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10, 2010

페이퍼가 도데체 무엇이길레...

He who gives life 를 비롯 내 앞에는 성령님이 바로 하나님이다 라는 주제로 15페이지 소논문을 쓰는데 참고해야할 11권의 책과  11개의 저널들이 있다. 네개의 리서치 페이퍼를 마치고 마지막 페이퍼를 준비하는 동안 내 마음에 든 생각은  "페이퍼가 도데체 무엇이길레..." 이다.

이 페이퍼들 때문에 내 마음이 분주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가족과 사람들과 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랬듯 공부는 해야할 때 하는 것이라는 말로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는 중이다. 언제 이 많은 책을 훓어 내려가고 전체 맥락을 정해 글을 쓰랴... 주님의 전적이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무엇보다 내 언어인 한국말로 하는 것도 아니고 영어로 읽고 써내려가야 하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이 마지막 페이퍼와 동시에 두개의 시험이 남아있다. 거의 1800년 동안의 기독교 역사에 대해 암기해야 한다. 한국 역사도 참 못했는데 내가 어쩌다가 기독교 역사를 외우고 이해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는가? 어떤 목사님께서 그러신다. 교회 역사를 알아야 진리에 늘 가깝게 서 있을 수 있다고. 공부를 해보니 사실 그것이 맞다는 것에 절대 동감하게 된다. 거시적인 시각을 통해 정말 진리가 어떻게 왜곡되고 변질 되어서 마치 진짜인양 서 있을 수 있는지 볼 수 있게 되었다.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다른 하나의 시험은 요나서, 출애굽기, 시편 1편, 103편을 히브리어로 시험을 보는 것이다. 하나만 봐도 버거운데 네개의 책을 공부하고 시험을 봐야하니 정말 곤욕이다. 더군다나 한국말도 영어도 아닌 성경 히브리어 아닌가?  보통 한국 사람은 히브리어가 편안하게 다가온다고 하는데 나는 정말 아닌것 같다. 인도에서 오랜동안 다른 언어를 사용해와서 그런지 나에겐 오히려 헬라어(그리스어)가 편하고 좋았던것 같다.

이 참에 내 지식의 창고를 대폭 갈아 엎을 모양이다. 그저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을 다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주님앞에 사람앞에 그리고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은 그저 충성이라고 생각한다.

충성.

Thursday, December 9, 2010

가족소개 2.0 (Family 2.0)

할렐루야, 김영기, 최보연 선교사 가족을 소개합니다.





아내 최보연은 정신여고 노래선교단에서 노래하는 선교사로 섬기며 러시아 선교사를 꿈꾸었습니다. 언어의 재능과 선교사의 비젼을 가지고 한국외대에서 러시아어와 영어 복수전공으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1998년 스위스 로잔에서 예수전도단(YWAM) 예수제자훈련학교(DTS)를 마치고 돌아와 외대 예수전도단(YWAM) 캠퍼스 대표리더로 섬켰습니다. 4학년 마지막 학기부터 YWAM Seoul Korea (한국예수전도단 대학사역)에서 간사(Staff)로서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선교한국 외국인 파트에서 동시통역으로 섬기던 중 신문파트에서 섬기던 현재의 남편 김영기 간사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고 2001년 12월에 결혼해 인도 뭄바이 대학사역(Campus Ministry, Mumbai India) 선교사로 2008년 3월까지 섬겼습니다. 2008년 5월 20일 인도를 떠나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북쪽의 트리니티 신학교 기숙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현재 트리니티 아내 모임(Trinity Wives Fellowship)에서 리더로서 섬기고 있습니다.




