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매미 소리가 여름 날을 녹히고 있는 어느날 한 대학병원에
갔었다. 대학병원 중앙 현관을 지나자 정면으로 커다란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 속에는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와 그를 진찰하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그리고 간호사가 등장하고 있었다. 내 눈을
놀라게 했던 것은 그 세 사람을 따뜻한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며
함께 서 있는 예수의 모습이었다. 병원에 이런 그림이 있구나 하며 신기해
했다.
과학적 의술을 가장 신뢰하는 대학병원 중앙 홀에 환자와 의사 예수님이 함께
등장하는 그림을 본것은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학병원이
기독교 대학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그림은 중요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5월, 대학입시에 여념이 없던 그 때 보충수업을 땡땡이 치고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시외로 나갔었다. 답답한 교실에 앉아 칠판과 선생님
얼굴만 바라보다 녹음이 우거져 가는 5월의 오후에 시원한 바람을 얼굴로
맞으며 타는 자건거는 친구와 내 마음을 더욱더 신나게 했었다.
그러던중 과천 고개를 넘어 굉장한 속도로 내달리다 좌회전 하던 차량과
정면 충돌을 하고 말았었다. 뒤 따라 오던 친구의 말에 의하면 공중으로
수 미터를 붕 떳다가 땅에 떨어졌고 곧바로 영동세브란스 병원으로 긴급히
후송되어 씨티(CT) 촬영과 엑스레이(X-RAY)을 수 십장 찍었다고 한다.
충격에 의한 뇌진탕으로 좌뇌와 우뇌 간격이 벌어진 이상부흥상태 진단을
받았었다. 대학입시를 일년 앞둔 그 때 멍한 상태로 하루 하루를 통원치료하며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찢어진 부위를 꿰맨 후 매일 독한 주사를 두번씩 맞았었다.
그 때 친구의 권유로 신앙을 갖게 되었고 사고후 3년째 될무렵
더이상의 후유증없이 완케되었다.
'병이나 상처를 다스려서 낫게한다'는 치료(治療)와 '치료로 병이 나음' 이라는
의미의 치유(治癒) 라는 말이 있다.
다시말해 우리의 몸이 찢어지고 아플 때 의사가 꿰매고 소독하고 약을 주사하
여 상처나고 아픈 곳을 봉합하는 치료과정을 큐어(Cure)라고 한다.
그 이후 의사의 치료에 대한 인체 내부의 여러가지 작용과 우리의
희망적인 의지가 함께 동원되 나아가는 과정을 치유 즉, 힐링(healing) 이라고 말한다.
치유와 치료가 함께 있지 않으면 우리는 병으로부터 나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교통사고후 병원과 의사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과정인 치료(Cure)를 충분히 받았다.
동시에 나을 수 있다는 희망적 의지와 내 몸의 치료에 대한 반응은 치유과정
(healing)을 오랜동안 견딜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의사와 병원이 최선을 다해 해낼 수 있는 치료 이후엔 우리 몸을 창조해 놓으
신 그분의 전적인 힘인 치유(healing)가 있어야만 온전히 나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대학병원의 의사들은 이런 원리를 겸손히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깊고 뜨거운 사랑과 의지 그리고 평화와 진리가 함께 버무려진 모습으로
대학병원 중앙현관 홀에 있던 그 그림속의 치유(healing)는 이미 내 마음의 현
관 안에 그분과 함께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