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24, 1997

동행


청계산 산자락 끝에 매달린 가을은 벌써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오랜만에 달고 맛있는 산공기를 맛보고 싶은 마음에 친구와 함께

산보에 나섰다. 널찍한 공터에 이르러 기지개를 켜며 지난

여름동안 훌쩍 커버린 나무들을 바라다 보았다. 내 영혼의 키가

저렇게 훌쩍 커버린다면 놀랄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킨 마음에 두 눈을 꼬옥 감고 걷기 시작했다. 옆에서 아무말

없이 걷고 있는 친구의 발자국 소리가 더 크고 또렷이 들려온다.

콧등을 스치는 바람의 소리도 들리지만 내가 안전한 길로 걷고 있다는

마음의 평안은 옆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들려오는 친구의

발자국 소리 때문이었다.

친구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면 나는 혼자 걷다가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일 것이 틀림없을것이다. 두 눈을 꼬옥 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걸을 때 내 옆에서 들려오는 동행의 발자국 소리는

내 중심이 되고 평안의 길잡이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자주 그분이 내 옆에서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영혼의 분주함으로 그분이 동행하는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하곤 한다.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겨울낙옆 숲에서

그분의 깊고 가벼운 평안의 소리를 듣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영혼의 암흑 속에서도 성큼 성큼 걸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동행의 소리.




                            靑潭.

Thursday, April 24, 1997

죽으러 가는 길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곧바로 무릎을 꿇고 죽음을 간구한다.

하나님 저를 죽여 주시옵소서, 하루 종일 죽여 주시옵소서..

아니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챤이 왠 죽음을 구하는 기도인가?

삶 속에서 계속 드러나는 속자아. 혼(魂)과 육(肉)의 나를

죽여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나는 매일 죽음에 이르는 길을 걷겠습니다. 되뇌이며 현관문을

나선다. 어느날은 현관문 앞에 서서 신발을 신다가 즉시로 다시

살아난 속자아를 발견하곤 흠칫 놀라기도 한다.

이 녀석들은 현관문을 나서서 몇걸음 걸어가자마자

꼬리를 내어밀고 나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오직 주님만이 내 안에 가득히 채워져

성령의 모든 힘과 세력으로 내 영혼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의 육과 혼을 다스리기 시작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의 죽음이 유익함이란 말을 최근에야 뼈져리게 감수하고 있다.

내 삶 안에서 감내가 아닌 완전한 죽음에 이르지 않으면

영의 키는 더이상 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죽으러 간다.




                           靑潭.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하는 이에게



           당신이 뿌려둔 마음들이

           자라납니다.

           심령 곳곳에 움튼 꿈이

           열매를 맺습니다.

           천년의 時空을 넘어

           지금껏 나를 기다려준 당신을 만나고자 합니다.

           얄팍한 것들이 더이상 나를 붙잡을 수 없습니다.

           결코 당신을 놓치지 않으렵니다.

           거리를 거닐 때

           우리는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당신의 그림자

           당신의 형상

           당신의 사랑

           영원한 당신의 꿈 입니다.




                 靑潭.

Sunday, October 20, 1996

인상좋은 친구에게

인상좋은 친구에게

멋진 밤이군. 가을을 재촉하기라도 하듯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더니 비가 내려

고즈넉하던 밤을 우수에 젖게 만드는 것 같아. 갑작스레 편지를 쓰게된 동기는

후술하기로 하지.

낮 동안에 깨끗이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쳐내니

한결 깔끔하더니만, 역시 사내놈의 행실이란 것이 늘 그렇듯 그 새 어지럽혀졌네.

책상은 모니터와 프린터로 자리를 차지해 버려 천상 방바닥에 큰 상을 깔고

책을 보기도 하고 이렇게 편지글을 일구기도 한다네. 방금 커피물을 레인지에

올리고 티스푼도 아닌 밥숟가락으로 커피와 프림을 넣고 자그마치 삼 분이나

수저를 입에 물고 있었지. 역시 다방 커피처럼 독특한 향기를 낼 재주는 없지만

오늘 밤을 부족한 공부로 채우며 보내기엔 꽤 어울리는 것 같아.

