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29, 2016

에스알 (SR) (4월 27일 한국일보 칼럼)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관계(Relationship)를 형성하며 살아가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모태(母胎)에 착상된 순간부터 강력한 생명의 끈으로 연결된 관계가 만들어지고 유아기 청소년기를 지나며 점차 사회적 관계로 그 영역이 넓어지고 깊어지게 된다. 

유아기때 부모와의 건강한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은 청소년기에는 친구들과 친밀하고 깊은 배타적(Exclusive) 관계를 만들지만 성인이 되가며 점차 다양하고 열린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성숙한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이 쉽게 관계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보이지 않는 경계를 세워 교제권을 형성하는 것을 에스알 (SR: Special Relationship) 이라고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친밀하고 독점적 관계 형성을 선호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특별히 신앙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친밀함과 더불어 열린관계를 형성 하는데 의식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친밀함을 목적으로 친한 사람, 자주 만나는 사람, 대화를 자주 나눈 사람, 함께 자주 식사를 하며 교제하는 사람들 사이에 부지불식간에 에스알(SR: Special Relationship)이라는 배타적 경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미 형성된 두 사람의 관계 안으로 제 삼의 사람이 들어가고 싶어도 보이지 않는 에스알(SR)이 강력하게 형성되어 있는 경우, 관계를 만드는데 주저하거나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의미이다.

특히, 관계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없는 이민 사회에서는 이러한 에스알(SR)이 매우 부정적이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언어적, 문화적 그리고 주류 사회의 보이지 않는 장벽(Glass Ceiling)으로 인한 자기 정체성(Self Identity)의 안정감을 둘 곳이 같은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과의 좁은 관계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민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 정체성이 불안정(Insecure) 해지고 그것을 보완해줄 관계를 찾고 있거나 이미 찾은 사람들이 안정상태(Secure)에 이르면 기꺼이 열린 관계를 형성해 누구든지 그 관계 안으로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짧은 시간안에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자기화(Assimilation and acculturation) 하면 금상첨화 겠지만 당장 목전의 삶에 전력투구 하느라 대부분이 오랜시간 이민 초기 언어와 자기문화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래서 더욱더 동일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좁은 이민자들과의 관계에 천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나마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동일 이민자들 관계속에서 에스알(SR: Special Relationship)을 인지하게 되면 심각한 거절감(Feeling of Rejection)을 경험하게 되어 정체성의 혼란이 지속되게 된다. 
비단 일반 이민자들 뿐만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더욱더 자신이 형성하는 관계들이 새로운 사람들이 쉽게 들어올 수 없는 에스알(SR: Special Relationship)을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혹은 이미 강력하게 만들어 놓고 있지는 않은지 세심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악한 영이 점유하고 있는 무엇인가를 표현할 때 ‘견고한 진(Strong Hold)’ 이라고 말하는데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친밀하지만 배타적인 관계인 에스알(SR: Special Relationship) 도 견고한 진 중의 하나임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리는 것이 아닌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가 형성하고 있는 관계는 주변 사람을 살리는 관계인지 자세히 살펴 봐야겠다.


한국일보 링크:

http://chicagokoreatimes.com/%EB%AA%A9%ED%9A%8C%EB%8B%A8%EC%83%81-%EC%97%90%EC%8A%A4%EC%95%8C-sr/

Wednesday, April 20, 2016

말의 흔적 (4월 19일 한국일보 칼럼)

얼마의 돈을 주면 인터넷에 남겨진 자신의 기록을 지워주는 회사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 기록을 지우는 것이 현재 다시 시작하는 관계나, 새로운 직장 지원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한다. 재미난 것은 기업들 심지어 교회들까지 새로운 사람을 고용할 때 인터넷 어딘가에 존재하는 지원자의 흔적을 찾아 검증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남겨진 흔적이 자신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두려워 하는 사람의 심리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아예 지면(紙面)이나 인터넷상에 글을 남기지 않고 말로만 표현 한다는 사람도 있다. 말로만 하면 녹음을 하지 않는 이상 휘발돼서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증거가 남지 않는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 돼버렸다. 왜냐하면 물리학과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공간에 남겨진 아무리 오래된 소리라도 그 세미한 흔적을 검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데, 20016년 2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과 유럽중력관측소(EGO) 등이 협력한 천체물리학계에서 우주가 생성될 때 만들어진 미세한 중력파의 존재를 검출하는데 성공했다고 전세계에 발표했다. 다시 말해서, 우주가 생성될 때 생겼던 소리(Wave)가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공간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발표에 앞서 영국의 한 과학자는 런던 시내에서 한달전, 일주일전, 하루전에 사람들이 한 말들이 소리 진동으로 사라지지 않고 떠돌아 다니는 것을 특별한 장치를 통해 검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요컨데,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온 말들이 일주일 또는 한달이 지나서도 그대로 공간속에 존재해 돌아다니고 있으며 그 흔적을 찾아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뱉어낸 말이 오랜동안 사라지지 않고 그 흔적을 고스란이 남기고 있을뿐만 아니라 언제든 그 말을 되살릴 수 있다는 엄청난 과학적 사실에, 가십과 험담으로 뱉어낸 말들을 지워 달라고 간절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지 않을까 싶다.  아내와 남편, 아이들과 이웃들에게 함부로 말했던 것, 상처 주었던 말들, 화나게 만들었던 말들, 모욕하고, 저주하고, 폄하했던 말들의 흔적을 돈을 받고 지워주겠다는 회사가 나타날 수도 있을것이다.

