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보는 눈

2011/01/04 14:10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얼마전까지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던 눈을 단 하루의 햇빛으로 모두 녹여 대자연의 목을 축여주었는데 오늘 새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어린시절 눈을 처음 본 날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눈꽃가루들이 아름답고 신기해 오랜동안 두 팔과 입을 벌리고 눈을 받아먹고 온 몸으로 만끽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눈을 바라보던 제 눈은 신기와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눈의 여왕이라는 이야기를 누나에게 듣고부터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볼 때마다 의혹과 조금은 무서운 마음의 눈을 갖곤했었습니다.


고등학교시절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내린 눈을 볼 때는 희망과 두근거림의 눈으로 눈을 바라보았었습니다.


대학생 때는 헤어짐을 갖은 날 눈이 되다 만 진눈개비들이 온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그 눈을 바라보던 눈에는 슬픔과 외로움이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교회식구들과 교제를 하고 나오는 길에 팝콘보다 더 크게 핀 눈꽃들이 사뿐이 사뿐이 내리고 있었고 거리의 가로등불에 비추어진 골목길은 마치 고요한 풍요의 눈 나라에 초대된 듯한 착각을 하게할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그때 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고 계시던 생물 선생님의 눈을 바라보며 던진 짦은 한마디가  "하늘에서 나방들이 날아다니는 것 같아요.." 였습니다. 모두들 얼마나 배꼽을 잡고 웃었던지요. 생물 선생님의 눈에는 그날 내리던 그 함박 눈이 생물교제로 쓰이던 나방같아 보였던 것입니다.


한번은 대중교통인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버스안에 있던 여학생들이 모두 탄성을 지르며 눈이 내린다고 발을 동동구르고 좋아할 때 장사를 하시는듯한 한 분이 큰소리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이고..오늘 장사 다 망쳤다."  그의 눈에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삶을 방해하고 어렵게 하던 무엇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눈이 내릴 때마다 많은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와 아내는 눈이 내릴 때마다 하나님께서 춥고 메마른 겨울에 시원한 물을 주시기 위해 눈을 내려 축복해 주신다고 말합니다. 봄 여름 가을에 비를 내려 대지와 자연 사람을 적시고 정화하며 채워주듯이 온 세상이 꽁꽁 얼어버리는 겨울에도 변함없이 그 일을 하시는 창조주의 깊은 속내를 보게 됩니다.


자연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세밀하고 치밀하며 따뜻한 눈(eyes)을 보게 됩니다.  겨울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조금만 눈여겨 보면 그것을 금방 발견할 수 있습니다. 꽁꽁 얼어버린 대지위에 눈이 내리고 얼마후 그 눈이 꽁꽁 얼지만 곧 하루만의 햇빛으로 그것이 모두 녹아 한 여름의 폭포수처럼 세상에 공급이 됩니다. 언제 그랬냐는듯 세상은 다시 꽁꽁 얼고 건조해지지만 봄이 올 때 까지 여러번의 눈이 내리고 그 눈이 쌓이고 녹고 하는 과정을 되풀이 합니다.


생명이 도무지 살아낼 수 없을듯한 추위와 얼음과 메마름의 계절 겨울에도 창조주의 세심한 배려는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와 아내는 오늘도 창밖에 내리던 눈을 보고 하나님께서 세상에 시원한 생명수를 주시는구나라고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됩니다.


같은 것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다양한 눈(eyes) 과 마음(heart)을 갖고 있는 우리내 인생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가는 만큼 우리 스스로를 알게된다고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과 눈에 가깝게 이른 눈(eyes)을 갖기 시작할 때 우리 눈에 비춰지는 눈(snow)도 창조주의 의도와 목적에 더욱더 가깝게 보여질것입니다.


혹시 혹독하고 메마른 추운 겨울을 지나가고 계시다면 대자연을 통해 드러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거대하고 큰 품을 바라보세요. 그가 여러분의 삶에 눈을 내려주시고 쌓이게하시며 몇시간의 햇빛으로 녹여서 생명수처럼 여러분 삶을 적시며

봄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주실겁니다. 그분의 눈을 가져보세요.


눈을 보는 나와 당신의 눈은 어떤 눈 인가요..

_M#]


Comments

What's on your mind?

댓글 입력 폼

성탄절

2010/12/25 13:29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태어난 성탄절입니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 선물을 보고 좋아할 때 함께 예수님의 탄생이유를 나누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진주, 진우에게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대신해서 맴매 (아이들 용어)를 맞으시기 위해 오셔서 감사하고 기념하는 시간을 갖는 날이 성탄절임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눈을 또릿 또릿하게 뜨고 이야기를 듣고 동감하는 모습을 보며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선물을 열어보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고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이러한 순간을 만끽가고 누리지 못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축복을 보냅니다. 아멘.

Comments

What's on your mind?

댓글 입력 폼

히브리어 비평연구와 가족들...

