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y 11, 2016

낯선 땅에서의 관계 (5월 10일 한국일보 칼럼)

"선교사로서 한국에 살면서 가장 어렵고 괴로웠던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국 예수전도단(YWAM Korea)을 시작했던 오대원(David E. Rose) 목사에게 던진 누군가의 질문에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의 그 어떤것도 나를 어렵고 힘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간의 갈등, 시기, 질투, 비교, 반목 등이 나를 가장 어렵게 만들었었습니다."

이것은 오대원 목사만의 고백이 아니었다. 아내와 내가 인도(India)에서 선교사로 사는 동안 인도 사람, 음식, 날씨, 그외 어떤 열악함도 우리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 한국인 선교사들간의 긴장과 관계의 깨짐, 열등감을 가진 선교사들의 비교의식 등이 연출하는 살벌한 분위기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다행히 아내와 나는 여러 나라에서 온 선교사들로 구성된 국제 예수전도단(Youth With A Mission) 베이스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사역 함으로써 조금은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었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덤벼오는 사람들에 대해선 속수무책이었다.

대부분 팀이 아닌 단독 선교사로 선교지에 와있던 사람들은그런 묘한 갈등과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동안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이도 있었다. 같은 교단 출신끼리 뭉쳐 다니다가 자기들끼리 또 관계가 깨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그중엔 원하지 않는 긴장과 갈등을 견디지 못해 선교지를 완전히 떠나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슬픈 일은 비단 선교지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피부 색깔이 다른 사람으로 가득한 타국에 나가 살고있는 모든 이민자들에게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선진국인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이민자들과 유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학위를 마치고 하루속히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주 목적인 유학생 가족들뿐만 아니라 정착하기로 결정했던 이민자들도 굳이 자신들이 속해있는 국가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타 인종과 관계를 만들고 확대해가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당장 먹고 살수 있고, 한국어만 사용해도 생활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의 몇몇 한국인들과만, 또는 같은 학교 출신, 교단 출신, 고향 출신, 그리고 같은 교회 사람들만의 좁은 교제의 관계를 갖게 된다. 극단적으로는 집, 교회,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터와, 음식점, 도서관만 오가는 이민자와 유학생도 발견하게 된다.

그 결과로 조사된 공통된 특징은 지속적인 긴장과 갈등, 재정의 어려움, 비교, 열등감, 우울증, 자기비하로 인해 이민생활과 유학을 당장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까지 겪게 된다. 그나마 집 밖으로 언제든 나갈 수 있는 남편들과 달리 배우자들은 작게는 2배에서 3배에 달하는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보고 되었다. 이로인해 잦은 부부싸움을 하게 되고 때로는 이혼에까지 이르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가까이 있는 한국인 이민자들과 미묘한 갈등, 비교하는 마음, 열등감이 작용해 완전히 관계를 단절해버리거나, 무시해 버리기, 왕따 만들기, 가장 가까운 몇 사람 또는 가정에 집중하기 등의 악순환을 선택하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 같은 유치함을 선택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민자들은 어떻게 이것을 방지하고 개선할 수 있을까? 최우선 순위는 먼저 자신이 넘쳐 흘러야만 한다. 당장 영적, 지적, 육체적, 재정적, 관계적 자신감이 넘쳐나지 못하니 늘 주변에 그것을 요구하고 다른 무엇인가로 채우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신 채워주지 못한다. 가장 가까운 아내도, 남편도 스스로 메말라 있어 서로에게 요구만 할 뿐 채워줄 수 없다. 그래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당장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야만 한다. 자신의 현재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깨닫도록 조명해줄 하나님이 필요하다. 때로는 정기적인 쉼과 가족만 따로 홀로있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영적 필요를 채우는 것이 필요하다.

두번째, 스스로 내적으로 채워지기 시작할 때 가까운 이웃들과 교제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옆집 이웃의 여러 인종과 교제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당장 말이 통하지 않아도 된다. 관계하고자 하는 의지와 태도, 마음이 다른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혀로 만들어지는 언어를 앞서는 눈빛, 마음, 태도, 음식의 언어가, 다른 인종과 문화 간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유대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주의해야할 것이 있다면 낯선 땅에서 이민자로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힘드니, 집착해서 내 편으로 만들려는 욕심이 없어야 한다. "내 편, 내 편" 함으로써 그 관계는 속박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그 관계 속으로 들어올 수 없게 된다. 그리하면 나도 모르게 왕따 놀이를 하게 된다.

세 번째, 이런 관계의 확장과 더불어 육체적 채움도 동시에 필요하다. 잘 쉬고, 자고, 먹어야 하며, 지속적인 운동도 필요하다. 이때, 좁고 독점적인 관계를 형성해 쉬고, 자고, 먹고, 운동을 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반드시 그런 경향성을 떨쳐 버리고 다양한 관계 안으로 스스로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도록 할 때 더이상 현재 머물고 있는 다른 문화, 언어, 인종이 있는 장소가 멀고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을것이다. 더불어, 몇몇 되지 않는 한국인 이민자 이웃들과도 오히려 건강하고 아름다운 관계, 서로의 경계(Boundary)를 지켜주는 유쾌한 관계를 유지하게 될것이다.

당장 시도해 보라. 열매를 맛볼것이다.


by 김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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