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ne 28, 2016

관계 (Relationship) III (6월 28일 한국일보 칼럼)

세상 모든 사람 사이에는 관계의 네가지 국면(Four phases)이 존재한다. 허니문 국면(Honeymoon Phase), 폭풍 국면(Storming Phase), 표준 국면(Norming Phase), 그리고 형성 또는 성취 국면(Forming or Performing Phase) 이다.  이 네가지 국면을 통과하며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가로막고 깨는 요소로 인간의 본질적인 죄(Sin), 교만하고 이기적인 마음, 동감(Empathy)능력 결여로 인한 미성숙, 잘못된 주변의 의견, 삶의 나눔 결여,  그리고 소통의 문제등 여섯가지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요소들로 인해 상처받고 깨진 인간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첫째, 깨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댓가 지불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해야만 한다. 고린도후서 5장 20절에서 21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먼저 움직이기 시작 하셨으며, 관계 회복의 책임을 하나님이 지려 하심을 볼 수 있다. 이와같이 우리는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깨진 관계 회복을 위해 기꺼이 댓가 지불하고 책임지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해결되지 않은 관계를 그냥 방치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을 어렵고 힘들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와 관계가 깨진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역사 하시도록 인내하며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구해야만 한다. 시기 적절한 때에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성령이 도우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셋째,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려야 한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한 것처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 관계 회복은 그의 나라와 의가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내 자신만을 위해 그것을 붙잡고 집착하면 상황이 더 어려워진다. 내가 먼저 풀어 놓을 때 하나님이 역사 하신다.

 넷째, 용서해야 한다. 관계가 깨짐으로 인해 마음 안에 뿌리 내린 원망함을 포기해야 한다.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의 행동을 탕감해야만 한다. 복수하고 싶은 감정을 내려 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대하시기 때문이다. 용서를 즐겨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골로새서 3장 13절은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명령한다. 또한 이사야서 43장 25절에서 “나 곧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다 용서하심, 더이상 기억하지 않으심을 통해 주님과의 관계에서 더이상 인간의 죄가 개입되지 않는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용서다. 진정한 용서는 자유함을 준다. 용서를 통해 우리 마음을 풀어내지 않으면 관계 안에서 자유함이 없게 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용서하고 잊어버리라고 명령한다. 용서하면 개인적인 자유함을 갖게 된다. 더이상 관계가 깨진 사람을 만나는 것에 두려움이 없게 된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을 경우 관계 자체가 죽게 되어 계속 용서하지 못한 사람을 생각하며 속박을 경험하게 된다.

 다섯째, 겸손해야 한다. 내 자신의 고집스러운 마음, 교만, 방어적인 마음을 정직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겸손하게 나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만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섯째, 기도하며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을 섬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사람이 성공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선을 행함으로 악을 이기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관계가 깨지고 나를 상처 입힌 사람을 축복하고 기도해야 한다. 나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는 것이 성경적인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38절에서 45절에서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뺨을 내놓고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내주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경적 원리대로 선택하고 행동해야만 한다.

모든 인생 안에 존재하는 관계의 네가지 국면을 통과하며 관계가 깨졌을 때, 이상의 여섯가지 원리를 행동으로 실천함으로써 관계의 성취 국면(Forming or Performing Phase)을 취득해 묶인것이 풀리고 자유케됨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by 김영기 목사


한국일보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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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Relationship) II (6월 21일 한국일보 칼럼)

지난주 관계I 에서 모든 사람 사이에는 관계의 네가지 국면 (Four Phases)이 존재한다고 나누었다. 그것은 허니문 국면(Honeymoon Phase), 폭풍 국면(Storming Phase), 표준 국면(Norming Phase), 그리고 형성 또는 성취 국면(Forming or Performing Phase) 이다.

그렇다면 이런 인간 관계의 자연스러운 네가지 국면을 통과해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가로막고 깨는 요소는 무엇일까?

