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4, 2007

The children of mine

 
그날은 유난히도 긴 수업시간이었다. 이제 갓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나로서는 왜

저 앞의 밀납인형 같은 여자 담임선생님이 입을 오물 거리며 무엇인가를 말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내성적이다 못해 부끄러움 덩어리였던 나로서는 복부를 찌르는듯한 아픔을 이기지
못했다. 왜 밀납인형은 쉬는 시간을 주지 않을까..왜 8살 짜리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쉽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한다는것에 대해 배려하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이
온통 머리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1시간을 참았을까...결국 바지에 똥을 싸고 말았다. 집안에서 장남이라는 기대는
나로 하여금 매우 빨리 똥오줌을 가리게 만들었었다.

오전반 수업이 끝나고 오후반 아이들이 콩나물 시루같은 교실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3시간동안 아이들 누구도 내 똥 냄새를 맡지 못한듯 했다. 아직 후각이 민감하게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서둘러 집으로 뛰어왔다.

거리에서 똥이 떨어지지 않은것은 적당한 수분 에너지가 함유된 덕분이었다.

가족들 아무도 모르게 빨아서 빨래줄에 걸었다. 오후 시간이면 어머님이 오기전에
충분히 말라서 다시 입을 수 있으리라.

그 때 그 시간 8살 4개월된 시점의 나란 아이는 그 사건으로 인해 열등감과 부끄
러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내 안에서 성장을 멈추어 버린것이었다.

2학년이 되었다. 아버지는 어느날 술이 잔뜩 취해 와서 골목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던 나를 불렀다. 해질녘 오후여서 땅거미가 골목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이 새끼야..막내를 어디다 두고 ..' 모든 아이들이 보고 있던 곳에서 당신께서는
그 커다란 목수의 손으로 따귀를 때렸고 두 발 밑에는 흘러내린 물줄기로 흥건하게

젖어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로부터 도망쳐 놀이터 어귀에서 골목을 노려봤다.
아버지는 이미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날 막내는 이웃마을 파출소에서 아무렇지 않은듯 자고 있었다.
왠 시커멓게 흙으로 더렵혀진 어린아이가 걸음도 빠르게 돌아다니길에 보호

하고 있었다고 한다. 막내는 3 살이었다.

어머님과 아버지가 싸움을 하고 난 후 어머니의 멍든 등에 파스를 붙이며 울던
그 때 그 아이는 내 안에서 더이상 성장을 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의 언어적 구타와 열등감의 세례를 받았던 중학교 1학년 때의 그녀석은
더이상 내 안에서 자라나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계속 성장하면서 아무렇지 않은듯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곤했었다.
나에겐 특별히 아픈 기억이 아닌 이해되는 이야기 처럼 하곤 했다. 난 그랬어...

스물여섯이 되었다. 나의 영은 육체적 나이보다 더 어른 스럽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책도 많이 읽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으며 부모님과 관계도 좋았을뿐 아니라 당신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을 긍휼이 여길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성을 사랑할 수 있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난 정신적으로 육체적 나이와 동일하거나 더 어른스러워...

난 교회도 다니고 있고 신앙도 매우 좋은걸? 기도도 잘한다구..

하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기 시작했다. 무서운 일이었다. 그것은 악몽이었다.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은듯 내 삶은 이랬어 라며 고백했던 그 이야기들은 항아리를
만들고 있었다. 가끔 뚜껑이 열릴 때 마다 그것은 지독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 안의 똥을 쌌던 그 아이는 아직 8살로 내 안에 살고 있었다. 독한 냄새를 뿜어
내면서 그 항아리 속에서.

내 안의 따귀를 맞았던 그 아이는 여전히 바지에 오줌을 싸며 울고 있었다.
그 아이는 아직도 9살이었다.

난 스물 일곱 어른인걸? 난 언제든 섹스를 나눌 수 있는걸? 아이도 낳을 수 있어.
결혼도 할거야... 교회에서 집사도 할건데?  난 전도사야..목사야...지금..

하나님은 내 안에 가득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게 하셨다. 그 울음소리는
너무도 슬프고 아팠다. 애처러웠다.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은 귀로 들리는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내 영혼의 아이들이 질러대는 소리였다.

내 안에 아직도 갓난 아이로 자라나지 못한 아이가 너무도 많았다.

비가 그렇게 내려 논에 물이 가득히 차오를 때 어머니는 뱃속의 나를 손으로 치며

가슴까지 차오르던 논의 물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7개월된 그 아이는
어머니의 분노에 울고 있었고 내 안에 아직도 살고 있었다.

난 스물 일곱이었다.

난 스물 일곱.  내안에 살고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항아리 안에서 살고 있었다. 가끔 내 친구들이나 사람들이
도무지 열고 싶지 않았던 항아리를 말로나 행동으로 열려고 시도하곤 했다.

물론 그들은 별 생각없이 한 태도나 이야기 였지만 나에겐 내 안의 아이들이
꿈틀대고 있던, 지독한 냄새가 나던 그 항아리 뚜껑을 열려는 시도로 보였다.

나도 모르는 방어가 시작됐다. 경건함으로 도덕적으로 시니컬함으로, 기도를
많이 함으로 수다로,,열심히 일함으로,,공부로, 나보다 나은 배우자를 찾는것

으로,,친절함과 적극적인 태도로...그러나 언제나 긴장이었다. 갈증이었다.

나만 알고 있는 그 커다란 항아리들..항아리안의 아이들..울고있는 아이
아버지를 노려보던 그 아이...똥을 싸고..오줌을 싸던 아이..파스를 붙이던

아이..그녀가 나에게 주었던 그 상처받았던 배신의 아이..

교회에서 아무리 찬양을 해도 하나님께 기도를 해도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성령의 주먹이 커다란 항아리들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상상할 수 없이 고약한 냄새가 피어 올랐다. 다른 사람들이 맡을까봐

겁이 났다. 결국 몇개의 항아리가 깨지고 말았다. 깨진 파편이 내안을 찌르기

시작했다. 정죄하고 미워하기 시작했다. 성령의 손길이 그 날카로운 파편을

시나브로 쓸어내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완전한 스물 일곱으로 자라났다. 몇몇은 아직도

자라나고 있는 중이었다.

난 스물 일곱이야.

난 스물 일곱이야.

난 스물 일곱.....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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