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4, 2007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비가 내리곤 한다.

비가 보슬 보슬 내리고 난 후 가을 산은 하얗게 털갈이를 했다. 머리 위 하늘은

파랗다. 저녁 무렵 단조의 쪽빛 하늘이 되더니 토끼털같은 눈송이가 날린다.

예전엔 첫 눈을 보면 괜스레 신이나 첫눈이 내린다며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대곤 했는데. 대부분 같은 하늘 인지라 자기들도 보고 있다며 시큰둥하다.

왠지 어린 아이같이 유치 해진것 같아 어느날 부터인가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 러브 스토리 등의 영화 속에서나 대리로 눈속에 파묻혀보고 천진난만 해지는

우리네 속사정은 잘 모르겠다. 이젠 눈뭉치를 던지고 놀거나 눈사람을 만들어 보는

순수함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여름에 장대비가 내리면 팬티만 입고 골목길을

뛰어 다니기도 했고 함박눈이 내리면 이유도 없이 떠득썩하게 흐믓해 했다.

아마 지금이라도 환호하며 아이들처럼 즐거워 한다면 미친것 아니냐며 손가락질

당할것이 분명하다.

어른스럽다는것이 과연 무엇인가. 즐거울 때, 슬플 때, 무서울 때, 어느때고

감정을 감추고 위장하여 절제 하는것인가? 관습적 강요의 틀안에 순수와 천진의

발산을 꽁 꽁 얼어붙게 만든것은 왜일까?

오늘은 눈이 내려 마음이 푸근해졌다.

개구장이처럼 뛰어 다니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하지만 갑자기 돌변해 슬퍼졌다.

땅거미가 질 때 쯤엔 휘파람을 흉내 내는 바람 소리 덕에 눈물까지 나오려고 했다.

변덕스럽긴.

92년 초엔 김현식 씨의 '내 사랑 내 곁에' 가 흩날리는 눈발에 뭉쳐져 도회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의 불씨를 지피더니, 올 해엔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꺼야'

에 힘입어 이별을 감행하는 사람도 많았다.

참! 유행가 라는것이 신통하기도 하다. 사랑의 고난속에 있는 사람들의 정곡을

찌르는 그 통쾌한 가사가 어떻게 그리도 강력한 최면력이나 설득력이 있는지.

그래도 공통적인 현상 이라면 사랑에 대한 맹목적이고 강력한 의지의 무장이 없는

회색 연인들이 노랫말 몇 구절에 최면당해 울고 웃고 하는 점이다.

사랑이 원래 그렇게 예민한 감정으로 만들어 진건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사랑의 함정에 자의로 퐁당 빠지는건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이렇게 첫 눈

오는 날 사랑하는 연인에게 전화거느라 오늘 전화국은 불통이 날 듯 하다.

내가 왜 슬플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심연에 고요히 잠겨있던 기억의

보프라기가 목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기분 전환도 할겸 뜨거운 물이 펑 펑 나오는 샤워실에서 알몸뚱이의 거울을

연신 들여다 봤다. 예나 지금이나 거울 속 녀석은 변한게 없다.

환풍기 날개 사이로 흰 눈이 내리고 있다.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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