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4, 2007

한 여름 밤의 꿈


지하철 문이 열리전 전까지 몇초의 정지된 시간.

지하철통 안으로 드문 드문 빈자리가 보인다.

뒤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짙은 녹색 시트의 빈자리를 발견한 모양인지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부산하게 힘을 가해온다. 중년의 기름기 낀 콧바람이

목덜미를 더듬는다.

낮동안 봄바람에 마음을 야릇하게 하던 포근한 날씨가 오후가 되니 이내 쌀쌀해졌다.

결혼.

그 신성한 의식을 축하하고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회 의식대로 목사님의 경건한 말씀과 축사를 통해 두 사람


한 몸됨을 선포하였다. 연신 두 눈가에 주름이 지도록 커다란 눈망울을 또릿하게

뜨고 웃기만 하던 신랑과 무표정하게 긴 마스카라 속눈썹을 다소곳이 내리감고

있던 신부. 여느 철부지 선남선녀의 결혼처럼 부산하게 장난스럽고 거창하지도

않은 차분하고 겸손한 혼인식이었다.

그 두 남녀를 바라보는 하객들의 눈엔 두사람의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잠시라도 함께 꿈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

교회에서 조용하게 열린 혼인식 이어서였는지 내심 흐믓한 여운을 마음에

담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보통 토요일에 개최되는 예식장 결혼식은 입구부터 시장을 방불케한다.

부조를 받는 데스크는 흥행하는 영화 표를 파는 곳처럼 무질서하고

결혼과 무관한 공간처럼 보이곤 한다.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것은

그 신성하고 소중한 혼인식이 마치 뻥튀기 기계에 한수저의 쌀을 퍼 넣고

열과 압력을 가해 단 2초만에 펑 하고 튀겨져 나오듯이 싱겁게 시작되고

끝나버리는 것이었다.


난 그런 인스턴트 번개 결혼식을 두고 '조루 혼인식' 이라고 되씹곤 했다.

누가 결혼했는지조차 갈비탕 먹고나면 잊어버리는 요즘의 혼인식을 보다가

성스럽고 차분한 혼인식을 보며 내심 뿌듯한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었다. 그 혼인식엔 성령님께서 동행 하시고 계셨다.

멘델스존의 '한 여름 밤의 꿈' 처럼 단아하고 평화로운 결혼예식을 올리고 싶어
졌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마자 빈자리를 찾아 쏜살같이 달려가는 저 중년의

아주머니도 한여름 밤의 꿈을 꾸셨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올 여름엔 꿈을 꿀 수 있을것 같다.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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