아마 그 회사는 악한 말, 거짓말, 아첨의 말, 비방의 말, 노한 말, 남의 말, 용서의 말, 원망과 불평의 말, 위로의 말, 참소하는 말, 축복과 저주의 말, 진실한 말 하나 하나에 가격을 따로 따로 매겨 돈을 받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도 절대 망하지 않을것이다. 왜냐하면 말을 만들어내는 혀는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 (약 3:7) 이며 칼과 같이 날카로와서 (시57:4)  파괴적인 힘으로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말의 흔적을 고스란이 검출해 낼 수 있으니 늘 조심하라는 경고가 물리학과 과학기술보다 수천년 앞서, 이미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유1: 15-16).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사람이 뱉어낸 말을 검출해 내는 과학기술이 나타나기 전부터 이미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 (시120:2) 라고 간절히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남긴 말은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한국일보 링크:
http://chicagokoreatimes.com/%EB%AA%A9%ED%9A%8C%EB%8B%A8%EC%83%81-%EB%A7%90%EC%9D%98-%ED%9D%94%EC%A0%81/

Monday, April 18, 2016

아름다운 4월

4월은 정말 아름답고 즐거운 달입니다. 왜냐하면 저희 집안 모든 여성들의 생일 잔치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진주, 지나, 그리고 여왕인 제 아내가 4월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아, 정말 멋진 4월입니다. (April is the most beautiful and joyful month because all of women in my family have birthday parties. Gina, Jinju, and my wife who is the queen of my family were born in April. What a wonderful April is !!!)


by YKKim

네가 나를 아느냐? (4월 12일 한국일보 칼럼)

마음까지 통할 수 있는 ‘절친한 친구’를 표현할 때 ‘지음(知音)’ 이라는 고사성어를 종종 사용한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잘 알고 마음까지 통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분명 커다란 축복임이 틀림없다.

이 고사성어의 배경인 중국 춘추시대(春秋時期)와 비교한다면 초고속 정보통신 시대인 지금은 전세계 어디서나 핸드폰을 사용해 서로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보며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당연히, 옛 시절보다 더 깊고 넓게 그리고 더 많은 절친한 친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그와는 반대로 외로움을 호소하는 홀로족들이 전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런 현상과 더불어 페이스북, 트위터등 인터넷 사회 관계망(Social Networking Sites)을 통해 가상공간속(Online - Cyberspace) 친구를 만들고 관계를 형성하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런데 0 1의 비트(Bit)를 기반으로한 가상공간속의  인간관계는 얼굴을 보고 상호작용할 수 없는 단절성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군가를 잘 안다고 자신있게 표현하는 것을 볼 수있다. 이 때 잘 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무개에 관해 안다 (Knowledge about someone)와 아무개를 안다 (Knowledge of someone)를 혼동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개에 관해 안다는 것은  A 라는 사람에 대해 그의 친구나 이웃 또는 다른 정보를 통해 간접적으로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데, 유명 연애인의 혈액형, 가족관계, 취미, 좋아하는 것등을 꿰뚫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얹은 정보로 그 사람을 아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조적으로 아무개를 안다는 것은 B라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대화도 하고 식사도 하며 상호작용을 통해 직접적으로 그 대상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의 기본 구성인 아내와 남편의 관계 더 나아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간관계의 앎(Knowing)에 관해 혼동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 어떤 앎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해 더욱더 깊은 공허와 외로움 그리고 혼란속에 머물게 된다.