첫번째 요소는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죄(Sin) 때문이다. 죄는 우리가 갖는 관계에 벽(Wall)을 세우게 한다. 죄의 두드러진 특징인 어두움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숨는 관계, 속이고 감추게 만든다. 또 다른 사람과 나의 삶을 자유롭게 나누며 빛가운데 서지 못하게 만든다. 

두번째 요소는 죄와 더불어 함께 들어온 교만하고 이기적인 마음이다.  잠언 18장 2절에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말하고 있다. 또 잠언 21장 4절은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고 선언하고 있다. 다시말해, 열등감의 동전의 양면인 교만과 이기적인 마음은 자기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되기에 관계를 깨뜨리게 된다.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며 상대방을 이기고자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게 된다.

세번째 요소는 다른 사람에 대한 동감(Empathy) 능력이 없는 미성숙함이다. 미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모르고 당황하게 하거나 아프게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컨데, 어린 아이 여럿을 키우는 엄마가 너무 힘들다고 푸념할 때, “아이고 정말 힘들겠네” 동감 하기 보다는, “아이 넷 키우는거 해볼만 하다던데?” “나도 하나 낳아볼까?” 쉽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또 유산을 경험한 사람에게 “참 마음이 아프겠어요” 하기보다 “아니, 아이 가졌다고 하더니 배가 안불렀네? 왜 거짓말을 했어?” 농담처럼 함부로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동감 능력이 떨어지는 미성숙한 사람들은 관계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초현실적이기 때문에 이상적인 것을 기대한다. 다른 사람이 완전한 것을 기대한다. 그래서 완전하지 못한 타인을 발견했을 때, 상처받고 관계의 네 국면을 계속 통과하지 못하고 떠나거나 거리를 두게 된다. 왜냐하면 현실적이지 못한 기대로인해, 폭풍 국면(Storming Phase)에서 맞닥뜨리는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고통을 느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사람들은 상처가 존재하지 않는 관계를 원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 관계에서 갈등과 어려움은 직면해 통과 해야만 하는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과 13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 하라” 고 선언한다.

건강한 인간 관계를 방해하고 깨는 네번째 요소는 우리 주위의 잘못된 상황이다. 잘못된 철학, 책임감 없는 행동, 타인을 비난하는 사상, 세상이 이야기하는 쉬운 길, 나의 권리와 이익을 취하라는 주변의 소리 등이다.

다섯번째 요소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삶을 나누는 충분한 시간을 갖기 보다는 표피적인 만남만을 갖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아무리 자주 만나고 시간을 함께 보내더라도 사랑받지 못한 느낌, 관심밖으로 제외된 느낌, 방치당하는 느낌, 무시 당하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여섯번째 요소는 소통(Communication)의 문제이다. 내가 말하려는 것과 상대방의 이해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려는 의미를 듣는 이가 전혀 다르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 남편보다 키가 더 큰 한 여성의 아이에게 칭찬의 의도로 “아이고 어쩜 엄마 닮아서 아이가 정말 키가 크고 이쁘네” 했다가 평상시 남편보다 키가 큰 것을 힘들어하던 여성이 불쾌하게 여기는 경우와 같다.

건강한 인간 관계, 부부 관계, 교회 공동체 관계, 자녀와 부모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위에 언급한 관계의 네가지 국면을 통과 하는것을 방해하고 깨는 이런한 요소들을 충분히 숙지 해야만 한다. 또한 인간 관계의 네가지 국면인 허니문 국면(Honeymoon Phase), 폭풍 국면(Storming Phase), 표준 국면(Norming Phase), 그리고 형성 또는 성취 국면(Forming or Performing Phase) 이 우리가 숨쉬고 사는 평생동안 지속되고 반복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과정을 반드시 직면하고 통과해내 열매맺는 삶, 성숙한 삶을 살기로 작정해야만 한다.


by 김영기 목사
한국일보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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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ne 16, 2016

관계(Relationship) I (6월 14일 한국일보 칼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순간 관계(Relationship)가 형성된다. 어떤 이는 단 한번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도 있고 또 언젠가 반드시 꼭 다시 만나게 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짧은 기간 만남의 관계를 갖기도 하고 오랜동안 인연을 이어가기도 한다.