남편 김영기는 1980년대 초 연탄가스중독(Carbon monoxide poisoning)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회복되었지만 뇌세포 손상으로 12세 이전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습니다. 교회 사택에서 식빵을 훔쳐먹다가 붙잡혀서 혼이 나기도 하던 그가 교회에 가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때의 심각한 교통사고로 혼수상태(Coma)에 빠졌다가 회복된 이후였습니다. 그 교통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쳐 2년간 병원과 학교를 오가는 통원 치료를 하는 중 친구를 따라 모교회인 서울순복음교회에 출석하며 세례를 받습니다.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군생활을 마친 다음해인 1996년 성령의 불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실제적으로 만나는 영적 각성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더욱더 깊이 알기위해 영적인 훈련의 장으로 들어갑니다. 한국항공대학교 예수전도단(YWAM) 대표리더로 섬기며 8개월의 대학생 예수제자훈련학교(DTS)를 통해 평생의 부르심에 대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대학 4학년 2학기부터 한국예수전도단(YWAM Seoul Korea) 대학사역 간사로서 서울예전(현 서울예술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캠퍼스 개척간사로 살며 부르심에 더 가깝게 가게 됩니다. 2000년 선교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섬기는 동안 우연히 현재의 아내를 최초로 보게됩니다. 2000년 12월 한국예수전도단(YWAM Korea) 파송선교사로 인도로 떠나 2001년 12월에 최보연과 결혼해 함께 사역하게 됩니다.
2008년 5월 8년간의 선교사역후 처음 갖는 안식년과 더불어 미국 트리니티 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목회학석사(M.div) 과정을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딸 진주(Jinju Kim)는 2003년에 태어났습니다. 늘 과학을 좋아한다고 하는 진주는 집중력이 강하고 재치가 넘치는 좋은 리더십을 가진 아이입니다. 엄마를 닮아 언어적 능력이 뛰어나고 사회성이 매우 높은 아이로 학교에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별히 좋은 선생님들을 인도에서부터 현재 미국 학교 생활까지 만나는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 걸스카우트 대원으로, 큰 누나 언니로 섬기고 있습니다. 참고로 목소리가 무지 큽니다.



아들 진우(Jinwoo Kim)는 2005년에 태어난 매우 생각이 깊고 배려하기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남자 아이입니다. 인도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이었던 진우는 미국 유치원과 교회학교에서도 인기가 많은 아이 입니다. 책 읽기를 즐겨하고 무엇인가를 만들 때면 세상이 무너져도 모를 정도로 집중하는 매우 기대되는 아이입니다. 진우는 특별히 자연과 동물 사람의 인체, 생명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인체 해부도를 보고 반응하는 것이 누나와 정 반대로 매우 자연스러운 관심을 보입니다.





막내 딸 지나(Gina)는 2010년에 태어났습니다. 지나는 셋째 아이의 면모를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 스스로가 정말 평안합니다. 잘 자고, 먹고, 싸고, 놀고, 그리고 웃습니다. 매일 매일 지나를 보기만 해도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과 저희 스스로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을 더욱더 깊게 넓게 알게 하십니다. 진주와 진우를 통해 그렇게 하셨고 셋째 딸 지나를 통해 그 깊이를 더하고 계십니다.
지나는 이제 6개월이 되었습니다. 가끔 엄마, 아빠를 말합니다. 엄마가 노래를 부르면 아~ 아~ 하면서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호기심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 두드러집니다.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가정을 허락하시고 가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동참케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Monday, November 29, 2010

히브리어 비평연구와 가족들...

매주 월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짧고 가장 빠르게 지나가는 날 입니다. 왜냐하면 아내 최보연 선교사가 트리니티 아내 모임(Trinity Wives Fellowship)에서 성경공부(Bible study) 를 오후 7시부터 인도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이 백인 학생들의 아내들이고 몇몇이 아프리카와 독일 그 외의 중국 등 아시아 국가 출신의 아내들이 모인 곳에서 유일한 한국인인 아내는 벌써 3년째 리더로서 묵묵히 섬겨오고 있습니다. 올 해는 영국인 남편을 따라 온 독일인 아내 크리시(Crish)와 공동으로 성경공부 리더를 섬기며 멋진 팀웍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화요일까지 내야만 하는 히브리어 비평연구(Exegesis)를 도서관에서 정신없이 연구하며 작성하다보니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 이내 오후 6시 30분이 되어버렸습니다. 보통 밤 12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수 있지만 월요일은 반드시 집으로 7시전에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던 책을 모두 싸들고 집에옵니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아내가 떠난 후 세 아이들 진주, 진우, 지나를 최대의 효율을 얻으며 돌보는 것을 머리속으로 대강 계획을 세워봅니다. 대부분 진주 진우는 영화를 보여주고 오후 8시 30분 즈음에 목욕을 시켜 재우곤 했습니다. 셋째 딸 지나는 아직 너무 어려서(7개월)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안아주고 놀아줘야만 합니다.