같은 맥락으로, 스스로 성경을 잘 안다는 사람을 만난적이 있었는데,  C 신약박사, D 구약박사, L 유명 설교자가 말하는 성경속 하나님에 대해 청산유수처럼 읇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진 논리의 바탕이 되는 앎(Knowing), 자신이 직접 읽고 묵상하며 삶속에서 경험된 하나님에 관한 앎 (Knowledge of God)이 아닌, 제 삼자를 통해 얹어진 앎(Knowledge about God)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내 아내와 자녀들에 관해 옆집 사람의 입을 통해 알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분주함으로 인해 가장 가까워야할 하나님은 물론이거니와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딸, 엄마와 아들 그리고 이웃에 대한 직접적 앎(Knowledge of )이 아닌 관한 앎(Knowledge about)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이런 앎은 갈등과 회복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며 서로를 더욱더 깊게 이해하고 배려하며 사랑하는 관계를 형성하는데 방해가 된다.

이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네가 나를 아느냐?” 라는 질문과 동시에 직접 상호관계속으로 들어가는 것밖에 없다.  예컨데 아이들이 셋이라면 평상시 아무리 세 아이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더라도 따로 따로 한 아이씩 30분 또는 1시간씩 높은 수준의 시간(Quality time)을 가져야 한다. 많은 이웃과 함께모여 자주 교제를 할지라도 반드시 한 가족씩 따로 시간을 내서 교제하고 상호작용하는 앎(Knowing)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끝났을 때 네가 나를 아느냐?” 질문에 대답할 것을 매일 준비하는 우리가 되야겠다.


한국일보 링크:

아이워드(i-word) (4월 5일 한국일보 칼럼)

결혼전 모 선교 단체에서 훈련 받으며 배운 소중한 것이 있다. 그 배움 덕분에 외향적이고 즉각적인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나와 내성적이고 오랜동안 생각한 후 대화 하는 완전히 반대 성격인 아내와 결혼 후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충돌(Conflict)과 갈등을 서로 상처주지 않고 지혜롭게 해결해왔다. 그것은 바로 아이워드(i-word)를 사용해 대화 해왔기 때문이다.

관계속에 충돌이 생기면, 사람들은 즉각적인 반응(Reaction)과 함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한 대화를 시도하는데 대부분이 유워드(you-word)를 사용한다. “당신(you)이 이러 이러하게 해서 문제다라고 대화 하는 것이다.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대화 시도를 하는것은 매우 건강한 것이지만 유워드를 사용하면 대부분의 경우 논쟁으로 확대 되고 서로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많다. 예컨데, “만약 우리가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우리의 일은 계속 힘들어지고 희망이 없어질 겁니다. 어떤 것도 제대로 되지 않을것 같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유워드(you, we)를 사용해 이야기 하면 우리라고 표현한 것에 포함된 상대방은 당신이 사실을 조심스럽고 완곡하게 표현한다 해도 당신의 말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것이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와 충돌과 갈등이 생겼을 때, 즉시 아이워드(i-word) 사용모드로 전환해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갈등과 충돌 상황이 생기면, 즉각적인 반응(Reaction) 보다는 잠시 멈춰서 심호흡을 하며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선택하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화가 나고 억울해 맥박이 빨라진다면 상대방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멈추고 최소한 15분 또는 한시간 이후 아니면 다음날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으로 결정해야 한다. 이것을 타임아웃(Time out)이라고 말한다.

타임아웃을 통해 감정이 완화된 후, 하나님 안에서 내 자신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듯 상대방도 그렇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며, 샌드위치 만들듯 상대방의 긍정적인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문제(충돌), 그 다음 긍정적인 것으로 다시 덮는 대화로 마쳐야 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문제(충돌)에 관해 이야기할 때 아이워드(i-word)를 사용해야만 한다. 예컨데,  (i)는 이 일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고, 또 제(i)가 아무런 기여도 못하는듯 느낍니다.  왜냐하면 저(i)는 어떤것은 잘 이해를 못하겠고 누군가에게 그것에 관해 질문을 하고 싶지만 제(i)가 느끼기엔 모두 바쁘신것 같아 제(i)가 질문을 하면 방해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이와 같이 아이워드를 사용하면, 그 표현은 내 개인의 의견, 내 관점이 되어서, 상대방은 방어적이지 않고 쉽게 해결책을 가지고 당신과의 대화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아이워드(i-word)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 표현은 마치 상대방은 동의하지 않거나 상처 받을 수 있는 사실을 이야기 하는 것처럼 된다.
아이워드 사용과 동시에 대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반사적 듣기 (Reflective listening) 를 해야한다.  반사적 듣기는 아주 조심스럽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방이 이야기한 것을 내 입으로 반복하거나 요약해서 이러 이러하게 이야기 한것이 맞죠?” 라고 질문함으로써 당신이 제대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점검할 수 있다.