2010/11/29 22:53
매주 월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짧고 가장 빠르게 지나가는 날 입니다. 왜냐하면 아내 최보연 선교사가 트리니티 아내 모임(Trinity Wives Fellowship)에서 성경공부(Bible study) 를 오후 7시부터 인도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이 백인 학생들의 아내들이고 몇몇이 아프리카와 독일 그 외의 중국 등 아시아 국가 출신의 아내들이 모인 곳에서 유일한 한국인인 아내는 벌써 3년째 리더로서 묵묵히 섬겨오고 있습니다. 올 해는 영국인 남편을 따라 온 독일인 아내 크리시(Crish)와 공동으로 성경공부 리더를 섬기며 멋진 팀웍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화요일까지 내야만 하는 히브리어 비평연구(Exegesis)를 도서관에서 정신없이 연구하며 작성하다보니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 이내 오후 6시 30분이 되어버렸습니다. 보통 밤 12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수 있지만 월요일은 반드시 집으로 7시전에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던 책을 모두 싸들고 집에옵니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아내가 떠난 후 세 아이들 진주, 진우, 지나를 최대의 효율을 얻으며 돌보는 것을 머리속으로 대강 계획을 세워봅니다. 대부분 진주 진우는 영화를 보여주고 오후 8시 30분 즈음에 목욕을 시켜 재우곤 했습니다. 셋째 딸 지나는 아직 너무 어려서(7개월)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안아주고 놀아줘야만 합니다.

그래도 지나가 6개월때 까지만 해도 아이를 옆에서 놀리면서 나름 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7개월이 된 이후에는 아이도 뭔가 더 보이고 몸이 움직이고 에너지가 넘치다 보니 제가 더욱더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오늘은 아내가 거의 밤 10시가 되어서야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이들과 씨름하느라 정작 코앞에 닥친 히브리어 비평연구는 도서관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그렇게 보채던 셋째 딸 지나가 엄마가 나타나자마자 온 얼굴에 화색이 돌고 웃음이 방긋하며 기쁨에 넘친다는 것입니다. 첫째 딸 진주와 둘째 아들 진우 때도 경험한 것이지만 정말 아버지의 역할과 엄마의 역할이 분명하기만 합니다. 창조주께서 남녀가 함께 살도록 하고 자녀를 주는 데는 다 그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양육은 반드시 아버지와 엄마 두 사람이 함께 해야만 아이들이 건강한 영적, 지적, 육체적 삶의 기반을 갖추게 됩니다.

때로 엄마가 너무도 바빠 아버지가 그 엄마가 돌볼 몫과 시간까지 더해서 아이를 돌보았다고 하더라도 아이에게 필요한 엄마와의 절대시간은 절대 아빠의 시간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아버지가 너무도 바빠 엄마가 아이가 필요한 아버지와의 절대시간을 채워서 함께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 또한 빈 공간과 시간으로 아이에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버지의 절대 공유시간(함께 보내야 하는 시간)은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특별한 치유와 사랑으로 그 빈공간이 채워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그 은혜는 치유와 함께 오며 반드시 일정한 시간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을 알아가며 내 속 사람이 자라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으로 결정한 삶의 우선순위가 바로 하나님 먼저, 그다음 가족, 그리고 마지막 사역과 일 입니다.

당장 히브리어 비평연구에서 A 를 받지 못하더라도 가족을 돌보고 아이들과 보내는 절대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A 가 아이들의 절대시간을 나중에 보상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절대시간은 반드시 절대시간으로만 채워지고 보상되기 때문입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히브리어 비평연구의 A 는 언제든지 다시 받을 수 있고 고쳐질 수 있지만 가족들과의 절대시간은 한번 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고 보상될 수 없는 매우 직선적인 시간의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이 우선순위가 제 삶의 조급함에 재동장치 역할을 하는 것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물론 가끔씩 이 재동장치를 풀어놓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재동장치를 풀어놓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결과가 발생할 것은 매우 자명하기 때문에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는 트리티니에서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어서 이것이 가능할 지 모릅니다. 물론 인도에서 선교사로 8년간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 우선순위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잘 해 왔었습니다.

앞으로 한달 후면 지난 2년간 섬겨온 레익뷰 언약교회의 세번째 캠퍼스인 한국인 예배에 더욱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보태야만 합니다. 지난 2년간 해온 우선순위에 대한 노력보다 앞으로 더욱더 큰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역이 시작되면 워낙 사람과 사역을 좋아하는 기질 상 그것에 정신을 더 빼앗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다짐합니다. 내 우선순위 "하나님 먼저, 그리고 가족,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역과 일" 를 최선의 노력을 다해 지켜내겠다고.

뭐든지 행동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거기에다 인내까지 겸하면 금상첨화입니다.


Comments

  1. Keemun Sung 2011/06/30 01:06

    Exegesis는 비평이 아니라, 주해, 혹은 주석작업이라고 하지 않나요? ㅋㅋ

    perm. |  mod/del. |  reply.

What's on your mind?

댓글 입력 폼