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비도 많이 내리고 불야성을 이루던 검열기간. 폭풍 전후의 명쾌한 오후다.
간단없이 찌든 심신을 샤워로 말끔히 씻어내고, 햇빛 내음이 담뿍 나는 내
의를 입었다. 하늘은 가을처럼 높고 파랗다. 새털처럼 가볍게 부유하는 구
름들과 아직 녹색 여린 잎사귀로 풍요를 꿈꾸는 벼의 싹들. 마음은 명상의
시간에 도달케한다.
불룩한 커피 포트에 한홉의 물을 붓고 아이처럼 보글 보글 끓는 시간을 만
끽한다. 얼마전 외출중에 정형화된 예쁜 도자기 컵들에 가려져있던 참
못생긴 -따뜻한 토목(土,木) 빛깔- 컵을 구제(?) 했었다. 훈훈한 기운을 두
손바닥으로 감싸고 그 안에서 녹아나는 녹차의 향기를 음미하는 이 시간은
무릉도원이 따로없다. 특별히 다도(茶道)라는 규격을 따르지 않아도 자유로
운, 마음의 평원에 나를 던져두고 체험한다. 녹차를 음미하는 이 신성한
평화에 고요함을 가미하면 금상첨화다. 입안에서 감돌다 목젓을 타고 흘러드
는 차(茶)의 자취와 곧 뒤따르는 고요함은 델리킷한 어울림을 누리게 한다.
난 혀끝에서부터 온몸에 훈훈하게 퍼지는 그 여운을, 하루동안의 상념과 사
람들과의 부대낌에서 떨어지는 감정의 조각들과 수많은 부산물들을 기꺼이
정화할 수 있게 주어진 이 자그마한 자투리 평화가 더더욱 고맙고 기쁘다.
신(神)은 빼앗아 간 만큼의 평화를 주는것 같다.
청담(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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