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 되면 장마와 태풍이 기승을 부린다.
늘 장마 때마다 식구들이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다.
처마에서 뚝 뚝 떨어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며 누님은 남동생 셋을 안방에
옹기종기 앉혀 놓는다.
어머님께서는 부엌에서 김치와 파를 썰어 넣은 빈대떡을
지지고 계신다. 정오인데도 사방은 깜깜하다.
콩기름이 구수하게 끓고 레인지의 파란 불빛이 어머님의 얼굴을 잠깐씩
비출 때 마다 그 열기로 세월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모두들 서로의 다리를 하나씩 엇갈려 끼워맞춰 앉아
누님의 노래에 웃음꽃이 핀다.
노랫말 하나 하나에 손으로 다리를 짚어나가다 끝나는 다리의 임자가 벌을 서는
놀이였다.
서울로 이사온지 얼마 안되었던 79년의 여름엔 바닷가 옛 집에서처럼
비가 올 때마다 할머니께서 그 주름잡힌 당신의 양손에 호박엿과 떡을 만들어
오시곤 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것을 연하게 찐 후 묽은 조청에 찍어 먹는 맛은
요즈음의 피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80년의 봄이 아물고 아시안 게임이 열릴 때까지도 특별히 밖에서 군것질을 해본
기억이 없다. 철마다 아침상엔 산나물이 올라 왔고 아버지의 식성에 따르다 보니
자연히 당분이 많이 든것은 멀리하게 되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온 후부터 비가 오더라도 모두 모이기 힘들었다.
형제들 모두 커버린 탓도 있겠지만 집 밖에 관심거리가 더 많았기 때문이리라..
요리하기를 좋아했던 터라 주말이 되면 두 남동생을 TV 앞에 앉혀놓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보곤 했다. 무슨 사내녀석이 앞치마를 두르냐는
어머님의 핀잔도 있었지만 모양도 내고 맛깔스럽게 만들어내 가족들에게
맛보게 하는것도 내겐 큰 자랑스러움 이었다.
누님은 그런것엔 별로 관심이 없어 가끔의 말도 안되는 사내동생과의
솜씨 비교에 시큰둥해 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것에 흥미를 잃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것은
가자미 매운탕을 푸짐하게 요리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던 것이다.
요즈음은 모두가 바빠 쑥갓과 미나리의 풋풋함이 곁들여진 가자미 매운탕을
함께 맛 볼 기회가 없었다.
벌써 일주일째 비가 내리고 있다.
이번 여름에는 미루던 가자미 매운탕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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