.
God will protect you and your new baby.
Please take care

Hope to see you soon

Yours, Debbie in Mumbai.

Wednesday, May 2, 2007

Ta Ra Rum Pum

오랜만에 함께 일하는 인도인 친구들과 바시(Vashi) 에 있는 극장에 갔다. 마침 좋아하는 배우 샤이프 알리 칸(Saif Ali Khan)과 라니 무커리지(Rani Mukerji)가 함께 등장하는 영화 'Ta Ra Rum Pum' 이 상영되고 있었다. 매번 새로운 힌디 영화가 나올 때마다 영화에 열광하는 여느 인도 사람 못지 않게 나 또한 어떤 스토리의 영화일까 궁금해 하곤 한다.

지금까지 보아온 대부분의 힌디 영화가 전형적인 볼리우드(Bollywood)영화의 특징인 마살라(Masala)-춤과, 음악, 스토리가 모두 섞인- 영화였고 헐리우드(Hollywood)영화 여러편에서 스토리와 장면을 가져와(거의 흡사) 짜집기한 형태였지만 그래도 인도화된 영화여서 재미가 있었다. 이번에도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여서 재미가 쏠쏠할 것으로 기대하며 극장에 들어갔다.


매일 매일 5시간씩 전기가 나가는 뭄바이의 전력 사정을 걱정하며 극장이 있는 지역에서는 전기가 나가지 않기를 기대했지만 여지없이 전기가 중간에 나가고 발전기를 돌려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에어컨도 나오지 않고 오직 대형 선풍기가 신바람나게 돌아가는 인도의 전형적인 극장 안에는 평일 낮인데도 많은 가족들이 아이들과 동행해서 영화를 보기위해 앉아있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당연하듯(?)이 1990년에 릴리즈되었던 탐 크루즈(Tom Cruse) 주연, 토니 스캇(Tony Scott) 감독의 '폭풍의 질주(Days of Thunder)'를 97% 가져다가 그대로 인도식으로 만들어놓은 영화였다. 인도에는 헐리우드 영화가 자주 릴리즈 되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인도사람들의 대부분이 모를것이다. 안다고 해도 전형적인 마살라 영화로 변신시켜놓으면 인도 사람의 구미에 잘 맞기에 어느 누구도 표절이니 어떻니 논쟁을 하지 않는다. 그냥 영화로 뜨거운 날씨와 인도의 모든 부패로부터 해방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도시를 배경으로 자동차 경주에서 경주차의 바퀴를 갈아주는 일을 하던 라지브 싱(Rajeev Singh-Saif Ali Khan)은 해리라는 자동차 경주 매니저가 운전하던 택시를 직접 운전하기 위해 운전석에 앉는다. 출발직전 라디카(Radhika-Rani Mukerji) 라는 피아노를 전공하던 학생이 택시에 올라타고 라지브는 레이싱 하듯이 운전을 해 라디카의 목적지에 이른다. 해리는 라지브의 운전 실력에 감탄을 하며 그에게 실제 경주에 도전해보길 제안한다. 운전석에서 나오다 라디카와 부딪쳐 넘어지면서 라지브는 라디카에게 한 눈에 반하고 만다.



영화의 한 장면


라디카가 아이팟(i-pod)이 망가진듯 하다며 친구와 불평하는 동안에도 우연하게 라지브와 만나게 되고 그 우연은 두사람을 첫 레이싱 경기장에서 만나게 한다. 라지브는 본능적이고 천부적인 실력으로 많은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두 사람은 더욱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을 약속한다. 라디카는 아버지에게 라지브를 소개한다. 그러나 라디카의 아버지는 라지브가 대학을 마치지 못해 결혼후 크게 후회하게 될것이라고 경고하며 결혼을 반대한다. 라디카는 우리는 이미 결혼을 약속했기에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라지브의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제공한 대형 집과 최고의 차량 그리고 눈부신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으며 두사람은 결혼한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딸과 아들이 동참해 가정을 이루고 딸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 영화는 온 가족이 응원하는 레이싱 경기장으로 이동한다.

모든 소설과 영화가 그렇듯 사건의 복선을 상징하는 아들의 조그만 무선 자동차가 등장한다.경기장에 들어선 라지브는 경기장을 가득 채운 군중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들을 발견한후 자동차에 오른다. 그리고  1990년에 릴리즈 되었던 헐리우드 영화 '폭풍의 질주(Days of Thunder)'의 내용과 100% 같은 사건이 동일한 촬영각도(?) 와 스릴로 전개된다.

비록 다시보는 인도식으로 변화된 'Days of Thunder' 였지만 의자의 양쪽 손잡이를 꼭 잡으며 온 몸이 쭈뼛 쭈뼛 하는 짜릿함을 맛보게 하는 스릴 넘치는 스피디한 자동차 경주 장면이 압권이었다. Saif Ali Khan의 연기도 한 몫을 톡톡히 해냈다. 어쩌면 인도 사람들은 이리도 뻔뻔하게 헐리우드 영화를 배끼고도 능청스럽게 인도,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쉬 등 서남아시아등에 수출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싫지 않다.

영화의 한 장면

라지브는 악당의 인상(?)을 한 경주차량과 마지막 레이스를 하던중 상대차량의 거친 공격으로 차량이 전복되는 큰 사고를 당한다. 1 년 간의 재활훈련을 거친 후 다시 자동차 경주에 도전하게 된다. 수 많은 군중들과 매스컴에서 그의 재도전에 큰 기대를 한다.

경기는 새롭게 시작되고 의욕 넘치게 선두에 이르지만 1년전의 악당 운전자가 탑승한 차량이 바로 옆에서 사고와 동일한 상황이 재현된다. 라지브는 사고의 충격이 정신적인 영역에 그대로 남아있어서 겁을 먹고 속도를 줄이고 만다. 사고의 후유증(Trauma)은 그가 다시는 경주를 하지 못하도록 했고 그의 매니지먼트 회사에서는 그로부터 손을 뗀다.

라지브가 믿었던 매니지먼트 회사에서는 그의 이름으로 어떤 돈도 남겨두지 않았고 그가 살던 저택은 은행빚을 얻어서 그에게준 것이었다. 냉혹한 세상에 놀랄 겨를도 없이 그가 라디카에게 선물한 결혼반지까지 경매에 부쳐지게 된다. 두 아이와 졸지에 거리로 내몰린 라지브와 라디카 부부는 아이들에게 TV 에서 생중계하는 Survival 게임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며 물도 나오지 않는 작은 아파트로 들어간다.

아이들의 학교 학비등을 대기 위해 직업을 구하기 위해 이곳 저곳에 시도를 해보지만 대학 졸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속 거절을 당한다 (인도식 사고방식으로 미국을 왜곡 시켜놓은것 같다.).
영화의 한 장면


라지브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학교에서의 점심 급식을 끊지 않기위해 택시 운전을 하게 되고 라디카는 레스토랑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일을 얻게된다. 매일 매일 굶기까지 하면서 살아가는 날의 연속속에서 가정의 어려움을 알아차린 딸과 아들이 점심을 굶으며 돈을 저축하다 아들이 영양실조의 심각한 병에 걸린다.

병원에서는 보험이 없는 라지브에게 엄청난 병원비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내지 못하면 아이가 위험하다고 말한다. 역시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은 모두 동일한 것일까.(나 또한 딸,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흘릴뻔 했다.) 라지브는 경주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를 찾아가서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장면은 흡사 '신데렐라 맨' 의 한 장면을 보는듯 하다.- 인도 영화의 힘  ^^ ) 몇 백불을 손에 쥐어주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도와주라고 하는 전 매니지먼트 대표에게 돈을 돌려주며 라지브는 집으로 돌아온다.

처음에 그에게 경주에 도전하기를 제안했던 해리는 라지브에게 다시한번 도전해보자고 한다. 그리고 라지브가 살고있는 동네의 동네사람들로 구성된 팀을 만들어 재 도전한다.

그리고 인도식 사고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Pay back'  장면이 연출된다.  사실 헐리우드 영화  'Days of Thunder'  에서는  절대 pay back  하지 않는다.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상대방에 대해 '이에는 이' 로 응대하지 않는다. 탐 크루즈는 자신의 차를 전복시켰던 상대가 동일한 방법으로 자신을 공격할 때 자신의 꾀에 스스로 빠지도록 차량을 뒤로 빼서 그 차량이 스스로 전복되어서 승리하게 된다.  그러나 전형적인 인도 힌두이즘이 영화에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인지 라지브는 차량을 뒤로 빼서 위치를 바꾼 후 그 차량을 공격해 전복되도록 하면서 모든 두려움의 후유증을 극복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매우 슬픈 비애를 느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젊은 인도 사람들과 운전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지게 될까 걱정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사실 인도 사람의 70%는 도로상에서 안전운전의 방법과 도로교통법에 대해 전혀 교육받지 않고(Times of India) 운전을 하는 도로위의 폭탄과도 같은 사람들이다.

아무리 운전을 조심스럽게 해도 사고가 나게 마련인 인도의 운전 문화, 백미러를 절대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인도의 운전 문화에 석유를 끼얹는듯한 이 영화는 자칫 잘못하면 정말 위험한 영화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매우 인기있는 배우들과 재미와 스릴이 잘 버무려진 마살라 영화(Masala Movie)이기에 그 악영향은 더 클 수 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인도의 젊은이들이 영화를 그대로 흉내내어서 도로상에서 함부로 운전하며 자신에게 위협이 된 다른 차량에게 Pay back 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지난 7년동안 인도에서 가장 차량이 많은 뭄바이의 도로에서 운전하면서 이 영화이상으로 무섭게 질주하며 운전하는 인도의 자동차들을 보아왔기에 내 희망이 그냥 희망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래도 재미있는 힌디 영화.  별 세개!!!

참고 : 모든 사진의 출처는 "yashrajfilms" 에 있습니다.

이 글의 모든 저작권은 김영기 에게 있습니다. 글을 참고시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Tuesday, April 24, 2007

What's up?


블로그를 시작하는 마음이 마치 어린시철 양철 지붕에 떨어지던 여름 장대비처럼 콩 콩 거린다. 
지금 내 성격과 기질을 보면 도무지 내가 그런 정서를 가진 아이였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비가 오기 전 하늘에 짙게 깔린 구름 솜들을 바라보던 그 아이의 눈. 나는 지금 그 아이의 눈으로 새롭게 들어가는 블로그를 시작하고 있다.

이전에 써 놓았던 시들과 글 자락들을 어떻게 이곳으로 이사를 할 것인가 고민해야할텐데 나의 게으름은 어느새 그것도 잊어 버리게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한국에서 살 때 보다 더욱더 느려지고 느긋해진 나 하지만 많은 속임의 영적인 환경속에서 살아남고자 늘 깨어 있으려고 한지 벌써 7년째. 나는 그 7년 동안 이미 굳어버려서 한국말도 그리고 한국어 쓰기도 굳어버린것을 모르고 있었다.

굳어버린 글쓰기-내 모국어로-를 말랑 말랑하게 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이제 70년대 내 소년의 눈과 80년대 청소년의 손끝으로 돌아가고 싶다.

Happy birthday



최보연이 인도에서 만든 케잌

2003년 4월 15일생인 진주가 올 해 한국 나이로 다섯살이 되었다. 인도에서 사는 최보연은 매년 집에서 자신이 만든 케잌을 식구들을 위해서 내 놓았다. 아직도 인도의 제빵기술은 한국의 70년대 수준이라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집에서 만드는 빵이 가장 입맛에 맞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집에 오븐이 없어서 최보연은 압력솥에서 빵 만들기 시도를 했고 그 다음에는 전기밥통에서 빵을 만들어 케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조그만 제빵기계를 누군가 쓰다가 준 것을 사용했고, 올 해는 쿠쿠 밥솥을 한국에서 새로 구입해 인도로 가져올 때 받은 사은품인 식빵 두 덩어리 크기만한  전기오븐에서 빵을 구워 케잌을 구워냈다. 그리고 매번 그녀는 케잌위에 가족들의 이름을 독특한 것들을 사용해 장식해서 선보이곤 했다.