이런 여러가지 형태의 관계에는 네가지 국면 (Four Phases)이 존재하게 된다. 바로 허니문 국면(Honeymoon Phase), 폭풍 국면(Storming Phase), 표준 국면(Norming Phase), 그리고 형성 또는 성취 국면(Forming or Performing Phase) 이다.

일반적으로 허니문 국면(Honeymoon Phase)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친절과 사랑을 보여줄 때,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때, 나와 다른 사람일 때 생기는 호기심으로 인해, 처음 만났지만 아름다운 성품으로 인해, 그리고 외적으로 관심이 가는 모습으로 인해 시작되고 형성된다. 이 국면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좋은 모습과 상대방의 좋은 모습만을 보게 된다.

허니문 국면을 지나는 동안 전에는 보이지 않고 몰랐던 것들이 상대방에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된다. 이 때부터 관계의 폭풍 국면(Storming Phase)이 시작된다. 서로의 사소한 다름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내가 이정도 밖에 안되는가?” 의심하는 마음을 갖기도 한다. 동시에 “정말 이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이 사람은 왜 이럴까?”, “굳이 이런 관계를 가질 필요가 있을까?” 하는 내적 질문과 갈등을 하게 된다. 이 폭풍 국면은 관계의 다음 단계로 진행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왜냐하면 이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이 있는 인간 관계안에 갈등이 없다면 현실적이지 않을뿐만 아니라, 그것은 생명이 없는 존재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폭풍 단계에서 충분히 시간을 가지며 그 관계를 현실적으로 바라봐야만 한다.

그런데 이 관계의 폭풍 국면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상대방이 나를 있는 그대로 용납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이 때 그러한 거절감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묵묵히 지나가는 이가 있고, 두려움을 견디지 못해 관계 자체를 거부하고 거절해 버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또는 관계의 한계를 미리 정해놓고 어느 선 이상 관계의 진전을 막아 버리는 사람도 나오게 된다.

이 폭풍 국면은 종종 관계가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한다. 왜냐하면 각 사람에게 잠재 되어있던 문제들이 관계 안에서 드러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동안 지니고 있던 문제들이 관계 안에 들어온 상대방이라는 거울에 비춰져 내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을 견디지 못해 도망(포기)가거나 폭풍 국면을 피해 다른 관계의 지름길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이런 시도는 “관계(Relationship)는 배워가는 것, 훈련하는 것” 임을 간과한 것이다.  도망가거나 지름길을 찾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법을 결코 배울 수 없을뿐만 아니라 건강한 관계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마치 사과 나무가 6년만에 열매를 맺고 포도 나무가 3년만에 열매를 맺는데 중간에 더 빠르게 열매를 맺으려고 시도하는것과 같은 것이다.

인간 관계의 폭풍 국면을 포기하지 않고 통과하고 나면 표준 국면 (Norming Phase) 안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 때는 내 자신을 관계안에 있는 상대방에게 헌신하는 단계이다. 이 사람과의 관계(Relationship)를 위해 기꺼이 댓가 지불을 하기로 생각하는 때이다. 헌신과 위탁의 관계가 생기게 된다.