그래도 지나가 6개월때 까지만 해도 아이를 옆에서 놀리면서 나름 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7개월이 된 이후에는 아이도 뭔가 더 보이고 몸이 움직이고 에너지가 넘치다 보니 제가 더욱더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오늘은 아내가 거의 밤 10시가 되어서야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이들과 씨름하느라 정작 코앞에 닥친 히브리어 비평연구는 도서관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그렇게 보채던 셋째 딸 지나가 엄마가 나타나자마자 온 얼굴에 화색이 돌고 웃음이 방긋하며 기쁨에 넘친다는 것입니다. 첫째 딸 진주와 둘째 아들 진우 때도 경험한 것이지만 정말 아버지의 역할과 엄마의 역할이 분명하기만 합니다. 창조주께서 남녀가 함께 살도록 하고 자녀를 주는 데는 다 그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양육은 반드시 아버지와 엄마 두 사람이 함께 해야만 아이들이 건강한 영적, 지적, 육체적 삶의 기반을 갖추게 됩니다.

때로 엄마가 너무도 바빠 아버지가 그 엄마가 돌볼 몫과 시간까지 더해서 아이를 돌보았다고 하더라도 아이에게 필요한 엄마와의 절대시간은 절대 아빠의 시간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아버지가 너무도 바빠 엄마가 아이가 필요한 아버지와의 절대시간을 채워서 함께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 또한 빈 공간과 시간으로 아이에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버지의 절대 공유시간(함께 보내야 하는 시간)은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특별한 치유와 사랑으로 그 빈공간이 채워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그 은혜는 치유와 함께 오며 반드시 일정한 시간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을 알아가며 내 속 사람이 자라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으로 결정한 삶의 우선순위가 바로 하나님 먼저, 그다음 가족, 그리고 마지막 사역과 일 입니다.

당장 히브리어 비평연구에서 A 를 받지 못하더라도 가족을 돌보고 아이들과 보내는 절대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A 가 아이들의 절대시간을 나중에 보상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절대시간은 반드시 절대시간으로만 채워지고 보상되기 때문입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히브리어 비평연구의 A 는 언제든지 다시 받을 수 있고 고쳐질 수 있지만 가족들과의 절대시간은 한번 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고 보상될 수 없는 매우 직선적인 시간의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이 우선순위가 제 삶의 조급함에 재동장치 역할을 하는 것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물론 가끔씩 이 재동장치를 풀어놓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재동장치를 풀어놓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결과가 발생할 것은 매우 자명하기 때문에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는 트리티니에서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어서 이것이 가능할 지 모릅니다. 물론 인도에서 선교사로 8년간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 우선순위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잘 해 왔었습니다.

앞으로 한달 후면 지난 2년간 섬겨온 레익뷰 언약교회의 세번째 캠퍼스인 한국인 예배에 더욱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보태야만 합니다. 지난 2년간 해온 우선순위에 대한 노력보다 앞으로 더욱더 큰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역이 시작되면 워낙 사람과 사역을 좋아하는 기질 상 그것에 정신을 더 빼앗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다짐합니다. 내 우선순위 "하나님 먼저, 그리고 가족,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역과 일" 를 최선의 노력을 다해 지켜내겠다고.

