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4, 2007

품어내기

낮아지고 작아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랑을 먼저 시작해야 한다.

사랑이 시들고 미움과 슬픔의 뿌리가 뻗은후
사랑의 고갱이는 붉은 열매를 맺는다.

그 기억의 변증법들은 깊이 깊이 묵혀서
시고 떫음을 지나쳐 본체의 맛과 향이

절로 피어날 때 꺼내야만 한다.
우리는 판도라의 어리석음이다.

어린시절의 취미였다고나 할까. 다른 아이들처럼 골목에서 떠들썩하게
딱지 치기를 하거나 구슬 치기, 땅따먹기를 하기 싫어했다. 어린 눈에

더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 싫었다. 신문
지나 마분지를 접어 만든 사각형의 딱지에 소유의 즐거움과 착취의

쾌락을 그리고 승부의 본능을 부여해 놀이 하는 것이 영 흥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난 자치기나 연 날리기, 불장난을 주요 놀이로 삼았다. 그것은
주로 겨울철 놀이였다. 옆집 지붕에 한 뼘 만큼 쌓인 하얀 눈에서 일

요일의 태양을 맞이하고 담요안에 훈훈한 화석 연료의 생기가 가득할
때의 나른함을 좋아했다.

낮엔 깨끗한 사발에 모래를 씻어넣고 동생 녀석의 1호 재산인 유리구
슬 몇 개를 놓는다. 그리고 팔당호에서 공수되온 수돗물을 부어 고요

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골목 녀석들의 엄지와 중지 사이에서 사정없이
던져져 부딪히고 깨지고 상처입어 탁해진 밉살스런 유리알들이 물속

에 넣어지면 깨끗이 아물었다. 그것은 유리구두를 신은 신데렐라처럼
투명하고 순수함의 절정이었다.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 하지만 너그

러움과 그 맑음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누나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되돌아 보니 구슬이 온데 간데 없다. 물과 모래 뿐이

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것는 제자리에 있었다. 그는 물보다 유연했
고 빛과 같기도 했다. 내 마음이 희어지고 희어져서 빛이 되면 구슬이

보이고 나쁜 마음을 먹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라 믿었다.
인간의 본능인지 순결의 절정을 보면 교활한 호기심이 동하나 보다.

손을 넣어 눈 앞에 꺼내어 보니 투박한 유리일 뿐이었다. 가슴이 아리
고 슬펐다. 치유와 평화의 끝에 이른 그것을 망가뜨린 자책이었다. 한

편으로 영악한 아이의 눈에 비친 그 현상이 신기한 의문으로 남았다.
물속에 담겨진 유리알의 영롱함이나, 꺼내졌을 때의 그 참담함과 현실

적인 슬픔이라니. 구슬의 모양을 그대로 품으며 순수를 살려내는 물의
너그러움이 내 안에도 있을까 하는 궁금이 있었다. 어떤 머뭇거림도

없이 형태에 흡수되기도 하며 포용하기도 하는, 유리알을 부끄럼 없이
물이 되게하는 그 유연한 모성(母性)이 평화의 궁극이었다. 그리고 그

순리의 상태 그대로 있는 것이 치유의 정도(正道)임을 깨닫게 했다.
한가지 불변의 고집 이라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방향성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주보다 큰 포용을 위한 낮아지기였으며 작아짐의 변
증법이었다.

잣나무 침엽 끝에 맺힌 아침 이슬을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뒤에 있던 거대한 산과 하늘이 그 작음속에 들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젠 마음껏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靑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