나는 한국처럼 수퍼마켓에 가면 무엇이든지 구할 수도 없고 전화 한 통이면 별 다섯개 호텔에서 만드는 것 같은 케잌을 근처 제과점에서 배달 시킬수도 없는 이곳 인도에서 7년동안 살면서 최보연의 창조적인 모습들을 수도 없이 목격하면서 살아왔다.

케잌과 진주 생일

아마 그녀에게 빵을 마음껏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있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우리 가족앞에 서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온다. 최보연의 창조적이고 집중하는 모습은 그녀의 어린시절을 상상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나보다 다섯배는 빠른 글 읽기 속도와 이해력 등은 (사실 나는 매우 느리게 글을 읽고 아주 느리게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얼마나 집중해서 무엇인가를 자기안에서 만들어 내는지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최보연과 살면서 많은 편지들을 받았다. 물론 연애시절에도 그녀로부터 많은 편지들을 받았지만(대부분 작고 이쁜 글씨와 그림들이 곁들여진 정말 재밌고 사랑스러운 편지들 이다.) 결혼후 받은 것들이 더 많다. 모두 내 책상 서랍안에 잘 보관되어 있다. 그녀와 매일 매일 함께 지내면서 나는 그녀가 마치 대학교 3학년 학생같이 느껴지곤 한다. 그녀의 유머와 그녀의

최보연과 진주 진우


사랑스러운 재치 그리고 지혜로운 마음들은 나 뿐만 아니라 진주와 진우 두 아이에게도 큰 기쁨이 된다. 이제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된 최보연. 나는 그녀가 언제나 대학생처럼 창조적이고 유쾌하게 나이들어 가기를 소망한다. 한국에 남겨두고 온 몇 박스나 되는 초등학교 때부터 써내려간 일기장들을 절대 버리지 말고 남편인 나에게도 보지 말아 달아고 부탁할 때부터 나는 그녀가 그녀만의 소중한 방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방이 그녀에게 얼마나 편안한지 알 수 없지만 그녀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무엇이라는 것은 결혼 생활 내내 지켜져온 사실들이었다.

진주 진우 그리고 남편인 나에게 흘려 보내는 그녀의 창조적이고 부드러운 그러나 매우 강한 그 사랑과 헌신은 분명 그 방으로부터 오는 것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나는 2007년에도 나보다 나은 반쪽(Better half of mine)인 최보연의 생일이 올 때마다 그녀의 창조적인 것들을 흉내내려고 하는 나를 발견 한다. 나는 나의 빈천한 창조의 방을 열어볼 때마다 '이것은 내게 없는 은사(Gift)야' 라며 스스로 위안을 한다. 그래도 진심으로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유머러스하고 창족적인 사람으로 생각해주고 격려해 주는 그녀 최보연.

오늘은 그 최보연의 생일이다. 서른번째 생일!!!!  나는 그녀를 감동시키고 싶다. 물론 여지없이 그녀는 감동했고 기뻐했으며 가족 모두에게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깊고 큰 눈동자를 가진 최보연은 눈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감동에 찬 눈동자와 웃음을 바라보며 진주, 진우 그리고 나 세 사람도 덩달아 기쁨에 웃음이 넘친다. 우리에게 크고 화려한 케잌이 없어도 최보연이 김진주, 김진우, 김영기의 마음에 만들어준 그 방 안에는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랑의 케잌과 촛불이 켜져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촛불을 볼 수 있다.  오늘은 최보연의 서른번째 생일이다.






----- 자매에게 2 ------
당신은 나를 통해 행복을 얻으려 하지 않는 분이군요.맞아요, 나 또한 당신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혼란하고 어지러울 때 당신은 당신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

누군가와 이야길 나누더군요.

나도 당신이 없을 때 그 방에 들어가곤 합니다.

잘 정돈된 그 방엔 하얀 침대가 있고 창문이 있습니다.

창가에 달린 테라스엔 많은 화분이 놓여 있습니다.

화분마다 당신이 새겨놓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고백을 먹고 자라는 그 화분들.

당신이 언제나 내게 평안과 화평 그리고 유쾌한 유머를

선사할 수 있는 것은 그 방안에서 누리는

기쁨 때문인것을 깨달았답니다.

당신과 살 수많은 시간을 나도 그 방에 들어갈 겁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흘러넘치는 것들을 나누어 줄렵니다.

당신은 골방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인가요?

靑潭. 사족: 결혼전에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써내려간 시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기도에 합당한 아내를 주셨음에 감사를 드린다.

진주

When I wasn't even aware of your existence
You gently came into my life making a biggest change in my small world.

And now I can see your face break into a broad smile
Now I see a great life you have in your little body.  
I see a great change you bring to me everyday.
You and I sit at a same table having a cup of living water
flowing from our Father's presence.

Sometimes I know things get confusing and messy.
But there's always the great life and breath you breathe each moment.

Your life, one of the greatest things in this world, keeps on growing.
And I, the most blessed mother of all time, am here for you always, my baby.


                                     엄마가... (Debbie)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누군가 그랬었다.
그 형이랑 결혼하면 넌 아마 공주처럼 살 수 있을거라고...
왜냐고 묻는 질문에 대답은 간단했다.
"음, 그 형 돈이 많거든."
그냥 웃어넘기면서 나는 생각했다. 'YWAM간사가 무슨 돈이 있다구...'
그리고 여러가지를 준비하며 결혼식을 하고 또 인도로 함께 와서 정착했다.

세월이 흘러 벌써 내가 그 형제와 결혼한지 3년 반이 되어간다.
사실 내가 결혼 후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된 이 사람, 김영기는 돈이 많지 않다.
생각했던 것처럼 YWAMer로서 그리고 다른 문화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로서
날마다의 재정 싸움을 한다는 사실엔 별다른 특별함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내 안에 계속해서 보게 되고 느끼게 되고
또 확인하게 되는 것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김영기는 돈이 별로 없다.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돈 이상의 것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정말로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돈많은 김영기 선교사'와 함께 살고 있다.


Debbie Choi

위대한 최보연

 
아내에게 잘보이려고 사온 키위.

평상시 키위를 먹으면 목구멍에 가시가 돋힌듯 해서 좋아하지 않는 과일중에 하나지만

최보연은 유난히 비싼 과일을 좋아한다.



그런 아내덕에 비싼 키위를 대뜸 사서 가져오니

그것이 아직 설익은 것이었는지 유난히 시었다.



호주 멜버른 DTS 디렉팅을 마치고 뭄바이 DTS를 또 리딩하러온

Vah 가 시다며 뱉아버리는 그것을 최보연은 단숨에 세개를 끝내버렸다.



이틀후 병원에서 아이 소식이 담긴 리포트를 받았다.



으햐햐..좋아라... 위대한 최보연이 둘째를 가졌다.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는 진주, 이제 동생이 생기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동생이 뱃속에 있다.



진주 앞에서 엄마 배를 손으로 대며 '아가' '아가' 하니 진주의 만면에 웃음이 번진다.

어린 진주도 좋은 모양이다.



서울에서 온 대학생 전도여행팀과 하루 종일 함께 하다가도 양해를 구하고

최보연과 꼭 밥을 먹으려고 노력중이다.



삼일전엔 오징어 볶음을 그 다음날은 고등어 튀김을 그리고 어제는 갈비탕을

만들어서 위대한 최보연께 바쳤다. 무를 너무 많이 넣어서 그만 국물이

탁해져 버렸지만 맛이 일품이었다. 앗싸...



위대한 최보연은 그저 한그릇 맛만 보고 입덧 때문이지 냄새를 맡지 못하고 그만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래도 좋다.



최보연 화이팅.!!!!



위대한 최보연 화이팅!!!



주님께서 우리를 신뢰하시고 사랑하시어서 주신 아가, 둘째 아가의 이름을

생각중이다.  한번 골라봐 주시길...



1. 김 착해라.

2. 김 착하니.

3. 김최아기.

4. 김최고다.

5. 김동그라미.

6. 김착하지



우히히... 아무거나 손들어 주세요.

아이디어가 있으시다면 덧글을 달아주시고...



그럼 이 복음을 만방에 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인도에서 김영기, 최보연, 김진주, 미래의 아기 선교사 드림.

결혼기념일

 
12월 8일, 최보연 김영기 결혼한 날.
오늘은 세번째 맞이하는 결혼 기념일이다.
아내는 한달 전부터 조심스럽게 결혼 기념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전에는 그동안 적은 삶림예산에도 조금씩 조금씩 떼어서
돈을 모으고 있는 것을 넌지시 내비치기도 했다.

착한 아내...
매년 결혼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아내는 귀한 선물과 편지를 주곤 했다.
마음을 한껏 표현하고 싶어하는 그녀.

일주일 전엔가 그녀의 코 끝에 약간 크고 검게 피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여보 이게 뭐야? 이거 피지 같은데 내가 빼줄까?" 하니
아내는 기겁을 한다.
괜스레 그거 빼려다가 성나면 어찌하냐며 고개를 설레 설레 한다.

어제 밤에 여보...하며 다가온 아내는 "여보 이거 뺐어요..." 하며 다가온다.

그녀의 코끝이 빨갛다. 검은 그것은 그대로 거기에 남아있다.
아마도 점이 되버린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아내는 결혼 기념일 하루전날 그 피지를 빼서 예쁜 코를 남편인 내게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새벽에 일찍 잠이 깨서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오늘 아내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머리속에 맴도는 많은 것들 때문인지
유난히 머리위 팬이 시끄럽게 느껴진다.

딸깍 딸깍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저 짙은 갈색의 팬을 바라보며
일상의 소박한 시간, 그저 특별하지는 않지만 저 깊은 곳의
마음을 편안하게 나눌 수 있는 짧지만 귀중한 시간들을 아내와 나누는
것이 최고의 결혼 기념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혼 11년째를 살고 있는 옆집 사람 브라질리안 이자벨이 어제 늦게 아내에게 전화를 해왔다.
남편과 오붓하게 저녁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이제 19개월된 딸 진주를 자신이 돌보아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매일 하루 24시간을 딸 진주와 함께 보내야 하는 아내에게 그것은 귀가 솔깃한 제안임에
틀림이 없을 텐데 아직 어린 딸을 결혼기념일이라고 따로 떼어놓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 모양이다.

딸 진주는 엄마 아빠가 서로 껴안고 뽀뽀를 할 때마다 질투를 표시해낸다.
이제 무엇인가 스스로 인지하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어서 그 질투의 표시가 밉지 않다.

우리 부부의 사이에 꼭 끼고 싶어하는 진주를 보면서
이제 엄마 아빠가 서로에게 가장 우선이며 진주는 두번째 임을 가르쳐 주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진주를 너무도 아끼지만 딸 진주는 엄마 아빠의 깊은 사랑의 관계의 열매를 옆에서 보고 배워야만 자기 정체성이 뚜렷하고 사랑을 받는데 주저함이 없으며 주는데 인색함이 없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아직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
어쩌면 이리도 닮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는 나를 닮은 반쪽이었다.
날마다 닮아가는 그녀와 나는 오늘 조금은 특별한 닮음의 날을 기념할 것이다.

아내 최보연을 창조적으로 놀라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오늘은 더 많은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靑潭.

윙크의 여왕 진주

 
아내 최보연은 유전적으로 윙크를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어느날 온가족이(진주까지) 드러누워 오손 도손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날 따라 유난히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를 가진 아내가 무지 이뻐보였다.

그저 한쪽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윙크를 보내니 아내가 너무도 좋아한다.
참, 순진하고 착한사람... 입이 함지박 만해진 아내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며
신기해 하기만 한다.

어? 이사람 이상하내..윙크 처음 보나?  아내는 자기는 윙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윙크를 할려면 그저 두 눈을 모두 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도 신기해서.. 한번 해보라 하니..정말 두 눈을 모두 감았다가 뜬다. 하하하..
배꼽이 떨어져라 웃고나서 몇번이고 해보라 하니 또 한다.

아마 연습 부족일거야 하면서 한쪽 눈 감는것을 시도해 보라 하니 얼굴이 찌그러진다.

그래 여보..그저 있는 대로 살아야지..하며 토닥 거려주었다.

아비와 어미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자신도 끼고 싶었던 아기 진주도 벙글 벙글 웃더니

윙크를 한다. 하이고..두 눈을 모두 감는다. 아빠인 내 가 한쪽 눈만 감아 보이며  '윙크' 해도 두 눈을 모두 감는다.