이 관계를 지나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 그리고 실수에 대한 용납과 사랑으로 덮음이 일상이 되며 서로를 성장하도록 이끌어주고 밀어주는 형성 또는 성취 국면(Forming or Performing Phase)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관계의 네 국면을 묵묵히 통과함을 통해 진정한 관계란 나 자신의 내적 성숙의 열매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관계의 네 국면을 가로막는 장애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다음주 관계(Relationship) II 에서 나누겠습니다. 


by 김영기 목사
한국일보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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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une 6, 2016

경계(Boundary) (6월 7일 한국일보 칼럼)

거대한 우주 공간부터 작은 원자와 전자의 세계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들은 고유의 경계(Boundary)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부터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모든 창조물들은 불안정 상태에서 안정 상태로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예컨데 불안정한 원자 구조는 안정 상태가 되기위해 대체 가능한 다른 원소나 전자와 강하게 합성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그것은 모든 존재물들이 안정 상태 고유의 경계(Boundary)를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Human being) 뿐만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모든 동물들도 예외는 아니다.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자기만의 고유 영역(Boundary)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시하고 그 경계를 침범하는 일이 발생하면 즉시 공격적이 되듯, 만물의 영장인 사람도 경계(Boundary)를 가지고 있다.

이런 경계에 대한 인식이 개인주의(Individualistic) 사회에서는 더 명확하게 전제되고 배려되지만 공동체적(Collectivistic)  사회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강도가 약한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공동체주의 사회든 개인주의 사회든 공통적으로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인 가족(Family)에 각 개인이 속해 있기에 가족 안에서의 경계(Boundary)에 대한 인식과 배려는 필수 불가결한 것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가족 안에서의 경계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살아가고 그것은 세대를 통해 답습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가족 안에서의 경계는 크게 부모와 자녀라는 두개의 경계가 형성되고 더 나아가 아내와 남편,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각각 고유의 경계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엄마와 아버지 두 사람의 부부로서 형성한 경계를 인정하고 보호, 배려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아내와 남편은 아내 개인의 경계와 남편 개인의 경계를 존중하고 배려해야만 한다. 예컨데, 아내가 매일 비망록(일기장)을 작성하는 사람이라면 아내의 일기장을 함부로 열어 봐서는 안된다. 또 아내의 개인 물건을 넣어두는 곳은 비상 상황을 제외하곤 허락없이 손을 대서는 안된다. 또 아이들이 아무리 어린 나이라 할지라도 아이의 방 안에 있는 아이의 물건은 아이의 허락을 득하지 않고 함부로 만지거나 버려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아내와 아이들의 경계안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만지는 순간 경계를 침해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혹자는 작은 물건 하나 만지는 것이 어떻게 큰 문제가 되느랴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은 행위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것을 지켜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실감하게 될것이다. 예컨데,  여섯살된 딸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 선물로 주었던 곰인형이 이제는 너덜너덜 해지고 때가 묻어있는 것을 본 부모가 딸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아이가 잠자고 있는사이 살며시 꺼내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 곰인형을 아이에게 안겨주었다. 아이가 새 곰인형을 반기고 좋아하며 기뻐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정작 아이는 아침에 깨어나 냄새나고 때묻은 곰인형이 사라졌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버린 곰인형은 찾지 못하고, 아이는 얼마의 시간이 지나 새 인형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여섯살이었던 어린 딸은 사십대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가 자신에게 가장 안정감을 주던 자신만의 소중한 곰 인형을 함부로 빼앗아 버렸다는 상실감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고 그것은 다양한 관계의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고백을 했다.

요컨데,  아무리 때묻고 냄새나며 너덜너덜한 곰 인형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딸 아이의 경계(Boundary)안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딸 아이에게 물어보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고 깨는 행위가 정서적, 영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야기한 것이다.

이런일은 비단 어린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세계에도 동일하게 존재한다. 상대방의 경계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조심스럽게 탐색하거나 예의있게 물어보는 과정을 통해 경계를 인정하고 배려할 수 있지만 의외로 공동체주의(Collectivistic) 또는 가족(Family) 공동체에서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거나 깨버리는 일이 쉽게 발생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 또는 일이라 할지라도 아내의 경계, 남편의 경계, 아이들의 경계, 가정 단위의 경계, 이웃의 경계(Boundary)를 민감하게 인식해 인정하고 배려하는 일이 필수불가결하다. 당장, 가장 가까운 이웃인 나 자신과 아내, 자녀들 그리고 이웃과 세계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무엇인가 생각해보고 그것을 민감하게 인정하고 지켜주며 배려해보라.  놀라운 열매를 보게 될것이다.


