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4, 2007

사랑은 서로를 배워가는 것

책을 읽다가 창문을 열어보니 밤바다 위 포말처럼 고요히 구름이 흐르고있다.
부모님이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으셨는지 두런 두런 하는 소리가난다.

가만히 방문을 열어 보니 안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모두가 잠든 이시간에
두분이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실까 귀 기울여 보니

"길영(永)자는 이렇게..이렇게 쓰는 거야...응 응 그래..아니..그게 아니구.."

놀라운 일이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시지 않은 어머님에게 종종 무시하는 투의

말을 던지시던 아버지셨는데, 결혼 생활 40년이 되가는 요즈음 가족들의 이름을
한자로 쓰는 것을 어머님께 가르쳐 주고 계셨다.

부끄럽지만 대학생인 나 조차도 읽을 줄만 알지 온전히(?) 가족들 이름을 한자로
쓰지는 못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오늘 어머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 한자로 자식들과
남편의 이름을 또박 또박 써 내려가고 계셨다.

40년이나 살붙이로 함께 살았지만 새롭게 새롭게 무엇인가를 배워나가고 있고
서로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한 철학을 하나 떠올려 본다.

사람들은 종종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곧 그 말은 사랑을
시작했고 그 사랑의 크기와 양은 이미 정해졌으며 더 이상 변동되지 않을 듯이

이야기 한다.

하지만 사랑은 끊임없이 새롭게 서로를 배워가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우리가 사랑을 시작할 때 그것은 계기일뿐 지속될 수 있는 에너지는

계속 공급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종종 많은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할 때 이미 모두 사랑해버린 듯 시작한다.
그리고 이네 지치거나 서로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고 그것에 대해 감당하지

못해 갈등하거나 이혼하는 사례가 많은 듯 하다. 그것은 서로의 내부에서
요구하는 사랑의 공급과 서로를 배워가려는 의지의 박약에서 온다고 믿는다.

그러한 모습은 인간관계 곳곳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타인에 대해 규정하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상대에 대한 규정을 통해 그와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규정을 벗어나는

것들에 대해서는 조금은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이내
새로운 모습에 대해 대부분은 수용의 모습으로 받아 들이고 갈등을

해결한다. 만약 계속되는 수용의 요구가 있을 때 우리는 심각한
갈등을 표출하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이 때 우리가 수용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모르던 모습을 배워간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결코 부담이 되지 않을법 하다.

왜냐하면 배워가는 것은 사랑의 의지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은
결코 지겹거나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는 영구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리가 오랜시간을 함께 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서로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자신만만 하더라도 우리는 이 순간 새롭게 새롭게 서로를

배워가야만 한다.

마치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끊임없이 깨달아 가듯이...




                          靑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