그래도 정말 이쁘다. 진주가 두 눈을 모두 감으며 날리는 윙크는 세상 어느것보다 이쁘다.

진주의 윙크를 수없이 받은 최초의 남자인 내가 봐도 기절할 정도인데 다른 녀석들은 오죽할 까.

윙크의 여왕 진주... 진주는 엄마를 닮아서 두 눈 윙크를 한다.

두 눈 윙크는 외눈 윙크의 배가 되는 사랑을 담아서 보내는 무진장한 윙크.

아내와 진주가 두 눈 윙크를 하니 나도 덩달아서 두 눈 윙크를 하게된다.

우리 가족은 모두 두 눈 윙크 가족.


                                                  靑潭

아내에 대한 단상

 
아내는 말수가 적고 다른 사람의 분위기를 잘 살피는 사람이다.
이북에서 월남하여 자식들을 키워내신 외할머니의 강함이
아내의 어린시절을 묶고 있는 강한 끈이 된 그 시간들...

차 안에서 아내는 내 눈치를 잘 살피곤 했다. 결혼 전이라
설레이는 심장 소리가 천둥처럼 자신의 귀에 들리는 듯했던 연애시절.

아내는 조선시대 사대부집 아가씨처럼 얌전하기만 했다.

'이 여자는 분명 속에 시커먼 그을름이 많은 여자 일거다.'
'언젠가 터지면 무지 막지한 폭탄이 되고도 남을 여자다.'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 사람이 나랑 살면서 폭탄이 되지 않게 하려면 계속 마음을
토해내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월하지 않던 나눔의 시간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상대방의 기분을 잘 더듬어서 말하는 조심성을 가진
여자.

참으로 고운 그녀의 심성에는 여전히 많은 끈들이 감겨져 있었다.
그 부자유함을 풀어내고 자유함으로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는

뜨거운 커피를 천천히 식혀가며 마시는 여유가 필요했다.

신혼여행 일주일의 시간중 3일은 함께 마음 깊은 곳..저 깊은곳..
주님과 자신만이 알고 있던 심연을 퍼 올려 함께 마시는 시간을 갖었다.

그 쓴 물들...마라의 연못. 아내와 내 안에 있던 마라의 연못을 함께
터뜨리며 보낸 3일간의 시간...

아내와 나는 그 시간을 통해 평생을 함께 깊이 깊이 나눌 수 있는
자유함을 획득했다고 서로 자찬을 하곤 한다.

지금도 아내는 아내된 권세를 누리고 사용할 수 있는 여유를 연습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산다는 것은 날마다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나를 보여주는 아내... 그녀의 말은 아직도 조심스러운 조선시대지만
그녀를 묶고 있던 그 영혼의 끈은 사라진지 오래다.

자유함을 누리는 아내는 나의 거울..

나를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거울....


 
                                               빌리김.

딸 진주와 방귀...


이제 4개월 반이 된 진주.
팔 다리가 미쉐린 타이어 케릭터같아서 뭄바이 베이스 간사들 모두
미쉐린이라고 놀리곤한다.

태어나자마자 진주는 방귀를 자주꼈다.
아기가 이렇게 방귀를 크게 끼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었기에
조금은 당황하기도 했지.

더군다나 아빠인 내가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은 이후에는
유난히 방귀끼는것에 자유해져서 사람들은 방귀소리가 나면

바로 나를 쳐다보곤했었다.

딸 진주를 안고 있을 때마다 진주는 방귀를 크게 낀다.
사람들은 딸 진주가 뀐건지..내가 뀐건지..모두 갸우뚱해 한다.

나는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어? 진주가 뀌었는데?"

힌두신을 믿는 정형외과 의사 사친

 
오늘은 인도인 찬양인도자 올렘형제와 Dr. DY Patil 병원에 갔다.

지난 11월 9일 트럭이 치고 도망을 가면서 올렘의 빗장뼈가 부러지고

두개의 갈비뼈가 부러져서 수술을 했었다.

정형외과 전문의이자 Dr. DY Patil 교수인 닥터 사친은 수술시작

30분전에 도착해서 마취전 올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이마로부터 가르마를 치며 길게 그어진 붉은 힌두의식의 흔적이 보인다.

그도 전형적인 인도인 의사 임에 틀림이 없다. 그는 싸이바바를 믿는 걸까 아니면

딸 진주의 소아과 전문의 닥터 실파처럼 깔리 신을 믿는 걸까. 닥터 실파의 남편은

안과 의사인데 그는 아내와 다른 신을 믿는다고 한다.

한국의 의사들은 우선 히포크라테스를 믿고 그를 의지하거나 석가, 예수 또한 의지 한다고 들었다.

그래도 한국의 의사들은 이성적인 면이 다분한데 인도의 의사들은 조금 다르다.

그들의 세계관의 영향은 대단해서 환자에게 무엇을 먹어야할지 가르쳐 줄 때도

스스로가 베지테리안인지, 넌베지테리안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딸 진주의 소아과 의사인 닥터 실파는 베지테리안이어서 진주가 아프면

그저 야채를 끓이거나 어떻게 해서 주라고 한다. 고기는 금물....

한국의 의사같으면 소고기 스프 같은것을 주라고 했을법한데 말이다.

아무튼...정형외과 의사인 사친도 그런 힌두 세계관을 가진 의사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매우 자신 만만하며 신뢰가 갈만한 웃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너는 정말 멋진 의사라고 칭찬을 했다.

그는 오늘 아침에도 자신이 믿는 힌두 신에게 뿌자(아침마다 향을 피우고 하루를 보호해주고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무엇인가 비는 행위)를 했을것이다.

그후 다리뼈가 부러지거나 갈비에 문제가 있는 다양한 계층의 인도인들을 만나게 될것이다.

그가 치료를 할 때 치유의 하나님도 그와 함께 하겠지만 그가 믿는 힌두 귀신도 함께 동행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올렘형제의 빗장뼈는 드릴로 구멍을 뚫고 유연한 쇠심을 양쪽 부러진 뼈에 넣어서 잘 이어졌다.

수술 2주째인 오늘 찍은 엑스레이에 수술후 막 찍었을 때보다 두 뼈 사이가 약간 벌어져 있었다. 닥터 사친은 짤따해(괜찮아...) 한다.

2-3미리 미터 뼈가 떨어져 있어도 곧 붙을터이니 올렘이 절대 팔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음...쇠심을 박아서 두개를 붙였는데 다시 조금 떨어진 것을 본 나는 한국사람 기질상 조금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올렘은 조금 행복해 졌다. 칼슘 을 매일 2번씩 먹으라고 한다.

6주 후 올렘은 뼈 속에 이은 쇠심을 빼러 다시 병원에 와야한다.

6주 후에도 정형외과 의사 사친은 아침 템플에서 받은 붉은 힌두 가르마를

하고 올것이다.

인도...네가 인도를 아느냐?

 
인도에서 살아온지 어언 5년.. 4년을 꽉채우고 나니 마음에는 인도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미워하는 마음이 더 많이 세워져 있다.

날이갈수록 부드럽고 끝내주는 예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선교사이기보다는
눈꼬리와 입술꼬리가 자꾸만 높아지고 날카로와지는 나를 발견할때마다
섬칫 섬칫 놀란다.  물론 그런일을 저지를 때마다 늘 옆에있는 최보연에게
한마디 하고 스스로를 자위한다. " 내가 이렇게 죄인이야..나쁜놈인데.. 주님.."

지난달에는 뭄바이 옆 교육도시 푸나에서 전도여행팀과 조인하기 위해 아침 일찍 떠나야만 했다.
입덧이 최고조에 달해있던 최보연과 실갱이를 하다가 조금 늦게 떠났다.
매사에 서두르지 않기위해 미리 준비하고 미리 가서 기다리는 성격이기에
길거리에 서서 차가 오건 말건 신경쓰지 않고 너는 와라 나는 간다 하는 인도사람들을
지나치면서 마음에 분기가 차오른다. 길 중앙을 친구와 나란히 이야기하며 가는 오토바이,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는 자전거들, 인도사람들 길 위에서 하는것을 꼭 빼닮아 길 한가운데 누워 절대로 차가 코앞에 올때까지 거들떠도 안보는 개들,
앞에 차가 꽉 막혀있는데도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고 쌍라이트를 켜서 환장하게 만드는 운전사들,
아무리 클락션을 울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는 사람들....

그 거리를 지나쳐 오면서 마음으로 수 많은 인도사람들을 이미 치고 죽이지 않았나 싶다.
내 마음 언저리에 놓여있는 예수님의 깨지기 쉬운 성전에서 울림이 있다.
역시 나는 베드로처럼 천상 제자 인가보다.

와엠씨에이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몸과 마음이 푸근해지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힘쎈 진주와 실갱이 하며 침대에 비스듬이 누운 아내 최보연에게 입을 열었다.
"여보...나 왜이러지?  나 이렇게 나쁜놈인지 , 죄인인지,,,정말 무섭다.  날마다 이렇게 나의
최고의 죄 성을 발견할 때마다 죽을맛이야...근데 말야...아직도 더 있는것 같아..
나를 보면 사람이 이렇게 무서운 존재인지 알것같아.나 말야 이미 수십명은 마음으로 죽인것 같아..."

아내 최보연은 내 얼굴을 쓰다듬어준다.  진주도 엄마 따라서 나를 쓰다듬어 준다.

2월에 접어든 오늘

하나님 다음 가족 그리고 사역이라는 우선순위를 꼭 지키기 위해 갖는 패일리데이.
여전히 입덧으로 고생하는 마누라 최보연과 김최진주를 데리고 시내로 갔다.
언제나 그렇게 아내와 진주를 뒷좌석에 태우고 운전을 한다.
역시나 인도의 문화답게(마티즈도 운전사가 따로 있고 주인들은 뒤에 탄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최보연의 서번트(하인, 운전사)로 대한다.

내 마음에 선교사로서 얼마나 이 사람들을 사랑하는가를 매번 바라보는 이상한 습관을가지고 있는것을 발견했다.  그리곤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나의 연약함을 볼 때마다 마음에 분한 마음이 있는것을 깨달았다.

초컬렛 칼라의 인도 사람들, 참으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이 사람들,,,,잘 해주면 더 못하고 속이려드는 이 사람들...

며칠전 자동차 기어박스에서 자꾸 오일이 새서 차를 고치러 갔었다.
기어 박스를 모두 해체한 후 고쳐야 한다면서 겁을 잔뜩 준다.
맡긴 이틀 후 찾은 차는 기름이 더이상 새지 않았지만 단지 마개 하나만 고친것이었다.
그가 내민 영수증에는 해체한 가격이 써 있었다.
그리고 그 마개는 몇달전 고친것이었는데 싸이즈 2 볼트를 넣어야 하는데 싸이즈 3 볼트를 넣어서 그곳이 헐렁해서 샌 것이었다. 일부러 기어박스가 완전히 박살나서 일감이 크게 생길것을 기대하지 않고서야 그런일을 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참으로 기가막힌 사람들...
나는 말없이 돈을 주면서 이렇게 속으로 이야기 하는 나를 봤다.  "주님...이 거짓말 잘하는 놈을 ..으햐,,"

이튿날, 여전히 차는 운전대가 흔들흔들 한다.
가지고 가니 이것이 잘못되었다면서 그것을 간다. 여전히 핸들은 흔들 흔들, 그 이튿날 다른 것을 갈았다.

여전히 흔들 흔들, 공식 정비업체에 가니 동력전달기가 몸체에 부딛혀 흔들거린단다. 그리고 몇가지를 갈았다.

오늘, 여전히 흔들리는 핸들, 그나마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가보니 그가 브레이크 탓이라고 한다.

그의 말이 맞았다. 브레이크와 디스크 문제였다.  모두가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공식 업체 녀석까지...

결국 이렇게 최종 결론까지 도달하기까지 시간과 돈 그리고 마음이 상해버렸다.
하긴 5년째 이렇게 매번 당하면서 인도인 친구들의 이야기에 스스로 위안을 해보기도 했다.

"우리(인도친구)도  길을 물어보면 100% 틀린 방향을 가르쳐 줘서 최소 네사람에게 물어본 후 이동해...뭘 그걸갖고.."

"내가(인도친구) 이야기 하잖아 나도 아무도 안 믿어, 그러니 너도 아무도 믿지 마,,,조심해..."

