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2, 2016

싸움의 기술 (5월 31일 한국일보 칼럼)

사십대인 지금도, 나는 배가 고프면 신경질적(Cranky)이 되곤한다. 손 닿는 곳에 먹을것이 있으면 그것을 입에 털어넣고 아무일 없는듯 우아한 성품의 웃는 얼굴을 유지할 수 있지만 아내와 단둘이 있을때는 거의 어린 아이 수준으로 까칠해진다.

오늘, 아이들과 성경읽기를 멋지게 하고 다함께 식료품점에 시장을 보러갔다가 배가 고파 오기 시작하니 아내에게 짜증아닌 짜증을 부렸다. 아빠가 엄마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재잘 거리던 아이들은 조용해 진다. 쇼핑한 것들을 차에 싣는 동안에는 분기섞인 짜증의 수준으로 올라갔다. 예수 믿으라고 은혜를 말하는 입에서 욕만 하지 않았지, 온몸의 세포를 죽이기에 충분한 순도높은 분기가 불처럼 나왔다 들어갔다 했다.

사실 결혼하면서 아내와 "그리스도인으로서 싸움의 원칙"을 세워둔 것이 있는데 그 첫번째는 우리는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평생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움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두번째는, 결혼 기념일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더욱더 싸움의 고수가 되어 서로를 더욱더 성숙케 하는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싸움의 표본이 된다 였다.

이러한 원칙은 모든 갈등의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즉시 마음으로부터 떠 오르기에 자동차 기름을 넣는 동안 내가 왜 신경질적이 되었는지, 그 원천(Root)이 무엇인지 질문을 했다. 그리고 아내가 몇가지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긴 했지만 그것이 전혀 짜증과 분기의 불을 뿜어내도록 만든 요소가 아니라, 내 몸이 배가 고파서 밥을 원하고 있다며 아우성을 피우는 것이 원인(Root)임을 깨닫게 되었다. 내 안에서 일어난 원인을 놔두고 아내를 가장 만만한 희생양으로 삼는 버릇이 또 등장한 것이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 양 미간을 긴장시켰던 긴장이 풀리며 아내에게 "여보 잘못했어, 내가 배가 고픈가봐, 정말 잘못했네, 내가 이렇지..뭐...참아줘서 고마워..." 하며 용서를 구했다. 숨죽이고 있던 아이들이 다시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싸움의 원칙중 하나인 우리는 언제든지 실수 할 수 있고 연약하지만, 반드시 자정을 넘기기 전에 용서를 구하는 것을 실행 한것이다. 

아내는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그 정도가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호전 되지만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어린 아이같이 신경질적(Cranky)인 남편의 싸움걸기에 거의 고수의 경지에 이른 싸움의 기술을 발휘한다.  인내하고 기다려주며 스스로 깨닫는 순간까지 듣기를 계속한다. 그 순간만큼은 뒤에 앉아있는 여섯살 된 셋째딸 같이 남편을 다루는 무기로 싸움의 기술을 사용한다.

우리는 밤마다 원온원(One on One)을 하며 그날 일어났던 무공대결의 순간들을 복기(Debriefing)해본다. 도데체, 그런 말과 생각과, 화냄, 말이 통하지 않는 순간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서로 나누며, 상황마다 어떻게 서로에게 반응하면 좋았을지 나눈다. 이러한 나눔을 결혼한 날 저녁부터 지금까지 실행하는 동안 아내나 나나 그리스도인 부부로서 싸움의 기술이 날로날로 높아짐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싸움이 천국에 갈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 부부의 싸움의 기술이 예수님 수준에 이르길 소원해 본다.


by 김영기 목사


한국일보 링크:
http://chicagokoreatimes.com/%EB%AA%A9%ED%9A%8C-%EB%8B%A8%EC%83%81-%EC%8B%B8%EC%9B%80%EC%9D%98-%EA%B8%B0%EC%88%A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