흠. 인사가 늦었네. 그간 잘 지내셨나. 언혜와 목하 데이트중

신선한 충격(너무 상투적이지?)으로 만나게된 자네에게 몇 번의 전화를 통한

통신을 시도 했지만 자네의

삶의 방식(물론 자의 인지 타의 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에서 무난하게 통화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주된 이유라면 이유랄까.

해거름 때가 다가오면 가정의 관습적 강요에 의한 귀가와 가족과의 유대, 손님이

찾아오기전 가모(家母)와 더불어 요리를 만들고, 학교 생활에 충실하고 늘 소속감과

절제의 분위기에서 살고 있는듯한 모습에 사실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

으로 자네에게 미안한 생각마져 들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고백하고 싶네.

무엇보다 자네의 지금까지의 고요한 삶(마치 나르치스같은 느낌)에 내가 끼어들어

핀트가 어긋나거나 자네 고유의 색깔에 다른 색깔을 가감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두려움은 나 스스로를 굉장히 소심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어.

그래서 요 며칠(4일)동안 고심 끝에 조금은 고전적이지만 편지를 통해 자네와

내적 교류를 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는 판단을 내렸어. 서신 자체가 자네의

입지에 조금은 부담을 덜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인데. 어떤가? 물론 전화를

통한 부모님의 외압보다는 편지라는 문서상의 중립성과 글밭을 일구어서

돋아나는 싹들이 서로에게 -자네에겐 더욱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가교(架橋)가 될것이란 기대 때문이기도 해. 어찌되었든 자네의 삶이 참으로

보기 좋고 부럽다고 할까. 비록 단 한 번의 면대와 몇 마디의 대화였지만

닮고 싶은 점이 많아서 좋아. 정리하자면 서신 교환에 비중을 두고 가끔씩

짬을 내 밝은 시간에 함께 산책도 하고싶고 가끔 영화도 보고, 맥도널드에서

치즈버거도 먹고싶네. 시간이 허락된다면 오랜 시간 편안하고 무난한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야. 벌써 새벽 두시가 돼가는군. 오늘 비로 가을

이 한층 깊어지고 완숙해졌을 법해.

시간이 날 때 답장을 준다면 고맙겠네.



                               靑潭  

Wednesday, July 24, 1996

가무(歌舞)에서 비엔나 커피를 마실 때

           가무(歌舞)에서 비엔나 커피를 마실 때 




          자연광을 연하게 만든 창이 있는 가무(歌舞)에서

          여름을 내려다 보며 비엔나 커피를 마실 때는

          웃음을 지어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생크림이 입가나 코 끝에 묻곤 하기 때문이죠

          커피향을 혀 끝으로 쓸어 내면서

          하얀 생크림 웃음을 만들어 보세요

          당신 마음에 벤취가 생길겁니다

          함께 나오는 팬케익을 잘게 쪼개어

          나누어 먹을 때는 창가에 매달린

          빗방울들이 또르륵 또르륵 거립니다.

          웃을 때마다 하얀 생크림 같은 미소를

          가진 당신이 좋습니다.

          저는 가무(歌舞)에 가는 길목에서

          당신을 만납니다.

          그리고 벤취에 함께 앉아

          비엔나 커피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靑潭.

Wednesday, May 1, 1996

익숙해진 슬픔


황토빛 목장 숲을 지나가면 그곳엔 이슬들의 아침이 있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까지 초조하게 기다리던 마음들일 것이다.

주머니 속에 담아둔 전화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하게 메아리쳐 온다.

나...결혼해...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차 안에선 담배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는

동료들을 가끔 태워준 덕분이라고 웃어넘기며 그녀는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하얀 목덜미가 예전보다 더 희게 보인다.