아내 최보연과 진주를 태우고 시내로 가는 길 내내 나는 나를 속인 거짓말 잘하는 인도사람들을
마음에 넣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따져묻는 상상을 수도없이 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는 그들...

2004년 전인도 한인 선교사 대회 초청 공문에 쓰여진 인사말에 참으로 큰 위안을 얻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과 사시느라 고생이 많으신 전 인도 선교사 여러분들께..."

나는 이 거짓말들을  온몸으로 받아먹고 산다.
그래도 나는 거짓말하는 그들을 사랑해야만 한다.
자신을 팔 제자가 누군지 뻔히 알면서도 묵묵히 십자가로 향해가던 예수님처럼

나도 내 마음에 십자가를 수 없이 세워야만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못 박혀야만 한다.

인도...
네가 인도를 아느냐? 고 질문하시는 그분의 음성이 들여온다.


                                               인도에서....

무까리지 나가의 여인들

 
일요일은 어느 나라나 쉼을 의미하는 날이다.

바뜨라 시네마 극장 옆에는 인도 특유의 색깔을 내는

꽃가게가 있다. 꽃가게를 지나 일요일의 햇살을

뒤로하고 고급 실크 푼자비를 입은 젊은 여인들이 시내로 나간다.

푼자비는 인도의 전통의상 이지만 일상적인 의복처럼 사용된다.

가슴을 은근히 드러내고 인도 여인들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는 옷. 날씬하고 긴 다리를 가진 인도 여인들은 배꼽과 허리를

과감히 노출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이다.

무까리지 나가의 여인들은 일요일에 시내로 간다.



                         靑潭.

산장으로 가는 길


가을을 본다는 것은 낙엽을 밟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랗게 바랜 은행잎들이 가로에 수북히 쌓여있고 그것을

밟고 지나가는 시간은 기억의 숲을 산책하는 기분이 듭니다.

아침일찍 쓸어버려 너무도 깨끗한 서울 거리에서 가을을

맛본다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도시를 지나 가을

을 보고 싶을 땐 해질무렵 하루종일 햇빛을 머금어 형광을

발하는 은행잎 가로수가 있는 곳을 찾아 가보죠.

그리고 아침이 오기전에 천천히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발 아래 밟혀지는 낙엽소리는 우리 영혼의 가을을

재촉하는 손짓이며 그분이 광야에서 흠모하던

고독의 산장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이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가을을 보러 가고 싶다면 함께 낙옆을 밟으러 가보는

것도 좋을듯 싶습니다.



                     靑潭.

M 블럭의 소

 
인도는 암소를 신으로 섬기는 힌두교 덕분에 대로마다, 골목마다

소들이 지나 다닌다.

인도의 수도인 델리도 예외는 아니다. 무까리지 나가의 M 블럭 골목에는

흑갈색의 어미소와 새끼소가 함께 다닌다.

새끼소는 오른쪽 어깨부터 꼬리 쪽까지 병에걸려 털이 모두 벗겨진

상태였다. 벗겨진 살갖으로 붉은 속살이 보이고 파리들이 떼로 붙어있다.

말없는 어미소 옆에 꼭 붙어다니는 새끼소.

공해가 심한 인도의 환경은 상처가 쉬 아물지 않기에 약이 독하다.

사람들은 인도의 약이 잘 든다고 이구동성이다.

어미소는 계속 혀로 상처를 핥아 준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변함없이 핥을 것이다.



                          靑潭.

동행

 
청계산 산자락 끝에 매달린 가을은 벌써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오랜만에 달고 맛있는 산공기를 맛보고 싶은 마음에 친구와 함께

산보에 나섰다. 널찍한 공터에 이르러 기지개를 켜며 지난

여름동안 훌쩍 커버린 나무들을 바라다 보았다. 내 영혼의 키가

저렇게 훌쩍 커버린다면 놀랄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킨 마음에 두 눈을 꼬옥 감고 걷기 시작했다. 옆에서 아무말

없이 걷고 있는 친구의 발자국 소리가 더 크고 또렷이 들려온다.

콧등을 스치는 바람의 소리도 들리지만 내가 안전한 길로 걷고 있다는

마음의 평안은 옆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들려오는 친구의

발자국 소리 때문이었다.

친구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면 나는 혼자 걷다가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일 것이 틀림없을것이다. 두 눈을 꼬옥 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걸을 때 내 옆에서 들려오는 동행의 발자국 소리는

내 중심이 되고 평안의 길잡이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자주 그분이 내 옆에서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영혼의 분주함으로 그분이 동행하는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하곤 한다.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겨울낙옆 숲에서

그분의 깊고 가벼운 평안의 소리를 듣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영혼의 암흑 속에서도 성큼 성큼 걸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동행의 소리.




                            靑潭.

그림 속의 치유자

 
시원한 매미 소리가 여름 날을 녹히고 있는 어느날 한 대학병원에

갔었다. 대학병원 중앙 현관을 지나자 정면으로 커다란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 속에는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와 그를 진찰하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그리고 간호사가 등장하고 있었다. 내 눈을

놀라게 했던 것은 그 세 사람을 따뜻한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며

함께 서 있는 예수의 모습이었다. 병원에 이런 그림이 있구나 하며 신기해

했다.

과학적 의술을 가장 신뢰하는 대학병원 중앙 홀에 환자와 의사 예수님이 함께

등장하는 그림을 본것은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학병원이

기독교 대학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그림은 중요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5월, 대학입시에 여념이 없던 그 때 보충수업을 땡땡이 치고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시외로 나갔었다. 답답한 교실에 앉아 칠판과 선생님

얼굴만 바라보다 녹음이 우거져 가는 5월의 오후에 시원한 바람을 얼굴로

맞으며 타는 자건거는 친구와 내 마음을 더욱더 신나게 했었다.

그러던중 과천 고개를 넘어 굉장한 속도로 내달리다 좌회전 하던 차량과

정면 충돌을 하고 말았었다. 뒤 따라 오던 친구의 말에 의하면 공중으로

수 미터를 붕 떳다가 땅에 떨어졌고 곧바로 영동세브란스 병원으로 긴급히

후송되어 씨티(CT) 촬영과 엑스레이(X-RAY)을 수 십장 찍었다고 한다.


충격에 의한 뇌진탕으로 좌뇌와 우뇌 간격이 벌어진 이상부흥상태 진단을

받았었다. 대학입시를 일년 앞둔 그 때 멍한 상태로 하루 하루를 통원치료하며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찢어진 부위를 꿰맨 후 매일 독한 주사를 두번씩 맞았었다.

그 때 친구의 권유로 신앙을 갖게 되었고 사고후 3년째 될무렵

더이상의 후유증없이 완케되었다.


'병이나 상처를 다스려서 낫게한다'는 치료(治療)와 '치료로 병이 나음' 이라는

의미의 치유(治癒) 라는 말이 있다.

다시말해 우리의 몸이 찢어지고 아플 때 의사가 꿰매고 소독하고 약을 주사하

여 상처나고 아픈 곳을 봉합하는 치료과정을 큐어(Cure)라고 한다.

그 이후 의사의 치료에 대한 인체 내부의 여러가지 작용과 우리의

희망적인 의지가 함께 동원되 나아가는 과정을 치유 즉, 힐링(healing) 이라고 말한다.

치유와 치료가 함께 있지 않으면 우리는 병으로부터 나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교통사고후 병원과 의사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과정인 치료(Cure)를 충분히 받았다.

동시에 나을 수 있다는 희망적 의지와 내 몸의 치료에 대한 반응은 치유과정

(healing)을 오랜동안 견딜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의사와 병원이 최선을 다해 해낼 수 있는 치료 이후엔 우리 몸을 창조해 놓으

신 그분의 전적인 힘인 치유(healing)가 있어야만 온전히 나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대학병원의 의사들은 이런 원리를 겸손히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깊고 뜨거운 사랑과 의지 그리고 평화와 진리가 함께 버무려진 모습으로

대학병원 중앙현관 홀에 있던 그 그림속의 치유(healing)는 이미 내 마음의 현

관 안에 그분과 함께 걸려 있었다.

The door

 
토요일.

교회에 가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하나님 차비 주세요. 기도한다.

몇 달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차비를 주셔서 교회에 넉넉하고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오늘도 느긋하게 이불 속에 누워 하나님 차비 주세요

기도했다. 마침 주머니에 5백원짜리 동전 하나가 있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와우. 교회갈 차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기도를

하자마자 바로 전화벨이 울린다.  '영기냐. 오늘 토요일 이니까

늦지 않게 동사무소 가서 등본 세 통을 떼 놓으렴' 어머님의 전화다.

등본을 떼고보니 주머니엔 동전 두개가 남았다.

아버지 어쩌죠...  주님은 토실 토실하게 살이 붙은 허벅지를 내려다 보시며

"오늘은 걸어가렴.." 하신다.

교회까지 산 하나를 넘어간다. 차분하고 평온하게 걸어가는 시간

참으로 오랜만에 산보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몇 개월간 전철이나

버스만 타고 다녔던것 같다. 간만에 맛보는 도보 묵상 시간이다.

쑥 고개마루에 문들이 많이 서 있다. 멋있는 문양이 박혀있는 문(door) 만드는

공장을 빙 둘러싸고 문들이 세워져 있다. 그 많은 문들 중 하나를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동했지만 그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냥 보기 좋게 전시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공장으로 들어가는 진짜 문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

는다. 연달아 붙어있는 수 개의 문들 중에 어느것이 입구로 들어가는 진짜

문일까?

난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문(The door)을 알고 있다. 지금 걸어가며 나를

훑고 지나가는 모든 순간이 나에겐 문 인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

느니라 말씀하신 예수님이 바로 나의 문(The door) 인 것이다.

세상의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답게 장식한 대문 공장의 전시된 문과 같은 것

을 두드리고 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이 문들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벽

이 있을것이다. 모두가 가짜 문인 것이다. 그곳엔 오직 하나의 진짜 문만 있을

뿐이다.

난 고민하지 않는다 언제나 손을 내밀어 열 진짜 문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곳

엔 예수님과 함께 산책할 동산이 있다. 난 자주 그 동산에서 꽃을 심고

달고 맛있는 포도를 따 먹곤 한다.

쑥 고개를 넘어서서 한 숨을 돌리고 나니 배가 고파온다. 벌써 점심시간인가?

주머니 속에서 동전 두개가 잡혀온다.

따르르릉 여보세요,  ' 어? 어디냐? 밥 먹었니?'

교회 근처에서 태권도 도장을 하는 형이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점심이나 함께 먹자고 권한다.

오늘 주님은 넉넉히 산보할 시간도 주시고 점심도 주셨다.

난 오늘도 그 문(The door)을 기꺼이 열어주신 주님의 손을 잡아 본다.




                            靑潭.

어버이 날

 
새벽녘에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왔습니다. 안방 불이 꺼져 있습니다.

늦게까지 책을 보시거나 TV를 켜 놓으시던 아버지께서 주무시나 봅니다.

며칠전 어버이날, 아버지는 늦은 시간까지 약주를 드신후 집에 전화를

하셨더랬습니다. '영기야..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어디세요..제가 모시러 갈께요..'

'영기야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그리곤 전화가 끊겼습니다. 아버지의 핸드폰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12시가 넘어서야 조금 취기에 겨운듯한 몸짓으로 아버지께서는 방문을

열어보셨습니다.  1시간 동안 큰아들의 삶에 대해 걱정어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날 밤은 어버이 날 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안방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묵묵히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조만간 선교지로 떠날거라는 저의 말에

아버지의 마음 한켠에 서운함과 걱정이 함께 자리를 잡은 모양입니다.

환갑을 몇달 남짓 남겨두신 아버지의 어깨는 더욱더 연약해 보입니다.

장성한 아들이 예수전도단 간사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못내 미덥지 않이신

모양입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 일하며 결혼도 해 손주를 보여주는

평범한 삶을 살지 않는 아들을 보시며 가슴에 걱정이 한줌씩 잡히시는듯

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주님이 부르실 때 예상되었던 것들이지만 어버이날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저의 삶의 모든 자취를 보시며 안타까와 하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순간 순간의 모든 행보와 선택 속에서도 저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맛봅니다.

