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각류 절지 동물이나 딱딱한 겉껍질(외피)을 가진 곤충들은 속살이 어느정도 자라면 외피를 벗는 탈피의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이 과정을 통해 완전히 다른 형태의 성장으로 가는 것을 한자어로 변태(變態), 영어로는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 이라 표현한다.
변태 과정을 거치는 가장 흔하고 가까운 예는 잠자리 애벌레인 학배기 그리고 호랑나비 애벌레를 들 수 있다. 학배기는 아가미를 갖고 물 속에서 살다 뭍에 올라와 변태(變態) 과정을 거쳐 아름답고 투명한 날개로 하늘을 날아 다니는 모양으로 환골탈태 한다. 호랑나비 애벌레도 많은 다리로 기어 다니다 나뭇가지에 고치 형태로 매달린체 변태(Transformation)를 하게 된다.
보기에 매우 흉칙해 보이는 애벌레들이 트랜스포메이션(變態) 과정을 통해 선녀 옷 같이 얇고 투명하며 가볍디 가벼운 날개로 산들 산들 바람을 타고 날아 다니는 잠자리와, 오색 찬란하고 화려하기 그지 없는 큰 날개를 가진 호랑나비가 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자연 법칙이다.
이와 비슷하게 만물의 영장인 사람(人間)도 변태(變態)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트랜스포메이션(變態)을 경험하고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다르다. 더군다나 인간에게 일어나는 변태(變態, Transformation)는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닌 인간 내면, 다시말해 영적인 영역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다른 피조물들과 다른 점이다.
변태(變態)라는 한자는 말씀 언(言)을 중심에 품은 변할 변(變) 과 가능하게 하다는 뜻의 능할 능(能)을 마음심 (心) 이 떠받치고 있는 모습태(態) 의 조합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言)을 통해서만 진정한 트렌스포메이션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상 학문과 철학 그리고 지혜는 마치 옷을 입듯 각 사람의 세계관에 걸치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정한 내적 변화가 아닌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할 변(變)자를 따르는 모습태(態)는 반드시 마음(心)이 기반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음(心)이 완전히 새롭게 되어 움직이지 않으면 내적, 영적 모습이 바뀌는 것을 가능하게(能)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로마서 12장 2절은 마치 변태(變態, Transformation)라는 한자어를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 놓은듯한 놀라운 성경 말씀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al of your mind, that by testing you may discern what is the will of God, what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로마서 12:2).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죄(Sin)로 인해 어그러지고 찌그러진 세상에서 찌그러지고 상한 영적 상태로 살아가며 문화와 기술 그리고 철학과 지식의 옷을 걸치며 단순히 세상을 본받았을 때(being conformed) 마치 최첨단의 신식, 완벽한 사람이 된듯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言)으로 마음(心)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Being Transformed, 變態)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게(能)되지 않는다면, 겉 모양이 아무리 화려하고 보기 좋아도 그 사람의 속 사람은 여전히 보기 흉한 애벌레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시카고의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은혜로 변태(變態, Transformation)를 경험하고 그 열매를 두 눈으로 보고 맛보는 일이 사방에서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변태 과정을 거치는 가장 흔하고 가까운 예는 잠자리 애벌레인 학배기 그리고 호랑나비 애벌레를 들 수 있다. 학배기는 아가미를 갖고 물 속에서 살다 뭍에 올라와 변태(變態) 과정을 거쳐 아름답고 투명한 날개로 하늘을 날아 다니는 모양으로 환골탈태 한다. 호랑나비 애벌레도 많은 다리로 기어 다니다 나뭇가지에 고치 형태로 매달린체 변태(Transformation)를 하게 된다.
보기에 매우 흉칙해 보이는 애벌레들이 트랜스포메이션(變態) 과정을 통해 선녀 옷 같이 얇고 투명하며 가볍디 가벼운 날개로 산들 산들 바람을 타고 날아 다니는 잠자리와, 오색 찬란하고 화려하기 그지 없는 큰 날개를 가진 호랑나비가 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자연 법칙이다.
이와 비슷하게 만물의 영장인 사람(人間)도 변태(變態)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트랜스포메이션(變態)을 경험하고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다르다. 더군다나 인간에게 일어나는 변태(變態, Transformation)는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닌 인간 내면, 다시말해 영적인 영역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다른 피조물들과 다른 점이다.
변태(變態)라는 한자는 말씀 언(言)을 중심에 품은 변할 변(變) 과 가능하게 하다는 뜻의 능할 능(能)을 마음심 (心) 이 떠받치고 있는 모습태(態) 의 조합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言)을 통해서만 진정한 트렌스포메이션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상 학문과 철학 그리고 지혜는 마치 옷을 입듯 각 사람의 세계관에 걸치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정한 내적 변화가 아닌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할 변(變)자를 따르는 모습태(態)는 반드시 마음(心)이 기반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음(心)이 완전히 새롭게 되어 움직이지 않으면 내적, 영적 모습이 바뀌는 것을 가능하게(能)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로마서 12장 2절은 마치 변태(變態, Transformation)라는 한자어를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 놓은듯한 놀라운 성경 말씀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al of your mind, that by testing you may discern what is the will of God, what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로마서 12:2).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죄(Sin)로 인해 어그러지고 찌그러진 세상에서 찌그러지고 상한 영적 상태로 살아가며 문화와 기술 그리고 철학과 지식의 옷을 걸치며 단순히 세상을 본받았을 때(being conformed) 마치 최첨단의 신식, 완벽한 사람이 된듯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言)으로 마음(心)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Being Transformed, 變態)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게(能)되지 않는다면, 겉 모양이 아무리 화려하고 보기 좋아도 그 사람의 속 사람은 여전히 보기 흉한 애벌레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시카고의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은혜로 변태(變態, Transformation)를 경험하고 그 열매를 두 눈으로 보고 맛보는 일이 사방에서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by 김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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