뭐든지 행동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거기에다 인내까지 겸하면 금상첨화입니다.


Tuesday, November 23, 2010

바쁜 하루...

어제와 오늘 하루는 정말 빠르고 바쁘게 지나갔습니다. 인도에서 선교사로 살 때도 시간의 빠름에 놀라곤 했지만 2008년 5월 미국 시카고 근교 트리니티로 유학을 온 이후로는 시간의 속도가 거의 3배 더 빠르게 된듯이 느껴집니다.

어제는 예수전도단 사역자로 거의 15년을 사역한 최지혜 선교사가 텍사스 예수전도단 베이스에서 저희 집에 오랜만에 방문을 했고 오늘은 오후에 콜롬비아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는 존황 선교사의 아내인 모니카 선교사님과 건장한 세 명의 아들들이 집에 방문을 했습니다.

세상이 참으로 좁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것은 모니카 선교사님께서 1990년도 초에 제가 유학하고 있는 트리니티에서 교육학 대학원 과정을 공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과제물이 너무도 많아 오랜시간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짧은 대화중에 이미 관계인 끈으로 연결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금방 도서관으로 달려와 과제를 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최지혜 선교사를 오헤어 공항의 버스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고 도서관에 돌아오니 벌써 밤 8시 30분 입니다. 오늘 하루가 마치 2시간처럼 느껴졌답니다.

혹자는 나이를 한 살 씩 더 먹어갈 때마다 10 Mile 의 속도가 배가 된다고 표현를 했는데 저에게 그것이 마치 제곱을 한 것같이 느껴집니다.  시간의 소중함과 더불어 다짐하는 것은 시간이 빠르게 흐를 때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발을 동동 구르지 말고 반드시 천천히 쉬지 않고 계획된 것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진 가장 취약한 약점중의 하나가 시간이 없을 때 허둥지둥 하면서 일을 중단하고 있거나 아예 시작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고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주 나쁜 습관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 40대가 되어가는 시점까지 완전하게 고쳐지지 않은 것은 아마다 그것에 대해 단호하게 고쳐야 겠다는 의지가 부족해서 일 것입니다.

이곳 트리니티에서 유학하면서 제 습관들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큰 대가를 치르면서 배우고 있고 고쳐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밤 12시까지 오전부터 써 오던 리서치 페이퍼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다음주 화요일 까지 세 개의 리서치 페이퍼를 마무리 해야합니다.

Monday, November 22, 2010

내 삶에 대한 예의.........

최근 몇 주간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삶을 돌아본다고 하니 매우 거창한 무엇인것 같지만 사실 몇가지 개인적인 삶의 태도와 습관을 마치 제 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은 것이다. 언듯 보기엔 객관적이려고 노력한 것 같지만 여전히 주관적인 -그래도 내가 나를 조금더 잘 알고 있을거라는 일말의 조금은 객관에 가까울 것이라는 착각과 기대가 있었다.- 결론을 몇가지 얻었다. 그 몇가지라 함은 육체적인 영역(Physical area), 영적인 영역(Spiritual area), 지적인 영역(Intellectual area) 이다.

첫째, 육체적인 영역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니 최근 거의 운동을 하지 않고 차츰 차츰 몸이 무거워지고 얼굴이 둥글게 변한다는 것을 새삼 발견했다. 트리니티에서 유학을 하면서 시작한 매주 2회의 축구를 통한 체력의 유지가 1년전 이맘 때 왼쪽 발목 안쪽 인대를 다치면서 중단되었었다. 그 대안으로 테니스를 시작했는데 몇번 해보지도 못하고 테니스가 발목 부상을 더 악화시킨다는 전문가스러운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중단했다. 그 다음으로 시작한 것이 런닝머신(Treadmill)에서 30분씩 매일 뛰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달이 못되어 심한 복통으로 일주일을 고생하고 또 감기 증상으로 일주일을 더 고생하면서 아예 침대에 앓아 누워있어야만 했다. 결국 그 2주 동안 이후 오늘까지 운동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 결과 거울속에 나타나는 내 얼굴은 나날이 더욱더 둥글게 둥글게 변하고 있다.