육신의 아버지의 마음이나 예수님의 마음이나 동일한 것이지만

다른것이 있다면 저의 삶의 모든 영역이 그분이 이미 원하시고 계획하셨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저의 안정감은 오직 주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확신을 다시금 하게 되는

어버이 날 이었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살아내는 삶이 험한 길임을 아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제가 그 길 위에서 기꺼이 살아내고 기뻐하는 것을

보시며 영혼으로 안심을 하시고 계십니다.

다음 해 어버이 날엔 아버지께서 저의 선교사의 삶을 기뻐하시고

격려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주님의 질서 속에서 살아내는 저를 통해

부모님의 영혼이 새롭게 되고 평온케 되실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오늘 밤, 이 순간에도 저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靑潭.

춘곤증


두툼하고 딱딱한 껍질로 겨울을 살아낸 목련나무.

그 투박하기 그지없는 나무 속에서 아기 볼보다 더 보드랍고 하얗게

빛을 내는 목련꽃이 피어난다.

냄새도 나고 보기싫게 흙이 덕지 덕지 붙어있던 베란다 화분 흙 속에서

방금 고개를 내민 여리디 여린 새순.

저 딱딱한 나무 속에 목련이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내어버려도 시원찮았을 시커먼 흙 속에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동화 속에는

보기에도 징그러운 애벌레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번데기를 거쳐서 나중엔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성경속의 주인공들에게도 비슷한 내용으로 스토리를

전개시켜 나가곤 하신다. 모세도 요셉도 그리고 다윗도 모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후 애벌레의 기간과 딱딱한 누에고치상태인

번데기의 변태과정을 거친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는

연단의 광야기간, 불의 기간을 거쳐 주님께서 쓰시기에 적합한

도구가 되어진다.

그럼 난 요즘,,애벌레인가 번데기인가?  자문해 본다.

토요일 한가한 오후 푸른 하늘 끝엔 봄이 매달려 있다.

그리고 그 봄의 치맛자락 속엔 춘곤증이 숨어있다.

난 주님께서 주시는 불 가운데에서 봄을 맞이했다.

오랜 기간의 누에고치 변태의 과정을 거쳐가는 과정에 있다.

거리마다 개나리가 만개할 때 내 영혼의 봄은 꽃을 피우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린  날개를 활짝펴서 날아 오를 것이다.

내 영혼의 누에고치를 바라보며...



                        靑潭.

하나님은 참 좋으신분


"제 1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첫번째,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큰 아들이 읽어내는 새신자 교본을 소리내어 따라 읽으시는 어머님의 얼굴이 어

린아이처럼 밝고 환하다.

두 주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어머님은 동네 지역장과 몇분을

초대해 기도도 하고 찬송도 했다고 하신다.  어린시절 일찍 아버지를 여의시고

홀 어머님과 함께 살아낸 그 삶 속에 아비의 온전하고 넉넉한 사랑을 남편을 통

해 맛보길 기대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지난 30년 동안의 결혼 생활 중

어머니는 한번도 참 좋으시고 넉넉한 아비의 사랑을 누리지 못하셨다.

그나마 큰 아들이 유일하게 삶의 모든 이야기가 통하는 통로였다. 하지만 큰아

들도 그것을 온전하게 맛보게 하는데는 역부족인 것이다.

주님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지난 3년간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때를 선택하셨던

모양이다. 이제서야 어머님이 진정한 영적인 아비의 사랑을 맛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력이 좋지않은 어머님은 돋보기를 써도 작은 글씨는 잘 보지 못하신다. 매일

밤 큰 아들인 내가 직접 소리내어 읽어드리며 새신자 교본을 끝내기로 했다.

얼마나 기분이 좋고 넉넉한 시간인가. 사랑이 흘러 넘치는 교제의 시간이다.

캠퍼스에서 학생들 양육할 때 느낄 수 있는 것과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교제 시

간인 것이다.

소리내어 낭랑하게 읽어낼 때마다 주님께 감사의 마음이 울려 넘친다.

어머님 가득히 육신의 아비가 채우지 못한 사랑을 영적인 아비이신 하나님 아버

지를 통해 채워지길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게 된다.

그래서 그 여며지고 깨뜨려진 연약하디 연약한 어머님의 심령에 따뜻하고 참 좋

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흘러 넘치기를 간구한다.

오늘밤도 어머님은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우시고 계신다.

환갑이 다 되어서야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찾으신 어머님,

키 큰 아비가 두 손을 내어 뻗어 반기기라도 하는듯이 어머님은

어린 소녀처럼 읊으신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


                     

                               靑潭. 

교만


방문을 열어보니 아무렇게나 방바닥에 쌓여있는 책들과 옷가지들이 있다.

날이 추워 열보존을 한다는 핑계로 이불을 넓직하니 깔아놓았더니

온 방안이 마치 무슨 고물상처럼 어지럽다.

이불을 개키고 이면지를 정리해 한쪽에 치워두었다. 그리고 책들을 하나 하나

책꽃이의 남는 자리에 넣었다. 보기엔 참 정리가 잘 된 방이되었다.

걸레를 빨아 바닥을 닦아내면서 연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큼직한 것들을 모두 치워 정리해 두어 말끔해 보이던 구석 구석에서

엄청나게 시커먼 먼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책상 위, 비디오 위, 조그만

악세사리 하나 하나 위에 수북하니 먼지들이 쌓여 있었다.

책꽃이 받침대에도 수북히 쌓여있다.

닦아낸 걸레위에 두껍게 묻어나온 시커먼 먼지들.

내 마음 속에도 그동안 방치해둔 먼지들이 수북하게 앉아있었다.

보기엔 큼직한 것들을 잘 정리해 두어서 견고해 보였지만

그 안에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던 시커먼 것들이

너무도 수북히 쌓여있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마음 속 먼지들을 보고 놀라는 하루였다.

저녁에 방 청소를 하고 난 후에야 마음 속을 걸레로

훔쳐냈다.

교만의 먼지가 가장 많았다.

교만함은 다른 사람의 교만과 꼭 부딪혀 소리를 낸다.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긴다면 그것은 모두 내 교만함이

함께 반응해 내는 소리인 것이었다.

내 교만의 먼지를 마신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영적인

콜록거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콜록거림에 내 교만은 또 소리를 낸다.

콜록 콜록

콜록 콜록...





                          靑潭.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캠퍼스 학생들과 교제하고 양육할 때마다

두 눈을 들여다 본다.

나 처럼 덩치 큰 사람도 그들의 두 눈안에 들어가 있다.

세상을 모두 담고도 남을 두 눈을 반짝 반짝이며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곤 한다.



"저 간사님..있쟎아요...?"  


언제나 대답할 것을 준비해야만 하는 마음의 부담감을 버린지 오래다.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이렇게 반문한다.


" 글쎄...네 생각은 어떤데...?"


학생들은 기다렸다는듯이 말문을 트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스스로 해답을 갖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나 그리고 학생, 사람들은 모두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를

찾아 다니고 있었다. 어떤 정답이 아닌 단지 그것을

편안하게 들어줄 큰 귀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함께 한다는 것은 존중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있는 모습 그대로, 그 속 마음 그대로를 존중하며

"당신의 생각은 어떤데요...?"

라고 묻기 시작할 때 우리는 함께 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靑潭.

죽으러 가는 길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곧바로 무릎을 꿇고 죽음을 간구한다.

하나님 저를 죽여 주시옵소서, 하루 종일 죽여 주시옵소서..

아니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챤이 왠 죽음을 구하는 기도인가?

삶 속에서 계속 드러나는 속자아. 혼(魂)과 육(肉)의 나를

죽여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나는 매일 죽음에 이르는 길을 걷겠습니다. 되뇌이며 현관문을

나선다. 어느날은 현관문 앞에 서서 신발을 신다가 즉시로 다시

살아난 속자아를 발견하곤 흠칫 놀라기도 한다.

이 녀석들은 현관문을 나서서 몇걸음 걸어가자마자

꼬리를 내어밀고 나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오직 주님만이 내 안에 가득히 채워져

성령의 모든 힘과 세력으로 내 영혼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의 육과 혼을 다스리기 시작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의 죽음이 유익함이란 말을 최근에야 뼈져리게 감수하고 있다.

내 삶 안에서 감내가 아닌 완전한 죽음에 이르지 않으면

영의 키는 더이상 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죽으러 간다.




                           靑潭.

인간에 대한 이해

 
주님 아버지,

지금의 때에 저는 견디기 힘든 상황과 환경 속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냉정함과 시기와 질투가 저의 뼈를 녹힙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과 환경을 통해 주님이 가르치시는 것을

온전하게 깨닫게 하시고, 저의 부덕함과 교만의 모든 바위들을

깨뜨리시소서.

그리하여 저에게 불화살과 얼음 화살을 쏘게된 모든 이들을

사랑하게 하시고, 그들을 축복하게 하소서

제 입술에 거룩함과 사랑의 말만 있게 하셔서

환경과 상황이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계속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을 찬양하게 하소서.

제 마음을 견고히 지키며 주님이 주실 귀한 가르침을

기꺼이 배우게 하소서.

저를 겸손케 하시고...저의 영을 계속 가난케 하소서..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눈과 귀와 입술을 갖게 하소서...

겸손케 하소서..

겸손케 하소서..

제 안의 모든 저를 계속 죽이도록 하소서..

오직 제 안에 주님만 계시도록 하소서...


        


                             靑潭.

I trust you

하나님 저로 하여금 쉬운 부정보다는 힘든 정의를 선택하

게 하옵시고, 절반의 진실에 만족하지 않고 전부의 진실을

찾게 하옵소서. 저에게 용기를 주사 고상하고 값진 모든 것

에 충성하게 하옵시고, 악과 불의와의 타협을 거절하며, 정

의와 진리가 위험에 빠졌을 때에 비겁하지 않게 하옵소서.


제 방 한쪽벽에 굵은 글씨로 쓰여진 자기 선언문 이랍니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나옵니다.

레오는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허리까지 차오른 객실에서 케이트는 사랑하는 레오를

구해내기 위해 날카롭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도끼를 구해

손에 들고 있습니다.

귀족처럼 자라 망치질 한번 해보지 않았던 케이트는 자기가 실수 할까 두려워 머뭇거립니다.

이 때 레오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I trust you!"


케이트는 단번에 수갑을 끊어냅니다.

우리의 삶에는 우리를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하고 두렵게 만들기도 하는 수많은 수갑이 있
습니다.

대부분은 마음과 환경의 수갑입니다.

또 자신의 무력함과 열등감으로 어떤 일을 결단하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 때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I trust you!"


우리 함께 자기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의 동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봐요.


      "I trust you!"


우리를 묶어두었던 수갑은 단번에 끊어질 것입니다.




               靑潭.

한 여름 밤의 꿈


지하철 문이 열리전 전까지 몇초의 정지된 시간.

지하철통 안으로 드문 드문 빈자리가 보인다.

뒤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짙은 녹색 시트의 빈자리를 발견한 모양인지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부산하게 힘을 가해온다. 중년의 기름기 낀 콧바람이

목덜미를 더듬는다.

낮동안 봄바람에 마음을 야릇하게 하던 포근한 날씨가 오후가 되니 이내 쌀쌀해졌다.

결혼.

그 신성한 의식을 축하하고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회 의식대로 목사님의 경건한 말씀과 축사를 통해 두 사람


한 몸됨을 선포하였다. 연신 두 눈가에 주름이 지도록 커다란 눈망울을 또릿하게

뜨고 웃기만 하던 신랑과 무표정하게 긴 마스카라 속눈썹을 다소곳이 내리감고

있던 신부. 여느 철부지 선남선녀의 결혼처럼 부산하게 장난스럽고 거창하지도

않은 차분하고 겸손한 혼인식이었다.

그 두 남녀를 바라보는 하객들의 눈엔 두사람의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잠시라도 함께 꿈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

교회에서 조용하게 열린 혼인식 이어서였는지 내심 흐믓한 여운을 마음에

담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보통 토요일에 개최되는 예식장 결혼식은 입구부터 시장을 방불케한다.

부조를 받는 데스크는 흥행하는 영화 표를 파는 곳처럼 무질서하고

결혼과 무관한 공간처럼 보이곤 한다.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것은

그 신성하고 소중한 혼인식이 마치 뻥튀기 기계에 한수저의 쌀을 퍼 넣고

열과 압력을 가해 단 2초만에 펑 하고 튀겨져 나오듯이 싱겁게 시작되고

끝나버리는 것이었다.


