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4, 2007

누나의 유산 소식

 
첫째를 낳은지 몇년이 되는 누나의 임신 소식은 시댁의 기대를 자못 고조 시켰었다.

시아버지와 어머님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한다.

시아버지는 당신 세대의 표현으로 큰 며느리의 기특함에 손대면 베일듯한 빠빳한
만원권을 삼십만원이나 넣어 주시고 또 무작정 한약을 지어 오셨다고 한다.

시집가기전 친정에서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란 탓인지 누나는 독립심이
강한 처녀였다. 그녀의 마음에는 많은 슬픔과 상처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항상 다른 사람에 대한 긍휼함과 애처러움으로 발현되곤 했다. 착한아이(善兒)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누나는 결국 그 성품이 나이팅게일이 되게 하였다.

친정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너무도
사랑해주는 매형을 만났고 시댁 사람들도 딸처럼 아껴주는 분들을 만나 행복해 했다.

장자에게 시집간 덕을 보느라 첫째로 딸을 낳고 조금은 마음의 부담을 안고 있었던
차에 임신을 하게 되어 모든 관심을 온 몸에 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제 모처럼 누나집에서 묵을까 하는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다.

근처 원자력 병원의 간호사로 근무하기 때문에 자주 통화하기 힘들었던 차라
누나의 목소리는 참으로 반가웠다.

누나의 무게실린 허스키한 목소리는 대번에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나 어디 아퍼?'  라는 소리에 '나 유산했단다...'

유산...유산이란 배속의 아이가 생명을 잃어 더이상 성장하지 않는것을 말하는것인데.
누나의 수 많은 시간들이 이 순간 마음을 너무도 슬프게 했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아플까..얼마나 아플까...

그동안 나도 많은 유산을 하지 않았나 싶다. 어릴적 품었던 꿈들, 자라오면서
세상을 향해 가졌던 계획들, 이상,,

마음을 부풀게했던 많은 것들을 유산시켰던 기억이 있다.
현실과 사회적, 관습적 강요의 눈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해버린것들.

아직 내 안에 아릿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들이 가득하다.

또한 많은 믿음의 친구들과 선배들이 하나님께서 주셨던 비젼들과 유업을
유산 시키기도 하고 자의로 낙태시키기도 했던것을 보았다.

태아 유산은 자궁속에 죽어있는 그것들을, 생명을 잃어버린 차가운 그것을
긁어내야 하는 아픔을 견뎌야 한다.

생명의 유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아픔과는 달리 믿음의 유산을 할 때
우리는 너무도 무감각한 모습이다.

너무도 잔인하다. 어떻게 믿음의 자궁속에 잉태된 것들이 유산되고
낙태되는것에, 차가운 이기와 현실의 갈쿠리에 긁어내어지는

믿음의 씨앗의 비참함과 슬픔에 어찌 우리는 이리도 냉소적인가.

이런 우리의 일상적 모습이 나를 더 슬프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기쁜것은 아직 내 안에 품어져 잉태된 믿음이란 아이는 유산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믿음의 아이가 자라고 자라서 열매를 맺을 때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나,,,내가 누나 기도 잘 안했기 때문이야..누나,,,마음이 많이 아프지..

누나 위해 기도 할께..몸조리 잘해...'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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