최근의 한 분이 갑작스런 혈당수치의 변화로 당료병으로 갈 뻔한 것을 긴급히 식사 조절과 매일 매일 운동을 통해서 모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굴곡이 사라지고 오히려 더 주변으로 확장되는 내 허리 살을 위기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육체적인 영역에서 나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식사의 양을 지금의 반으로 줄여야 하고 반드시 최소 30분의 스트레칭을 포함한 운동을 해야한다. 그것만으로도 육체적인 영역을 건강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교회의 한 친구가 P90X (피 나인티 엑스 라고 읽는다) 라는 90일간의 살을 빼고 건강한 육체의 기본을 가질 수 있는 DVD 를 메모리카드를 직접 구입해 주었다. 이틀전에 받아서 첫 두 편을 보고 당장 시작해야 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을 보니 내 육첵적인 영역이 얼마나 위기에 처해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육체적인 영역(Physical area)이 다른 두 영역(Spiritual and Intellectual area)과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나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내는데 당장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둘째, 영적인 영역(Spiritual area)를 돌아보니 올 2010년이 시작되면서 기도시간이 급격히 줄어든 것을 발견하게 된다. 보통 하루에 1시간을 기도했던 초기 1년반의 유학생활이 영적으로 매우 활기가 넘쳤던것과는 대조적으로 올 초부터 새벽기도는 전무하고 밤 12시에 갖었던 개인 예배와 기도의 시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영적인 영역이 건강함을 잃어버리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사실 주 원인인 개인 예배와 기도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위기의식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마치 천천히 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미끄러져 들어가는(Sliding into) 자신에 대해 무방비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이 벌써 11월 중순이니 11개월동안 이 현상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다. 머리로는 위기다 위기다 하면서 정작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몸이 즉시 조치(an action)를 취하지 않은 것은 영적인 무지함을 뛰어 넘어 무지함과 게으름이 버무려진 것과 같은 태도인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 엄격하고 주변에게 너그러워야 한다고 늘 주장하면서도 그 엄격함이 실행되는데 어떤 기여도 하지 않은 그 습관에 대해 미안해 하고 회개해야 한다. 영적인 영역의 습관을 새롭게 하고 회복의 영역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말씀 묵상과 기도 그리고 개인 예배의 시간이 줄어든 이유를 더욱더 늘어난 과제와 공부의 양을 핑계로 삼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과제와 공부의 양에 비례해서 개인 경건생활의 시간을 늘려야만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영역의 시간을 더욱더 확장함으로 인해서 실제 내가 가진 과제와 공부의 시간이 더 부족해 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이 있어지고 효율적이 되어 공부를 하는 체감 시간은 더욱더 늘어나리라 믿는다.

셋째, 지적인 영역(Intellectual area)의 습관을 보니 큰 태도의 변화가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트리니티에서 유학을 시작한 첫 1년 반은 지적인 영역에 대한 갈급함과 목마름과 더불어 관련된 학문서적에 대한 깊은 호기심과 지적욕구가 넘쳐흘렀다. 그 욕구는 태도와 습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서 책 한권을 매우 집중해서 여러번 읽었던 진지한 태도와 습관을 갖게 했었다. 그러나 육체적인 영역, 영적인 영역이 서서히 무너지고 약화되기 시작함과 더불어 지적인 영역에서도 그 습관들이 무너진것을 발견하게 된다.

