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17, 2016

장미 화원 (시카고 한국일보 3월 15일자 칼럼)

오랜만에 시카고 근교에 위치한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s)에 콧바람을 쐬러 갔다. 일상의 속도감으로부터 잠시나마 이탈해 느린 호흡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곳이 보타닉 가든이다.

매년 수많은 꽃들과 초록의 향연속에 화려한 계절옷을 입고있던 모습과는 달리, 아직도 쌀쌀한 겨울 끝자락에 방문한 보타닉 가든은 여느 촌부(村婦)처럼 화장기 없는 얼굴로 짙고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있었다.


발 끝은 습관처럼 장미 화원(Rose garden)으로 향했다. 장미 화원 또한 긴 시카고의 겨울을 지나온 흔적이 역력했다. 지난 가을에 보았던 백장미, 붉은 장미, 그리고 노란 장미 꽃들이 화려하게 춤 추던 자리엔 짧게 가지치기된 장미 나무들의 몸통만 남아 있었다. 마치, 신데렐라가 왕자와 춤을 추다 자정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 평상시 허름하고 숱검뎅 뭍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과 같았다. 볼품없고 짧은 몸통만 남아있는 장미 화원(Rose garden)의 모든 장미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있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여전히 아름답고 고운 신데렐라처럼 그 우아함과 자존심을 잃지 않고 꼿꼿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또한 턱밑까지 두툼하게 채우고 있는 시커먼 퇴비속에서 오롯이 봄을 준비하고 있는 짧은 키의 장미나무 가지들은 차분하고 성숙하게 그리고 인내함으로 진한 향기의 꽃망울을 그 안에 품고 있었다. 길고 모진 겨울을 통과하는 동안 겉으로 보기엔 꽃인지, 잡풀인지, 나무인지, 어떤 존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단 한 순간도 장미 화원 (Rose garden)의 주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거나 자존심을 놓아 버리는 천박함으로 자신을 채우고 있지 않았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시커멓고 냄새나는 퇴비들을 보고 동네 방네 쏘다니며 불평하거나 폄하하며 쓴 마음을 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환경이 자신을 강하고 크게 만드는 자양분이 됨을 믿고 감사함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장미 화원 (Rose garden)을 지켜온 장미들은 춥고 고단한 시카고의 겨울이 반드시 끝날것을 오랜 경험과 믿음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앙상한 장미 나무 가지들은 겨울 내내 푸른 잎사귀와 진한 향기의 꽃들로 내면을 채우며 열정적으로 자신의 향기를 뿜어내며 춤을 출 봄을 꿈꾸고 희망하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있는 것이리라.


4월엔 키작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올곧게 우아한 향기와 믿음의 꽃을 품고 있는 장미 나무들이 준비한 파티에서 함께 춤을 출것이다.

by YK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