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4, 2007
소나기
후두둑 후두둑.
조립식 막사의 양철 지붕을 깨우는 여름날의 외침.
아직 대낮인데도 깜깜한 오후다. 식당에서 구보로 뛰어 왔지만 이미 젖을데로 젖어
등짝에 착 달라붙는 전투복이 부담스럽다. 빗속에서의 소란했던 빗방울들이 물감을
흠뻑 먹은듯 다채롭게 보인다.
후두둑 후두둑 메트로놈 진동에서 음률로 변조된다.
식물들 사위로 진한 녹색 단조가. 희나리 등걸에 핀 버섯에선 북소리가. 그리고 유
리창을 때리는 아프페지오와 화성을 이루는 붉은 대지의 안정감. 빗방울과 호흡하는
모든 세계가 교향악을 연주하고 있다. 살풀이라도 하듯 세차게 토해내는 취한 하늘
아래 몇몇의 감상객이 있을까 자못 궁금해 지기도 한다.
12시 30분. 하절기라 1시까지 내무반에 누워 오침중이다.
아홉살 때 였던가. 장마철 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무슨 기념일이라 아침부터
14인치 흑백 TV 앞에서 진을치고 앉아 있었다.
스물 네 해의 감성을 이룬, 황순원 님의 '소나기'가 TV 문학관
타이틀로 방영되었다.
개울가에서 물을 움키며 장난을 치던 소녀. '바보' 라는 한 마디와 조약돌을 뒤로
하고 이유도 없이 내달음치던 소년. 무릎에 생긴 생채기를 보듬던 순수. 맑고 푸른
하늘. 단조로운 흑백의 조화였지만 쏟아붓던 그 굵은 소년의 소나기가 창밖에서도
내렸었다. 소녀가 앓을 때 난 소년이 돼 버렸고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이후 칼라
TV 로 바뀐 후 두번인가 더 보았는데. 두번째 부터는 왠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수염이 한두가닥 자랄 시기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막사 밖에선 굵디 굵은 순수가 곤두박질치며 노래하고 있다.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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