목장을 경계지우고 있는 희나리 등걸 나무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이는

날이다.

매니큐어를 하지 않은 잘 손질된 그녀의 손끝에 카셋트 테잎이 밀려들어간다.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왜 죽은 사람 노래를 듣냐는 질문에 그녀는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아서 좋다고

한다.

삼십대가 되니 마음이 많이 불안하고 그래.. 음..아이가 크면서

왜 엄마는 아빠보다 나이가 더 많아 라고 질문하면 무어라 말해 주어야할지

막막해지는 꿈을 꾸곤 한다고 그녀는 작은 입술을 약간 오무리며 말한다.

훈훈해진 오후의 열기 때문인지 녹기 시작한 질펀한 목장 길목으로

경운기가 털털 거리며 힘겹게 지나간다.

47번 국도를 따라 일동까지 나가 그곳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그녀는 마감을 앞두고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전화를

한다. 사무적으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녀가 프라이드를 사고 그것을 몸에 익숙하게 익히는 동안

훈련소에서 받아본 그녀의 또박 또박한 글 들은 이별에 대한 짧은

감흥들이었다. 아마도 그땐 정말로 이별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그녀는 연신 울음을 그치지 못했었다.

우리가 만난지 4년이 흐른 그해 겨울. 제대를 보름 남겨두고

그녀는 동료기자와 결혼을 했다.

그 남자는 그녀보다 2살 연하였다.

가끔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 보다가 두툼하게 쌓여있는

눈덩이 들을 발견하곤 이것이 무엇일까 들쳐보기를 했다.

시간의 열기가 녹여버렸다고 확신하던 옛 기억들이 아직도 쌓여있는것을

보곤 흠칫 놀라곤 했다. 남들이 이야기 하는 사랑의 흔적일까...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익숙해진 슬픔이라는 것이었다.

익숙해진 슬픔..





                         靑潭.

Sunday, August 20, 1995

소나기

 
후두둑 후두둑.

조립식 막사의 양철 지붕을 깨우는 여름날의 외침.

아직 대낮인데도 깜깜한 오후다. 식당에서 구보로 뛰어 왔지만 이미 젖을데로 젖어

등짝에 착 달라붙는 전투복이 부담스럽다. 빗속에서의 소란했던 빗방울들이 물감을

흠뻑 먹은듯 다채롭게 보인다.

후두둑 후두둑 메트로놈 진동에서 음률로 변조된다.

식물들 사위로 진한 녹색 단조가. 희나리 등걸에 핀 버섯에선 북소리가. 그리고 유

리창을 때리는 아프페지오와 화성을 이루는 붉은 대지의 안정감. 빗방울과 호흡하는

모든 세계가 교향악을 연주하고 있다. 살풀이라도 하듯 세차게 토해내는 취한 하늘

아래 몇몇의 감상객이 있을까 자못 궁금해 지기도 한다.

12시 30분. 하절기라 1시까지 내무반에 누워 오침중이다.

아홉살 때 였던가. 장마철 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무슨 기념일이라 아침부터

14인치 흑백 TV 앞에서 진을치고 앉아 있었다.

스물 네 해의 감성을 이룬, 황순원 님의 '소나기'가 TV 문학관

타이틀로 방영되었다.

개울가에서 물을 움키며 장난을 치던 소녀. '바보' 라는 한 마디와 조약돌을 뒤로

하고 이유도 없이 내달음치던 소년. 무릎에 생긴 생채기를 보듬던 순수. 맑고 푸른

하늘. 단조로운 흑백의 조화였지만 쏟아붓던 그 굵은 소년의 소나기가 창밖에서도

내렸었다. 소녀가 앓을 때 난 소년이 돼 버렸고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이후 칼라

TV 로 바뀐 후 두번인가 더 보았는데. 두번째 부터는 왠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수염이 한두가닥 자랄 시기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막사 밖에선 굵디 굵은 순수가 곤두박질치며 노래하고 있다.





                          靑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