이때, 아이워드(i-word)를 사용해 대화할 때 반드시 피해야할 것 네가지가 있다.

첫째,  신사적이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닌 과격한 목소리로 말해서는 안된다.
둘째, 상대방의 잘못된 것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듯 자기를 높여서는 안된다. 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무례함과 합쳐지면 틀린것, 옳지 않은것이 된다.
셋째, “그래 맞아(yes)…그런데 말야(but)… “ 표현을 피해야만 한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는 전혀 듣지 않고, 당신이 말하고 싶은것만 생각 했다는 것이다.
넷째, 항상, 언제나 (Always), 결코, 전혀 (never)라는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런 표현은 즉시 논쟁을 유발한다. 예컨데, “너는 언제나 한 15분씩 늦었어…” “너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아…”


아이워드(i-word) 대화법을 통해 건강한 갈등 해결을 경험하는 즐거운 인생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한국일보 링크:

커뮤니케이션 (3월 22일 한국일보 칼럼)

(Speaking) 잘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시대(時代). 지면(紙面)이나 인터넷 온라인을 채우는 활자화된 말뿐만아니라 입 밖으로 소리를 내서 논리정연하고 유려(流麗)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수 있다. 더군다나 인터넷 범용화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정보 접근성을 갖게 되면서 말은 근거의 힘까지 갖춘 유창함이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말 잘하고 대화를 자주 나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가장 가까운 남편 또는 아내로부터 시작해 친구, 직장 동료와 상사, 더 나아가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 속에서 소통(疏通)의 장벽을 경험하곤 한다. 함께하는 시간도 많고 대화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통의 충돌이 지속되면 서로 관계가 깨지고 상처를 주거나 극단적으로는 공동체가 분리되고 파괴되기까지 한다. 말 잘하는 사람들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말을 잘한다’ 또는 ‘대화를 많이 한다’는 것의 실체를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면, 대부분 말을 통해 나온 정보의 양과 대화에 사용된 시간과 상관없이 그것이 ‘일방적’일 때 소통의 장벽을 경험하고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방적 이라는 것은 그 대화속에 소통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소통(疏通)이라는 말이‘서로 막힘 없이 통하는 것’ 즉, 상호성과 양방향성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소통은 단순히 말을 잘하고 무의식적으로 듣는(Speaking and hearing)것이 아닌, 의식적으로 결정해 적극적으로 듣는(listening) 행위를 내포한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4세기 후반 라틴어에 뿌리를 둔, 이‘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는 말은 ‘나누다(To share), ‘하나되다(Unite), 그리고 ‘공통되다(Common)’ 라는 단체성의 옷을 입고있다. 그래서 언어 학자들은 ‘공동체(community)’라는 단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구성원들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무형의 끈을 사용해 공통됨을 공유하고, 나누고, 하나되어 공동체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 커뮤니케이션이 없는곳엔 공동체(community)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말 잘하는 사람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없는 작은 공동체인 부부, 부모와 자녀, 친구 관계로부터 시작해 큰 공동체인, 직장과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 이르기까지 소통(疏通)의 장벽으로인해 서로 이해할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관계가 깨지고 상처를 주거나 극단적으로는 공동체가 분리되고 파괴되기까지 하는것이다.
                         

일상에서 이렇게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은 가장 먼저 적극적 듣기(Active listening)를 통해 남편과 아내, 친구와 직장 상사, 공동체 구성원들을 친밀하고 깊게 연결(Connected) 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것을 기반으로 형성된 상호간의 깊은 신뢰가 적극적 나눔과 하나됨의 정신으로 버무려져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공동체(Community)를 형성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동체 속에서 개인은 소속감과 안전감(Security)을 갖게되며 그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외부로 향하게 된다. 그래서 상호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을 공유하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배워 자신이 속한 관계속에서 영적, 육적, 지적, 사회적으로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가족 구성원들이 모인 사회 공동체와 믿음 공동체는 서로 나누고 하나되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내가 속한 가장 작고 가까운 공동체인 부부관계로부터 시작해, 부모와 자녀, 친구, 직장, 교회에 이르기까지 관계가 깨지고 서로 상처를 주며 마치 거대한 장벽앞에 서있는듯 갈등과 반목의 상황에 처해 있다면, 즉시 자신이 말을 하고 있는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할 것이다.

한국일보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