by 김영기 목사

한국일보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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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ne 2, 2016

싸움의 기술 (5월 31일 한국일보 칼럼)

사십대인 지금도, 나는 배가 고프면 신경질적(Cranky)이 되곤한다. 손 닿는 곳에 먹을것이 있으면 그것을 입에 털어넣고 아무일 없는듯 우아한 성품의 웃는 얼굴을 유지할 수 있지만 아내와 단둘이 있을때는 거의 어린 아이 수준으로 까칠해진다.

오늘, 아이들과 성경읽기를 멋지게 하고 다함께 식료품점에 시장을 보러갔다가 배가 고파 오기 시작하니 아내에게 짜증아닌 짜증을 부렸다. 아빠가 엄마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재잘 거리던 아이들은 조용해 진다. 쇼핑한 것들을 차에 싣는 동안에는 분기섞인 짜증의 수준으로 올라갔다. 예수 믿으라고 은혜를 말하는 입에서 욕만 하지 않았지, 온몸의 세포를 죽이기에 충분한 순도높은 분기가 불처럼 나왔다 들어갔다 했다.

사실 결혼하면서 아내와 "그리스도인으로서 싸움의 원칙"을 세워둔 것이 있는데 그 첫번째는 우리는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평생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움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두번째는, 결혼 기념일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더욱더 싸움의 고수가 되어 서로를 더욱더 성숙케 하는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싸움의 표본이 된다 였다.

이러한 원칙은 모든 갈등의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즉시 마음으로부터 떠 오르기에 자동차 기름을 넣는 동안 내가 왜 신경질적이 되었는지, 그 원천(Root)이 무엇인지 질문을 했다. 그리고 아내가 몇가지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긴 했지만 그것이 전혀 짜증과 분기의 불을 뿜어내도록 만든 요소가 아니라, 내 몸이 배가 고파서 밥을 원하고 있다며 아우성을 피우는 것이 원인(Root)임을 깨닫게 되었다. 내 안에서 일어난 원인을 놔두고 아내를 가장 만만한 희생양으로 삼는 버릇이 또 등장한 것이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 양 미간을 긴장시켰던 긴장이 풀리며 아내에게 "여보 잘못했어, 내가 배가 고픈가봐, 정말 잘못했네, 내가 이렇지..뭐...참아줘서 고마워..." 하며 용서를 구했다. 숨죽이고 있던 아이들이 다시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싸움의 원칙중 하나인 우리는 언제든지 실수 할 수 있고 연약하지만, 반드시 자정을 넘기기 전에 용서를 구하는 것을 실행 한것이다. 

아내는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그 정도가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호전 되지만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어린 아이같이 신경질적(Cranky)인 남편의 싸움걸기에 거의 고수의 경지에 이른 싸움의 기술을 발휘한다.  인내하고 기다려주며 스스로 깨닫는 순간까지 듣기를 계속한다. 그 순간만큼은 뒤에 앉아있는 여섯살 된 셋째딸 같이 남편을 다루는 무기로 싸움의 기술을 사용한다.

우리는 밤마다 원온원(One on One)을 하며 그날 일어났던 무공대결의 순간들을 복기(Debriefing)해본다. 도데체, 그런 말과 생각과, 화냄, 말이 통하지 않는 순간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서로 나누며, 상황마다 어떻게 서로에게 반응하면 좋았을지 나눈다. 이러한 나눔을 결혼한 날 저녁부터 지금까지 실행하는 동안 아내나 나나 그리스도인 부부로서 싸움의 기술이 날로날로 높아짐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싸움이 천국에 갈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 부부의 싸움의 기술이 예수님 수준에 이르길 소원해 본다.


by 김영기 목사


한국일보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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