반드시 의무로 읽어야 하는 책들을 그 의무를 좇아 읽고 더 깊은 이해를 위해 두 세번 더 읽던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또 리서치 페이퍼를 위해 씨름하고 고민하며 정성을 들여 최선을 다해 만들어내던 태도와 습관이 무너져 어떻게든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엉뚱한 정신과 태도로 임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사실 트리니티에 와서 유학을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의 기회이기에 이 기회를 최대한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기위해 내가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만 하는데 현재의 지적인 영역의 습관과 태도를 보면 하나님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영광이 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육체적, 영적, 지적인 영역이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한 주 원인은 무엇일까? 과연 1년 반이 넘으면서 트리니티에서 공부하는 것에 대해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처음에 10년이 넘어서 공부를 하면서 쉽지 않을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최선을 다하다가 그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물론 두가지 다 포함해서 더욱더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본다면 나는 영적인 영역이 가장 먼저 무너진 것에 있다고 본다.

영적인 영역이 소홀해지기 시작하면서 육체적, 지적인 습관과 태도도 무너지기(Sliding into)시작했고 각 각이 연약해지기 시작하니 서로를 지탱하던 축이 약해져서 내 삶의 전체적인 습관과 태도가 무기력해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때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가? 가장 먼저 무엇에 손을 대야만 하는가? P90X(피 나인티 엑스)를 따라 육체적인 체력을 회복하며 동시에 영적인 회복을 위해 기도생활의 시간을 늘려야만 하는가? 아니면 셋중에 어느 하나에 집중해서 서서히 하나씩 늘려가야만 하는가?

오늘 현재 내가 마쳐야만 하는 지적인 영역의 숙제와 공부의 양은 엄청난 양이 남아있다. 우선 이것들을 모두 처리할 때까지 영적인, 육체적인 영역을 연기할 것인가? 딜레마이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있다. 세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고 믿는 영적인 영역의 회복을 오늘 당장 시작해야 겠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고 나도 그렇게 알고 매번 설교하던 것이지만 내 스스로에게 습관으로 경견의 태도로 다시 돌이키는데는 행동을 취하는 것(take an action)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아멘.

by YKK
 

Thursday, November 18, 2010

아내 최보연의 대학시절 간증문..

LAUSANNE SWITZERLANDDiscipleship Training School (1998.10.1 ~ 1999.3.19)


flo01a.gif 최보연 자매는 현재 예수전도단 간사로 위탁하셨답니다.    

I.13개국에서 모인 서른 명의 학생들과 다섯 명의 간사로 구성되어 영어로 진행된 DTS였습니다.
3개월간의 강의 기간과 다른 3개월간의 전도여행 기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제주 열방대학에서 원서를 받은 뒤 98년 여름 방학 때 스위스 로잔으로 직접 보냈고, 한 달 후에는 학교의 전체 책임자인 영국인 간사와 e-mail로 연락하게 되었습니다. 직접 재정 상황을 체크하고 또 전화로 연락하면서 모든 것이 진행되었고 와도 좋다는 최종 연락을 받은 것은 8월 중순이었습니다.
필요한 재정은 'CHF 2,975(US $2,200)-강의기간'과 'CHF 3500~4000(US $2,750)'이었습니다. 학교 책임자는 무엇보다도 강의 재정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전도여행을 위한 재정은 가는 지역에 따라서 틀려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행기 티켓은 떠나기 약 한 달 전에 미리 예약해 두고 있었습니다.
1998년 9월 30일 스위스로 떠났습니다.

II.강의 기간(98.10.5~98.12.18)에는 일주일씩 주제와 강사가 달랐습니다.
강의 기간 동안에는 <오전- 중보기도 및 예배와 강의, 오후- work duty, 때로 보충강의>로 이루어졌고 시내로 전도를 나가거나 SBS( School of Bible Study, 성경공부학교) 간사의 특강을 듣기도 했습니다.
소그룹 모임과 간사와의 면담 그리고 북리포트(Book Report), 저널(creative journal- 주마다 배운 것을 노트에 정리, 제출함) 등이 있었습니다.
강의 주제는 '기독교의 네가지 기본전제(4 basic premises of Christianity), '하나님을 아는 것(knowing God)',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 '세계관(World view)' 등이었습니다.
전도여행지(98.12.19~99.3.12)는 중동(이스라엘, 터키), 네팔, 시르비아였는데 학생들에게 자율로 결정하도록 했고 저는 세르비아에서 전도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의 기간동안 배운 것을 적용하는 것이 이 기간의 목적이었는데, 저 역시 10명의 팀원들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세르비아를 사랑하시는지 고백하며 중보하는 등의 사역을 했습니다.

