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24, 1994

레옹, 그 사랑의 끝에서

"ok" "ok" "ok" , "움직임을 함께 느껴", 주변보다 더 짙고 어두운 옷을 입어야해", "자 숨을 멈춰", "레옹, 이곳에 뿌리내려 함께 살아요." 

사내녀석들의 땀 냄새로 가득한 내무반 붙박이 벽에 놓인 VTR 은 Play 발광 다이오드를 빨갛게 치뜨고 있다. 화면이 지날 때마다 TV 에 집중해 있는 병사들의 턱을 괸 얼굴들이 무표정하게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한다. 

영화 레인맨에서의 더스틴 호프만을 연상케한 표정 연기가 일품이었던 장르노가 연기한 레옹과 와일드 오키드의 여주인공 -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 이미지의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한 마틸다.

마틸다의 색깔은 라임오렌지 나무의 제제와 비슷했다. 관심밖의 영역에서 그저 바라보고, 가끔 심하다 싶을 만큼 매 맞기도하는 그 나이의 아이들이 가질 순수함과 발랄함은 기저에 억눌려 감추어져있고 영악한 눈빛과 악바리같은 어리광, 예민한 감수성등이 그녀에게 강한 흡인력을 가진 눈을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카메라 앵글이 마틸다의 실루엣을 화면 가득 담고 있을 때 그녀의 코와 입술은 깎아 놓은듯 아름다웠다. Fade-in 되면서 클로즈업 된 긴 속눈썹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만감(萬感)의 메시지를 주는 눈동자 - 사실 마틸다의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과 어린 소녀같은 발랄함, 장난끼를 동시에 풍기는 야누스적 원천은 그녀의 눈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레옹의 그것과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고 강렬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클리너"는 레옹 신드롬으로 익숙해진 - 킬러보다 예리하면서 인간미가 진하 게 묻어나는 언어이다. 성격파 배우들의 공통점이라면 헐리우드 스크린의 판에 박힌 잘생긴 배우들과는 달리 눈이 움푹 들어가 있거나 윤곽이 샤프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데 양들의침묵의 앤소니 홉킨스,  25시의 앤소니 퀸,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만, 미저리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서 캐시 베이츠, 사랑과 영혼, 싸라피나, 만델라, 그리고 씨스터 액트에서 열연했던 우피 골드버그 등이 이러한 특징을 공유한 한부류에 속하며 장 르노의 레옹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무표정하게 툭 불거져 나온 조금 충혈된 눈은 방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습관적으로 창문과 환풍 통로, 가구의 배치, 출입문 위치 등 전체적인 구조를 탐색하고 꼭 커튼을 두른다. 군밤 장사 아저씨같은 윤곽에 냉정하고 말이 적은 - 프로페셔널다운 진화된 행동방식 그러나 그 속에서 배어 나오는 진한 인간미와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과 절제는 신(神)의 강제된 선물인 사랑에 의해 해리되고 어찌보면 상투적인 이야기처럼 사랑과 피, 카타스트로프(Catastrophe)의 랑데부를 보여준다. 종국에 관객에게 남기는것은 늘 그렇듯 사랑과 정의, 평화의 여운이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 해석이라 대중적 느낌인지 확인한바 없다. 

90년대 들어 본 영화는 대부분 상당히 난해한 것들이었다. 소위 포스트 모더니즘을 추구하는 감독들의 다크 파스텔 톤 화면 구성은 그 앵글이 과격하거나 성(性) 모랄 박스(Culture)의 보수주의를 겨냥 했거나 정신분석적 심리학, 심지어 소품의 색깔과 빛의 분산에 의한 관객의 뇌포(腦胞) 반응 까지도 계산한 신중한 것들이었다. 그런 배경 때문에 레옹의 컷트마다 숨어있는 메시지를 읽어 내려고 오감(五感)을 동원하는 정성을 기울였지만 지극히 주관적 스키마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덕분에 뤽 베송 감독은 충분히 슬펐을(?) 것이다. 착각 이었는지 모르지만 잠깐 비춘 절제된 생활과 고독감의 결투 외에는 특별한 갈등의 피크는 느끼지 못했다. 

레옹과 마틸다를 줄곧 휘감고 있던 분말처럼 부서지는 창가의 햇살과 화분.  '햇살'은 아마도 레옹에게 자양분이 된 마틸다의 플라토닉한(?)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 - 장 르노는 우유만을 주식으로 했는데 모성애(母性愛)에 대한 반동형성 또는 애정 결핍에 의한 일종의 시위(Demonstration) 를 표명하며, 마틸다와의 첫 모멘트(Moment)는 그녀가 우유를 사다주는 것으로 시작 되었다. 

'뿌리 없는 화분'은 클리너로서의 고독감, 인간관계의 단절, 약간은 편집적인 - 자신이 머무는 곳의 모든것을 탐색하는 - 레옹의 자아상을 대변하는 오브제로 사용된 듯 하다. 

즉, 마틸다 = 모성(母性) = 우유 = 햇살 이며, 레옹 = 뿌리없는 화분 = 고독 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둘다 정에 굶주려 있다는 점에선 공통으로 적용된다.(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혀두고 싶다) 

매개로 등장한 악당(?) 들과의 투쟁과 마틸다를 탈출 시키는 레옹의 모습은 뿌리없는 화분에서의 몸부림 이었고 "레옹 이곳에 뿌리 내려 우리 함께 살아요" 라는 마틸다의 마지막 대사로 그의 몸부림과 고독과의 투쟁은 끝이났다. 

군에 입대후 2년여 동안 정말 보고싶은 많은 영화가 나왔었다. 그러나 휴가 때 본 '너에게 나를...', '세가지색 中 Red', '쉰들러 리스트' 외에는 전혀 스크린 문화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중대 내무반에서 VTR 을 통해 이 영화를 볼 기회가 주어져 너무나 기쁘다. 

지난 외박 때 '포레스트 검프'와 이번의 '레옹'은 전체 스토리는 단조로운듯 했지만 군 복무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에겐 많은 감동과 여운을 남겨 
주었다. 

靑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