난 그런 인스턴트 번개 결혼식을 두고 '조루 혼인식' 이라고 되씹곤 했다.

누가 결혼했는지조차 갈비탕 먹고나면 잊어버리는 요즘의 혼인식을 보다가

성스럽고 차분한 혼인식을 보며 내심 뿌듯한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었다. 그 혼인식엔 성령님께서 동행 하시고 계셨다.

멘델스존의 '한 여름 밤의 꿈' 처럼 단아하고 평화로운 결혼예식을 올리고 싶어
졌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마자 빈자리를 찾아 쏜살같이 달려가는 저 중년의

아주머니도 한여름 밤의 꿈을 꾸셨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올 여름엔 꿈을 꿀 수 있을것 같다.







                         靑潭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비가 내리곤 한다.

비가 보슬 보슬 내리고 난 후 가을 산은 하얗게 털갈이를 했다. 머리 위 하늘은

파랗다. 저녁 무렵 단조의 쪽빛 하늘이 되더니 토끼털같은 눈송이가 날린다.

예전엔 첫 눈을 보면 괜스레 신이나 첫눈이 내린다며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대곤 했는데. 대부분 같은 하늘 인지라 자기들도 보고 있다며 시큰둥하다.

왠지 어린 아이같이 유치 해진것 같아 어느날 부터인가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 러브 스토리 등의 영화 속에서나 대리로 눈속에 파묻혀보고 천진난만 해지는

우리네 속사정은 잘 모르겠다. 이젠 눈뭉치를 던지고 놀거나 눈사람을 만들어 보는

순수함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여름에 장대비가 내리면 팬티만 입고 골목길을

뛰어 다니기도 했고 함박눈이 내리면 이유도 없이 떠득썩하게 흐믓해 했다.

아마 지금이라도 환호하며 아이들처럼 즐거워 한다면 미친것 아니냐며 손가락질

당할것이 분명하다.

어른스럽다는것이 과연 무엇인가. 즐거울 때, 슬플 때, 무서울 때, 어느때고

감정을 감추고 위장하여 절제 하는것인가? 관습적 강요의 틀안에 순수와 천진의

발산을 꽁 꽁 얼어붙게 만든것은 왜일까?

오늘은 눈이 내려 마음이 푸근해졌다.

개구장이처럼 뛰어 다니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하지만 갑자기 돌변해 슬퍼졌다.

땅거미가 질 때 쯤엔 휘파람을 흉내 내는 바람 소리 덕에 눈물까지 나오려고 했다.

변덕스럽긴.

92년 초엔 김현식 씨의 '내 사랑 내 곁에' 가 흩날리는 눈발에 뭉쳐져 도회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의 불씨를 지피더니, 올 해엔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꺼야'

에 힘입어 이별을 감행하는 사람도 많았다.

참! 유행가 라는것이 신통하기도 하다. 사랑의 고난속에 있는 사람들의 정곡을

찌르는 그 통쾌한 가사가 어떻게 그리도 강력한 최면력이나 설득력이 있는지.

그래도 공통적인 현상 이라면 사랑에 대한 맹목적이고 강력한 의지의 무장이 없는

회색 연인들이 노랫말 몇 구절에 최면당해 울고 웃고 하는 점이다.

사랑이 원래 그렇게 예민한 감정으로 만들어 진건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사랑의 함정에 자의로 퐁당 빠지는건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이렇게 첫 눈

오는 날 사랑하는 연인에게 전화거느라 오늘 전화국은 불통이 날 듯 하다.

내가 왜 슬플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심연에 고요히 잠겨있던 기억의

보프라기가 목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기분 전환도 할겸 뜨거운 물이 펑 펑 나오는 샤워실에서 알몸뚱이의 거울을

연신 들여다 봤다. 예나 지금이나 거울 속 녀석은 변한게 없다.

환풍기 날개 사이로 흰 눈이 내리고 있다.




                             靑潭

맥도널드


맥도널드에 가면 불고기 버거가 있다.

불고기 버거 셋트를 주문하면 단아한 까운을 입은 잘 훈련된 미소의

맥-맨 이나 맥-걸 이 "드시고 가실건가요? 가지고 가실건가요?" 라고 만면에

웃음을 띠며 묻는다.

요즘엔 교회에서도 그런 말씀을 종종 한다고들 한다.

복음을 드시고 가실건가요..아니면 집에 싸가지고 가실건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묘한 뉘앙스의 말씀이라 뭐라고 판단하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 싸가지고 간다고 속으로 말한다고 하는데...사실인지

확인해 본적은 없다.

어제는 휴강을 해서 하루종일 수업이 없는 묘한 날이 되고 말았다.

가슴이 뻥한것이 왠지 바람이 난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드는것이 아닌가.

항상 마음의 갈등이 생기면 냉큼 일을 벌이고 마는 결단맨이라

즉시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나갔다.

홍익문고 일층엔 소설류가 많이 놓여 있었다. 온갖 상념의 전시장...

무라까미 하루끼의 소설을 한창 즐겨 보던 때가 있었는데 그의 소설은 여전히

높은 판매 부수를 올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다가간 그의 책...

무료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가죽 소파에 앉아있는듯한 연한 현기증을

동반하는 책...그의 소설은 그런 약기운을 느끼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냄새 나는 책..

하루끼의 냄새를 뒤로하고 맥도널드에서 불고기 버거셋트를

주문해 조금씩 깨물어 먹었다.

이 시간에 맥도널드에 와 있는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일까..

모두 나처럼 휴강인 학생은 아닌듯 싶은데...인생을 휴강한 사람들일까?

어찌되었든 맥도널드에 가면 불고기 버거가 있다.




                       靑潭.

익숙해진 슬픔

 
황토빛 목장 숲을 지나가면 그곳엔 이슬들의 아침이 있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까지 초조하게 기다리던 마음들일 것이다.

주머니 속에 담아둔 전화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하게 메아리쳐 온다.

나...결혼해...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차 안에선 담배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는

동료들을 가끔 태워준 덕분이라고 웃어넘기며 그녀는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하얀 목덜미가 예전보다 더 희게 보인다.

목장을 경계지우고 있는 희나리 등걸 나무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이는

날이다.

매니큐어를 하지 않은 잘 손질된 그녀의 손끝에 카셋트 테잎이 밀려들어간다.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왜 죽은 사람 노래를 듣냐는 질문에 그녀는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아서 좋다고

한다.

삼십대가 되니 마음이 많이 불안하고 그래.. 음..아이가 크면서

왜 엄마는 아빠보다 나이가 더 많아 라고 질문하면 무어라 말해 주어야할지

막막해지는 꿈을 꾸곤 한다고 그녀는 작은 입술을 약간 오무리며 말한다.

훈훈해진 오후의 열기 때문인지 녹기 시작한 질펀한 목장 길목으로

경운기가 털털 거리며 힘겹게 지나간다.

47번 국도를 따라 일동까지 나가 그곳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그녀는 마감을 앞두고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전화를

한다. 사무적으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녀가 프라이드를 사고 그것을 몸에 익숙하게 익히는 동안

훈련소에서 받아본 그녀의 또박 또박한 글 들은 이별에 대한 짧은

감흥들이었다. 아마도 그땐 정말로 이별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그녀는 연신 울음을 그치지 못했었다.

우리가 만난지 4년이 흐른 그해 겨울. 제대를 보름 남겨두고

그녀는 동료기자와 결혼을 했다.

그 남자는 그녀보다 2살 연하였다.

가끔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 보다가 두툼하게 쌓여있는

눈덩이 들을 발견하곤 이것이 무엇일까 들쳐보기를 했다.

시간의 열기가 녹여버렸다고 확신하던 옛 기억들이 아직도 쌓여있는것을

보곤 흠칫 놀라곤 했다. 남들이 이야기 하는 사랑의 흔적일까...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익숙해진 슬픔이라는 것이었다.

익숙해진 슬픔..





                         靑潭.

부천 자유시장

부천 자유시장.

떡하니 현대판 타워링처럼 버티고 서있는 이-마트의 옆자락으로 토끼집같은

자유시장의 입구가 있다.

발 디딜틈 없는 그곳을 북적거리면서 걸어들어가니 사람 사는 생기가 어깨를

절로 신이나게 한다.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솔잎과 어우러진 송편가게. 아주머니들이 뜨거운듯 입을

훅훅 거리며 씹는 그것을 나도 한 개 집어 먹어본다.  

사람들이 사가지고 가는 송편보다 집어먹는 송편이 더 많다. 그래도 주인은

신이난듯 얼굴이 벙글 벙글한다.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 사이로 순대국밥 집이 있다. 오랜만에 시장에서 만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허허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이도 있고, 손자의

입에 뜨거운 국물을 수저로 먹여주는 할아버지도 보인다.

"떨이요!..." " 쌉니다..싸요...!"

추석 명절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찾은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장은 자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곳엔 훈기가 있고

사랑과 대화가 어우러지고 있었다.

수백개의 형광등의 조명을 받으며 바코드가 찍인 종이에 묶여있던 이-마트의

깔끔한 파가 생각이 났다. 그 파는 이곳 자유시장의 넉넉한 손길에 묶여 어둑한

조명 속에서도 흙 뿌리의 파릇파릇한 그것과는 무언가 달랐다.

무엇일까?

이-마트의 현대식 카트를 끌며 대형매장을 둘러다녀봐도 친한 친구와

함께, 아들과 함께, 형제들과 함께 따끈한 순대국밥을 먹으며 소담스런

삶을 이야기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서늘한 냉동 안개가 마음을 춥게 할 뿐이었다.

삶의 든든한 무엇인가를 가득히 채운 순대같이 길다란 천막속에서

숨쉬던 자유시장을 빠져나와 이-마트의 시커먼 지하주차장으로

경적을 쉴새없이 울려대는 차량의 행렬을 바라다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랑'이었다.

사람들의 옷깃에 벌써 겨울이 묻어나고 있다.

난로를 준비해야겠다.

훈훈한 마음의 벽난로를..





                       靑潭.

할머님의 돌아가심

 
온 가족이 함께 모일 계기가 된 할머님의 장례식.

가족 공동체의 인간적인 유대가 여실히 드러나는 때가 바로 사람이 그 생을 마칠

즈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부조를 하러 오셨고 나중엔

음식이 모자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상황이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서울에서

미리 장지로 내려와 하루밤을 보낸 후 번성한 자손들이 모인 곳에서 할머님의

하관식이 있었습니다.

세상이 정말 쉽고 빠르게 변했다는 말이 실감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묘 자리를 고르고 땅을 파내는 것도 포크레인으로 단 몇 분만에 끝났고

입관하고 흙을 쌓아가며 때(잔디)를 이식하는 시간도 간단하게 끝났습니다.

포크레인의 차가운 쇠가 탁탁 무덤위의 흙을 마지막으로 다지고 난 후 그곳에

마지막 때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번성한 자손들이 모여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빠르게 빠르게 라는 세상의 구호와 함께 사람의 감정과 죽음에 대한

숭고한 묵상이 사라져 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86세라는 삶을 마치고 평안하게 눈을 감은 고인을 입관하고 그 위에

한줌의 흙을 떨어넣을 때 모든 사람들이 생의 마지막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 삽 한 삽 흙을 쌓고 다져가는 작업을 수 시간에

걸쳐 해내던 옛 묘지 조성을 생각할 때, 그 때는 모든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또 삶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음 한켠이 안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관의 방향을 조정하는 지관의 일종의 포퍼먼스와..애곡하는 포퍼먼스..

그리고 간단하게 기계를 동원한 흙의 쌓음. 그리고 모두 불에 태우고

버스를 타고 휙 자취도 없이 각자의 삶의 장소로 사라져 버린 자리.

어떤 온기도, 삶의 여로도, 죽음에 대한 진지한 묵상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할머니의 평안한 돌아가심 속에서 저는 모든 욕심의 파쇄와

모든 것들의 용서와 풀어짐을 맛보았답니다. 그분은 아무런 애착도 갖지

않으시고 평안하게 아이처럼 돌아가셨답니다.