정리기간(99.3.13~19)에는 세 곳으로 흩어졌던 35명이 다시 모여 나누고 예배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으로의 진로를 위해 서로 중보하며 격려했고 졸업식을 한 뒤 공식 일정이 마쳐졌습니다.

III.Over the mountains and the sea your river runs with love for me
And I will open up my heart and let the healer set me free

대학교 2학년이던 97년 여름 전도학교(현재의 Mission Conference)때 하나님께선 제게 특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스위스 DTS를 받기 원하신다고 말입니다. 믿음으로 결정하고 준비하면서 많이 어려웠던 것은 재정싸움이었지만 사실 DTS를 받으며 느낀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것들을 잊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제 마음을 하나님께 열어 가면서 어쩔 땐 '날 그냥 내 버려 두셨으면'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보며 힘을 냈습니다.
I'm happy to be in the truth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보석과 같은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나를 자매로, 한국인으로 부르셨고 '최보연'이라는 나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만의 가치와 특별함이 있는 사람으로서 다른 여러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일 필요가 없다는 것,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반응하는 '한 사람'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And I will daily lift my hands
For I will always sing of when your love came down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노래하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DTS를 통해 저는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껏 하나님의 성품과 그 분의 진리에 대한 잘못된 오해로 마치 깨어진 그릇처럼 그 분께로부터 오는 좋은 것들을 담지 못했지만, 이제 저는 다시 회복되어 제 모습을 찾은 예쁜 그릇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담게 된 것입니다.
I could sing of your love forever
I could sing of your love forever
DTS를 통해서 제 삶의 방향성과 구체적인 목표들도 달라진 것을 봅니다. 조용하고 울창한 스위스의 숲 길을 걸으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기도하면서 알 수 없는 평안함과 기대함이 밀려드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DTS 이후에도 끊임없이 그런 마음을 주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노래하고 싶습니다. 나누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heart01b.gif

Saturday, November 13, 2010

주말 수업을 들으며..

매주 토요일은 Family time(가족시간)으로 정해놓고 있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한달에 두번씩 금요일과 토요일 하루종일 수업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대안으로 목요일 오후에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오늘 아침 아내는 피곤하다며 늦제 일어났습니다. 저는 어제밤에 하지 못한 설겆이를 아침에 일어나 하면서 몸과 마음이 유쾌해져서 아침을 먹고 수업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일어나 여전히 피곤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짜증이 담긴 말투로 툭툭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제가 아내에게 엄중하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곤 수업에 들어와 있으니 마음이 무겁네요.

집에서 강의실로 오는 길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아내가 건강이 좋지않아 몸과 마음이 모두 무거워져서 어쩔 수 없이 짜증이 섞인 삶을 살게 되면 어떻게 할까, 나는 과연 남편으로서 아내를 어떻게 돕고 반응할 것인가 등등의 생각들 말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아내가 정말 건강해야 겠다는 기도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아이들에게 짜증섞인 태도를 보인 것도 분명 몸이 무겁고 피곤해서 일어난 일인데 만약 정말 건강이 좋지않다면 어쩔 수 없이 그것이 말로, 태도로, 표정으로, 스스로도 견딜 수 없이 날마다 흘러나올것입니다.

아내를 위해서 기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아내를 돕기 위해 매일 저녁 설겆이도 하고 아이들도 봐주고 과중한 수업과 과제가 있지만 오히려 집에 있는 시간을 늘려서 아내가 조금더 자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갖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늘 다짐합니다. 또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역시 아내의 입장에서 도움을 주기 보다는 여전히 제 중심적으로 내 방식으로 아내를 돕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아내에게 쉼을 더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