저는 삶의 모든 순간을 이제 내가 돌아가는 그 시간처럼 가지고 싶습니다.

풀어내고 자유케 하며 용서하게 하는 인자가 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그분께서 계속 그렇게 저를 묵상케 하십니다.

사랑합니다.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靑潭.

인생은 아름다워

 
'깨지지 않는 영원한 세계.'


"안녕하세요 공주님, 어제 밤새도록 그대 꿈을 꾸었다오, 같이 극장엘 갔는데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어. 난 당신 생각 뿐이야.

항상 당신만 생각해."

"엄마!... 아빠가 손수레에 태워줬는데 운전을 잘 못해. 너무 웃겨서 배가 아파.

우리가 일등이래.. 오늘은 몇 점 땃지?"

"뛰어 ,  소리치는 나쁜 사람들이 쫓아 온다."

한국에 영화가 소개되기 한달 전부터 가슴을 설레이며 기다리던 영화, 타임지에

실린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제목의 영화는 흑백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나를

압도하던 쉰들러 리스트를 우선 생각하게 했다. 이탈리아인의 눈으로 보여지는

세계대전을 두고 왜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의아해 했다.

우선 타임지에 실려 곧 한국에 상륙한다는 이야기는 좋은 영화를 기대하는 마음을

더욱 설레이게 했다.

로베르트 베니니 분의 귀도 오라피체.  그는 치열하고 무서운 전쟁을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기 위해 챨리 체플린 Character로 화면에 나타난다.

그는 조금은 상기되어있고 늘 호기심에 가득찬 천진한 아이와도 같다.

전쟁을 상상하기엔 너무도 먼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제목처럼 영화는 고장난

차를 타고 왕의 행차에 끼어 우연과 유머를 가장하며 나타난다.

시작부터 복선을 아무런 필터없이 보여주는 영화는 자못 유치한 옛 영화의 전개를

상상케 했다. 그것은 감독의 여유였을까? 아니 그것은 챨리 체플린의 독재자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페러디를 통해 전쟁의 비극과 무서움을 완충하는 기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야만인, 침묵만큼 큰 저항은 없다" 라는 화면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연결되지

않은 대사를 읊는 삼촌 엘리시오 오라피체. 로베르트 감독은 그의 입을 통해 전쟁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관객에겐 전쟁은 아직 먼 기다림이라는 화면을 선사하고

있지만 전쟁은 이미 영화의 처음부터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다.

스크린 가득히 어설픈 숨은 그림처럼 숨겨진 복선은 오히려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는 양념이 되고 있었다.


침묵에 대한 구호는 수수께끼에 심취해있던 레씽 박사와의 이야기 속에서도

고개를 든다.

" 말을 하면 없어져 버리는 것,,,침묵..."

의학박사 레씽은 홀로코스트(holocaust)의 복선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는 교묘하게 귀도와 좋은 친구로 표현되고 있었고 수수께끼를 매개로 이미

영화 속에 전쟁을 첨가해 넣고 있었다. 후반부에 나오게 될 생체실험과 대학살의

장면을 의사 레씽을 세워 맛보게 함으로써 브레이크가 사라져 세울 수 없는

가속도와 충격을 보여주던 첫 장면의 자동차를 연상케 했다.

자동차는 완충작용, 자연스러운 전쟁으로 관객을 이끌기 위한 대 제목이었다.

로베르트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영화 전체를 볼 때 하나의 대칭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전쟁의 모든 장면은 이미 이중적 구조로 영화의 전반부에 모두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이중구조는 조수아가 생일 때 목욕을 하지 않겠다고

반항할 때도 새롭게 반복되고 있다. '목욕' 그것은 가스실의 새로운 언어였다.

아름다운 언어...

"또 갑자기 만나기를 기대해요" 라며 호기심 가득한 동그랗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니콜레타 브라치 분의 도라. 그녀는 전쟁을 일으킨 독일 나치와 그 희생이 된

유태인을 이어주는 매개로 등장한다. 그녀는 전쟁을 통과해낸 평화의 산물 아들

조수아 오라피체의 출발점이 된다.

그녀의 남자친구 로돌프는 '아돌프 히틀러'를 표상해 내고 있었고 도라는

로돌프로부터 유태인인 귀도 오라피체에게 도망가버린다. 전쟁에 대한 혐오를

도라를 통해 영화속에 삽입해낸 로베르트 감독의 아름다운 구상이 돋보인다.

초등학교에서 로마의 장학사 흉내를 내며 옷을 벗고 "우리 민족이 얼마나

우월한 민족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라며 독일 나치의 게르만족 우수성을

전쟁의 기반으로 삼은 의식화 운동을 모욕한다.

로베르트 감독은 계속해서 모든 등장 인물의 대사를 통해 독일 나치,

게르만 민족을 경멸한다. 그의 경멸의 말투는 가볍고 유머러스하며 전혀

아프지 않다. 특별히 배꼽을 드러내며 초등학생들 앞에서 장난을 치던 귀도는

전쟁 전체를 조감하는 감독의 눈과 희망의 대리인이었다.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속에서 아버지 귀도는 전쟁에 돌입하는 순간부터

아들 조수아의 세계에 절대 파괴될 수 없는 세계를 만들어 나가도록 도와준다.

그 세계는 주변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희망과 평화의 세계는 깨뜨릴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그것은 미래를 꿈꾸는 것이었고 외계의 모든 것을 재미난

게임으로 보게하는 페러다임 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와 충격, 가스실의

무서움을 목욕으로 표현해내던 홀로코스트(holocaust)의 의식.

그 모든 것을 귀도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달동안 계획을 짠거야. 이건 게임이야. 우린 전부 선수야.

일등하면 탱크, 진짜 탱크를 상품으로 받아, 게임이 끝나면 1000점을 딸 수 있고

엄마에게 갈 수 있어..."

아들의 눈과 마음의 세계에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추하게 파괴될 수 없음을

가르친다. 귀도는 유태인 가스실에서 살아나온 의사 빅터 프랭클이 이야기한

우리의 육체를 공격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의식과 그 의식 속의 평화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깨뜨릴 수 없다는 실제적인 이야기를 대변해 내고 있었다.

귀도와 조수아의 내면의 세계에 안전하고 강력한 경계를 가진 또다른 세계가

나타난 것이다. 감독은 조수아의 세계를 바라보던 페러다임을 영화 전체 속에서

반응하고 살아가던 귀도를 통해 이미 실천해 주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조수아에게

가르치게 한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인생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연신 이탈리아인 감독이 만들었지만 미국적인 냄새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가 영화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미국에게 어필하기 위한

감독의 약간의 타협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한 냄새는 삼촌의 말인 '로빈 훗'에서부터 풍겨나오기 시작했다.

'로빈 훗'은 미국을 대변하는 영웅이다. 삼촌의 말 '로빈 훗'은 전쟁이 끝나고

연합군의 큰 별을 달고 나온 탱크로 새롭게 선보였고 그 말(탱크)을 타고 있던

영어를 쓰던 미국인 병사가 그것을 확증해 주고 있었다.

로베르트 베니니 감독의 어설픔 이라는 채플린적, 미국적 페러디의 도입과

세계평화의 메신저로 등장하며 영화를 끝맺는 미국에 대한 표현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영화에 옥의 티로 작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본다면 로베르트 감독은 이미 미국에

타협한 듯 하지만 미국까지도 경멸하고 있었다.

미국인 병사는 아름다움과 평화의 깨지지 않는 세계를 표상하는

조수아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 초콜렛 먹을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 내내 웃음과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통털어 여전히 세계를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과

희망을 품어낼 수 있었다. 또한 삶을 대하게 될 나의 태도에 새로운 전환을

가져왔다고 기꺼이 자신할 수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보다는 그 속에서 어떤

힘도 절대 깨뜨릴 수 없는 희망과 평화의 세계를 구축해야만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맛보도록 해주었다. 그것은 우리 세대가 만들어 가야할 새로운

세계인 것이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준 로베르트 베니니 감독에게 감사를 표한다.






                     靑潭.  

The children of mine

 
그날은 유난히도 긴 수업시간이었다. 이제 갓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나로서는 왜

저 앞의 밀납인형 같은 여자 담임선생님이 입을 오물 거리며 무엇인가를 말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내성적이다 못해 부끄러움 덩어리였던 나로서는 복부를 찌르는듯한 아픔을 이기지
못했다. 왜 밀납인형은 쉬는 시간을 주지 않을까..왜 8살 짜리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쉽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한다는것에 대해 배려하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이
온통 머리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1시간을 참았을까...결국 바지에 똥을 싸고 말았다. 집안에서 장남이라는 기대는
나로 하여금 매우 빨리 똥오줌을 가리게 만들었었다.

오전반 수업이 끝나고 오후반 아이들이 콩나물 시루같은 교실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3시간동안 아이들 누구도 내 똥 냄새를 맡지 못한듯 했다. 아직 후각이 민감하게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서둘러 집으로 뛰어왔다.

거리에서 똥이 떨어지지 않은것은 적당한 수분 에너지가 함유된 덕분이었다.

가족들 아무도 모르게 빨아서 빨래줄에 걸었다. 오후 시간이면 어머님이 오기전에
충분히 말라서 다시 입을 수 있으리라.

그 때 그 시간 8살 4개월된 시점의 나란 아이는 그 사건으로 인해 열등감과 부끄
러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내 안에서 성장을 멈추어 버린것이었다.

2학년이 되었다. 아버지는 어느날 술이 잔뜩 취해 와서 골목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던 나를 불렀다. 해질녘 오후여서 땅거미가 골목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이 새끼야..막내를 어디다 두고 ..' 모든 아이들이 보고 있던 곳에서 당신께서는
그 커다란 목수의 손으로 따귀를 때렸고 두 발 밑에는 흘러내린 물줄기로 흥건하게

젖어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로부터 도망쳐 놀이터 어귀에서 골목을 노려봤다.
아버지는 이미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날 막내는 이웃마을 파출소에서 아무렇지 않은듯 자고 있었다.
왠 시커멓게 흙으로 더렵혀진 어린아이가 걸음도 빠르게 돌아다니길에 보호

하고 있었다고 한다. 막내는 3 살이었다.

어머님과 아버지가 싸움을 하고 난 후 어머니의 멍든 등에 파스를 붙이며 울던
그 때 그 아이는 내 안에서 더이상 성장을 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의 언어적 구타와 열등감의 세례를 받았던 중학교 1학년 때의 그녀석은
더이상 내 안에서 자라나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계속 성장하면서 아무렇지 않은듯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곤했었다.
나에겐 특별히 아픈 기억이 아닌 이해되는 이야기 처럼 하곤 했다. 난 그랬어...

스물여섯이 되었다. 나의 영은 육체적 나이보다 더 어른 스럽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책도 많이 읽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으며 부모님과 관계도 좋았을뿐 아니라 당신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을 긍휼이 여길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성을 사랑할 수 있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난 정신적으로 육체적 나이와 동일하거나 더 어른스러워...

난 교회도 다니고 있고 신앙도 매우 좋은걸? 기도도 잘한다구..

하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기 시작했다. 무서운 일이었다. 그것은 악몽이었다.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은듯 내 삶은 이랬어 라며 고백했던 그 이야기들은 항아리를
만들고 있었다. 가끔 뚜껑이 열릴 때 마다 그것은 지독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 안의 똥을 쌌던 그 아이는 아직 8살로 내 안에 살고 있었다. 독한 냄새를 뿜어
내면서 그 항아리 속에서.

내 안의 따귀를 맞았던 그 아이는 여전히 바지에 오줌을 싸며 울고 있었다.
그 아이는 아직도 9살이었다.

난 스물 일곱 어른인걸? 난 언제든 섹스를 나눌 수 있는걸? 아이도 낳을 수 있어.
결혼도 할거야... 교회에서 집사도 할건데?  난 전도사야..목사야...지금..

하나님은 내 안에 가득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게 하셨다. 그 울음소리는
너무도 슬프고 아팠다. 애처러웠다.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은 귀로 들리는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내 영혼의 아이들이 질러대는 소리였다.

내 안에 아직도 갓난 아이로 자라나지 못한 아이가 너무도 많았다.

비가 그렇게 내려 논에 물이 가득히 차오를 때 어머니는 뱃속의 나를 손으로 치며

가슴까지 차오르던 논의 물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7개월된 그 아이는
어머니의 분노에 울고 있었고 내 안에 아직도 살고 있었다.

난 스물 일곱이었다.

난 스물 일곱.  내안에 살고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항아리 안에서 살고 있었다. 가끔 내 친구들이나 사람들이
도무지 열고 싶지 않았던 항아리를 말로나 행동으로 열려고 시도하곤 했다.

물론 그들은 별 생각없이 한 태도나 이야기 였지만 나에겐 내 안의 아이들이
꿈틀대고 있던, 지독한 냄새가 나던 그 항아리 뚜껑을 열려는 시도로 보였다.

나도 모르는 방어가 시작됐다. 경건함으로 도덕적으로 시니컬함으로, 기도를
많이 함으로 수다로,,열심히 일함으로,,공부로, 나보다 나은 배우자를 찾는것

으로,,친절함과 적극적인 태도로...그러나 언제나 긴장이었다. 갈증이었다.

나만 알고 있는 그 커다란 항아리들..항아리안의 아이들..울고있는 아이
아버지를 노려보던 그 아이...똥을 싸고..오줌을 싸던 아이..파스를 붙이던

아이..그녀가 나에게 주었던 그 상처받았던 배신의 아이..

교회에서 아무리 찬양을 해도 하나님께 기도를 해도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성령의 주먹이 커다란 항아리들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상상할 수 없이 고약한 냄새가 피어 올랐다. 다른 사람들이 맡을까봐

겁이 났다. 결국 몇개의 항아리가 깨지고 말았다. 깨진 파편이 내안을 찌르기

시작했다. 정죄하고 미워하기 시작했다. 성령의 손길이 그 날카로운 파편을

시나브로 쓸어내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완전한 스물 일곱으로 자라났다. 몇몇은 아직도

자라나고 있는 중이었다.

난 스물 일곱이야.

난 스물 일곱이야.

난 스물 일곱.....





                             靑潭

소나기

 
후두둑 후두둑.

조립식 막사의 양철 지붕을 깨우는 여름날의 외침.

아직 대낮인데도 깜깜한 오후다. 식당에서 구보로 뛰어 왔지만 이미 젖을데로 젖어

등짝에 착 달라붙는 전투복이 부담스럽다. 빗속에서의 소란했던 빗방울들이 물감을

흠뻑 먹은듯 다채롭게 보인다.

후두둑 후두둑 메트로놈 진동에서 음률로 변조된다.

식물들 사위로 진한 녹색 단조가. 희나리 등걸에 핀 버섯에선 북소리가. 그리고 유

리창을 때리는 아프페지오와 화성을 이루는 붉은 대지의 안정감. 빗방울과 호흡하는

모든 세계가 교향악을 연주하고 있다. 살풀이라도 하듯 세차게 토해내는 취한 하늘

아래 몇몇의 감상객이 있을까 자못 궁금해 지기도 한다.

12시 30분. 하절기라 1시까지 내무반에 누워 오침중이다.

아홉살 때 였던가. 장마철 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무슨 기념일이라 아침부터

14인치 흑백 TV 앞에서 진을치고 앉아 있었다.

스물 네 해의 감성을 이룬, 황순원 님의 '소나기'가 TV 문학관

타이틀로 방영되었다.

개울가에서 물을 움키며 장난을 치던 소녀. '바보' 라는 한 마디와 조약돌을 뒤로

하고 이유도 없이 내달음치던 소년. 무릎에 생긴 생채기를 보듬던 순수. 맑고 푸른

하늘. 단조로운 흑백의 조화였지만 쏟아붓던 그 굵은 소년의 소나기가 창밖에서도

내렸었다. 소녀가 앓을 때 난 소년이 돼 버렸고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이후 칼라

TV 로 바뀐 후 두번인가 더 보았는데. 두번째 부터는 왠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수염이 한두가닥 자랄 시기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막사 밖에선 굵디 굵은 순수가 곤두박질치며 노래하고 있다.





                          靑潭

To finish my story

 
하루가 시작된 때는 10시가 조금 넘어선 시각이었다.

어제의 막내녀석 골방 도배가 모두 끝나고..그곳에 있던 창고 비슷한 것을

분해 조립해 새로운 형태의 모양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그것은 어찌보면

내 몸에 덕지 덕지 붙어있던 습관들을 해체해가는 작업과 비슷했다.

어머님께서는 오늘 모두 끝내자며 손수 무거운 장독들과 물건들을 나르고

계셨다. 그래도 큰녀석이란 계급의식이 발동해 골다공증 이라는 이유를 대

며 그 무겁던 장독들 - 사실 이 시대에 그것도 서울에서 숯을 띄운 장독을

가진 집은 그리 흔치 않다 - 을 모두 옮겼다.  군에 갔다왔다는 미묘한

자긍심은 어쩔 수 없는 현실 인식을 동반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

모든 집안일을 끝마치고 그 지저분 하던 창고에서 아직도 풀 냄새가 나는 이

쁜 골방으로 변신을 한 구석에 앉아 가만히 지난날을 되짚어 보았다.

아버지의 파격적인 인격의 변신과 어머님의 고난, 그것은 극히 작은 부분

부터 시작 되었었는데. 그 와중에도 선험적 지적 사모함은 소진되지 않고

우리 새끼- 아버지...당신 세대에선 자식들을 그렇게 애끓게 호칭하신다-들

은 참으로 착하고 죄짓지 못하고 살았다. 사실 난 이것도 참으로 마음이 아픈

것으로 생각한다.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

도 하며 부모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낼 때 우

리는 고요히 지금의 시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 부속 여중을 다니던 하얀 칼라의 교복을 입은 누님은 흑석동까

지 가야할 버스 회수권 구입할 때가 될 때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마음을

졸이다 겨우 한장에 60원하던 회수권 몇 권 구입할 용돈을 타가곤 했다. 그녀의

가녀린 손으로 콩자반을 만들어 누런 양은 도시락에 채우고, 마치 그녀의 눈

물로 만들어진 세월을 채우듯이.

당시 난 초등학교 2학년의 내성적이고 다혈질의 장남 카리스마였다. 밑으로

4살씩 터울이 진 아장 아장 걸어다니던 막내와 둘째 녀석이 있었다. 하루는

사당 2동의 소위 우리집에서 다락을 치워-사실 그곳은 치워도 쥐이와 벼룩

이 많이 덤벼들었다- 누나의 방을 만들어 주었다. 누나는 그 또래에 비해

꽤 큰 키였기에 -160정도였을거다- 허리를 굽혀야 겨우 다닐 수 있는 그 다

락방이 힘겨웠을 거다. 하지만 온 가족이 한 우리에 뒤엉켜 잠을 자야 했던

당시로써는 그녀만의 다락방 이라는것 때문에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다락방은 그녀에게 소녀의 감수성과 꿈을 주었을 것이다.  당시 14인치

미닫이 흑백 텔레비젼에서 방송되던 캔디를 볼 때마다 그녀는 눈가에 눈물

을 가득히 담고 있곤 했다. 아마...그녀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대문밖엔 넓은 공터가 있어서..둘째 녀석은 콧물을 소매로 핥아내며 열심히

구슬-다마 치기 라고도 했었다- 따먹기를 해 한아름 안고서는 마치 자기의

보물인양 좋아하곤 했다. 장남이고 상상속에서 살던 나는 그런것이 하찮게 보였

고 그 자식이 그걸 전유물처럼 자랑 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을 만

큼만 패주곤 했다. 어느날은 둘째와-사실 우리는 공모자며 콤비라고 자부하

곤 했다.- 귤이 너무나 먹고 싶어 근처 진열된 과일 가게를 지나치며 몇개

씩 주머니에 슬쩍 훔쳐 넣곤 했는데.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이 참말임을 그때

깨달았다. 콧 때가 줄줄 흐르는 두 녀석이 몇번이고 과일 진열대에 근접해서

지나치는 지라..곰보 주인녀석이 눈치를 챗는지..우리 두 형제의 머리카락

을 힘껏 쥐고 잡아 들어갔다. 가는 도중 발로 차이기도 하면서 - 우리나라

엔 개인의 인격과 인권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있지만 그건 유명무실한 것이

었다. 우리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없을 만큼 차이고 패대기면서 거짓 자백

까지 했다. 전에도 몇번의 범죄 사실이 있었다고 말이다.

그 때 나는 곰보들의 열등감이 얼마나 크며 그 외적 표출은 살인을 할 수도

있을 만큼 사디즘적이고 마조히즘적 이라는 진리를 깨우칠 수 있었다.

난 이세상에서 곰보가 가장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다.

우리는 그래도 양심이 있었는지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그리고 집 주소를 그 곰

보에게 끝까지 자백하지 않으려고 무지 애를 썼지만...그 곰보는 세상물 다

먹은 녀석이라..나와 어린 둘째녀석을 분리해 대질 심문을 했다. 기어이 6시간

이 지난 밤 8시에나 누나가 하얀 얼굴로 우리를 찿아왔다. 그 시간에도 아

버지는 일당 노동일을 하고 있었고..어머니는 시장에서 꼬추 말린것을

팔고 있었다.

그래도 부모 덕을 많이 본지라..나나 누나의 얼굴이 통통하고 하얗고 귀티나

게 생겨 보였는지 그 곰보놈은 주황색 귤 3개 훔친것을 초범이 아니었다며

과장을 하더니..기어이..그녀의 가녀린 손에서 5천원이란 큰 돈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일주일이 흐른후 그녀는 어머니께 머리채를 잡히며 몇시간이나..맞아야 했

다. " 이 썩을 년아...그래..니 애미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더냐..응,,참고

서 산다고 하드니만..그 참고서좀 내놔봐..아야..이 썩을년아.."

내 안에있던 곰보에 대한 두려움은 심연의 곳곳에 또아리 틀고 있었다.

그것은 내 삶의 경로마다 나를 사로잡는 상흔의 근원처럼 행세하곤 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성경에도 곰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마음의 곰보...심령의 곰보...영혼의 곰보에 대해서 말이다.

어른으로 성장해 오면서 곰보에 대한 기억은 사라져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하신 후 부터 또 다시 곰보에 대한

두려움들을 새롭게 부각 시키고 계셨다.

내 주위에는 외적인 곰보가 없었지만 어느날 부터인가 곰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내 안의 녀석은 이미 곰보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고 그 안에는 냄새나는 미움과 시기, 두려움,

음란함, 게으름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무서웠다.

곰보에 대한 두려움이 왜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의문에 일침이 가해진 것이나

진배없었다. 내 안에 이미 곰보를 안고 살아 왔으니 말이다. 곰보는 먼곳에

있지 않고 이미 내 안에 있었다.

하나님을 알아가며 성령의 치유하심으로 내 영혼의 곰보 구멍에 있던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빼내어 소제하기 시작했다.

기도로 빼내어진 자리에는 더욱더 선명한 곰보 구멍이 생겨났다. 아팠다.

슬펐다. 내 영혼의 얼굴은 선명한 구멍이 뻥뻥 뚫린 곰보였다.

너무도 오랜동안 곰보구멍에 채워져 있던 것들이 난 곰보가 아닌듯 착각하게

했다. 그 구멍을 가리고 있던 맨질한 얼굴에 세상의 화장을 했다.

이기와 시기, 미움과 게으름, 음란함과 세상 학문, 외적인 기준...

놀라운것은 그 구멍이 숭숭 들어나도록 기도와 성령으로 청소를 했지만

이내 그 자리엔 더욱더 단단하고 빼어내기 힘든 것들로 채워져 버리곤 했다.

영혼의 곰보는 육체적 곰보보다 더 끔찍했다.

내 영혼에 선명하고 깊게 패인 그 곰보 구멍에 이젠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다른것들이 더욱 견고하게 채워지지 않도록 난 한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기도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누나의 영혼에는 너무도 서러운 곰보 자리가 많다. 어머님 영혼에는 더 큰

영혼의 곰보 구멍이 있었다.

이제 주위에는 눈에 보이는 곰보들이 아닌...마음의 곰보들이 너무도 많다

난 그들의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워 주어야 할 지 알고 있다.

그들에게 가르쳐 주리라..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그 곰보 구멍, 그 열등감,

낮은 자존감의 구멍을 채울 수 없다고 말이다.






                          靑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